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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부부는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 임형남 저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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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집’만은 지친 당신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건축가 부부인 노은주와 임형남이 ‘집’에 대해 진솔한 화두를 던졌다. 이들이 쓴 건축 에세이 『사람을 살리는 집』을 주제로 독자와 만나는 시간이 열렸다. 유행이나 외관, 혹은 학군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살고 싶은 집’을 위한 진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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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잘 지으려면,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


강연회에 대본은 없었다. 집은 지극히 개인적이라 매뉴얼도 없다고 했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밥이나 옷을 짓듯이 할 수 없다. 그곳에 살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부부는 사례가 될 수 있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며 재료와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가족의 집을 짓기 위해 많은 고민과 대화를 거쳐 설계한다.


임형남: 작년에 서울시와 함께 쪽방촌 돕는 일을 했다. 막상 가보니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 처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 없이 살고 있었다. 우리의 관점으로 그곳에 사는 분들을 재단하면 안 되겠더라. 오히려 집을 고치면 10만 원 월세가 올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더 나은 집을 찾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나의 필요에 의한 게 아니라 주위의 시선이나 정보가 더 큰 영향력이 있는 세상이다. 한번은 한 30대 가장에게 원하는 집의 도면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사각 공간에 거실과 화장실, 안방이 전부였다. 부엌이나 아이 방도 없었다. 그만큼 집이나 가족, 이웃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집을 지으려면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건축주가 살아온 삶, 살고 싶은 집, 필요한 공간을 찾기 위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일 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참으로 묘하게도 집의 그 본연의 가치는 어디론가 증발되고 엉뚱한 가치가 마치 주인인양 그 가운데 들어앉아 있습니다. 모두들 바라마지 않는 경제적 가치라든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손님들, 각종 매체를 통해 유행이라 일컬어지는 스타일과 그림들, 그런 것들이 집의 중요한 인자로 들어앉아 있어 정작 주인들은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지요. (p.4)


사람을 살리는 집을 지으려면, 주위나 체면을 살피지 말고 ‘나’가 주체가 되는 게 우선이다. 두 저자는 대본 대신 질문을 준비했다.


[집을 짓기 위해, 나에게 묻는다]


1.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한가?

2. 나는 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3.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4. 나는 어디서 살고 싶은가?

5. 나는 여기서 언제까지 살 것인가?

6. 집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7. 나의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인가?

8. 나는 언제 집에 머무는가?

9. 내 몸에 맞는 크기의 집은?


부부는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여러 이의 집 짓는 작업을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도 켜켜이 쌓였다. 『사람을 살리는 집』은 온전히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만의 이야기로 만든 책이다. 이들이 집을 지을 때 가장 어려운 건 불현듯 나타나는 ‘사공’이다. 처음엔 그 집에 살 사람의 이야기로 설계에 들어간다. 한창 건축 중인데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건축주의 발목을 잡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 생각한 꿈의 집은 사라지고 성형이 시작된다. 끝까지 자신을 지키는 게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집에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


노은주, 임형남 부부와 두 자녀는 현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언젠가 자신들을 담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지만, 참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원래는 주택에만 살았다. 통의동에도 살았는데, 요즘은 거주 구역이 아닌 상업지대가 되어 집을 옮기게 됐다. 두 딸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 4시부터 집에 있다. 함께 일하는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6시에 집에 들어간다.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노은주: 집을 안 사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집은 많이 지어 봤지만 내 집은 아직도 어렵다. 집은 가족이 담기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네 식구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히 대화도 늘었다. 요즘은 넓은 평수를 선호하는데, 공간의 낭비 같다. 게다가 크고 넓지만 개인을 위한 공간은 부족하다. 묵상의 방이나 책 읽는 공간을 요청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집 위에 석양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곳을 설계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집은 ‘마음을 담은 공간’이다. 그동안 지었던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그 집에 담긴 마음과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었다.


노은주: 3대가 사는 집을 지을 때다. 60대의 노부부가 80대의 부모를 모시며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한 집이었다. 사이가 좋은 가족이었지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한 공간도 필요했다. 서로의 공간 사이에 복도를 집어 넣고, 소수서원에 있는 난간을 도입했다. 한옥은 아니지만 누마루를 더해서 한국적인 느낌도 주었다. 옛 유산이나 조상의 아이디어를 따라 하는 것도 하나의 스승이다.


