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황정음과 지성의 <비밀>, 진실을 가리는 비밀은 독(毒)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비밀>은 끊임없는 비밀과 의심을 낳고 있다. 시청자인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비밀의 전부일까.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밀이 진실이긴 한 걸까. 그리고 <비밀> 속 인물들은 언제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비밀들은 그들을 결국 다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걸 알면서 꼭 비밀을 만들었어야만 했을까. <비밀>을 보다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비밀>의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2013년 9월 25일, KBS에서 새 수목드라마 <비밀>이 시작됐다. <비밀>에는 소위 톱스타라 불릴만한 출연배우도 없었고, 유명한 작가도 없었다. 그저 연기를 잘 하는 배우와 이제 막 단막극을 벗어난 신인 작가만 있었을 뿐이다. 드라마 <비밀>은 기대를 받지 못했고, 방송국 자체에서도 큰 기대가 없었는지 이렇다할 홍보도 없었다. 게다가 유명한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작품이자, 20대 인기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하는 드라마 <상속자들>과, 성공전례가 많고 그런 만큼 투자도 많이 받는 의학드라마 <메디컬탑팀>과 동시간대 방영된다니. 일반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방송관계자들마저도 <비밀>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밀1.jpg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5.3%의 시청률로 출발했던 <비밀>은 단 7회 만에 시청률 15%를 넘겼다. 요즘 드라마 시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시청률 15%만 넘어도 사람들은 대박드라마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지금 <비밀>에 딱 맞다. 시청률은 점점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20%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타방송사 드라마들 사이에서 보란 듯 1위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드라마 <비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비밀>이 이토록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그건 당연한 거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말하기에는 2% 부족했던 배우 황정음이, ‘황정음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배우 황정음이 아닌 강유정 역은 생각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남자주인공 조민혁 역을 맡은 배우 지성은 어떤가. <비밀>을 보는 동안, TV화면에 지성은 없었다. 다만, 조민혁이 있었을 뿐이다. 그 정도로 지성은 완벽하게 조민혁이 되었다. 또 다른 주연배우 배수빈과 이다희, 그리고 조연배우들 또한 자기 몫을 아주 톡톡히 잘해내고 있다. 배우들이 이만큼 연기해주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 <비밀>이 더욱 잘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극본을 가지고, 아무리 멋지게 연출해도, 정작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와 드라마 내용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 드라마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률 면에서 고전하고 있는, 타 드라마 배우들은 연기를 못해서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걸까. 설령 연기 못하는 배우 몇몇이 출연한다고 해도, 대개 극을 이끄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은 상당한 게 보통이다. <비밀>의 출연진들이 모두 연기를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비밀>이 더욱 승승장구하는 것은 맞지만, <비밀>의 성공에는 근본적으로 ‘스토리’가 큰 기여를 했다. 쉽게 말해, 작가가 그만큼 드라마를 잘 썼다. 신인작가임에도 ‘이 드라마 작가가 누구야?’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비밀>은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을까. <비밀>은 제목처럼 정말 비밀스럽다. 드라마는 ‘비밀’로부터 시작되고, ‘비밀’에 의해 전개되며, ‘비밀’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비밀>은 여주인공 강유정(배우 황정음)이 교도소에 있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궁금해한다. 대체 저 여자는 왜 교도소에 있을까. 사실 강유정의 애인 안도훈(배우 배수빈)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강유정이 그를 대신해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비밀이다. 


