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마녀
정여울 작가는 ‘백설공주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정 작가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마녀에 집중을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마녀는, 거울로 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을 보면서 괴로워진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불행의 기원은
비교에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등록금, 취직 등으로 타인에게서 자존감을 위협받게 되는 현 20대는 자존감(Self Esteem)을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20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존감(Self Esteem)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인식(Self awareness)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여울은 말한다. 자기인식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컴플렉스, 트라우마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도 자신만의 방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고, 바우만도 고독을 되찾으라고 주장했다. 현 사회의 사람들은 벽이 있는 사람을 괴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여울은 이에 반대한다. 그녀는
『궁핍한 날의 벗』(박제가 저)의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벽이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그 ‘벽’이 지금의 저자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래의 구절에서의 김 군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벽을 가지고 그것을 밀고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녀의 바람도 넌지시 비추었다.
| | |
|
벽(癖)이 있는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벽(癖)이란 글자는 질병과 치우침으로 구성되어 편벽된 병을 앓는다는 의미가 된다. 벽이 편벽된 병을 의미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군은 늘 화원으로 날래게 달려가서 꽃을 주시한 채 하루 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중략)… 김군은 만물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군의 기예는 천고의 누구와 비교해도 훌륭하다. 백화보를 그린 그는 ‘꽃의 역사’에 공헌한 공신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며 ‘향기의 나라’에서 제사를 올리는 위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벽의 공훈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 |
| | |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정여울도 삶의 운전대를 놔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찍부터 글이 직업이 되면서 겪은 매너리즘이 이유였다. 글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써야하는 순간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 그때 자신이 산 책을 보며 ‘왜 나는 읽지도 않은 수많은 책들을 샀을까?’ 라는 후회감과 ‘그것이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렇게 책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책이 손을 뻗으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책의 대다수가 신화와 관련한 책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신화에 더욱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되었다.
정여울은 신화 중에서 왕자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용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로맨스 이야기가 아니고 모두의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다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용은 자존감을 위협하는 장애물 -부정적인 마음, 불안함, 포기-이고, 공주는 내 안의 아름다운 자아인 뮤즈이며, 왕자는 내가 의식하는 잘 알고 있는 자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공주를 구하는 행위’ 는 자신 안의 뮤즈를 찾는다는 의미다. 정 작가는 내면의 용을 무찔러 아름다운 자아를 찾기 위해 도전을 보여주는 신화로써 자신도 다시금 빛나는 자아를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매너리즘에 빠져 했던 운명에 대한 한탄은 삶의 투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기보다 장애물이 있는 길을 계속 가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여신도 손을 흔든다.
안티고네와 바리데기
그녀는 역사를 멘토로 가득찬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고 표현했다. 사회가 ‘3포세대’(경기침체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 ‘88만원 세대’로 규정지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대상을 장악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라고 진단했다. 정여울은 이러한 틀에 자신이 엮이지 말고 삶에 부딪히는 기회를 통해 삶에 대한 맷집을 키워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번에 나온 영화 <지슬>에서 많은 귀감을 얻었다고 했다. 제주도 4.3 사건이 재조명된 것처럼 책이나 예술작품의 매체는 사물,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혼의 청진기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한 인물로 안티고네와 바리데기를 예시로 들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한 가족의 불행한 사연을 담는 이야기다. 세태에 순응했던 여동생과 달리 그녀는 왕위싸움에서 진 자신의 형제의 장례를 금지해버린 독재에 대항하여 장례를 치러주었다. 정여울 작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보여주는 애도의 힘에서 자신의 아픔에만 집중하는 우리 사회의 세태를 반성하고 타인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양에 안티고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바리데기가 그러한 존재다. 바리데기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다. 바리데기는 아버지가 그에 대한 포상을 제안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많은 불쌍한 사람을 위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이어주는 샤먼이 된다. 정여울 작가는 안티고네와 바리데기의 이야기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과 공감에 대한 의미의 확장을 역설했다. 사랑은 Love를 넘어서 Charity이고, 공감은 Sympathy가 아닌 Empathy다. 현 사회에서 그러한 삶은 시류에 역행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정여울은 희생이 바보 같은 짓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독자와의 시간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재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글을 쓰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야할까?
능력은 오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글쓰기 연습은 글쓰기와 관련 없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삶을 살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새로운 공간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 나에게 글을 쓰는 가장 큰 동력은 마감이다. 마감이라는 존재는 편집자가 아니라 스스로도 정할 수 있다. 마감을 정하여 글을 써보고 스스로 비평가가 되어보아야 한다. 내 글을 공감해줄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을 쓸 때 혼자가 나은지 혹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정여울 작가는 그러한 소속감이 없었을 때, 삶의 형태가 어떘나.
책 『어떻게 할 것인가』(유시민 저) 를 보면 ‘연대’ 에 대한 고민이 나온다. 연대는 공용공간이 있어야 가능하고 어려운 일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는 ‘함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이다. 나도 실패하긴 했지만 북까페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한때 함께이기를 포기한 순간이 있었다. 자폐증 증세까지 보였다. 지금은 주말마다 친구들과 세미나를 한다. 그러한 요즘의 일상이 좋다. 나 혼자 열심히 해도 혼자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지금 동료와 함께하는 세미나가 즐거운 일과 중 하나다.
소속감이 없었을 때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스케줄을 작성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수첩을 사서 스케줄을 썼다. 일종에 일탈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구속의지였던 것 같다. 나도 한때 바쁜 것을 정체성으로 삼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몸의 시계와 의지의 시계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먼저 힘들어지고 일중독, 관계중독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바쁘면 성찰할 수 있는 시간도 없어서 실수를 하고 감수성을 잃어가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새해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우연에 나를 열어놓는다. 2013년 올해 목표는 일이 아니고 주변사람에게 짜증을 피우지 말자다.(웃음)
원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20대다. 꿈을 좇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이 독이 될 때가 있더라. 칭찬을 받았다고 그 길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칭찬을 한 내 글을 낭독한 적이 있다. 좋은 글이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남에게 칭찬받기보다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 꿈에 대한 확신도 마찬가지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지금 이 길로 갈 수 있겠냐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책에서 정여울 작가가 자신의 꿈의 역사는 포기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면서 ‘포기의 역사보다는 실패의 역사가 아름답다.’라고 쓴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여울 작가가 실패에 직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패가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미술수업을 받지 않은 것에 미련이 남아 예술의 전달에서 미술수업을 석 달간 체험한 적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 그 경험으로 도리어 글쓰기를 배웠다. 주변지인들은 나의 글을 보고 “해몽이 꿈보다 좋다.”라고 말하곤 한다. 예전에는 그 말이 때로는 비꼬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 칭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패를 인정하면서 더 이상 그림 그리는 것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면서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표현하는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를 더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도 그러한데 꿈은 더 그러하지 않을까? 자신이 도전하려는 일에 위시리스트만 쓰지 말고 문장으로 실제 구현해보길 바란다.
-
-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 저 | 21세기북스
어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내던져진 청춘에게 대학, 학점, 스펙, 취업 같은 단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2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 정여울은 방황, 여행, 타인, 직업, 배움, 행복, 탐닉, 재능, 멘토, 죽음 등 20대가 가슴속에 품어야 할 20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청춘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인생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20대를 반추해보며 풀어놓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위로와 공감을 넘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