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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나의 힘, 동성 간의 키스도 OK” - 정상윤 <삼천 - 망국의 꽃>

왕이라서 외로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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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배우가 하고 싶단 자식은 말리고 보겠다는 생각과 달리 그는 평생 한 길을 갈 생각이다. 그가 할 줄 아는 건 바로 연기 하나 뿐이므로. 그의 소망은 유명세를 떠나 평생 배우로 늙는 것. 배우 정상윤으로 말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멋지게 늙어가는 걸 보는 것 역시 동시대를 사는 관객의 행운 아닐까?


내 생애 첫 사극

대선을 앞두고선지 어쩐지 영화나 드라마 모두 사극 일색인 요즘, 백제 의자왕을 소재로 한 뮤지컬 사극 한 편이 눈길을 끈다.

“뮤지컬만의 매력이라면 음악이 계속 흐르면서 감정이 노래로 표현되잖아요. 특히 저희 사극에는 국악 밴드가 들어와요.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한’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희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움직여요. 팝 음악과 달리 가야금, 북, 대금 이런 것들이 한국적 선율을 만드니까 더 그렇죠. 저도 국악 라이브 밴드에 맞춰 노래하다보면 마음이 젖어들어요. 소재도 백제를 재조명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의자왕의 이야기를 새롭게 다뤘기 때문에 보시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2006년 데뷔한 뒤 꾸준한 활동을 해온 배우 정상윤에게도 이번 작품은 특별한 도전, 사극 뮤지컬은 그에게도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많이 듣던 그 ‘사극 톤’으로 연기를 한다는 얘기?

“정통 사극은 아니고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했어?’ 이런 말도 ‘~하였는가?, 하였느냐?’ 이렇게 표현해야 해요. 초반에는 힘들었죠. 하지만 그걸 지루하거나 어색하게 들리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죠.”


비운의 왕, 그의 페르소나

잠시 잠깐 들어본 그의 사극 어투에서 왕의 포스가 느껴진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의자왕에 푹 빠져있었다.

“제가 보기에 비운의 왕, 외롭고 고독하고 슬픈 왕이에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의자왕이 향락과 사치에 빠져있다 나라가 망했다는 말은 승전국에 의해 전해져 온 역사잖아요.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낙화암은 3천 명이 떨어져 죽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에 기인해서 작가님이 이야기를 만드셨어요. 삼천에서 제가 표현하는 의자왕은 꽤 강해요. 결단력도 강하고. 그런데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자꾸 가니까 신하들의 불만도 쌓이게 되고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의자왕은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거죠. 왕좌에 앉아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장면이 있어요. 강한 결단력과 신념 뒤에는 그렇게 쓸쓸함과 외로움이 큰 것 같아요.”

맡은 역할마다 푹 빠져 감정전이가 빠른 그에게 의자왕의 외로움과 슬픔 역시 고스란히 배우 정상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원래 장난기 많고 시끄러운데 삼천 대본만 보고 이 역만 생각하다보니 요즘 외롭단 생각이 들어요. 수염도 안 깎았잖아요, 그래서.”

예쁜 짓만 할 5개월 된 아기의 아빠로선 참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일 터.


원캐스팅에 대한 압박도 없다?

“컨디션 조절을 잘 하는 편이에요. 오페라의 유령을 할 때 6개월간 원캐스팅이었거든요. 그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힘들었지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 때 내공이 쌓였죠. 이번에는 3개월이니까 할만 할 것 같아요. 몸살만 안 걸리면요.”

평소 술을 즐겨 하는 그에게 원캐스팅 공연은 오히려 살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다. 공연할 때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삼가는 술자리. 다만 공연이 쉬는 월요일 전 날, 일요일엔 마음 편하게 한 잔 기울이곤 한다. 그의 강철 체력에 건배~


몰입은 나의 힘, 동성 간의 키스도 OK

파리의 연인, 천국의 눈물, 블랙메리포핀스 등 창작뮤지컬 초연 멤버라는 눈에 띄는 그의 이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무대에 오르기 시작해서 공연을 다 마치고 나면 더 재미있었다는 게 느껴져요. 특히 만들어져 있는 역할보다 제가 창조해나가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물론 그간 다 애쓰며 만든 작품이겠지만 힘들게 캐릭터를 만들어 유난히 뿌듯한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작품이 제일 힘들어요. 하지만 그래서 즐거워요. 즐거우면서 힘든 상황이라고 해야죠. 과거 작품들은 다 지나서 그런지 힘든 기억도 잊었어요.”

작품에 임하는 그의 집중력과 몰입도가 느껴지는 대목. 뮤지컬 <쓰릴미>에서 동성 간의 키스 장면도 그래서 아무렇지 않았을까?

“그 역할에 몰입해서 했기 때문에 전혀 키스신이 이상하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 그냥 다시 하라고 하면 진짜 못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연습해서 그 역할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다시 할 수 있겠죠?”


정상윤의 새로운 도전은 계속된다.

연극과를 나온 그는 잠시 연극과 뮤지컬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하는 일에 갈등을 겪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어요. 뮤지컬을 하다가 나중에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연극에 대한 열정이 컸을 때여서 연극을 계속해야 하는데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노래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뮤지컬을 계속 하자고 생각했죠. 운 좋게도 드라마가 강한 뮤지컬을 많이 하게 되었고요. 앞으로는 어떤 분야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만큼 성장한 지금, 그의 시각은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제의가 들어온다면...하겠죠. 안 하겠단 사람이 있을까요? 다른 매체로 도전해볼 생각이 있어요. 내년쯤엔 연극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아무렴, 아이돌들도 뮤지컬계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요즘, 뮤지컬 팬으로 뮤지컬 배우들의 다양한 도전은 대환영이다. 물론 뮤지컬 무대를 잊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내 딸만은 배우가 안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결혼하고 5개월 된 예쁜 딸의 아빠가 된 그에게 물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배우가 되겠다고 한다면?

“지금은 좀 말리고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힘들어요. 제 딸이 배우를 하겠다면 말릴 것 같은데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으니까 모르죠. 어쨌든 최대한 말리고 싶어요.”

뭐 물론 부모의 무조건반사 같은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직업군의 배우자를 얻고 싶지 않다는 기자의 소망과도 일맥상통한달까? 그에게도 역시 자녀가 좀 더 평탄한 길을 선택하길 바라는 애틋한 부모 심정이 있을 뿐이다.


우선 배우가 하고 싶단 자식은 말리고 보겠다는 생각과 달리 그는 평생 한 길을 갈 생각이다. 그가 할 줄 아는 건 바로 연기 하나 뿐이므로. 그의 소망은 유명세를 떠나 평생 배우로 늙는 것. 배우 정상윤으로 말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멋지게 늙어가는 걸 보는 것 역시 동시대를 사는 관객의 행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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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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