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 “야구를 좋아하면 재밌을 거예요”
『동대문 외인구단』 펴낸 류미 신경정신과의사 낮에는 의사, 밤에는 야구인?
『동대문 외인구단』의 저자 류미는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열렬한 야구팬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사고로 양쪽 발목을 크게 다친 후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 30분 이상은 걷기도 힘든 그녀에겐 오랜 꿈이 있다. 바로 한 번만이라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공을 던져보는 것.
서울동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는 특별한 야구단이 있다. 중학생 선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결성된 ‘푸르미르야구단’. 동대문 지역의 중학교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추천과 지원을 받아 푸르미르야구단을 조직했다. 참여 자격 조건은 ‘관내 재학 청소년, 선도가 필요한 청소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청소년.’ 학교도 다르고, 학년도 다르고, 저마다의 사연도 다른 외인구단이 탄생했다.
오합지졸 푸르미르야구단의 중심을 지켜준 감독은 박승민 현 넥센 불펜코치. 그리고 ‘멘탈 코치’로는 『동대문 외인구단』의 저자인 류미 신경정신과의사가 발탁됐다. 2013년 5월부터 푸르미르야구단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류미 저자는 약 6개월의 기록을 『동대문 외인구단』에 담았다. 경상남도 창녕의 국립부곡병원 의사로, 한 달에 두 번씩 서울과 부곡을 오가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곧 죽어도 풀스윙, 힘 없어도 돌직구’로 승부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야구 팬들에게도 솔깃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동대문 외인구단』은 야구를 좋아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청소년이 있는 사람들은 또 재미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야구를 좋아하지 않고, 청소년이 없더라고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도 재미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책에는 수많은 ‘루저’들이 나오거든요. 몸이 아프든, 공부를 못하든, 뜻대로 안 되고 매일 싸우든 간에 모두 사회에서 일단은 ‘루저’로 낙인 찍힌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책에는 ‘루저’들끼리 뒤엉켜서 야구하면서 점점 숨어 있던 밝은 기운이 하나 둘 나와요. 자연스러운 회복력을 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아, 지금은 어둡기만 한 내 모습 한구석에는 밝은 생명력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강요하지 않고, 먼저 듣겠다
푸르미르야구단의 멘탈 코치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하는 제안이지요. 목이 너무 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마실래?”라고 하면 이게 제안은 아니잖아요. 저는 당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이 대부분인 병원 생활에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만성 조현병 환자들은 대부분 무의욕, 무쾌감 상태로 살거든요. 그런 환자들을 매일 만나다 보니 저도 무의욕, 무쾌감이 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가장 신나 하던 시간이 일과를 마치고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시간이었죠. 정신 없이 시끄러운 함성이 터지다가도 또, 공 하나하나에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그라운드. 그곳은 항상 제가 동경하던 곳이죠. 그런 저에게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어왔으니 이건 목마른 저에게 주는 시원한 물과 같은 것이었죠. 즉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요.
푸르미르야구단 아이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면접장에서 단체로 봤을 때에는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쑥스러워했죠. 학교에서 말을 좀 안 듣는다는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반항적이거나 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무관심하달까, 시큰둥하달까 그랬어요. 어른들을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사실 반항보다 무관심이 더 심각하지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자기들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여자이고, 또 게다가 몸까지 불편한 저에게 살갑게 아이들이 와서 인사하고 말을 건다는 것을 기대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저의 오만이었죠. 제가 아이들이라고 해도 먼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저 역시 천성이 좀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안녕, 얘들아” 하고 먼저 인사를 하지는 못했어요. 다행히 푸르미르야구단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서 쾌활하고 밝은 아이들과 먼저 친해질 수 있었죠. 그러면서 그 친구의 친구들과 서서히 친해지고. 그렇게 진행이 되었어요. 물론 가장 큰 요인은 ‘야구’였죠. 야구라는 매개체가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말할 거리가 생기더라고요.
의사로서 환자를 마주할 때와 멘탈 코치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는 각기 다른 감정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코치로서 제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겠다, 이렇게 거창하게 마음먹은 건 없고요. 저는 딱 하나의 원칙만 있었어요. ‘강요하지 않고, 먼저 듣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아이는 돈을 훔쳤다고 고백을 해왔는데, 저는 순간 “왜 그랬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어요. 그렇게 묻는 순간 아이가 또 입을 다물 수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먼저 인식시켜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 이야기해요. 강요하는 순간 입은 닫히지요.
