소설가 천명관의 소설과 영화
김태훈의 편견 ⑩ 소설가 천명관 원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목표를 정했어요. ‘이번 영화는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니까 흥행에 상관없이 내가 감독을 맡아서 영화를 만든다면 그걸로 인생의 꿈을 이룬 걸로 하자’고요. 흥행은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요. 너무 변수가 많으니까요.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한 생애에 소설가로 감독으로 산 거잖아요. 그러고도 뭔가 부족하다고 하면 제가 나쁜 놈이죠.
평범해 보이는 사내가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낯설음을 지우고자 오전에 만나고 온 영화감독 뤽 베송과의 인터뷰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갑자기 대화에 탄력이 붙는다. 소설이 아닌, 영화 이야기에 눈빛을 반짝거린다. 거침없이 영화에 대한 말이 쏟아진다. 작가 하일지는 그의 소설 『고래』를 읽고 이렇게 말했었다. ‘대단한 구라다.’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순간이다.
장편 쓰듯이 단편을 쓴다
김태훈 : 7년 만에 처음 출간하신 소설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2년 만에 낸 단편 모음집이기도 한데, 느낌이 어떠신가요?
천명관 : 단편을 참 안 썼구나 싶어요. 핑계를 대자면 ‘발표의 기회가 없어서…’라고 얘기하는데요(웃음). 그동안 띄엄띄엄 발표했던 것들을 모아서 나의 창작의 한 시절을 정리했다는 기분이 드네요.
김태훈 : 하루키 같은 소설가의 예를 들면, 먼저 단편 소설을 발매한 뒤에 그 단편에 살을 입히고 확장시켜서 장편으로 넘어가는 창작의 패턴 같은 게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우에는 단편과 장편이 독립적으로 나누어지나요? 아니면 단편에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장편으로 넘어가시는 편인가요?
천명관 : 저는 주로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 사이즈가 큰 편이에요. 시간도 긴 편이고요. 그렇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 단편으로 쓰기가 조금 아까워요. 왜냐하면 각자 독립된 하나의 세계인데, 그걸 단편으로 써먹는다는 게.. 대부분 그것을 확장시키면 하나의 큰 서사도 될 수 있고 분명히 하나의 스타일이 있는 작품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을 단편으로 써서 발표해버리고 나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존 어빙 같은 분도 단편을 안 쓰시거든요. 그 분은 단편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장편 속에 녹인다는 얘길하죠. 저도 기준은 같은데 한국에서 문단 생활을 하려면 단편 청탁이 오면 발표도 해야 하니까, 그런 이유도 있고요. 또 단편만의 맛도 있고요.
김태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에게 단편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천명관 : 아시겠지만 한국 문단이 단편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가잖아요.
김태훈 : 계간지라든지 문예지 중심의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거죠?
