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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 김두한은 왜 국회에 오물투척을 했나?

김두한, 굿피플 선정 정치계 101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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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 밀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범죄를 저지를 만한 환경을 조성해 줬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파괴하고 재벌과 유착하는 부정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 정권을 응징하고자 한다.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고 이를 합리화시키는 당신들은 총리나 내각이 아니고 범죄 피고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선 너희들이 밀수한 사카린 맛을 봐라.”

스승의 날에 태어난 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은 일제시대에는 유명한 조직폭력배였으나,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의송(義松), 별칭은 잇폰(일본어: いっぽん)이다.

일제 강점기 말 약관 즈음에 경성의 유력 조직폭력집단의 지도자로 군림하였으며, 민족말살정책에 거부하는 등 일본에 저항하였다. 해방기에서는 잠시 조선공산당 산하의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있었으나 부친 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이를 탈퇴하고 우익으로 전향하여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투쟁하였다.

한국전쟁에는 대한 학도의용군 등 전선에 참전하였다. 이후 노동운동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제3대와 6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6대 국회의원에 당선 직후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국회에서 삼성 이병철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며 국무위원 등에게 오물을 투척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경기도 수원 신민당 후보로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깃불 관련 발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반공법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해 오다 1972년 11월 19일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었다가 11월 21일 오전에 사망하였다.


김두한의 일생

[사진출처 = 위키백과]
1918년 5월 15일 경성부 종로구에서 김좌진의 아들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자가 실제로 얼굴을 맞댄 것은 1924년 6세 때 외조모와 함께 만주에 가서 만난 것이 전부이다. 외조모와 함께 만주에서 부친 김좌진과 상봉했으나 당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 이후 일제의 간도 참변, 그리고 자유시 참변으로 민족진영과 공산 진영 간에 대립 등으로 경성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교동공립보통학교에 잠시 다녔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김좌진의 가족으로서 불령선인으로 지목되는 한편 집안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다. 1930년 10세 때 혼자 경성에 왔으나 거지들에게 잡혀 수표교 아래에서 살아가다가 원씨 성의 한 노인을 만나 17세까지 성장하였다. “왜놈의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 곧 독립하니 그때 공부하라”라는 원 노인의 뜻에 따라 학교는 다니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원 노인 마저 죽은 뒤 김두한은 서울에서 조직 폭력배들을 눕히며 1935년 나이 18세에 우미관을 중심으로 일약 경성의 조직폭력배의 리더로 등극하였다. 한편으로는 그 힘을 이용하여 일제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적으로 1930년 후반 배우 김승호를 동양극장 극단에 소개하고 곤경에 처한 권투선수 정복수, 레슬링 선수 황병관을 도와주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이후 1942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조선인 강제 징용으로 징용장이 발부되었는데, 이때 그는 조선 총독부와 협상하여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 의용정신대)을 조직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김두한은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참여하여 일본군 무기고를 점령하거나 치안에 힘을 기울이며 활약하였다. 그러나 곧 한국의 군정기로 인해 건국준비위원회 등 단체들이 해체되자 죽마고우이기도 한 프롤레타리아트 공산주의자이던 정진영, 만담가 신불출, 박헌영과의 인연으로 조선 공산당의 전위대장을 역임했다. 남로당 총책이었던 박갑동에 의하면 김두한이 전위대장으로 역임 한 이후 민족진영에서는 조선 공산당에 대해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후 임시정부 계열 비밀결사인 백의사, 이규갑, 장덕수 등에게 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김두한은 조선 공산당을 탈퇴하고 우익으로 전향하였다.

그 뒤 김두한은 대한민청의 실질적 지도자로서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우익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산정호수 김일성 별장습격, 박헌영 납치미수, 국군준비대 습격, 학병동맹 습격, 전평 본부습격, 심영, 신불출 습격, 9월 총파업 등에 활약하였고, 김원봉 습격, 좌우합작 방해 (여운형 협박 벼랑에서 낙하사건, 김규식 협박) 등에도 관여하였다. 좌우합작 방해 이후 경교장에서 김구의 격려와 충고 이후에는 임시정부계열 인물들과 대립이 없었다고 한다.