사실 정신과라는 과가 속성상 다른 과와는 ‘환자’의 정의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물론 정신과에 오는 분 중에 정말 현실검증력이 떨어지는 환자도 있지요. 망상이나 환청이 지배하는. 그러나 가벼운 불안, 우울, 아니면 학교생활 부적응, 가정 내 불화 등으로 정신과에 오는 아이들을 환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정신과에 오는 사람을 ‘환자’라고 정의하는 순간,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지요, 정신과는. 살다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정신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 이렇다 보니 저는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저 사는 게 조금 힘든 또 하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지요. 푸르미르야구단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의사로서 환자를, 코치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차이는 그래서 없어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이 환자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실제 프로선수들이 푸르미르야구단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했겠지만, 평소 야구광인 저자님께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특별히 더 좋았어요. 정말 잘생기고 키도 크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웃음) 그분들을 보면서 제가 배운 게 있어요. 특히 이후에 넥센 히어로즈에 불펜코치로 가신 박승민 푸르미르야구단 감독님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첫날 아이들이 지각을 많이 하자 저는 좀 초조했어요. 감독님은 아이들에게 시간 엄수하라고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감독님은 아무 말 없이 항상 30분 먼저 나와서 몸 푸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요. 그렇게 몇 달을 계속하니까 나중엔 정말 한 명도 지각하는 아이가 없더라고요. 사실 놀랐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똑같이 배우죠. 늦지 마라, 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어른이 먼저 계속 일찍 오면 되는 거예요. 자신은 늦게 오면서 늦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최악이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어른이 적지 않죠. 속된 말로 ‘말빨’이 서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바뀌길 바란다면 그러니까 욕심이겠죠.
야구단 아이들 중에 특별히 마음에 갔던 학생이 있었나요?
그건 계속 바뀐 건 같아요. 처음에는 공부는 못하고 밝은 아이들이 끌렸어요. 말하기도 편했고요. 나중에는 우등생인데 야구장에 매일 오던 아이에게 시선이 가더라고요. 말해보니 사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던 아이 중의 하나였거든요. 사람은 자기를 닮은 사람에게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매일 듣던 소리가 “네가 무슨 고민이 있냐. 공부 잘하지. 집 잘살지”였어요. 가장 싫어하는 소리였죠. 저도 고민도 있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성적이 떨어져도 표를 내지 않아야 하는 우등생 스트레스도 있었고요. 푸르미르야구단의 우등생 아이도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그 아이가 자기 고민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항상 자신을 우등생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 아니잖아요. 어른들한테 말하면 실망했다고 하겠지요. 공부를 자기보다 못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저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야구를 열심히 하는지 너무 이해가 됐어요. 그래서 가장 마음에 갔지요.
조건 없이 들어주는 마음을 선물하다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는데, 힘든 일은 없었나요?
최근 삼성 마무리를 하고 있는 임창용 선수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일류 투수는 볼 카운트와 싸우고, 이류 투수는 타자와 싸운다”고요.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저 역시 저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지요. 그러니까 그라운드에서 신나게 뛰는 아이들과 감독님을 보면 제 불편한 몸이 너무 싫었어요. 저도 뛰고 싶었고요.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해졌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야구장에서 점점 더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신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말하자면 아이들의 에너지를 제가 받은 거지요. 그 점에서 아이들과 저는 서로 주고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저에게 에너지를 줬고요. 저는 아이들에게 글쎄, 무엇을 줬을까요? ‘조건 없이 들어주는 마음’을 선물하지 않았을 까요.
언제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은 순간은 언젠가요?
저는 승부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팀과 이겨서 환호성을 지를 때 가장 좋았어요. 주눅들어 있던 아이들이 푸르미르야구단에는 많았지요. 공부 때문에 집안 환경 때문에, 새터민 아이들처럼 특수상황 때문에요. 그러다가 자신의 포지션을 맡고, 경기를 하고, 안타를 치면서 아이들은 숨어있던 밝은 기운이 나오더라고요. 야구의 힘이겠지요. 대면대면 하던 아이들이라도 안타를 치면 제가 있던 관중석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세레모니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거예요. 한번은 경기를 마치고 제가 가려고 하니까 한 아이가 제 휠체어 쪽으로 왔어요. 강요하지 않고, 같은 편이고 내가 너를 응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자 아이들도 저를 응원하기 시작한 거겠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그 모습이 저는 더 좋았어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 다 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들을 정상인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을 가장 바란다고요. 제가 아는 어른들은 이런 경우 다 “도와줄까요?” 하면서 다가와요. 의도는 고맙지만 자존심이 상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어요. 편견이 없고, 그러니까 그것을 도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다가왔어요. 그 점이 고맙고 감동적이었어요.
