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명우 “당신의 고통, 당신 탓이 아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펴낸 사회학자
지난 3월 2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저자 노명우와 독자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저자는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난해 ‘자전적 사회학’의 첫 번째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이후, 최근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펴냈다. 이날 저자는 끊임없는 갈등을 버텨야하는 세속의 삶에서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독자와 함께 고민했다.
"누구나 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난함을 느낀다. 이 때 “왜 내 월급은 이것밖에 안될까?”라는 푸념으로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답을 찾을 수 없다. 개인적인 곤란함에 빠지다보면 쳇바퀴 돌 듯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이 때 사회학은 개인이 자기 삶에서 느끼는 체험의 분노를 놓치지 않으면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만약 사회학이 어떤 한 개인의 삶도 설명할 수 없다면, 혹은 그 연구대상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다면 사회학은 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의 호사스러운 말잔치가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노명우 교수의 강연 中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쓰게 된 계기는?
제도권 사회학자로서 느낀 회의가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쓰게 된 계기다. 대학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가르치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때 크게 다가왔던 충격은 학자로서 배웠던 사회학은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인이 되는 사람에게는 그런 지식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받은 충격이 대단히 컸다.
대학 강단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인데, 정작 그것을 배운 학생들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사회학과’를 공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대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빠졌다. 가르치는 학생의 99%는 생활인이 되어 사회에 나간다. 학생들의 삶을 보면서 이론적인 계보를 가르치는 패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그것이 아니면 학생들과 수직적인 관계로서의 교수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적 사회학의 시도도 그 맥락을 바꾸는 것이었고, 일종의 탈출구였다.
‘자전적 사회학’의 시도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자전적 사회학’의 시도는 사회학적인 주제와 글쓰기를 한 개인이 삶을 살면서 구체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경험, 체험에서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체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사회학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다. 이 책에 담은 키워드처럼 세속을 사는 존재는 누구나 부딪히는 반복적인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라는 대상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싶었다. 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는 사회학적 전문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과잉으로 존재하는 사회학적 용어를 일상으로 끌어올리다
전문용어는 분석적이 되어가기 위해서 체계화 되는 속성을 지닌다. 분과 학문 고유의 전문 용어를 지니고 있다. 한계점은 전문용어를 그저 관습적으로 쓰거나 지적인 표식으로 쓰게 될 경우, 분석적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다. 단점이 커질 경우, 아카데미 고립현상이 발생한다.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사회학적인 용어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는 어떤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깊게 고민했다. 과잉으로 존재하는 사회학적 용어를 일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학적인 전문 용어가 필요한 부분은 사용했지만 혹시라도 사회학자의 관습 때문에 쓰지 않도록 했다.
노명우 교수는 책 속에서 ′콜드 팩트(cold fact)′의 개념을 들어 상처받은 사회를 설명했다. 콜드 팩트란 마음속의 고통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공포의 존재이다. 저자는 우리가 세속에서 느끼는 고통에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콜트팩트에 직면하고 현실을 아프게 인식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콜드 팩트'(cold fact)가 세상 물정을 이해하는 단계라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 계급적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뼈아프게 인지한다. 이럴 때 우리는 ‘내 월급은 왜 이것밖에 안될까?“ 라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가난의 문제를 공적인 이슈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콜드 팩트'(cold fact)‘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가 인공적으로 통제되어진 실험실 상황에만 존재한다면 낙관주의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태도는 한 개인을 곤궁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콜드 팩트'(cold fact)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분명해진다. 적어도 우리는 냉소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사회학이 세상물정을 살아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회학은 개인의 팔자타령으로 환원되는 문제에 있어서, 그것을 공통의 맥락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다. 먼저 개인이 영위하는 삶의 양태가 객관화 되어야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난함을 느낀다. 이 때 “왜 내 월급은 이것밖에 안될까?”라는 푸념으로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답을 찾을 수 없다. 개인적인 곤란함에 빠지다보면 쳇바퀴 돌 듯 헤어 나오질 못하는 거다. 가난은 환원할 수 없는 처절한 경험이다. 가난의 문제를 푸는 방법은 다른 걸 푸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저임금은 왜 이렇게 낮은가 고민해 볼 수 있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성찰해볼 수 있다. 사회학은 개인이 자기 삶에서 느끼는 체험의 분노를 놓치지 않으면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성의 능력이 발휘되어야할 영역이 존재
불만이라는 감정의 영역에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해결로 바뀌기 위해서는 지성의 힘이 필요하다. 지성의 부재로 일어나는 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에 투표하는 패턴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무기력하고, 악의 총량이 더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휩싸인다. 이럴수록 우리는 반지성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기력의 징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으로의 선회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반지성주의가 매우 팽배하다. 반지성주의적 태도에 부딪히게 되면 학자로서는 뼈아픈 경험에 직면한다. 왜 학자의 말을 듣지 않는지 절망스럽다. 하지만 반지성주의에는 근거와 이유가 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역할보다는 지위와 타이틀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반지성주의가 생길 수밖에 없는 맥락은 이해하고, 충분히 지식인으로서 제대로 역할수행 하지 못한 과거를 반성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지식인의 총량에 대해서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반지성주의는 문제를 결코 해결해주지 못한다.
노명우 교수의 강의가 끝나갈 즈음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독자들은 사회학자로 바라보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며 저자에게 질문했다.
직장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들을 부러워한다. 대부분 직장생활은 참으면서 일하지만 언젠가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라 꿈을 꾼다.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둘의 본질은 노동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월급쟁이의 꿈이라는 건 어느 정도 동의하고, 나 역시도 월급쟁이이기에 가끔은 전업작가로 일하는 상상을 한다. 월급쟁이의 비애는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것이다. 고용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감정노동을 하며 지내야 한다. 정기적인 수입원은 보장되지만, 자기 결정성의 영역이 낮은 편이다. 반면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스케쥴이 자유롭고 자기결정성은 높지만 수입이 불안정하다. 자유로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의 갈등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인식한다고 해서 냉소와 무기력이 해소될까?
이것은 사회학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아도르노는 “무인도에 도착했을 때 병 속에 편지를 담아 보낸다.”는 표현을 쓴다. 이는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이해하고 자기 한계를 명확히 인식함에도 별반 현실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누가 수신자가 되고 행위자가 되는지 불분명한 까닭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학자는 해결사도 아니고, 구원의 방법들을 당장 제시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하지 않으면 완전한 무기력에 빠져버리고 해결의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을 읽고 싱글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자주 직면한다. 저자만의 극복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적인 질문이면서 보편적인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사실 간단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누구나 다 외로우며, 타인은 의외로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외로움을 느끼는 종류와 상황이 다르다. 결혼한 사람은 반대의 상황에서 느낀다. 이를테면 유부남인 친구의 경우 밤늦게 퇴근해서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데 자신만 집안 분위기에 끼지 못할 때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주변이 철저하게 외롭게 만든다고 체감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다가오는 맥락이 각각 다른 것이지, 인간에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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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리얼리티와 마주하는 용기 '세속을 살아가는 월급쟁이 사회학자'가 사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를 고민한 책이다. 저자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 교수로서 스스로가 평범한 세속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누구나 살면서 겪는 세상 경험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