천명관 : 그렇죠. 단편을 안 쓰면 마치 문단 생활을 안 한 것 같은, 그런 면이 있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것들은 ‘이건 딱 단편에 맞는 이야기다’라고 생각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이번에 나온 소설 중에 「핑크」라는 작품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고, 하나의 상황만 주어져 있고, 모호한 가운데 반전도 있고. 그건 제가 장르로 쓴 거거든요. 제가 쓴 유일한 장르 소설인 셈인데요. 그런 게 아닌 것들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사실 저는 단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쩐지 단편은 뭔가 시를 닮아있는 것 같고 한 땀 한 땀 세공의 과정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저는 장편 쓰듯이 단편을 쓰니까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김태훈 :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봤을 때, 단편인데 각각의 고유한 서사가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에피소드 하나를 중심에 놓고 사유라든지 묘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긴 호흡의 서사가 있는 것 같았어요. 충분히 장편으로써의 호흡을 가지면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명관 : 이야기로 보면 그렇죠. 저는 서사가 있어야 출발을 하는 편이고, 서사가 약한 것도 있지만, 이야기에서 출발하다 보니까 그런 면이 있죠. ‘소설은 멋있기에는 너무 길다’라는 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장편은 단편을 못 이기고, 단편은 시를 못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길어지면 지루하거든요. 존 어빙도 보통 4,000~5,000매 정도 분량을 쓸 거예요. 미국 소설은 우리보다 훨씬 두꺼워서 2권으로 이루어지는데, 2권쯤에 가서는 지루해져요. 그 뛰어난 존 어빙의 작품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이야기를 쓰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다보니까 멋있는 걸 포기하는 거죠. 멋있는 거 있잖아요. 뭔가 시를 닮아있는 아포리즘의 세계라고 할까요, 김승옥 선생의 단편 미학들에서 시작한 ‘안개 낀’, ‘눈빛 깊은 사내들’, 이런 느낌들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저하고 다른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멋있는 것하고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김태훈 :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 담긴 소설들은 굉장히 어둡다고 해야 할까요, 현실과 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건 최근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천명관 : 지난 몇 년간 띄엄띄엄,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썼는데 모아놓고 보니까 나름 통일성이 있어요. 지금 말씀하신 어둡고 절망적이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죠. 제가 ‘돈으로 인해서 벌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많은 이야기들이 대부분 돈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경제적인 궁핍이나 파산, 죽음, 그런 식으로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저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김태훈 : 그러한 소재를 깊게 사유해서 선택한 게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떠오른 것을 단상 삼아서 써내려간 것들인데, 막상 모아놓고 보니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천명관 : 네. 지난 몇 년 간뿐만이 아니고 아마 제 평생이, 제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아마 그런 곳이 아닌가 싶어요. 『나의 삼촌 브루스 리』나 『고령화 가족』에서도 실패한 사람들, 밑바닥 인생 같은 것들이 등장하잖아요. 그런 게 저한테는 익숙한 세계인 것 같아요.
소설이냐 영화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김태훈 : 이야기를 굉장히 앞쪽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천명관 :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만에 단편을 썼어요. 그리고 한 달 만에 단편 두 편과 중편 하나를 썼어요. 첫 번째 나온 단편집에 다 실려 있는데요. 「비행기」라는 중편이 있었고 「세일링」이라는 단편이 있었어요. 「세일링」은 제가 제일 처음 쓴 소설이에요. 그 작품을 쓰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프랭크와 나」라는 단편을 썼고 그걸로 등단을 하게 됐죠. 「프랭크와 나」도 이야기가 굉장히 강하죠. 짧은 이야기 속에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고요.
김태훈 : 당시의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야기가 주입이 된 걸까요, 아니면 계속 몸 안에서 품고 있던 것들이 작품 속에 녹아든 걸까요?
천명관 : 모르겠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시절에 갖고 있던 아이디어들이었어요.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그렇고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던 시절에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어요. 그런데 영화로 만들 기회가 없으니까 나중에 소설로 쓰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소설이냐 영화냐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김태훈 : 어떤 장르와 매체를 통해서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거군요.
천명관 :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문학성이나 문학이 가지고 있는 고유함에 대해서 별로 고민해 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들을 살펴봐도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들이 있어요. 매우 내면적이고 여성적인 문체도 있고, 질펀하고 해학적인 문체도 있고, 시적인 것도 있고요. 그 이야기에 걸맞은 스타일을 적용해서 쓰는 건데요. 저는 하나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예술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웃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약간 엔터테이너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김태훈 : 사실 우리나라식 표현으로는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외국 같은 경우에는 ‘스토리텔러’나 ‘텔러’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하는 거죠.
천명관 : 그렇죠. 존 어빙도 스스로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짓는 목수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미국 주류 문단에 대한 약간의 곤조 비슷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면에서 저도 이야기성이 중요하고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죠. 소설이든 영화든.
현재 내 꿈은 「길의 노래」를 영화로 만드는 것
김태훈 : 영화라는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시나리오를 쓰시면서 영화 쪽에서 활동도 하셨고요. 2008년 즈음부터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근에 연출이 확정되신 건가요?
