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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무도를 부탁해' 특집이 보여 준 고된 예능의 세계
재미없어진 무한도전,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것인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던 ‘무도를 부탁해’ 특집
그런데 웬걸, 나는 얼마 안가 숟가락질을 멈추게 되었다. 참치 김밥에는 손도 못 댔는데 <무한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한도전>이 만들어지는 그 지난하고 남루한 제작 현장의 모습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무한도전>은 시청자가 직접 연출을 한다는, 어찌 보면 무모한 설정을 통해 런웨이 뒤편의 정신없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삼십 대 중반쯤 되고나면 삶이 서서히 불편해진다. 게다가 다섯 살 난 아들의 아빠라면 더욱 더.
괜히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게 되고 이미지 관리를 위해 싫은 일도 해야 되며 좋아하는 것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십 년, 아니 오 년 전만 하더라도 당당하게 “슬램덩크”라고 답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음……외국 서적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겠고, 우리나라 작품이라면 <태백산맥>이나 <토지> 정도?”
물론 내가 모범 답안으로 내 놓는 세 작품들 모두 훌륭하고 또한 큰 감명을 주긴 했지만, 정대만의 3점 슛과 강백호의 리바운드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가끔 “쉬는 시간에는 뭘 하세요?”라고 묻는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강박이 슬프기도 하지만 더 슬픈 건 내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역시나 모범 답안을 준비한다.
“음……독서나 재즈 음악 감상 정도?”
사실 나는 속옷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한 손에는 리모컨을 든 채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한다. 포도 한 송이나 과자부스러기 따위를 집어먹으면서. 물론, 가장 좋은 건 치킨이지만.
예능은 유치하고 가볍고 생각 없다는 인상을 풍긴다. 더불어 예능을 즐겨보는 사람들 또한 그러하리라는 혐의를 받는다. 자기소개서에 취미를 ‘예능 시청’이라 적으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사람들을 만나 정치나 경제 대신 지난밤 예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 세상에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고작 예능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거야?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면 대충 읽어낼 수 있다. 그 시간에 책이라도 더 읽거나 차라리 운동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과감히 묻는다.
“사람 웃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세요?”
지난 주 <무한도전>은 ‘무도를 부탁해’ 특집이었다. 워낙 무슨 일을 하건 ‘특집’을 가져다붙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2주에 걸쳐 방영된 이 ‘무도를 부탁해’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요즘 들어 <무한도전>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재미가 없어졌다’이다. 예전만큼 빵빵 터지지 않아서 아쉽다는 투정 정도는 애교고, 포털 사이트의 댓글에는 원색적인 욕이나 출연진, 혹은 제작진을 향한 구체적인 불평과 불만이 넘쳐난다. 실제로도 <무한도전>은 몇 주 연속 시청률은 물론이요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도 좋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추격전이나 거대 프로젝트는 온데간데없고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몸개그로만 방송 분량을 채운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주된 불만. 기대를 모았던 ‘여름 예능 캠프’도 별 다른 반응 없이 끝나자 어김없이 ‘위기론’이 들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도를 부탁해’ 특집은 여러모로 우려를 낳았다. 시청자들이 직접 연출을 한다고? 그런데 12살짜리 초등학생이랑 여고생들이 뽑혔다고? 심지어 몸개그와 MT라고? 안 보겠다, 보기 싫다, 재미없겠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지만 <무한도전>은 토요일 저녁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낮잠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TV 앞에 앉았다. 분식집에서 감자 수제비와 참치 김밥을 시켜놓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장은 반반이었다.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이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고, 걱정과 무관심 사이 딱 그 정도 쯤. <무한도전> 시청은 주 중 행사나 마찬가지이니 TV를 켜긴 했으나 과연 결과물이 좋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나 같은 ‘무도빠’야 재미가 없어도 그만이지만 이왕이면 ‘빵빵’ 터져주길 바라며 멸치 육수 맛과 비슷한 조미료 국물을 입 안에 떠 넣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얼마 안가 숟가락질을 멈추게 되었다. 참치 김밥에는 손도 못 댔는데 <무한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한도전>이 만들어지는 그 지난하고 남루한 제작 현장의 모습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무한도전>은 시청자가 직접 연출을 한다는, 어찌 보면 무모한 설정을 통해 런웨이 뒤편의 정신없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12살의 거장 이예준 감독은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인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땡볕에서 열심히 뛴다. 연기자들을 위해 미니 선풍기를 대령하고 미꾸라지를 몇 마리 잡았는지 수시로 체크하며 부족한 시간동안 어떻게 방송 분량을 뽑아낼지 고민한다. 유재석을 비롯한 연기자들은(그렇다! 그들은 스스로를 연기자라 칭한다)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이 꼬마 감독의 지시 아래 미꾸라지를 잡고, 게임을 하고, 부족한 재료로 추어탕을 끓인다.
