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파르카 뚜레(Ali Farka Toure) <Talking Timbuktu (With Ry Cooder)> (1994)
세상의 끝 팀북투에서 블루스 음악이 탄생했다? 알리 파르카 뚜레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다. 아무리 그 뿌리가 본토에 있다 해도 블루스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었으며, 오히려 역으로 아프리카로 건너가 월드 뮤직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1994년
<Talking Timbuktu>가 발매된 후 이 모든 주장들은 힘을 잃었다.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는 블루스를 하지 않았다. 블루스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도 미국 흑인들이 멋대로 아프리카 음악에 갖다 붙인 칭호라며 비판적이었다. 그의 음악은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고국인 말리의 전통 음악이었으며 그 과정은 지식과 음악이 아닌 영적인 힘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단순한 월드 뮤직을 넘어 그 자체 음악으로 조명받게 되었는데 다른 토속 뮤지션들과 달리 서방세계 뮤지션들과의 교류에 호의적이었고 이를 통해 다양한 방면의 시도를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일찌감치 ‘아프리카의 존 리 후커’로 추앙받던 블루스맨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국 라디오에 보낸 녹음 음반이 유럽으로 건너가면서였다. 50대가 다 되어가던 1980년대, 알리 파르카 뚜레는 자국의 소규모 공연장을 벗어나 유럽 대륙과 미주 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못했고,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업 등등 각종 이유로 인해 투어는 중단되었다. 1992년 월드 뮤직의 선구자 라이 쿠더가 어렵게 말리를 찾았을 때, 그는 고향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었다.
매니저와 쿠더의 거듭되는 제안에 하는 수 없이 녹음한 앨범이었지만 그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의도가 없는 고유의 음악이었지만 12마디 진행, ‘메기고 받기’와 유사한 ‘콜 앤드 리스폰스’ 등 블루스의 모든 요소를 충족하고 있었다. 여기에 익히 알려진 블루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하고 향토적인 기운까지 더해졌다. 각기 다른 열한개의 언어로 불려진 노래들, 「Soukora」와 「Sega」에서 넘실대는 전통 악기의 토속적 리듬, 영화
<언페이스풀>에 삽입되어 유명한 「Ai du」 등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일반적인 그것과 확실히 구분되었다.
앨범의 또다른 의의는 전통과 현재와의 접점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라이 쿠더를 비롯해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한 경력의 퓨전 베이시스트 존 파티투치, 비틀즈 해체 이후 각 멤버들의 솔로 앨범에 참여함으로서 경력을 인정받은 드러머 짐 켈트너의 참여는 월드 뮤직에 대한 편견을 종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앨범은 향토적이면서도 편안한 감성을 통해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현대 음악의 가교’를 놓았다는 점은 알리 파르카 투레의 최대 업적 중 하나다.
1994년 발매된
<Talking Timbuktu>는 월드 뮤직 앨범으로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고, 그 해의 그래미상을 수상함으로서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너무 늦게 찾아온 인기였지만 알리 파르카 뚜레는 이후에도 계속하여 말리의 전통 음악을 알리며 왕성히 활동했다. 2006년 유작
<Savana>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는 그를 기억한다. 음악의 중심은 어디였는지, 나아가 세상의 중심은 본래 어디였는지, 선지자는 찬란한 영화를 누렸던 도시 팀북투에서 그 답을 구했다.
글/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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