천명관 : 확정이라고 하는 건 투자와 캐스팅이 다 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지금은 그걸 위해서 준비하는 중이죠.
김태훈 : 문학에 있어서도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서 시적인 표현을 주로 쓸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갈 것이냐 고민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영화적 형식을 통해서 꼭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천명관 : 저한테 영화는 조금 더 선명한 것 같아요. 영화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비주얼이나 스타일이 조금 더 명확해요. 작년에 제가 창비 블로그에 장편을 연재했어요. 「길의 노래」라는 작품인데요. 1950년대 전쟁이 끝난 직후에 길바닥에서 살아가는 앵벌이들의 이야기예요. 전쟁고아들 중에 한 소년이 앵벌이 제국을 건설하다가 몰락하는 내용이죠. 그 작품을 쓰면서 ‘이건 정말 영화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지들이 너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영화로 찍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그 소설을 절반 정도 쓰다가 중단했어요(웃음). 그래서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는데요. 그 작품을 다시 영화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찍기 위해서는 돈이 굉장히 많이 들더라고요.
김태훈 : 시대 배경을 반영한 세트라든지 의상을 제작하는 데 비용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천명관 : 그 이야기에 그로테스크한 표현주의적인 공간들도 많이 등장해요. 그래서 돈이 너무 많이 들겠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이걸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크레딧을 갖지 않으면 힘들겠구나, 그에 앞서서 뭔가를 해야겠구나’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웃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영화를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도 하고요.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 한국 영화의 상황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김태훈 : 그렇죠. 몇몇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두어들였죠.
천명관 : 제가 90년대에 영화를 할 때에는 장르라는 건 거의 정해져있었어요. 조폭 코미디이거나 로맨틱코미디이거나.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큰 서사도 가능하고, 이야기의 힘이 굉장히 중요해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요즘 수익률이 가장 좋은 게 사극, 시대극이잖아요.
김태훈 :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고 <군도>도 450만 명을 넘겼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해적> 같은 경우도 400만 정도 관객이 든 것 같고요.
천명관 : 그렇게 지금은 남성 서사 쪽으로 충분히 뒷받침이 되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싶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지금 1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시나리오를 6고 정도 썼고요, 팀도 꾸렸어요. 이제 비즈니스가 필요한 단계죠. 이게 엉뚱하게도 창비에서 연재하던 소설로부터 시작됐는데, 현재의 제 꿈은 「길의 노래」를 영화로 만드는 거예요. 제목을 여러 번 바꿨어요. ‘몬스터’라고도 바꿨다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소년’이라고도 바꿨다가. 그런데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가 천 만 관객의 영화 정도는 연출해야겠더라고요(웃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릴 때, 우리가 책을 왜 읽겠어요?
김태훈 : 결국 시나리오 작가는 연출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죠.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빌려준 사람도 결국은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자신이 그렸던 세계를 활자화시켜서 넘겨줬을 때, 감독과 원작자 사이에 차이가 생기잖아요. 아마도 그런 부분이 연출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지금까지 작가님께서 쓰셨던 시나리오나 소설들이 영화화됐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가장 최근작인 <고령화 가족>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천명관 : 물론 원작자로서 아쉬움은 있죠.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맛을 내기도 하니까 그런 재미도 있어요.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하면서, 제가 쓴 시나리오가 영상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시나리오 작가라는 건 한계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디 앨런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내가 연출을 하는 이유는 내 시나리오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라고요(웃음). 저는 보호라기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죠. 그리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외하면, 이제는 작가가 곧 감독인 시대잖아요. 심지어는 블록버스터조차도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든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같은 감독들이 있잖아요.
김태훈 :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는 원작 소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선호하는 듯한 느낌도 있어요.
