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는 미술관
크뢸러뮐러 미술관, 네덜란드, 오터를로
신관 내부에 자리 잡은 조각 갤러리 역시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실내의 조각 작품을 감상하다가 잠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또 하나의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울창한 숲이 보인다. 인간이 만든 조각품과 조물주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화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반 고흐보다 매력적인 자전거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입구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살아생전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으니 결국 그는 가장 행복한 화가가 아닐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찾아온 관람객들 행렬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아펄도른이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곳이 반 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세계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반 고흐의 초기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비롯해 「씨 뿌리는 사람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반 고흐가 남긴 272점의 주옥같은 작품이 바로 이곳,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반 고흐의 유작 중 회화가 다합쳐 900여 점인 걸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숫자가 아닌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위치한 호허 벨뤼버 공원의 자전거 전용 주차장
내가 처음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찾았을 때의 목적 역시 반 고흐의 작품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두 번째 방문 이후부터는 자전거 때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유로 바뀌었는데, 그 사연은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7년 전 겨울이었다. 미술관 취재차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빈에서 일정을 마친 후 지도 한 장 없이 무작정 암스테르담행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아펄도른까지 갔고 또 거기서 훈더를로행 시외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를 타고 30분 남짓 한적한 시골길을 내달렸더니 그제야 미술관이 있는 공원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공원 입구까지만 가면 미술관이 보이겠거니 했는데, 아뿔싸, 아무리 봐도 미술관 비슷한 건물도 보이지 않고 울창한 숲의 전경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원 매표소 직원에 게 미술관 가는 길을 물었더니, “저기 있는 자전거를 타고 이정표 따라 20분 정도만 더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자전거 전용 주차장으로 하얀 자전거 수백 대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랬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위치한 호허 벨뤼버 공원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보니 트래킹을 작정하고 오지 않은 이상 자전거를 타야만 미술관으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다운 발상이 아닌가? 자전거 전용 주차장은 공원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공원 이용객이라면 누구나 따로 요금을 내지 않고 무료로 탈 수가 있었다. 물론 산책 삼아 운동 삼아 미술관까지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닦여 있어서 자전거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라도 용기를 내서 꼭 도전해볼 만하다.
밤과 하늘과 별을 사랑한 화가
구미술관과 신미술관 전경
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운 후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자 마당 곳곳에 설치된 각양각색의 현대미술 조각품들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미술관은 신新미술관과 구舊미술관 건물이 T자 형태로 결합된 구조인데 두 건물은 외관이 완전히 다르다.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창문이 거의 없는 단순하고 투박한 석조 건물이 바로 구미술관이다. 벨기에 건축가 앙리 반 데 벨데가 1919년에 디자인한 구미술관은 ‘닫힌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대칭적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열린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비대칭형으로 설계된 신미술관은 석조 대신 유리를 많이 써서 훨씬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신미술관은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빔 크비스트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것인데 이렇게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미술관 건물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통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관람객들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신미술관 입구는 벽면 전체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숲을 통과해 미술관에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자연과 단절되지 않고 또 다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신관 내부에 자리 잡은 조각 갤러리 역시 한쪽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실내의 조각 작품을 감상하다가 잠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또 하나의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는 울창한 숲이 보인다. 인간이 만든 조각품과 조물주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화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신미술관 안에서 본 바깥 풍경
