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대형사건이 왜 빈번하게 일어날까?
『마음의 재구성』 지식인마을 시리즈 조숙환
지난 5월 8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지식인마을 시리즈> 완간기념 ‘교양시민을 위한 심리학’의 첫 시간이 열렸다. 조숙환 교수가 ‘인간의 본질 : 이웃 冷感症(냉감증)?’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사회자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이렇게 소개했다. 매일 안녕을 진지하게 물어야 하는 사회. 세월호 침몰 이후 그것은 보다 뚜렷하고 명백해졌다. 그것은 300명 이상이 사망,실종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거나 실종된 사건이 300번 이상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만 피해자를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의미, 국가의 의미에 대해서도 그렇다. ‘개인 vs 사회 : 개인의 의미, 사회의 의미’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열린 이유로서도 충분했다.
이웃 냉감증의 이유
크든 작든 침몰,붕괴 등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흔히 나오는 얘기가 있다. 안전 불감증. 조 교수는 그 이전에 ‘이웃 냉감증’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전에 불감인 이유로 우리가 너무 혼자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어 지난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추돌 사건을 꺼냈다. 밖으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이 있었으나 승객 대부분이 객차에서 나왔다. 어둠 속, 일부 승객이 대기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한 사람이 ‘세월호 때도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다 죽었다’고 소리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기사를 전했다.
조 교수는 이런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해외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과 관련한 여러 지수를 보여줬다. 한국의 번영지수는 27위로 꽤 높은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생활만족도는 104위(110개국 조사), 행복지수 32위(OECD 34개 회원국 조사), 자살률 1위(OECD 34개국 조사), 탈세율은 26%, 사기 보험금지불액 13.9%(일본은 1%)로 나타났다.
한반도 선진화 재단의 지난 2월 조사도 꺼냈다. 한국은 국방력에선 상당히 상위권이나, 정치, 문화, 사회자본력 등의 순위는 상당히 낮게 나왔다. 특히 사회자본력은 20개국 가운데 15위였다. 사회자본력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힘 등의 무형자산’을 뜻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만나서 대화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신뢰, 사회단체에의 참여(네트워크), 사회의 규범, 사회구조 등 크게 4개의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합한 개념이다.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다는 지표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불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조 교수는 손봉호 교수와 송호근 교수의 말을 인용, ‘도덕성의 결여’와 ‘지역 공동체의 외면’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한국에는 교양시민이 없다”는 송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기서 ‘교양시민’은 독일에서 나온 단어(Bildungsburgertum)로 1840년대 독일자유주의에서 비롯됐다. 이때 교양은 ‘사욕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조 교수는 또 한국과 미국의 50~60대 1000명에게 은퇴 후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조사결과를 인용했다. 한국의 경우, 현금액수와 집이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반면 미국은 자유, 여행 등이 가장 높았다. 미국을 신자유주의의 메카라지만, 미국의 공공성은 한국보다 굳건하다. 프랑스의 정치역사가인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이 19세기에 쓴 『Democracy in America』에 의하면, 당시 미국사회는 커뮤니티가 마을의 당면 과제였다. 공동체의 대화를 통해 재난이나 질병, 범죄, 교육 등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조 교수는 송호근 교수가 한국의 공동체를 명명한 ‘엘리트 중심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이는 대체로 주부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자리로 인식되는 반상회나 명망가 위주의 조찬 모임으로 대변된다고 설명했다. 그런 반면, 한국사회의 시민의식이나 품격이 마냥 낮지 않다는 사례도 제시됐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거쳐 간 것이나 최근 세월호 침몰로 5월 8일 현재 2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것을 들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엘리트와 서민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일까