천명관 : 그건 조금 복잡한 문제인데요. 8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 작품들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90년대 이후에는 문학이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내면성으로 가버렸잖아요. 영화는 조금 더 대중적이고 독자적인 스토리가 필요했던 거고요. 그래서 서로 갈 길을 달리한 거죠.
김태훈 : 얼마 전에 정유정 작가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서사보다는 사변적 이야기들 혹은 사유적 이야기를 문학의 공간으로 가지고 오면서 소설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이 많이 사라져버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어요.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명관 : 그건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고 90년대 이후 계속된 이야기죠. 트리비얼리즘, 사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댄디즘 같은 것들이 있었죠. 저는 그게 잠깐의 유행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걸 뒤집을만한 새로운 미학적 비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게 지금까지 거의 주류 문학처럼 이어져온 거라고 생각해요. 80년대까지만 해도 이야기 중심의 문학이 많았죠. 그리고 문학이 엔터테인먼트로써의 기능을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 청소년 때요. 우리가 책을 왜 읽겠어요?
김태훈 : 재밌어서 읽는 거죠.
천명관 : 그렇죠. 순전히 시간 때우고 재밌으니까. 그런 이야기의 즐거움이 문학이 조금 더 고상한, 소위 말하는 개인적이고 귀족적인 모더니즘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재미도 잃어버리고 서사도 잃어버린 형태가 됐는데요. 문학이 매우 활발하게 문화의 중심에 있던 때도 있었잖아요. 그런 시대였다면 그것을 뒤집는 새로운 문예사조가 나오고, 그것이 또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서로 투쟁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문학이 여기에서 정체되면서 새로운 비전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나마 2000년대 이후에 하이브리드 문학이 등장했죠.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래픽 노블이라든가 TV,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문학 속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죠. 박민규 작가나 김중혁 작가, 김연수 작가도 그렇고요. 저도 그런 편이죠. 하지만 그게 하나의 큰 사조가 되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있을 때처럼, 주류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김태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라는 건 참 매력적입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의 유명한 말씀이 있죠. 결국 문학이 유의미한 건 무용하기 때문이라고요.
충분히 삼류스럽지 않아서 못마땅했어요
김태훈 : 이야기의 소재들은 어디에서 찾아오는 편이세요?
천명관 : 아까 한국 문학을 하일지 선생과 관련해서 얘기했지만, 그 이후에는 외국 문학을 읽었고요. 저는 프랑스 문학보다는 미국 문학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김태훈 : 미국 문학도 시대에 따라서 스타일이 많은 차이가 나는데요. 어떤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셨나요?
천명관 : 헤밍웨이 이후의 시대라고 할까요. 그 이전의 작품들은 미국 문학이라도 엄숙했던 것 같은데, 저는 그 이후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리얼리즘적인 작품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김태훈 : 존 업다이크 같은 작가들의 작품인가요?
천명관 : 그렇죠. 제가 스무살 즈음에 존 업다이크의 작품을 읽었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뭔가 허황된 이야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전의 한국문학은 그런 게 있었어요. 현실의 삶은 누차하고 보잘 것 없지만 뭔가 더 고상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견디는, 일종의 도가적인 것에 대한 추구라고 할까요. 예술 지상주의도 있고 종교적인 희원도 있고, 이런 주제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존 업다이크의 소설을 보면서 소위 말하는 순응주의이라고 하는, 더 이상 구원의 길도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공감을 했어요. 특별한 스토리도 없고 집요하게 묘사를 이어나가는 것들에 공감을 했고요. 그리고 뜬구름 잡는 소리가 없이 사실을 묘사하잖아요. 저는 지금도 그런 문장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죠. 사실의 진술이 아닌 것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해요. 감상적인 거라든가 아포리즘 적인 것, 그런 것들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적으로 간결하고 정확하게 그려내려고 하는 거죠. 그런 건 아마 그런 미국 문학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고요.
김태훈 : 캐릭터가 굉장히 강한 소설들이잖아요. 작가님 역시 동시대의 수많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도 가장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들을 써오셨죠.
