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북 토크
엄마에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그런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
개명한 스타일의 남자를 위한 잡지 <GQ KOREA>의 이충걸 편집장. 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을 조합한 ‘이충걸식 글쓰기’로 일군의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다. 으레 까다롭고 까칠할 것 같은 이미지의 그가 엄마에 관한 책『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를 펴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주제의 책을 낸 이유를 지난 4월 22일 진행된 출간 기념 북 토크에서 풀어냈다. 이날 북 토크의 진행은 평소 지인으로 알려진 황경신 작가가 맡았다.
이충걸 : 이번 책에는 예전 책의 딱 한 챕터 빼고 모두 실었어요. 추가된 열 몇 편은 그 후의 이야기죠.
황경신 : 책의 소개 글에 “이충걸은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명했다고 말해도 좋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충걸 : 저는 그 말이 과장되기도 했지만 과분한 채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엄마를 우리 엄마로서가 아니라 제 인생에 다가온 친구로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병석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연민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에요. 엄마와 저는 널브러진 서로를 부축해서 산책하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황경신 : ‘역시 난 엄마 아들이야’라고 생각할 때도 있죠?
이충걸 : 전 닮은 걸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너무 극명하고 청결하고 검소한데, 전 나태하고 지저분하거든요. 엄마는 고춧가루 빻을 때 한 근에 100원이 싸다는 이유로 아랫동네까지 갔다가 올라오지만 저는 일 년이 고단해지는 시계를 살 때가 종종 있어요.
황경신 : “나는 하루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럴까?”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엄마의 방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이충걸 :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엄마는 단추 하나를 달면 20원 정도 주는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오랫동안 하셨어요. 그 일을 죽을 때까지 해봤자 얻는 돈이 얼마 되지 않을 텐데 말이죠. 그럴 때 저는 ‘이분 이 왜 나에게 압박을 주시려고 압박축구를 하시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TV를 보다 거실에서 주무시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루다 보니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때마다 꼭 어머니가 주무시다 깨요. 그다음엔 제 방문을 노크 없이 들어오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전 야동을 볼 수가 없어요. 엄마는 제게 사생활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황경신 : 스스로 굉장히 좋은 아들이라고 생각하죠?
이충걸 : 덕수궁도 함께 가고, 맛있는 것 있으면 꼭 엄마 것까지 챙겨요. 그런 게 굉장히 외각(外殼) 적이고 제스처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나정도 하는 아들이 없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저를 막 야단칠 때도 “그래도 이런 아들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면 어머니가 야단치다 말고 “없지”라고 말해요.
철들지 않은 ‘어른 남자’
황경신 : 철이 안 들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잖아요.
이충걸 : 제가 나이가 굉장히 많은데도 항상 제 마음속에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해, 성인이 되어야 해’라는 강박이 있어요. 생각했을 때 제가 철이 없는 건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유미(唯美)하며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황경신 : 책에서 엄마는 “넌 늘 정신머리 없고, 방도 잘 안 치우고…상냥하지도 않고 경제관념도 없잖아”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또 어머니가 하지 않은 말씀이 있겠죠. 왜 결혼 안 하니?
이충걸 :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럼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의 예를 한번 들어봐”라고 말해요. 엄마도 대답하지 못하죠.
황경신 : 어머니가 책에 대해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충걸 : 엄마가 경이로운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걸 일상적인 듯 반응하는 거예요.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를 냈을 때 엄마가 맨 처음에 하신 말씀이 “애썼다”예요. 그리고는 3개월 뒤에 한마디 하셨죠. “매진됐니?” 이번에도 “엄마 책 나왔어”라고 했더니 ‘고맙다’, ‘잘했다’라는 말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제가 쓴 머리글을 소리 내며 읽은 게 전부였죠.
황경신 : 그것이 바로 애정의 표현이겠죠. 책에는 엄마에게 혼나고 반항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이충걸 : 사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연장된 사랑일 뿐, 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엄마의 언어를 많이 듣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혼나고 반항할 때마다 전 괜히 시비 걸듯이 눙치는 남자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황경신 : “독립을 하고 싶으면서도 분리되기 싫다”는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어요.
이충걸 : 독립이라는 걸 해봤자 어떻게 살지 뻔해요. 매일 친구들 불러서 술을 마시겠죠. 제가 아마 독립이라는 걸 하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 거예요. 일례로 엄마가 멀리 외출했다 돌아오면 집은 이미 어지럽혀져 있어요. 엄마는 기절 먼저 하고 치우시죠. 그리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라고 말씀하세요.
황경신 : 이충걸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충걸 : 저는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 사람’같아요.
황경신 : 저는 개인적으로 이충걸 편집장이 지금까지 알아온 사람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배라고 생각해요.
이충걸 : 그런 사람이면 좋겠죠. 저도 계속 성장해 나가는 중이니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독자들과의 일문일답
최강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 하나만 알려주세요.
‘동쪽에 살면 동안’이라고 이야기를 자주 해요. 사실 저희 외가 쪽이 노화의 단계가 굉장히 더딘 편인데 제가 그쪽을 많이 닮았어요. 저희 형들과 누나는 정상적인 노화의 단계에 있고요.
오글거리는 주제를 어찌하면 안 오글거리게 쓸 수 있나요?
오글거리는 주제를 왜 써야 해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그 주제를 정중하게 대하면 더 이상 오글거리지 않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만난 지 100일째야”라고 말하며 꽃다발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는 쪽이 덜 오글거리지 않나요?
저는 22살 대학생입니다. 편집장님은 제 나이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때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이 있나요?
후회는 없어요. 왜냐면 후회해봤자 소용없으니까. 그때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당시엔 ‘예쁜 척, 돈 있는 척은 할 수 있지만 지성은 있는 척할 수 없다’라는 강박이 있었어요.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러 다녔죠.
서문에서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라고 쓰셨어요. 엄마가 사라지면 어떨까요?
저는 ‘엄마가 사라지면 내가 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죽는 꿈을 굉장히 자주 꿔요.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내가 만 살까지 살려나 보다”라고 말해요.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이충걸 저 | 예담
10년 전 출간된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은 누구의 엄마든, 엄마를 구전하는 이야기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한 작은 혁명이었다. ‘어머니라는 우주를 조촐하게 기록한 아들의 글’은 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을 조합한 이충걸 편집장 특유의 미문(美文)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에세이가 되었다. 그 후 10년. 독자들은 책과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그리고 가끔 이 사랑스러운 모자(母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우리의 엄마가 그렇듯, 조금 더 늙고 조금 더 아프실 엄마와 100년이 흘러도 철들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은 어떻게 서로의 삶을 보듬고 있을까….
그처럼 개인적이고 체계가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조직 생활’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세간의 평이 떠도는 가운데 이충걸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GQ KOREA] 초대 편집장으로 18년 간 일했다. 서양문화의 첨병인 패션 잡지 안에서 언어 포함, 한국적 가치를 사수하는 이율배반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몇몇 사회 문화적 사안들에 나름대로 참견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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