김두한은 좌우대립 과정에서 5회 피습당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해서 좌우대립에서 우익의 선봉장으로서 활약하였으며 청년단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훗날 반민특위에 체포대상이었던 박흥식 등 친일파 자본가들 집에 습격하기도 했다. 1원도 사사로운 곳에 쓰지 않았다는 근거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자신의 집을 저당과 이승만의 친필 휘호를 보여주며 영수증을 썼다고 한다.

1947년 대한민청 사건 등으로 미군정에 의해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3심 판관이 사퇴제출하는 등 재판 과정에서도 좌우간에 대립이 극심하였다. 1948년 3월 21일 김구는 “근일에 김두한 군의 사건을 보아도 우리가 얻는 바 교훈이 많다. 김 군이 자기범행에 대해서 법적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범행이 애국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또 그가 위대한 애국자 김좌진 장군의 영사(令嗣)라는 점에서 보면, 그에 대한 구명운동이 그토록 열렬하지 못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1948년 3월 24일 지청천, 이범석 등이 존 하지에게 진정하는 등 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1948년 대한청년단의 감찰국장 겸 건설국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노동운동가로서도 활동했으며 이승만에게서 국민방위군 사령관 등 요직제의가 왔으나 독재노선에 들어선 자유당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그는 이 제의를 난색하며 거절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암살표적이 되었고, 김구의 암살 시기인 1949년 6월 17일 국가보안법 등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이 나자 김두한은 인민군과 전투를 벌이며 계속 남하하여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의 회고록에는 그 당시에 부산에 피난해 있던 고위층이나 사회 유력인사들의 행태에 큰 실망을 느끼고 그들을 응징했다고 하는 부분이 보인다.

1960년 8월 장면이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자 그가 친일파였다는 소문이 다시 확산되었다. 8월 19일 국회에서 장면의 총리 지명동의안 표결이 있기 전 김두한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나타나 장면의 친일경력을 문제삼았다. 김두한은 장면에게 역사적인 귀한 표를 던져서는 안된다는 내용과 장면의 창씨개명을 적은 문건을 뿌리고 장면을 국무총리로 뽑는다면 의사당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외쳤으나 제지당했다. 총리 인준안은 총유효득표수 225표 중 찬성 117, 반대 107, 기권 1로 정족수를 채우고 통과되어 결국 장면은 총리에 올랐다.

5?16 군사정변이후 1962년 3월 1일 독립유공자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식이 있었는데 김두한은 부친 김좌진을 대신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 일각에서는 그 역시 독립운동가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조직 폭력배와 결투한 것은 독립운동과는 무관하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면서 사라졌다. 이후에 김두한은 5.16에 대해 관망하는 입장이었으나 박정희가 군에 원대복귀한다는 공약을 믿고 애국단을 조직하였으나 곧 해체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등으로 보궐선거에서 용산구 한국독립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6년 1월 8일에 5단계 혁명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전복을 기도하였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었다. 1월 29일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 석방결의안이 통과되었고 4월 28일에 5년을 구형받은 이후 5월 10일에 김두한을 비롯한 모두 전원 무죄선고되었다. 이후 김두한은 용산에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서울시장과 만나 봉천동에 터를 마련해서 생계를 이주시키게 하였고 판잣집철거문제와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앞장서기도 했다.

1966년 9월 22일 한국 비료 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한 사건으로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 중 무소속 김두한은 국회발언대에서 발언했는데 발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병철이 밀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범죄를 저지를 만한 환경을 조성해줬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파괴하고 재벌과 유착하는 부정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 정권을 응징하고자 한다.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고 이를 합리화시키는 당신들은 총리나 내각이 아니고 범죄 피고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선 너희들이 밀수한 사카린 맛을 봐라.”-국회회의록 中
라고 비판하며 국무위원등에게 미리 준비한 인분을 투척하였다.