천명관 : 그렇죠.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마도 영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게 없잖아요. 소설은 훨씬 더 미묘한 것들이고. 『고래』에서 나오는 칼자국이라든가 매우 고전적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은 영화적인 것 같아요.
김태훈 : 그게 아마도 지금의 사변적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과 분명히 다른 점일 수도 있겠네요. 주인공에게 동일시되면서 그들의 고민이라든가 사유를 고스란히 따라가게 되는 소설도 있는 반면에, 작가님의 소설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즐기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그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에 대해서 뒤늦게 사유하게 되거든요.
천명관 : 계속 90년대의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는데요, 그때는 1인칭이었어요. 주인공이 작가 자신인 거죠. 그 당시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지식인이죠. 대학가 언저리나 예술계 언저리를 떠도는, 요즘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런데요(웃음). 제가 예전에 칼럼에서도 썼었는데, 홍상수 감독의 인물들은 결국 문학에서 온 거거든요. 안개 낀 무진을 떠돌던 눈빛 깊은 사내부터 출발한 내면적 자아들이거든요. 고백적 자아죠. 주인공이기도 하면서 작가 자신이기도 한.
김태훈 : 말씀하신 것처럼 1인칭뿐만 아니라 3인칭일 때도 대부분의 화자가 작가와 동일시되는 소설이 일반적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소설에서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같은 작품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면에서 『나의 삼촌 브루스 리』 같은 경우도 현재에 유행하고 있는 작법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천명관 : 그렇죠. 주인공은 삼촌인데 그를 바라보는 화자로 조카가 등장하죠. 하지만 저는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주인공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각이 지극히 지식인스럽잖아요. 저는 그 소설을 삼류스럽게 쓰고 싶었어요. 제가 어릴 때 극장에 가면 짝퉁 이소룡들이 나오는 삼류 영화들이 있었어요.
김태훈 : (웃음) 말하자면 이소룡이 입었던 트레이닝복을 묘하게 흉내 낸 듯한 짝퉁 노란색 츄리닝처럼 쓰고 싶으셨군요.
천명관 : 삼류문화가 있죠. 고속도로 가판대에 놓여있는 싸구려 잡지들이라든가 곰팡내 나는 동시개봉관, 이런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식인 화자가 끼어들어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들이 나중에 보니까 삼류로 충분하게 떨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어느덧 이런 인간이 됐나’ 싶어서 마음에 안 들었어요(웃음).
김태훈 :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보면, 지금의 내가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당시의 눈높이가 아닌 지금의 눈높이에서 과거를 묘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경우는 조카의 천진난만한 눈으로 삼촌을 떠올렸다면 조금 더 재밌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됩니다.
천명관 : 그렇죠. 저는 그런 것들을 해설문학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건이 있고 작가 자신이 화자를 통해서 그걸 설명하고 해설해요. 예전에는 그걸 누가 더 그럴듯하게 해내느냐가 작가의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죠. 그런 면이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 조금 있어서 ‘충분히 삼류스럽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사실 못마땅했어요(웃음).
영화 한 편을 만들면 꿈을 이룬 걸로 생각하자고
김태훈 : 작가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소설 쪽으로 방향을 바꾸셨는지 궁금해요. 처음 소설가가 되기로 생각하신 건 언제였습니까?
천명관 : 동생의 권유로 소설가가 됐어요. 시나리오를 써서 충무로를 돌아다녀도 잘 되지 않고, 파산하고, 신용불량자 되고, 그런 세월이 너무 길어지니까 제 동생이 ‘차라리 소설을 써봐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소설은 아무나 쓰냐고 반문했더니 형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동생이 이상 문학 수상전집을 7권 사다줬어요. 이렇게 쓰면 된대요(웃음). 전부 읽지는 못하고 띄엄띄엄 보다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과는 너무 달라서 오히려 두려웠어요. 그런 와중에도 용기를 얻어서 썼죠.