미술관의 소장품은 16세기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미술관은 세잔를 비롯한 반 고흐, 고갱, 르누아르, 쇠라 등 인상파 작품은 물론 몬드리안, 피카소, 브라크 등 20세기 현대미술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구미술관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은 당연히 반 고흐의 작품들이 전시된 방으로 언제나 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 그의 대표적인 자화상뿐 아니라 프랑스 남부 아를의 포룸 광장에 자리한 야외 카페의 풍경을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 시기에 그의 절친한 벗이 되어 주었던 집배원을 그린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특히 1888년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한 「별이 빛나는 밤」과 함께 반 고흐가 그린 밤 풍경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에서의 힘든 생활을 청산하고 남프랑스의 아를로 떠났다. 이곳에서 지낸 15개월간 꿈에 그리던 벗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렸고, 온 가족이 그의 모델이 되어준 고마운 집배원 조제프 룰랭 가족을 만났으며, 고갱과 다투다 자신의 귓불을 잘랐고,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등 그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극적인 일들이 잇따랐다. 워낙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인 만큼 창작욕도 왕성해 그는 아를 시절 200여 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했다. 반 고흐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강하게 애착을 느꼈던 풍경이나 인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곤 했는데,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기보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형태를 과장하거나 주관에 따라 색채를 사용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도 파란색과 노란색 등 강렬한 원색의 붓 터치와 과감한 형태를 통해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포룸 광장의 아름다운 카페 풍경을 완성했다. 이 그림에서도 밤하늘에 빛나는 노란 별빛이 유독 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반 고흐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다”라고 쓸 정도로 밤하늘과 별을 사랑했다. 현실이 어떠했건 밤하늘의 풍경과 별을 그리던 그 순간만큼 반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였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쁘고 설렜다. 그런데 미술관 앞에 서자 그렇게 기대했던 건물의 멋진 외관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오피스 빌딩처럼 수직으로 높게 솟은 타워가 시야를 먼저 사로잡더니 이어 톱니 모양의 뾰족뾰족한 지붕을 단 회색 공장 건물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도저히 몇 층짜리 건물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건물의 1층이 2층이 되기도 하고, 또 미술관 옥상인 줄 알고 올라가보면 보행자들이 다니는 광장이 되는 등 직접 와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다. 건축물의 재료도 제각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수직의 타워 건물은 사암과 무광 대리석 등 전체적으로 질박해 보이는 재료로 지어졌는데, 파사드 전체에 반사유리가 여러 번 접히면서 굽이치는 곡선으로 처리돼 역동성을 강조했다. 거울 역할을 하는 이 반사유리들은 미술관 주변의 고풍스런 교회나 마을 풍경을 비춘다. 반면 톱니 모양 지붕의 회색 건물들은 은 색 알루미늄과 티타늄 아연판 등 금속성 재료로 마감되어 도시적이면서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은 마치 재료와 질감이 다른 여러 개의 오브제를 붙여 만든 하나의 콜라주 작품처럼 보였다.
반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방
뮐러 여사의 기부로 탄생한 숲 속 미술관
(좌)구미술관 상설 전시실 입구.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창립자 헬렌 여사의 얼굴이 보인다.
(우)클륄러 뮐러 미술관 조각공원 전경
크뢸러 뮐러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미술관의 이름은 최초 창립자인 독일인 헬렌 크뢸러 뮐러 여사의 성을 따서 붙인 것이다. 미술품 애호가였던 크뢸러 뮐러 여사는 미술사학자이자 교사였던 브렘머의 조언으로 1907년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생전에 이미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수집했을 정도로 미술품 수집에 열중했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했던 한 여성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네덜란드 국민들은 이렇게 멋진 숲 속 미술관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자부심인 반 고흐의 수많은 작품들도 결코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후원이나 기부 문화에 취약한 우리에게는 사뭇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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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는 현대미술가,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대학 강사 등 미술과 관계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이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캐빈디시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윔블던 스쿨오브 아트에서 순수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세계 최대의 미술 경매회사인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최고의 예술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해 세운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학(이론 및 행정)’ 석사를 취득했고 맨체스터대학과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함께 운영하는 아트비즈니스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런던에서는 다수의 그룹전에 기획자와 작가로 참여했으며, 윔블던 드로잉 센터 갤러리에서 근무했고, HDT 기업 컬렉션의 아트 컨설턴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2년 겨울 귀국한 이후 작가 및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며 현재 중앙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삼성문화 아카데미 등에서 ‘유럽 미술관과 컬렉션’‘현대미술’ 등의 주제로 강의를 맡았다. 미국 온라인 예술잡지 『아트크러시(Artkrush)』를 비롯 『월간 미술세계』 『퍼블릭 아트』 등 국내 미술 매체에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2004년 아트스페이스 미음 기획으로 “웰컴-감정의 에스페란토”라는 주제의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성곡미술관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선화랑, 세줄 갤러리, 한전프라자 갤러리 등의 테마 기획전에 초대작가로 참여하여 활약한 바 있다. 현재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더 많은 이들을 현대미술의 매력 속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 강연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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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관을 걷다』에 소개된 미술관 대부분은 유럽의 새로운 아트투어 루트로 주목받고 있는 ‘크로스아트CROSSART’에 속한다. 크로스아트는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지역미술관 열 곳을 묶어 새로운 문화 관광 루트로 개발하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 두 나라가 진행(2003~06년)한 문화관광 협력 프로젝트다. 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