이후, 그가 죽인 사람의 애인 조민혁(배우 지성)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조민혁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아기를 죽인 강유정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런데 강유정이 자신의 아이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점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조민혁은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짜증이 난다. 심지어는 그녀를 때릴수록 자기가 아플 지경까지 돼버렸다. 그러다 조민혁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착한 여자가 과연 뺑소니를 쳤을까, 과연 정말 사람을 죽게 방치했을까. 그리고 드디어 그는 알게 되었다. 강유정의 비밀, 그리고 동시에 안도훈의 비밀을 말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비밀>은 더 많은 비밀을 품게 되었다. 조민혁은 강유정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녀의 가석방을 막기 위해 안도훈을 이용했고, 안도훈은 욕망에 눈이 멀어 결국 강유정을 배신했다. 그녀의 가석방을 막고, 심지어는 최초의 비밀을 알고 있는 강유정의 아버지를 사지로 내몰았다. 게다가 강유정과 헤어진 뒤, 안도훈은 더 높은 곳을 꿈꾸며, 조민혁의 약혼자이자 친구인 신세연(배우 이다희)을 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안도훈에 대한 비밀을 강유정은 모르고 있었다. 강유정은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렇게 죽었는지, 자신이 왜 가석방 판정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진실을 알지 못했다. <비밀> 10회에서 그녀는 안도훈에 대한 진실을 드디어 알게 된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강유정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최초의 비밀을 품은 강유정을 사랑하게 된 조민혁은 앞으로 어쩔 것인가. 이는 <비밀>의 후반부를 팽팽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유정과 안도훈의 아기 산이는 정말 죽었을까. 뭔가 의심쩍은 표정을 짓는 안도훈의 어머니가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이건 섣부른 추측일 수도 있지만, 과연 조민혁의 애인 서지희(배우 양진성)를 죽인 게 정말 안도훈일까. 물론, 안도훈이 그녀를 빨리 병원으로 옮겼더라면 그녀는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안도훈과 강유정이 타고 있던 차에 치인 것일까, 혹시 다른 사람이 서지희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의심이 된다.


이렇듯 <비밀>은 끊임없는 비밀과 의심을 낳고 있다. 시청자인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비밀의 전부일까.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밀이 진실이긴 한 걸까. 그리고 <비밀> 속 인물들은 언제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비밀들은 그들을 결국 다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걸 알면서 꼭 비밀을 만들었어야만 했을까. <비밀>을 보다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비밀>의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의문은 <비밀>의 마지막회를 볼 때까지 우리가 안고 가야할, 시청자의 몫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밀을 만든 건 그들 스스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그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까지 벌이게 될지 기대되는 한편 걱정도 된다. 그들의 비밀은 지금껏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비밀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던 것 같다.


사실 가장 먼저 비밀을 만든 건, 강유정 본인이다. 강유정이 안도훈의 죄를 대신했고, 안도훈은 그런 강유정을 방치했다.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다. 사랑이 있다고 믿는 여자, 강유정은 안도훈을 위해 그 정도 희생쯤이야 희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안도훈이 잘 되길 바라기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그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선택이 잘한 선택이었을까. 아직 드라마가 끝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의 선택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지금도 강유정 본인만 모르고 있지, 안도훈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미련하리만큼 착하고 가여운 강유정을 어떻게 욕할 수 있겠는가. 


강유정의 거짓말은 결과적으로 안도훈을 괴물로 만들었다. 사랑하니까,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강유정은 거짓말을 했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안도훈은 점점 더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안도훈은 자신의 죄가 한 번 감춰지니,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또 죄를 지어도 얼마든지 그 죄를 감출 수 있을 거란 위험한 착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밀을 지키려 그는 또 다른 비밀을 만들고, 만들었다. 진실을 가리는 비밀은 독이 된다. 계속해서 독을 머금은 안도훈이 괜찮을 리 없다. 이제 그에겐 파멸의 길밖에 남지 않았다.


문뜩, 작년 이맘때 방영되었던 KBS드라마 <착한 남자>가 떠오른다. <착한 남자>의 강마루(배우 송중기)는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를 대신해 감옥에 갔다. 그러나 이후 그 여자는 강마루를 배신하고 점점 더 욕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강마루는 그런 그녀를 향해 복수를 하지만, 결국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그녀의 죄를 대신한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잘못됐다는 것을. 강마루가 말했다.