어디 그 뿐이랴. 여고생 감독 세 명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잔뜩 준비해 온다. 하지만 그 모두를 써먹을 수는 없는 법. 계획은 수시로 바뀌고 또 추가된다. 연기자들은 단 몇 시간 안에 ‘엑소’의 춤을 배워야 하고,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여고생들을 위해 웃고 떠들고 개그를 펼쳐 보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로 돈 받는 연예인들이 부럽다고. 물론 나 같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연예인의 어마어마한 수입이 부럽지. 안 부럽다면 그건 거짓말. 상사에게 까이거나 쥐꼬리만 한 월급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볼 때면 나도 저들처럼 몇 시간 떠들고 큰 돈 벌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아무렴, 예능은 쉬워보였으니까. 그까이 꺼 뭐 대충 이름표 사냥 좀 하다가 1박 2일로 어디 놀러가서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며 잡기놀이 같은 걸 하고 나면 어느새 통장은 두둑, 지갑은 빵빵.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하루 종일 복사를 해대고 죽어라 보고서를 작성하며 틈나는 대로 상사의 비위도 맞춰야 하는 우리네 인생에 비하면 말이다.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무도를 부탁해’를 보며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예능도 엄연히 일이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꽤 지루하고 골치 아프며 또한 고되기까지 하다는 사실. 출연하는 연기자들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카메라에 불이 켜지면 아프거나, 힘들거나, 혹은 하기 싫거나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것이다. ‘무도를 부탁해’는 <무한도전>의 일곱 멤버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제작진 앞에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합을 맞추는 것, 짐작은 했으나 직접 볼 수는 없었던 그 낯선 모습을 <무한도전>은 과감히 공개했다. 그리하여 이번 ‘무도를 부탁해’ 특집은 그 어느 순간보다 ‘리얼’에 가까웠다.
언젠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둥실둥실 떠다닐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럴싸한 타이틀을 달고 번듯한 일을 하며 존경과 부를 한 몸에 누리는 뭐 그런 사람이, 금방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반짝, 하는 순간을 볼라카믄 매일매일 울매나 쌔빠지게 일해야 하는지 니 아나?”
그때의 나는 인생이란, 잘 편집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고된 노동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뭐, 그래서 지금 이토록 평범하게 사는 거겠지만. 아무튼, ‘무도를 부탁해’ 특집은 김태호 PD가 염두에 두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잘 짜여진 ‘리얼 버라이어티’ 그 자체였다. 우리의 인생과 몹시도 닮은.
<무한도전>은 또 다음 번 방송을 위해 녹화를 시작했고 대부분의 예능이 그렇듯 우리가 보게 되는 건 매끈하게 빠진 편집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매끈함이 고되고 지난한 일상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을, 나는, 그리고 <무한도전>의 오랜 팬들은 알게 되었다. 오래 살 부비며 산 아내의 민낯이 정겨운 것처럼 ‘무도를 부탁해’를 통해 보여 준 <무한도전>의 내밀한 모습은 그것 자체로 꽤 아름다웠다.
아! 물론, 무척 재미있기도 했다.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