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아나운서 “남편의 첫 소설, 여주인공 되었어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펴낸 아나운서 고민정 남편이랑 같이 책 쓰는 게 소원이에요
“저도 노력하는 거예요.” 시인의 아내라고 별반 다를 것 없다고 말하는 고민정 아나운서. 그러나 시인 남편은 아내에게 책을 쓸 수 있는 동기를 주었고, 아내가 주인공인 소설을 집필했다. 필연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은 두 편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 같다.
한동안 세상은 희귀병 투병 중인 시인과 화려해 보이기만 한 아나운서의 결혼을 두고 흥정놀이를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이를 비교하고 수입을 비교하며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 고민정 아나운서와 시인 조기영. 대학 선후배로 만나 8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현재 결혼 8년차인 두 사람은 이제 누구의 시선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건강을 회복해서, 어차피 알려졌기 때문이 아니다. 둘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모습’, 고민정 아나운서가 남편을 통해 배운 것들이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를 쓰면서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만큼 한 사람의 사랑을 이토록 많이 받을 수 있었을까?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지금의 강인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남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답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질문들. 고민정 아나운서는 말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고.”
난 B612에 살고 있는 새초롬한 장미꽃이었고 그 사람은 그 꽃을 무척이나 사랑한 어린왕자였다. 어린왕자가 그 꽃을 길들이기 전엔 그저 평범한 장미였듯 그를 만나기 전 난 그저 평범한 여자였다. 아나운서라는 꿈도 없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고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물을 뿌려주고, 꽃을 피울 수 있게 응원해 주고, 벌레와 바람으로부터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결국 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꽃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더 큰 왕국을 거느리는 왕자를 만나지 않았냐고, 그 작은 소행성에서 살기가 답답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런 질문들에 어린왕자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 숫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것이다. 나이가 몇 살인지, 몇 평에 살고 있는지, 얼마를 갖고 있는지가 왜 중요하고 그렇게도 궁금한지 말이다. 그것보다는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내 삶을 걸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p.6~7) | ||
글 쓰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어요
‘더 사랑한다’는 말, 요즘 잘 안 하잖아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제목만 들어도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들더라고요. 어떤 독자 분이 “기분 전환용으로 읽은 책인데 읽고 나니, 결혼하고 싶어졌다”고 리뷰를 썼던데요.
책을 내고 깜짝 놀랐어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고루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두가 조건을 원하고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로맨스를 꿈꾸고 사랑에 목말라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는 처음 썼던 책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 의 1.5권쯤 되는 책인데요. 여행하면서 느꼈던 걸 쓰려고 시작했는데, 독자들은 ‘남편에 대한 책’이라는 반응이에요(웃음).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나한테는 남편이었구나’라는 걸 책을 쓰고 나서 알았어요. 제목은 처음 책을 냈을 때부터 제목으로 하고 싶었던 제목이에요. 계속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이번에 책을 새로 내면서 쓰게 됐어요.
책 쓰면서 남편 분에게도 보여주셨나요? 시인 남편을 옆에 두고, 글을 보여주지 않기도 어려웠을 텐데요.
한 챕터를 쓰고 나서 총평을 듣고 싶어서 보여줬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총평을 해주길 원했는데, 첫 단락부터 지적을 하더라고요. 단어가 식상하다, 중복된 단어를 사용를 너무 많이 사용한 거 아니냐 등등.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띄어쓰기, 단어까지 정말 너무 많은 지적을 했어요. 마치 빨간펜 선생님처럼요. 고쳤는데도 계속 지적을 하니까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 “이렇게 내가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면 그냥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고 두 세 달을 글을 쓰지 않았어요. 이런 저를 보더니 남편이 어느 날, 그럼 네 마음대로 써보라고, 자기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부터 무엇을 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썼어요. 대신에 남편에게 들었던 내용이 있으니까, ‘단어가 중복되어선 안 되겠다. 신선해야겠다. 뭔가 처음에 흡인력이 있어야겠다’ 등을 유의했죠. 그렇게 혼자 한 권을 다 쓰고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 교열을 마친 후에 남편한테 보여줬어요. 남편이 자기가 손을 안 댄 게 너무 다행이라고 했어요. 자기는 최선의 글이 나오길 원해서 도움을 주려고 했던 건데, 자기가 고쳤다면 이건 고민정의 글도, 조기영의 글도 아닌 글이 될 뻔했다고요. 유려하진 않지만 풋풋하고 신선하다고, 다 재단했으면 오히려 식상한 글이 될 뻔했다면서 칭찬해줬어요. 책 나오면 사람들이 분명히 ‘남편이 시인인데 좀 봐줬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떳떳해요. 대필가 의심도 받지 않아도 되고(웃음).