역시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죠. 제가 느끼기에는 약간 시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런 기준에서 보면 저는 조금 이야기가 강하고 문장이 거친 작품을 썼던 거죠. 그런데 다행히 등단이 됐죠. 「프랭크와 나」라는 엉뚱하고 이상한 콩트 비슷한 작품을 썼는데, 그 작품이 뽑힐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문단이 그런 작품을 수용해줄 만한 아량이 있었구나 싶어요(웃음). 그때 등단이 안 됐다면 저는 소설을 쓸 일이 없었겠죠.
김태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다시 영화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결국은 소설보다는 영화 쪽의 잔상들이 많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천명관 : 작년인가요,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 땄을 때 TV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요. 인터뷰를 마치고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더니, 이상화 선수가 매우 의아하다는 듯이 ‘저는 꿈을 다 이뤘는데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금메달을 땄는데 더 이상 무슨 꿈이 있겠어요. 그 말을 하는 이상화 선수의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 꿈을 다 이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걸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동시에 ‘그러면 나는 언제쯤 꿈을 이루게 되는 걸까’ 싶었어요. 우리는 항상 뭔가를 더 해야 될 것 같이 느끼잖아요.
천명관 : 창작과 관련 없이 성취라고 하는 가시적인 것들이 있잖아요. 문학상도 있고 노벨상도 있고요. ‘그러다가 늙어서 예술원 회원이 되면 꿈을 이루는 걸까, 그게 최종 목표인 걸까’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저는 지금까지 문학상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로요. 그래서 속으로 ‘이 정도면 나도 괜찮게 살았고, 거대한 꿈은 아니지만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래도 미진한 게 있다면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목표를 정했어요. ‘이번 영화는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니까 흥행에 상관없이 내가 감독을 맡아서 영화를 만든다면 그걸로 인생의 꿈을 이룬 걸로 하자’고요. 흥행은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요. 너무 변수가 많으니까요.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한 생애에 소설가로 감독으로 산 거잖아요. 그러고도 뭔가 부족하다고 하면 제가 나쁜 놈이죠(웃음). 이번 영화가 될지 아니면 이 영화가 실패해서 다음 영화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 한 편을 만들면 꿈을 이룬 걸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원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편이다
김태훈 :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천명관 : 당구를 쳐요.
김태훈 : 얼마나 치십니까?
천명관 : 300 정도예요.
김태훈 : 오, 고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는 300이군요(웃음).
천명관 : 사실 일반인이 조금 열심히 치면 300이고요, 400부터는 ‘한 세월 당구장에서 살았구나’라는 이야기를 듣는 수준이죠. 저는 그냥 일반인 중에서 열심히 치는 수준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치기 시작했고요.
김태훈 : 같이 당구치는 멤버들은 있으세요?
천명관 : 영화판에도 조금 있고요,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들도 있고요. 지난 주말에도 어릴 때 친구들 만나서 같이 쳤죠.
김태훈 : 당구의 매력이라면 뭘까요?
천명관 : 글쎄요. ‘컨트롤’이라고 할까요(웃음). 내 몸을 컨트롤하고, 공을 컨트롤하고,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내가 뜻하는 대로 보내고, 그것이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 그리고 당구장 안을 떠도는 매캐한 담배 연기. 얼마 전에도 후배와 같이 낮에 당구장에 갔는데요.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조용한 데서 당구를 치고 있으니까 ‘진짜 좋지 않냐, 진짜 행복하지 않냐’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웃음). 저는 그렇게 고상한 취미 같은 건 없어요.