아이들은 편견이 없고, 유연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자님도 코치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나 스스로에 대한 편견도 많이 발견하고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마음이 편해져서 살이 찐 것 같은데요. (웃음) 몸이 불편하다 보니 저는 오랫동안 위축된 인생을 살았어요. 특히 휠체어를 타고 병원 인턴을 하고 그럴 때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항상 마주해야 했죠. 푸르미르야구단은 그러니까 제가 세상으로 나오게 한 계기가 되었지요. 집에서 조용히 야구중계를 보면서 지내고 있던 저에게 숨겨진 승부욕을 자극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자, 나가보자. 세상으로. 뭐 이런 식으로요.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지요. 오랫동안 위축되어 있던 저는 처음에는 포볼로 출루할 생각만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안타도 치고 싶고, 또 홈런도 쳐보고 싶고 그래요. 책이 좀 팔리면 첫 안타가 되려나요.? (웃음)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가 나를 가진 건 아니다
열렬한 야구팬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팀을 응원하시나요?
대한민국여성 중에서 야구 구단을 정해서 들어오는 것은 크게 세가지인 것 같아요. 1 연고지. 2 주변사람의 영향(어릴 때 아버지가 팬이라든가, 남자친구가 팬이라든가. 등등). 3 선수가 잘생겨서. 저는 말하자면 2번과 3번입니다. 물론 야구를 보다 보니까 다른 요소도 생기더라고요. 예컨대 요즘 넥센 같은 팀은 팀 컬러가 매력적이잖아요. 선수 시절 빛을 보지 못하던 감독이 조련하는 팀. 다른 팀 유망주가 그 팀에 가서는 리그 MVP가 되는 팀. 거포 유격수가 있는 팀. 반면 7, 8회까지 비슷하게 가다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팀은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야구팬으로 맥이 빠지죠.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처음에는 얼굴, 주변의 소개 같은 것으로 만나지만 점점 그 사람의 인간적 매력이 더 중요해지지요. 그런 점에서 요즘 LG가 새로운 감독님으로 시작하고 있으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의생활학, 불문학, 의학 등 많은 공부를 하셨는데요. 전공을 바꾸는 걸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대를 가려고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흔 이전에만 전문의가 된다면 괜찮겠다, 라고요. 요즘 평균수명이 여든 살이에요. 마흔에 따도 의사 일을 40년이나 하더라고요. 상당히 길지요? 누군가 그런 말을 했어요. “나는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가 나를 가진 건 아니다”라고요. 전공에 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전공은 나의 수많은 면 중의 하나죠. 그렇게 생각하면 “전공이 나를 고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전공을 고르는 거지요.” 게다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평균수명 때문에 시간도 우리 편이잖아요(웃음).
신경정신과 의사로서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회진, 외래, 레지던트와 책 리뷰, 재활병동 환자들 작업 순찰. 그리고 가끔씩 직원들과 회식. 하드웨어는 그렇고요. 소프트웨어는 ‘내가 이래서 힘들다’는 말 듣는 거지요. 물론 과대망상이나 색정망상으로 본인은 너무 행복한 분들의 이야기도 듣지요. “조인성이 나를 좋아해서 텔레비전으로 계속 신호를 보낸다”고 말하는 환자는 사실 너무 행복해 보여요. 주변 분들이 힘들어서 그렇지요. 보람은요. 정신과 일이라는 게 수술처럼 확 낫는 게 아니라서 사실 극적인 면은 떨어지지요. 그래서 보람도 어떻게 보면 좀 마일드 하달까 그런 면이 있어요. 망상으로 정상생활도 안 되던 분이 이제 많이 좋아져서 바리스타 공부를 한다고 하면 기쁘지요. 말은 간단해 보여도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되기가. 이번에 푸르미르야구단 일을 하면서 정신과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생기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봤어요. 앞으로 보람 있는 일이 더 생기길 희망합니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그라운드에 서보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건 일단 그라운드에 서고 나서 생각하고 싶은데요? 구속을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끌어올리고 나서 생각하겠습니다. (웃음)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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