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공부는 인생을 공부하는 것
권선영 작가와 함께하는 파리 건축 원화전
지난 5월 21일 삼청동에서 ‘권선영 작가와 함께하는 파리 건축 원화전 관람’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책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이 보여준 ‘강의실 밖 건축 이야기’처럼, 원화를 구경하며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권선영 작가는 그가 직접 그린 원화를 통해, 늘 우리 삶의 배경으로만 인식되어왔던 건축물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공간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이번 생에 해.”
모든 것은 이 작은 대화에서 시작됐다. 경영학을 전공한 권선영 작가는 “하고 싶으면 이번 생에 하라”는 지인의 말에 공간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에콜 카몽도(Ecole Camondo)에서 공부하던 중 건축의 매력에 빠지게 된 그녀는 건축 기행을 시작했고, 그 기행의 발길이 모여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이 완성됐다.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의 출간을 기념해 열린 ‘파리 건축 원화전’에서 권선영 작가는 프랑스에서 만났던 다양한 건축물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림을 보시면서 눈치 채셨겠지만 그림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넣은 건데, 강아지랑 제가 그림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딱 보이지는 않는데 여러 번 보면 발견하실 수 있는, 그런 요소에요.”
권선영 작가가 그린 파리의 풍경에는 강아지, 창문을 통해 길거리를 관찰하는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썬’이 자주 등장한다. 당장이라도 책 속에서 함께 건축기행을 하는 샤를 할아버지와 썬이 뛰쳐나올 것만 같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좋을 것 같은 롱샹 성당
“프랑스 롱샹지방에 있는 이 성당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마지막으로 지은 건축물이에요. 전쟁이 나서 원래 있던 성당이 없어지고 성당을 새로 지으려고 르 코르뷔지에한테 부탁을 했는데 계속 거절하자, ‘원하는 것을 짓게 해 주겠다’해서 아무 터치 없이 지을 수 있었다고 해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특이한 건축물로 남아있고, 그래서 건축 학도들은 꼭 한번 가보는 성당이죠. 성당이 특이한 이유는 비정형적이기 때문인데요, 다시 그리기도 힘들 정도로 독특해요. 옆의 그림들이 성당의 네 면을 그린 건데, 네 면이 이렇게 다 달라요. 마치 다른 건축물 같은 느낌이 들죠. 약간 타원형이면서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직접 보니까 엄청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더라구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건축물이죠.”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롱샹 성당은 규모가 큰 동시에 틀에 박히지 않은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권선영 작가는 책에서 롱샹 성당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을 살면서 이런 건물을 하나 지을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 95쪽)
건축가들의 용기와 당돌함이 깃든 파리 퐁피두센터
“파리 퐁피두센터도 공모전을 통해서 렌조 피아노가 당선이 돼서 만들어진 건데요, 실제 퐁피두센터가 위치한 보부르지역은 그다지 좋은 지역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문화 공간을 만든 거구요. 렌조 피아노는 이탈리아 건축가로, 이 분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가 이 넓은 광장 덕분이에요. 건물 앞에 광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예술하는 분들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을 할 수 있게끔 한 거죠. 또 특징적인 건, 여기서도 보시면 알겠지만 뒷면이 이렇게 생겼어요. 실내 공간을 더 활용하기 위해 파이프를 실내에 두지 않고 건물 뒤로 다 뺐어요. 이 파이프들은 색깔에 따라서 용도가 다 달라요. 예를 들어 파란색 파이프는 공기를 정화하는 데 사용되고, 전기 공급은 노란색 튜브로 하는 식이죠. 이렇게 색깔로 기능을 구분해 두었어요.”
권선영 작가는 책에서도 파리 퐁피두센터의 뒷면에 주목하고 있다. 색깔로 기능을 나누는 일명 ‘색깔 코드(code couleur)’는 퐁피두 센터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녀는 형형색색 튜브들에서 건축가들의 용기와 당돌함을 읽어낸다.
공장같이 생긴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이라니. 게다가 초반에 이런 형태로 설계를 했을 때 정말로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대. 그런데 결국은 지금까지도 우리한테 풍부한 색감과 공간을 제공해 주잖니. 아마도 샤를 할아버지는 이런 독창적이고 유일한 아이디어로 건축계에 도전장을 던진 건축가들의 용기와 당돌함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거 같아. 우리가 볼 전시회 제목 <마이 웨이my way>처럼 나의 잠재력과 세계관을 믿고 나만의 길을 가라는 뜻이 아닐까. (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 229쪽)
메츠 퐁피두센터와 파리 아랍연구소
권선영 작가는 파리 퐁피두센터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메츠 퐁피두센터도 직접 그렸다. 작가는 메츠 퐁피두센터가 어떻게 지어졌고,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이 건축물을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파리 퐁피두센터가 크게 성공하자, ‘이런 문화 활동을 어떻게 더 활성화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죠. 여기 메츠는 원래 광산 지역이었는데, 이제 그런 걸 안하다 보니 매우 낙후된 지역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다가, ‘여기도 퐁피두 센터를 하나 짓자’ 하게 된 거죠. 이것도 공모전을 통해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지은 건데, 예전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 대피소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분이죠. 메츠 퐁피두 센터는 중국 모자 같은 모양이고, 이 갈색 부분은 다 나무로 되어 있어요. 두 퐁피두센터는 형태가 매우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특이한 구조를 가진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편 아랍권 특유의 전통 건축문양인 무샤라비에를 활용한 파리 아랍연구소는 빛과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파리 아랍연구소는 유리로 된 벽의 안 쪽 문양이 특이한데, 아랍의 전통문양을 본떠서 만든 거라고 해요. 햇빛이 들어오면 바닥에 문양이 새겨져서 저는, ‘그림자 양탄자 같다’, 이런 표현을 했는데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리고 특이한 것 중 하나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서 발견한 것 중에 하나인데, 빛에 따라서 형태가 바뀌어요. 빛이 많이 들어오면 알루미늄 판이 닫히고, 빛이 필요한 저녁때는 판이 열려서 빛이 들어오게 하는 시스템이 컴퓨터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알루미늄 판이 계속 움직이면서 빛의 강도에 따라 문양이 바뀌어요.”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인생을 공부하는 것
권선영 작가는 이번 파리 건축 원화전 행사를 통해 지금껏 그냥 지나쳐왔던 건물에 이야기를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했다. 권선영 작가의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의 다음 글은 우리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건물은 사람이 사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활동과 성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건물은 몇 층인지, 무슨 재료로 지어진 것인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왜냐하면 우리가 1층에 있을 때와 25층에 있을 때의 건물 밖 풍경은 달라지고 그 달라진 풍경이 삶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기 때문이다. (…) 건축은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 밀접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그리고 인생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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