추천사를 이해인 수녀님과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써주셨어요. 김용택 선생님은 “고민정 아나운서의 글은 삶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풋풋한 들꽃처럼 깨끗하다”고 표현해줬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감히 제가 이런 평을 받아도 되나 싶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두 분이 추천사를 써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 해주실까’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를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저한테는 작가들이 대단한 존재거든요. 되게 어렵고 귀하고 소중하고 그래요. 저는 작가로만 사는 사람들, 본업이 작가인 사람들이 너무 존경스럽기도 하고 고결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아마 이해인 수녀님이나 김용택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떨려서 말도 못 걸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아나운서들이 책을 많이 쓰지만, 이렇게 사적인 연애, 사랑 이야기를 쓴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시인 남편을 두신 까닭도 있겠지만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방송만 하는 아나운서 말고 무언가를 하는 수식어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나운서는 5년차가 가장 피크거든요. 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때에요. 그런데 소위 꺾이기 시작하면 힘이 들기도 하죠. 제가 벌써 10년차인데, 새내기처럼 무엇이든 맡겨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가 아니라, 고민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글 쓰는 아나운서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늙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요.
월간지에서 육아 에세이도 연재 중이시죠?
안 그래도 오늘 마감해야 해서 인터뷰 끝나고 원고 써야 해요. 마감의 압박이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책을 쓰고 나서 기고만장해서, 여러 군데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신나게 쓰곤 했는데 힘들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이 남듯이 글도 남는구나 싶어요.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는다는 것도 알겠고요. 글은 마감의 압박이 없으면 안 써지잖아요. 에세이 제안을 받았을 때 ‘오히려 잘됐다, 이 기회를 통해 글을 모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 둘째 아이 임신 중이신 걸로 들었어요. 입덧하면서 글 쓰는 것도 어려웠을 텐데요.
힘들었어요. 두 달 정도 됐을 때 입덧이 가장 심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계속 멀미가 나서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며칠 전에는 책에 사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출판사에서 종이를 천 장을 보내줬는데 그걸 본 순간, 숨이 탁 막히더라고요(웃음). 결국 신나게 썼지만요. 정말 글 쓰는 게 출산의 고통과 맞먹는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요.
아나운서, 말과 행동이 같았으면 해요
고민정 아나운서만큼 맨 얼굴을 많이 공개한 아나운서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아나운서라고 하면 두꺼운 메이크업에 딱딱한 이미지가 있는데, 조금 달라요.
보여줄 게 없어서 그래요(웃음). 아나운서들 보고 있으면 화려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죠.
블로그(//blog.naver.com/bosomi710)도 열심히 하고 트위터(@kbsminjung)도 열심히 하시잖아요. 글을 쓸 수 있는 또 다른 통로인 건가요.