이후 이병철 한국비료 사장(삼성 그룹 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하여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 및 학원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을 선언하였다. 그 후 이병철 사장은 헌납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부총리가 해임되자 개각 1주일 만인 1967년 10월 11일 한국비료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했다. 하지만 김두한은 국회의원직을 잃고 구속되었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석방된 김두한은 대한민국 제7대 국회 선거 때 경기도 수원시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유세 도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깃불 발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서대문 형무소 교도관 서윤환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그날 저녁 김두한 씨가 비에 젖은 채 감방에 왔는데 손과 발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온몸이 피멍 투성이였다”고 하며 그 다음 날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돌아와서는 “서 동지, 나 죽을 뻔했어”라며 웃을 뿐 불만은 토로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후 석방된 김두한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1972년 11월 19일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가 쓰러져 11월 21일 오전 9시 5분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무허가 자택에서 향년 54세의 나이로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조시원이 장례위원장으로 광복장으로 치렀다. 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1972년 11월 21일은 박정희 정부가 유신헌법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유신헌법을 확정한 날이다.


김두한에 대한 다양한 평가

김두한은 굿피플 선정 정치계 101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전 통일부총리 권오기는 “조악하고 거칠기는 했지만 결코 야비하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인간 김두한은 시원시원한 말투와 예의를 지닌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바른 사회 밝은 정치 시민연합(상임대표 전득주 숭실대교수)에서 조사한 역대 가장 훌륭한 국회의원으로서 신익희, 조병옥, 제정구 등과 함께 김두한이 선정되었다.

역사학자인 한홍구는 김두한에 대해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악역을 많이 맡았지만, 분명히 그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나름대로 자기 입장을 갖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그는 주변의 모사들에 의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끝내 자신의 이름보다 장군의 아들이란 아버지의 후광 속에 들어가야만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라고 평가했다.

풍운아 김두한은 드라마와 영화 소재로도 참 매력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제1~3공화국> <무풍지대> <야인시대> 등 MBC, KBS, SBS 모든 드라마에 주요 인물로 묘사되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실록 김두한> 등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출처: 위키백과, 예스24)



김두한 관련 추천 도서


대한민국사 1

한홍구 저 | 한겨레신문사

우리 손으로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하고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지적하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역사가 피동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단정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민족의 해방과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해 우리는 끈질기게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승리하지 못했을 뿐이며 지금까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사의 여려 면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도가 숨어져 있다. 단군에서 김두한시대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역사 이면에 숨은 무엇인가 있는것인지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김두한 사형언도와 오물투척사건

윤형복 저 | 정론

우리 나라의 반공영웅이자 2대에 걸친 항일투사 집안인 김두한 의원의 이야기를 그린 책. 김두한 의원의 방대한 이야기 중 대표적인 활약상만을 모아 서술했으며, 아동문학가 고 오세발의 고증과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참고해 서술하고 있다.







풍운아 김두한

오세발 | 청목사

주먹계 황제로서의 의리와 정치인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며 짧은 인생 굵게 살다 간 거인 김두한의 파란만장한 삶과 철학. 청산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 그의 생애는 어느 소설보다도 흥미롭고 아슬아슬하고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은 여느 협객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었다. 그의 생애는 일관된 줄거리가 있고,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조국애의 격정으로 충만되어 있다. 정의가 사라진 요즘 세태에 김두한의 꿋꿋했던 신념은 우리 모두가 주시해야 할 것이다.





협객 김두한

김효천/이대근/독고성/서미경 | 기타 제작사

미와 형사에게 잡혀간 김두한은 그 길로 수감된다. 그가 없는 동안 뒷거리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본 낭인인 고노예의 세력, 상하이 박의 횡포, 여기서 협객의 정도가 깨어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마루오까가 종로서에 부임해서 김두한의 잔류조직을 송두리채 부숴버린다. 김두한은 출감하자마자 우선 상하이 박을 처치하고 이어서 고노예와 일전을 벌일 채비를 차린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두한은 영태와 무옥을 데리고 고노예 일당에 대전한다. 그러나 김두한은 끝내 고노예를 물리치고 전국의 협객 보스로 자리를 굳힌다.




장군의 아들

임권택/신현준/김승우/박상민 | Eins M&M

1930년대 일제 암흑기 속, 서울 종로 바닥을 주름잡았던 한 영웅의 활약상을 그린 은 임권택 감독의 88번째 연출작이다. 무대 재현과 의상, 소품을 위해 7개월여가 소요될 만큼 엄청난 시간과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달성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더불어 극중 김두한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박상민은 대종상 신인 남자 배우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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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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