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의 저자 다니엘 튜더는 그 ‘미친’ 남자다. 이코노미스트 지(紙)에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를 썼던 이 남자, 하우스맥주집을 차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던 영국의 청년은 금융회사와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등을 거치며 한국에 맥줏집을 차렸다. 맛없는 한국 맥주를 한탄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브루마스터(맥주 양조기술자)가 됐다. 한국 맥주가 맛없다는 그의 기사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아주 많은 시민들이 그의 기사에 동감을 표했고, 타이밍이 됐다는 판단 하에 친구들과 함께 맥줏집을 열었다.
다니엘 튜더, 한국을 말하다
더불어 그는 전업 작가로 나섰다.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난해 영어로 펴낸
『Korea: The Impossible Country(한국, 불가능한 나라)』 를 한국어로 번역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를 펴냈다.
15년 전 마이클 브린이 펴낸
『한국인을 말한다』 이후 영어권 독자에게 한국을 소개한 책이 없어서 안타까웠던 그는 60여 명과 만나 한국을 담고자 노력했다.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전의 박원순 시장을 비롯, 홍명보 감독과 가수 신중현, 배우 최민식, 우주인 이소연 씨 등의 유명 인사를 비롯해 회사원, 주부, 택시기사 등 평범한 시민을 만났다. 이어 지난 9월 24일,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출간기념 저자강연회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그는 성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이 너무 획일적이고 특정 직업(직종)에 대한 선호를 성공으로 오해한다고 꼬집었다. 경제적 성공이 지금 한국의 획일적인 성공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때문에 정서적 생활을 돌봄 틈이 없다보니 한국인은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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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질문에, 박원순 시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GDP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가치 있는 철학을 따라야 한다.” 그는 사람들의 삶의 질, 즉 여가 시간의 양과 거기서 느끼는 행복의 총량에 대해 말한 것이다.”(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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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도 문제지만, 한국의 모든 것은 서울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다니엘은 서울 중심의 구조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만 지나치게 지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서울은 더 이상 팽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국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기업은 직원을 감축하고 아웃소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는 분양 등의 문제로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그는 별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2~3년 후 다른 지역에 나무집을 지을 생각도 하고 있다. 부산 감천마을 같은 곳에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단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서는 오직 하나로만 통했다. 피 터지게 경쟁해도 대기업 배를 불리는 것밖에 안 됐다. 안정감을 대가로 너무 많은 희생을 했다. 내가 스무 살일 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자유로운 인생,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접하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방황했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내가 꿈꾸던 삶에 꽤 가까이 온 것 같다. 여러분도 각자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옮긴이 노정태의 이야기
옮긴이 노정태가 다니엘에 이어 등장했다. 요즘 외국인을 만나면, 한국인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라며 “Do you know PSY”를 언급했다.
“<설국열차>에 출연한 틸다 스윈튼이 한국에 왔을 때,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데, 왜 한국 타령만하고 영화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느냐고 묻더라. 다니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즉, 이 책은 “Do you know 신중현?”이라고 묻는 책이다. 신중현 노래를 오리지널로 들어봤나? 별로 많지 않다. 우리가 알지만 사실 모르는 것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고 모르는 채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이 책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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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은 한탄스러운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영국에서, 밴드들은 옛날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세대와 신세대 음악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게 그냥 MP3플레이어로 흘러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큰 스피커에서 진짜 살아 있는 음악이 나오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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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는 이어 “군대는 갔다 왔대?”라는 질문을 꺼냈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말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올 질문이란다. 한국도 이젠 국제 사회에서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고,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거나 알고 싶은 외국인도 늘고 있다.
“책에는 박정희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부분이나 반대로 우리가 알지만 말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을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니까 괜찮아?” 책에는 한국 직장사회의 술 문화 이야기가 있다. 되게 재밌다. 왜 우리 스스로는 말을 못하고 외국인 입을 빌어서 한국을 바라보게 될까,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노정태는 연세대 백양로 공사를 언급했다. 공사한답시고 나무를 몽땅 뽑았고, 곳곳에 취업 플랜카드가 붙어 있는 풍경. 그는 이것이 책과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한국의 모습과도 통한다는 것. 전통을 갈아엎고, 경쟁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신입사원 모집 플랜카드가 말하는 건 즉, 경쟁이다.
