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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우리가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이유

90년대 추억을 발판으로 도약하며 『슬램 덩크』 우리는 스포츠와 만화책 시대의 '풍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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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높이가 다르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강렬한 순간이 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항상 바라는 목표는 하나. 키! 키! 키! 키! 키! 키! 키! 키! 키컸으면! 키컸으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 되지 않은 나이에도 나는 모든 문화의 축복 속에서 자란 시대의 풍운아였다. 유치원에 접어들무렵 한창 유행하던 ‘팩맨’ 등의 겜보이는 거실에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 나의 손에는 ‘꾸러기 수비대’ 카드가 들려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신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도 5시가 되면 항상 집에 들어와서 TV를 켰다. 거대하고 때깔 간지나게 빠진 ‘다간’과 ‘선가드’가 우리를 태워 하늘을 날 것만 같았고, 피카츄같은 ‘포켓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몬스터볼을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뜨겁게 뛰던 순간은 바로 『슬램덩크』를 접했을 때다.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다 거기서 거기다. 특히 어렸을땐. 다들 혈투(?)를 벌이는 스포츠맨의 피가 흐른다. 어렸을 땐, ‘우리는 챔피언’에 나오는 미니카 레이싱대회에 나간답시고 조그만 자동차 튜닝하는데 몇 만원을 퍼부었고, ‘피구왕통키’에 나오는 불꽃 슛을 쏘겠다며 배구공에다가 엄마 립스틱을 훔쳐서 불꽃 모양을 그리다가 걸려서 디지게 맞곤 했다.

 

다리를 뒤로 들어서 머리끝까지 올리면 ‘축구왕 슛돌이’에 나오는 독수리슛이 나갈 것만 같았고, 우리가 함께 스케이트를 타면 ‘스피드왕 번개’의 드래곤 스파이어가 시전되어 용이 나올까 두려웠다. 그 와중에도, 가장 우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은건 빨간머리 고딩 형. ‘슬램덩크’의 강백호다.  왜일까? 장난감을 가지고 놀든, 게임을 하든 지치는 경우가 있다. 재미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꿈과 희망을 수놓아 주던 세계가 있었다. 바로 만화책방이다.

 

요즘은 후미진 동네 골목 아니면 찾기 힘들어졌지만(워낙 불법 공유로 인해 피해가 심했던 시장이기도 하다.) 당시 만화책방은 동네 아이들의 열렬한 방문으로 인해 5일장에서나 찾아 볼법한 인산인해를 이루었었고 매달 새로 나오는 만화책에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몰라 하였다.


90년대. IMF가 닥치면서 아이들은 현실에서 꿈을 찾지 못했다. 허나, 그들의 유일한 꿈을 만화책이 찾아주었다. 그래서 나의 90년대는 수많은 만화책으로 수놓아져있다.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 대부분의 20대 청춘이 그리하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바로 이 만화책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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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슬램덩크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슬램덩크는 우리에게 어떠한가? 꿈의 높이가 다르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강렬한 순간이 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항상 바라는 목표는 하나. 키! 키! 키! 키! 키! 키! 키! 키! 키컸으면! 키컸으면!


오죽하면 개그소재로써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고, 몇 년 전에는 루저녀의 발언 파문으로 남자키가 도마에 오르지 않았던가! 심지어, 키작남(키 작은 남자) 쇼핑몰은 호빗족(키 작은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에서 유래)의 방문에 부흥을 이루었으며 요즘 시대 남자들의 구두에는 키높이 깔창이 깔려 있다. 여기, 키작은 가수. 이승환이 노래부르지 않았던가!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얼마나 짜릿한 그 기분을 느낄까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  -  이승환,  My Story 앨범 수록곡 中 '덩크슛'

 

강백호가 농구의 ‘농’자도 모르는 건달에서 순식간에 화려하게 링 위를 내리꽂는 슬램덩크의 귀재가 되기까지. 그의 화려한 덩크와 슬램덩크의 감동스토리는 수많은 아이들을 농구코트 위로 내몰았고.


특히 높은 꿈을 가진 스포츠! 농구!


그 여파였을까. 95-96년 대학농구 농구대잔치에서는 북산과 해남(슬램덩크에 나오는 팀명)의 경기를 연세대와 고려대의 연고전이 재현해주었다.

 

연세대의 국보급 센터 서장훈,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컴퓨터 가드 이상민. 람보 슈터 문경은, 매직 히포 현주엽, 에어본 전희철, 피터팬 김병철.

 

슬램덩크 북산. 고릴라 채치수, 안경선배 권준호, 빨간털 원숭이 강백호, 넘버원가드 송태섭, 재수없는(백호가 지었다) 서태웅, 불꽃남자 정대만.


어딘가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들이 꿈에 그리던 무대를 그들이 재현해주었고, 우리는 열광했다. 그렇다. 90년대는 우리 모두가 슬램덩크를 바라던 시기였고, 그들이 화끈하게 덩크슛을 넣어주던 축제의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슬램덩크를 다 봤다면 알 것이다. 농구부에 가면 채소연 같은 어여쁜 매니저가 있을 거란 착각)


만화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여타의 책보다 이 책만이 내 가슴을 뛰게 해주는 가장 큰 매력이 있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명대사들이 스쳐지나간다. 1993년에 나왔던 책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빈번히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많은 그림파일들이 '짤방'이라는 이름 하에 공유되었고 그를 통해 슬램덩크도 만날 수 있다. 아래의 명대사, 기억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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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왼손은 거들뿐.’


다시 글을 정리하고, 깊은 숨을 몰아쉬는 데도 그 때의 감동, 상황, 장면, 장면이 되살아나서 가슴이 뜨겁게 타오른다. 심장이 터질듯 뛰면서 그 때의 노래가 귓가에 흘러나온다.

 

날 부르는 바람의 함성을 향해 하늘을 향해  내 몸 던져

내가 있어 가슴벅찬 열정을 끌어안고 박차올라 외치고 싶어

Crazy for you Crazy for you   SLAM DUNK!!!

-  박상민,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삽입곡 'Crazy For You'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쩌면. 이처럼 최고의 순간을 다시는 책에서 맛보기 힘들 것 같다. 아니 남은 생에서도. 스포츠는 그렇다. ‘가장 화려하고 짧고 굵게 삶을 압축적으로 살고 가는 것’같다고 할까. 내 90년대의 모든 열정을 슬램덩크와 같이 하였기에, 지금도 슬램덩크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오늘 밤에는 내 방 장롱 구석에 처박혀있는 낡아빠진 농구공을 들고 동네 공원 농구코트엘 가야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키 차이가 별로 나질 않으니 슬램덩크는 아직도 불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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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천후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모토 하에, 23년동안 읽지 않던 책을 제대하고 철이 들었는지 근 1년 내에 150권 가량을 해치우는 등 왕성한 독식욕(?)을 보이고 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정처없이 헤매는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어깨 뒷쪽에 기타 케이스를 메고, 카메라를 메려니 남은 공간이 없어 손으로 들고 다니며 이곳저곳 찍어서 남겨두길 좋아하며 잘 안되는 공부를 하려니 머릿속에 노래만 맴돌아 '에라 모르겠다'며 올해 초부터 기타로 작곡을 하고 노래를 쓰면서 스펙과는 관련없는 길로 빠져들어 실컷 스물 넷의 청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겨울엔 얼어죽어도 홍대 길거리로 나가서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지나가다 보시거든, 어여삐 여기시고 돈은 받지 않으나, 핫팩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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