블로그는 저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탈출구인 거 같아요. 어떤 분들은 아나운서나 조금 유명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하는 걸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왜 사생활을 공개하냐 고요. 전 그 말 자체가 이해가 안 가요.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 사람의 삶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공개되는 경우가 있고, 저는 능동적으로 공개를 한 거예요. 공개할 수 없다, 싫다는 사람들은 본인의 직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의문이 들어요. 그렇다면 결국 누군가가 써준 원고만은 소화한다는 이야기인데, 저는 방송인으로서 말할 때 진심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생각을 넣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음식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제가 만약 채식주의자라면 “저 감자탕 너무 맛있겠네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사실 저는 고기를 못 먹는데,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어요”라고 말하죠. 명품백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맨날 사치하지 말자, 짝퉁 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본인은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말하고 글하고 똑같아야 하듯이, 방송이랑 생활도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밀이 없는 직업이 되었는데 꽁꽁 싸매고 숨어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이 아팠던 일도 이야기한 거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글과 행동, 말과 행동이 같기가 정말 쉽지 않잖아요. 책에서도 나왔지만 물욕이 적은 편이라고 들었어요. 포털사이트에 ‘고민정 아나운서’를 검색하면 ‘명품백’이 연관 검색어로 뜨더라고요. 명품백을 들고 다녀서가 아니라, 방송 중 명품백에 대한 발언 때문인데요. 주위에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아나운서들도 많았을 텐데, 이 방송이 나간 후로 곤란하진 않았나요.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아니까, 제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명품백 사러 가자는 이야기도 안 하고요. 명품백을 사는 거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그만큼 형편이 되고 명품처럼 들고 다니면 인정하고 싶어요. 제가 들지 않는 건, 사실 KBS 아나운서 월급으로는 명품백을 여러 개 가지고 다닌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고 무리해서 사고 싶지도 않고요. 남들이 다 들고 다니는 똑같은 가방보다는 뭔가 다른 걸 들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가치관이 다른 거니까요. 저는 저대로 지켜나가고 싶은 거예요. 어떤 동료들이나 시청자들은 저의 그런 것들을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몫인 거고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사실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말하고 나면 더 지켜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 말하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고민정 아나운서는 ‘시인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있잖아요. 부담스러운 느낌도 있겠지만 ‘남편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책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시인의 아내로 산다는 게, 그저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현실적으로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힘이 들듯이 저 또한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투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글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평탄하게 살았더라면 글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남편은 저를 화나게도 하지만, 또 나를 찾기 위한 기재가 되기도 하고 동기 부여를 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아나운서가 된 것도 남편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대학 졸업할 무렵,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서 하는 일보다는 뭔가 한 사람이라도 웃게 할 수 있고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때 남편이 아나운서가 되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을 거라면서, 너만 제대로 살고 행동한다면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남편의 조언이 힘이 될 것 같아요.
남편은 자기 삶에 대해 아주 철저해요. 제가 부러웠던 부분이 자신한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지만 남한테는 관대하다는 점이었어요. 남편이 시인이니까 가끔 강의 청탁이 들어오거든요. 저라면 할 것 같은데 안 해요. 강의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거예요. 자기는 아니라고요.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어요. 제가 방송생활을 하다가 힘들어하면 “왜 언론인이 되려고 했냐, 지금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일이 화살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날카롭게 집어주는 사람이 남편이에요. 본인에게 철저한 것처럼 저도 철저하길 바라고요.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서 쓰는 글보다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요. 누구나 그러길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도 노력하는 거예요. 남편이 쓰고자 하는 글만 쓰게 하겠다고 말했는데, 순간순간 저도 욕심이 생겨요. 그런 유혹이 생길 때마다 이미 사람들에게 공개를 했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요. 뱉은 말이니까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점점 사람들의 시선들이 저를 엇나가지 않게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꾸 이야기하는 지도 몰라요. 저 혼자 지키기엔 너무 힘들거든요. 이렇게 제어되는 제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도 제어되고, 말과 행동이 같은 모습을 만들어갔으면 해요.
서점 데이트가 가장 행복한 부부
첫째 아이를 낳기 전에 방송사를 휴직하고, 남편과 1년동안 중국에서 생활했잖아요. 여행을 싫어하는 남편과 함께한 1년은 어땠나요.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를 쓰면서 중국에서 지내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쭉 보면서 편집을 하는데, 사진 속 남편은 너무 해맑게 웃고 있더라고요. 제가 힘들고 지쳤을 때, 저를 웃게 해주려고 장난을 치고 쇼를 한 모습이 전부 사진 속에 담겨 있었어요. 그 사진들을 보는데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남편이 누구보다 여행을 싫어하는 걸 제가 잘 알거든요.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고, 밥을 먹을 때도 꼭 한식, 밥과 국이 있어야 해요. 일주일 여행도 아니고, 한 달 두 달 여행을 그것도 오지를 다니면서 그 때는 한국음식점 찾으러 다니는 게 너무 스트레스고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우리 남편 진짜 고생 많았겠다’ 싶더라고요. 이제서야 깨닫고 고맙다고 말했어요.
최근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데요.