“‘불가능한 나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불가능한 기적을 이룬 나라이면서 불가능한 성취를 요구하는 나라라는 뜻이 있다. 어쨌든 불가능한 기적을 이뤄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한국전쟁이후 불가능한 기적을 이뤘지만 불가능한 것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지금 이 강의실에서 아무리 고양돼도 문 밖을 나가면 또 현실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작은 기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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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나라’라는 말에는 좀더 부정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인은 물질적 성공과 안정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만족감을 크게 잃어가고 있다. 한국은 교육, 명예, 외모, 직업적 성취에서 스스로를 불가능한 기준에 획일적으로 맞추도록 너무 큰 압박을 가하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면에서 이룩한 놀라운 성취뿐 아니라,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불가능한’ 나라인 것이다.”(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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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고민이나 걱정 없었는지 궁금하다. 특히 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어렵고 패닉을 경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맥주에 대해 많이 아는 친구들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스스로 맥주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이 흔히 마주치는 보통 맥주보다 비싸지만 맛있어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 같이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가능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좋은 커리어를 쌓았다. 어떻게 직업을 바꿀 생각을 했나?
나는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금융권에 있다가 커리어를 왜 급격하게 바꿨냐고 물었는데, 가장 큰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였다. 이전에는 나도 금융권이 좋은 일자리라고 여겼는데, 깨달음이 왔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일도 어려웠고, 사회적인 맥락도 있었다. 금융은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다는 자각이 생기고 있다. 옆에서 보니 금융권에 오래 몸담으면 인간성이 말살되는 부분이 있더라. 많은 금융권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차가운 냉혈한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영국의 내 친구들도 그렇게 변하는 것 같았다. 또 사람은 자기가 잘 하는 것에 매진하는 게 맞다. 그래야 뛰어나게 잘 할 수도 있고.
독도문제를 놓고 외국 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한국인이 독도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 어떻게 이해하나?
외부 시각으로서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독도는 돌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명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독도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예민한 문제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면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친구에게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대 간 정치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견해를 묻고 싶다.
책을 보면 한국사회의 분열에 대한 부분이 있다. 내가 세대 간, 지역 간 분열에 대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다. 한국은 신라시대부터 지역 간 갈등이 있었고, 영국에도 지역 간 갈등이 존재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경제적인 격차다. 옛날에는 다 같이 못살아서 분열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격차 때문에 사회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본다.
대기업 문제는 한국에서 심각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 대기업이 해체되길 원하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대기업도 원칙대로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고 본다. 불법상속이나 탈세, 가격담합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같은 기관이 대기업 악행을 조사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목표는 정상적으로 자본주의가 돌아가고 크건 작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뭣보다 대기업도 한국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해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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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에 더욱 필요한 것은, 전능하신 저 거대기업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당히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저 대열에 참여하는 새로운 사업가들이다.”(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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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심한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인가?
어느 나라에나 경쟁은 있다. 경쟁은 필요하나 한국에선 너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교육에 너무 의미를 두고 있어서 그런 면도 있는데, 도가 지나치다.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이건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강박이 느껴진다. 너무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그들의 삶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너무도 지나친 경쟁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을 보면 그 일환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특정 직업에 경쟁이 몰리면서 경제적으로 역효과를 내는 면도 있다. 그냥 경쟁이 아니라 특정 부문에 국한해 지나친 경쟁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 CEO가 되기 위해선 CEO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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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이 바로 이 과잉경쟁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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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을 받지 못한다. 한국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사회에서 문화계 맥락도 봐야할 것 같은데, 인디음악 등과 같은 비주류음악이 노출이 많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 역할이 크다. 인디음악 등도 계속 노출이 되면 듣는 사람도 처음에는 당황하다가도 자주 접하면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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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저/노정태 역 | 문학동네
그동안 한국을 말한 책은 많았지만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는 남다르다. 이 책에는 동구권 사회주의도, 미국식 자본주의도 아닌, 영국식 합리주의가 다분히 묻어나는 시각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한국이 이룬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이러한 기적을 이루느라 한국이 희생해야만 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한국에 머물며 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는 한국의 맨얼굴을 보았다. 한국에서 느낀 경이와 경탄, 때로는 경악의 순간까지, ‘오늘의 한국’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라는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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