“그때부터 잘못됐던 거예요. 옳지 않은 걸 덮어줬던 거. 그때부터 누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어디까진 절대 가면 안 되는지 판단기준도 다 잊어버리고 브레이크가 없는 차처럼 질주하고 있었던 거예요. 미안해요, 누나. 내가 누나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땐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신세연이 『폭풍의 언덕』을 두고 말했던 것처럼, 사랑으로 시작된 복수는 결국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을 떠올리고 나니, 문뜩 <비밀>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과연 강유정은 강마루처럼, 변해버린 옛 애인에게 복수를 할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강마루와 같은 마음으로 저런 말을 하게 되진 않을까. 소름끼칠 만큼 무서운 괴물로 변한 안도훈을 보면서, 자신의 선택이 정말 안도훈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그건 잘못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진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안도훈도 강유정의 진심 앞에서 깨닫는 게 꼭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벌 받으며, 평생 아무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꼭 하나, 시청자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착한 남자>의 강마루가 서은기(배우 문채원)를 만나 끝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밀>의 강유정도 꼭 다시 행복해졌으면 한다. 과연 그 행복의 길을 조민혁이 열어줄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비밀에 비밀이 꼬리를 물며, 드라마 <비밀>은 시청자들을 그 속으로 퐁당 빠뜨려버렸다.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와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비밀>을 놓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또한 극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의 인물에 대한 애정도 점점 강해진다. 그래서 <비밀>은 어떻게 보면 참 힘든 드라마다. 극에 몰입할수록, 극중 캐릭터에 몰입할수록 심적으로 함께 고통 받게 된다. 그만큼 이 드라마의 흡인력이 굉장하다. 물론 극에 몰입하지 않고, 한 발 떨어져서 <비밀>을 감상하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비밀>을 보면서 언제까지 몰입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한 발 떨어져 보려 해도, 자꾸만 <비밀> 속에 빠져드는 시청자들이 아마 대다수일 것이다. 한 마디로, <비밀>은 시청자들의 감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드라마다. 이러한 스토리의 힘은 <비밀>이 사랑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실을 가리는 비밀은 독이 된다. 독을 품은 그들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숨가쁘게 달려온 <비밀>, 이제 그 끝을 보기 위해 시청자도 <비밀>과 함께 달린다. 


[관련 기사]

- <메디컬탑팀>, 과연 드라마계의 탑팀이 될 수 있을까

- <스캔들>, 선과 악의 경계에서

- <주군의 태양>, 로맨틱 코메디를 업그레이드하다

- 단막극, 감성의 문을 두드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고아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행복을 꿈꾸는, 꿈이 많은 20대입니다. 저에게 행복이란 글을 쓰는 일이고, 저에게 휴식이란 보고 싶었던 드라마와 책을 마음껏 보는 일입니다. 행복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의 책

첨단 도시 송도를 배경으로 한 세태 소설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화려한 고층 건물에 살고 있는 중산층부터 그들의 건물이 반짝일 수 있도록 닦아내는 청년 노동자까지 오늘날 한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의 서사를 써냈다. 그들의 몸을 통해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저마다의 삶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사유와 성찰의 회복과 공간의 의미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가가 마지막 과제로 붙든 건축 어휘 '솔스케이프’. 영성의 풍경은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 사유하고 성찰하는 공간의 의미를 묻는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공간이야말로 건축의 본질이기에, 스스로를 어떻게 다듬으며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여정은 담담한 울림을 선사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만든다.

마인드 셋 전문가 하와이 대저택이 인생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알렌을 만났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집어 들었던 제임스 알렌의 책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이루어지는 내면 생각의 힘과 그 실천법을 만나보자.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순간

‘이기주의 스케치’ 채널을 운영하는 이기주의 에세이. 일상의 순간을 담아낸 그림과 글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소재를 찾는 것부터 선 긋기, 색칠하기까지,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인생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마주해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