아프리카를 너무 가고 싶은데, 남편이 아프리카는 절대 안 갈 거 같은 거예요. 그 때 한창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케냐의 유혹』 『아프리카 초원학교』 를 읽었는데, 혼자서 가긴 싫고 남편이 안 갈 거 같으니까 아들이랑 가야겠다 싶었어요. 지금 첫째가 세 살인데, 우리 나이로 여섯 살 정도 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아이가 저처럼 여행을 좋아할진 모르지만, 아직 꿈은 저버리지 않고 있어요.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나니깐,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더라고요. 용기를 얻어서 가겠다고 했는데 최근에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프리카에는 벌레가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날씨, 더러운 것, 혐오식품까지 모두 참을 수 있는데 벌레를 너무 싫어하거든요. 남편은 평소에 벌레를 잘 잡아주는데 과연 우리 아이가 벌레를 잘 잡을지 모르겠어요. 잘 잡으면 같이 갈 수는 있는데, 말이에요.
벌레 때문에 아프리카에 못 가게 된다면, 남편은 좋아하겠는걸요.
안 그래도 진지하게 말했어요. 아프리카에 벌레가 많으면 사실 두렵다고. 그랬더니 벌레 정말 많을 거라면서 너무 좋아했어요(웃음).
남편(시인 조기영)이 첫 소설(『달의 뒤편』)을 쓰셨는데 주인공이 고민정 아나운서라고요.
남편이 오래 전부터 ‘언젠가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쓸 날이 오겠다’는 생각을 했었대요. 남편이 아팠을 때가 소설의 주요 내용이 되는데, 정말 영화도 많고 드라마도 많지만, 우리의 삶이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때 우리 두 사람의 생활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남편이 정말 많이 아팠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 그래도 우리 꼭 이겨내자고 다짐도 했고, 결국 이렇게 병을 이겨냈고요. 아무래도 작가들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글로 써서 남기고 싶은 느낌이 있어요. 남편 말로는 2008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대요. 첫 장면이 남편이 가장 아팠을 때 이야기인데, 10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눈물이 나와서 쓰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읽어 보는데 그 때 생각이 나서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요. 단순히 시인과 아나운서의 사랑이 아니라, 아나운서가 되기 전의 제 모습과 시인인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96년 연대화 사태와 같은 학생운동, 현대사의 역사를 그렸어요.
남편이 유일하게 자신만을 위해 쓰는 소비가 책을 사는 일이라고요. 왠지 서점 데이트를 가장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책 고르는 취향이 비슷한 편이에요. 둘 다 공통적으로 역사, 사회과학 서적을 좋아하고 남편은 시집을 너무 좋아하고 저는 시가 아직 어려워요. 서점을 같이 가면 너무 좋아요. 얼마씩 정해놓고 책을 사가지고 오면 만족감을 느껴요. 생일 때도 무슨 선물해줄까 물어보면, 맨날 책이에요. 예를 들어 비싸서 못 샀던 책, 권수가 많은 책을 사달라고 해요. 남편은 88학번, 저는 98번이니까 80년대부터 나왔던 책들이 집에 쌓여있어요. 정말 잡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책도 많아요.
나중에 작은 도서관을 지어도 좋겠어요.
남편 꿈이 우리가 어딘가에 정착해서 집을 짓게 된다면,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많아야 한다고 맨날 맨날 책을 사요(웃음).
종이 위에 남긴 글도 그를 별처럼 빛나게 한다. 단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아내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의 글이 좋다. 화려한 글보다는 담백한 글이 좋고, 어두운 느낌보다는 밝은 느낌의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책도 한 번에 후루룩 읽히는 것보다는 한 자 한 자 곱씹을 수 있는 책이 좋고, 비극적인 내용보다는 해피엔딩을 더 좋아한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책을 좋아하는 건지, 원래 내 취향이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글을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은 적어도 내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꽃향기로 가득하다. 자신이 쓴 글을 잘 보여 주지 않지만 조르면 정말 가끔 보여 주곤 한다. 그럴 때면 난 꽃잎을 먹을 때처럼 달콤하면서도 은은함을 느꼈고, 작은 촛불처럼 수수하면서도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나만의 별이 아닌 모두의 별이 되길 바라면서 ‘별책불혹’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불혹의 나이에도 별과 같은 책을 쓰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p.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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