임형남: 광주 무등산 안에 한 화가가 의뢰한 집을 지었다. 15평짜리 작은 규모였다. 건축주가 70대였기에 고전적인 느낌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건축주가 반대했다. 대신 모던한 감각의 노출 콘크리트를 요청했다. 국립공원이라 공사 중 나온 돌은 밖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마당에 조형물로 세웠다. 서향은 금기와도 같지만, 무등산의 연봉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화가를 위해 서쪽으로 창을 열었다. 완성된 모던한 집에선, 백 년 된 살구나무와 여덟 개의 연봉을 바라보며 작업하는 70대의 화가가 산다.


노은주: 사무실 겸 집으로 쓰려고 통의동에 있는 작은 집을 샀다. 부엌은 앉아서 일하고 싶어서 그렇게 개조했다. 또 하나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은 2층이었는데, 거기에 큰 창을 냈다. 계절의 변화가 보이고 인왕산이 보인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내며, 집에서 가장 실존적인 공간이다.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독자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나만의 집’을 꿈꾸는 사람들의 고민에 두 건축가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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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편하게 노후를 보낼, 서재가 큰 집을 만들고 싶다. 재료를 추천한다면?


임형남: 재료는 죄가 없다. 다 괜찮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쓰는 게 답이다. 70대에게 목조를 추천했더니 콘크리트를 택했다. 반면 어떤 젊은 부부는 목조를 선택하기도 한다.


노은주: 비용이 저렴하기에 ‘원스탑 쇼핑’처럼 모든 걸 다 해주는 시공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시공자를 잘못 만나면 집 짓는 게 힘들어질 수 있다. 일생에 한 번뿐이니 하고 싶은 걸 다 하길 권한다. 현대 기술로 안 되는 건 거의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나무를 많이 쓴 집을 짓고 싶다. 좋은 나무를 쓰기 위해 알아야 할 사항은?


노은주: 우리나라는 바닥 난방을 하기 때문에 원목 틈이 벌어지고 뒤틀릴 수 있다. 그 현상을 자연적이라 생각하면 문제 없다. 아니면 라디에이터를 돌릴 수도 있다. 옵션은 찾아보기 나름이다.


임형남: 좋은 나무를 쓰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캐나다에서 수입을 많이 한다. 어떤 분은 직접 캐나다 회사로 접촉해서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다.


목조주택은 우리나라 기후에도 괜찮은가? 콘크리트 집은 건강에 문제 없는가?


임형남: 절대적으로 좋은 재료는 없는 것 같다. 나무가 절대 선이고 콘크리트가 절대 악이지 않다. 나무라도 통풍이 잘 되어야 좋다. 콘크리트도 표준대로 양생을 잘 하면 해로울 게 없다. 문제는 마감재에 본드를 많이 써서 생긴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환기를 제대로 해야 효과가 있다. 잘못된 상식과 장사치에 많은 이들이 고생한다.


노은주: 좋은 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을 짓는 공정은 열다섯 가지 이상이다. 많은 사람과 재료의 공이 들어간다. 여러 가지가 조화를 이루려면, 환기와 습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원한 창을 내야 한다.


단열과 결로 문제는?


임형남: 기준대로만 하면 큰 문제가 없다. 공사할 때 법규대로 진행하자고 이야기 해야 한다. 또한 조금 위풍이 있는 게 좋다. 옛 선조들이 지은 집에 윗목, 아랫목이 있는 이유다. 차갑고 뜨거운 공기가 잘 순환하기 때문이다.


노은주: 겨울에 난방을 뜨겁게 틀어서 반팔을 입는 건 좋지 않다. 적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


설계 의뢰 시 구체화 작업은 어떻게 하는가?


임형남: 고전적인 집을 많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렸을 때 자신이 좋아했던 공간도 하나씩 떠올려 보길 바란다. 좋아하는 걸 목록으로 적어 연결하면 된다.


노은주: 부부라면 꼭 함께 구체화 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사는 집을 살펴 보면서 공간을 리뷰하는 것도 좋다. 필요한 공간을 떠올려야 한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예산이다. 단독주택은 현금성이 거의 없다. 평생 살고 자식에게 물려줄 집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의 규모에 맞게 지어야 한다.


새가 집을 짓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준비물은 딱 필요한 만큼의 공간, 그만큼의 나뭇가지다. 반면 인간은 남의 시선, 사회적 잣대, 체면에 치중한다.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집,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공간은 무엇일까? ‘나를 살리는 집’이란 무엇일지, 답을 찾아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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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공저13,500원(10% + 5%)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집 나를 살리는 집을 생각하는 건축 에세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금산주택’으로 잘 알려진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그 누구보다 사람·자연·집의 어울림과 소통에 관심이 많아, 그러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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