김태훈 : 그런 인생관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묻어나는 건가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 보면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서 ‘인생 뭐 있냐?’라는 사유에 도달하게 되잖아요. 그것이 평상시의 작가님 인생관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천명관 : 그렇겠죠? 고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원시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좀 그런 것 같아요. 인간, 특히 개인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일까 싶어요. 남들이 엄청난 예술가라고 떠받들어줘도 그냥 운 좋게 얕은 재주가 하나 있는 거고, 다행히 세상과 잘 맞아떨어져서 촉망받고 주목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뭐 대단한 걸까, 라는 시니컬한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인슈타인처럼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과학자들은 제가 생각해도 참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조금 원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편이에요. 먹이를 구하는 건 언제나 힘들고,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고, 위험한 일이죠. 원시시대부터 맺은 관계, 실존의 엄정한 근본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고 봐요. 고전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이죠. 그런데 이제는 먹이만 가지고는 안 되는 복잡한 세상이 됐죠.
김태훈 : 어떻게 보면 주류와는 조금 다른 취향과 태도를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거기에서 오는 괴리 혹은 아쉬움은 없나요?
천명관 : 있죠, 괴리도 있고요. 요즘에는 현대예술이, 특히 한국 사회에서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있다, 심하게 말하면 권력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스템이 너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사람들을 그 제도 속에 가둔다는 거죠.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취향 같은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발현되어야 하잖아요. 특히 소설은 자본으로부터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저는 소설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돈이 들잖아요. 소설은 어떻게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획일화되고 제도화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단편의 매수도 80매예요. 그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요(웃음). 문체에 있어서도 이렇게 쓰면 잘못된 거라고, 이런 걸 왜 쓰냐고 야단을 치잖아요. 이런 제도화가 조금 불편하죠. 말하자면 나는 야생에서 기예를 익힌 사람인데, 룰이 있는 링 위에 올라가자 허리 아래를 때리면 안 된다 물면 안 된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나는 무는 게 특기인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너는 잘 못 싸운다고 얘기하는 거예요(웃음). 문단 초창기에는 그런 것들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어요.
김태훈 : 저도 최근에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런 부분이 가장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어떤 제도에 안착한다는 것이 곧 삶의 목표처럼 되어버린 젊은이들이 많아요. 아마도 그런 사회적인 현상들-궤도에서 이탈하면 삶이 불행해질 거라는 공포를 끊임없이 심어줌으로써 제도 안으로 흡수시키려는 시도들이 문학에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천명관 : 그렇죠, 엄청난 억압이죠. 이미 학교를 다닐 때부터 어떻게 써야 등단을 하고 문학상을 받는지 다 배우거든요. 저는 그래서 예전에 장정일 씨라든가 하일지 선생이 보여줬던 파격성이 사라진 게 아쉬워요. 어떻게 보면 저도 제대로 적응을 못한 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쉽지는 않고요. 저는 그래도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많이 보여줬고 나름 인정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영화는 자본에게 발목이 잡혀있죠. 예술의 길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치게 모든 게 제도화되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다 거세시킨 걸 실감하죠. 그런 것과 실제로 부딪혀 본 느낌이 있어요.
김태훈 : 영화감독을 꿈꾸시지만, 그래도 소설가로서의 작품 역시 계속 발표하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섣부른 질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앞으로 발표하실 소설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천명관 : 아마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창비에서 연재하단 중단한 장편 「길의 노래」를 마무리해야 되고요. 그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환갑 정도 되면 은퇴를 하고 싶어요. 말년에는 장르 소설을 쓰면서 보냈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엘모어 레너드가 있는데요. 『럼 펀치』 영화 <재키 브라운> <겟 쇼티> 등 영화 원작을 많이 썼죠. 제가 그런 이야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정말 캐릭터의 향연이에요. 그런 류의 한국적인 범죄 소설을 쓰면서 말년을 보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2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치자, 천명관은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의 출간을 기념하는 모임이 있다며 같이 가기를 권했다. 어색한 자리일 것이 뻔했지만 기꺼이 그를 따라 홍대로 향했다. 여전히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기자
* 2013년 11월부터 시작한 <김태훈의 편견> 인터뷰가 '천명관 작가' 편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김태훈의 편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채널예스>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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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천명관, 고래, 고령화 가족,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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