“한국에 대형사건은 왜 빈번하게 일어날까. 실제로 들은 말인데, 해외의 한국 유학생들이 TV에서 한국 뉴스가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더라. 세월호 침몰을 놓고 지금 우리 사회의 논의에서 빠진 것이 있다. 무엇일까. 탈출한 승무원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자(총리)는 사퇴를 할까? 화살이 한쪽(선장과 승무원)으로만 가고 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조 교수는 빈번하게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발생할 때는 모종의 문제패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패턴을 발견하면 대형사고는 발생하지 않지 않을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들여다보고 우리를 비춰본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통해 ‘나는? 인간이란?’ 등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심리철학자 스티븐 핑커를 인용,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이나 마음읽기(Empathy)-이타주의(Altruism), 즉 ‘감정이입-이타주의 가설(Empathy-Altruism)’을 꺼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첫째, 인간의 본질에는 본능적으로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째, 형제자매가 아닌 사람과도 우정이나 동지애(kinship)을 나눌 수 있다. 상호 의존성 등에 귀의할 수 있다면 복수, 폭력, 전쟁 등의 감소가 가능하다고 핑커는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에 의해 이런 본능이 무너진다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의 ‘후광 효과’를 보자. 후광효과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할 때 그 일부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에 주목해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주게 되어 대상에 대한 비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으로 사회적 지각의 오류 현상이다. 인간은 착시에 의해 판단의 오류를 꽤 많이 범한다. 가령, 일류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카네만 박사에 의하면, 구글의 성공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건 신경쓰지 않고 구글이 거둔 성공의 후광효과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 구글이 하면 다 좋다고 말하는 거지.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목표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후광효과 때문에 학교나 회사 이름, 취직과 같은 표면적인 사건에만 매달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조 교수는 21세기는 공감(empathy)의 시대라면서 공감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븐 핑커를 재차 언급하면서 동지애나 우애, 친밀한 관계를 통해 공감할 수 있다면 용서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그것을 통해 사회는 좀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소셜 인텔리전스(Social Intelligence. 사회적 지능)’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면,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풀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 진화문제를 풀면 가능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언어는 유대관계를 가질 동기가 있었다. 유대관계에 대해 지각하고 개념화를 했고, 언어는 세련돼야만 했다. 아울러 소속감에 대한 필요성도 부각됐다. 또 리더와 추종자, 가르침과 배우는 사람 등 지배체계의 정돈을 위해 언어는 세련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마 전 한 조사에서 초등학교 5~6학년의 절반가량이 하루에 가족과 대화하는 평균 시간이 30분이하라는 답변을 내놨음을 언급했다. 그는 다시 2호선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사건을 꺼냈다.
“많은 사람이 대기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선로를 따라 탈출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안증이다. 얼마 전 사고가 났으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 누가 지시를 내리면 따라야할지 말아야할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위기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냉감함이 문제다. 사건이 계속 나다보니 우리의 인식 세계는 지금 혼돈상태다. 불안에 휩싸여 있다.”
세월호의 선장은 (승객들에게) 머무르라고 하고선 자신은 승무원들과 탈출을 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선장은 왜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그것을 전문성의 결여라고 봤다. 전문성은 얼마 전에 내가 겪은 일과 연계해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쇼핑몰에서 가구를 사서 경기도 연천에 보내야 했다. 쇼핑몰에서 말하길, (도착지가) 멀어서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도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결국 주문을 취소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회사임에도 전문성이 없고 무책임하더라. 이 선장도 마찬가지다. 전문성과 책임성이 없다. 그런데 400명 이상을 실은 큰 배를 어떻게 몰게 됐을까. 그런 사람에게 그렇게 큰 배를 몰게 한 윗사람도 전문성이 없는 것이다. 책임감은 전문성에서 온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책임감 없이 태어났는가? 아니다. 학습이 잘못되고 관습이 잘못 돼서다.
총체적 도덕성 결여와 부패는 타고난 것인가, 잘못된 학습에 의한 것인가?
우리는 뭐가 부족해서 전문성도 도덕성도 없을까. 나는 우리의 역사를 보고 싶다. 변명거리를 찾자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전반적으로 있는 것 같다. 조선 말기 이후 우리는 계속 불안하다.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부터 살아야한다. 누구를 비난하겠나. 동물은 불안하면 먹이와 집을 찾는다. 일류병, 대기업병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PTSD를 겪을 수밖에 없는 지난 60년이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인 욕구에 귀의한다. 불안하니까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킨십이 필요하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같이 다독거려야 한다. 그러려면 자주 만나서 얘기해야 하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린 불행히도 너무도 아프다. 서로를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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