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을 뒤흔든 역대 3대 탈옥 사건의 전말
‘비참한 말로’에도 등급이 있나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세 가지 탈옥사건, 그들의 비참한 말로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쾌도난담’이라는 대담 코너를 담당하던 2000년 3월, 교도소에서 나온 지 1년3개월 된 조세형씨를 직접 섭외했던 적이 있다. 그는 전화 한 번에 흔쾌히 응했다. 대담 자리에 와서는 비상한 기억력과 방대한 독서량이 엿보이는 지식,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를 바라보며 ‘대도’에 대한 존경심까지 품었던 기억이 있다.
“10년 선고받은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들 뻘 됐지. 스물여덟 살이었는데, 신창원 못잖은 강단이 있고 영리한 놈이었어. 근데 어느날 탈옥 계획을 세워 갖고 와서 자문을 구하는 거라. 계획이 그럴 듯해. 근데 하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탈옥사건들 죽 비춰볼 때 다 말로가 비참하잖아?”
누구의 말일까.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은밀히 탈옥 컨설팅까지 의뢰받는 인물.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교도소를 벗어나는 것만 탈옥이 아니다, 항만 봉쇄가 너무 철통같아 함부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탈옥을 하면 또 지하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건 징역살이보다 더 괴롭다’ 그렇게 며칠 설득을 했어요.”
80년대 ‘대도’로 이름을 날렸던 조세형씨의 말이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쾌도난담’이라는 대담 코너를 담당하던 2000년 3월, 교도소에서 나온 지 1년3개월 된 조세형씨를 직접 섭외했던 적이 있다. 그는 전화 한 번에 흔쾌히 응했다. 대담 자리에 와서는 비상한 기억력과 방대한 독서량이 엿보이는 지식,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를 바라보며 ‘대도’에 대한 존경심까지 품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탈옥을 상담하는 후배에게 ‘비참한 말로’라는 표현을 쓰며 말렸다고 했다. 정말 비참한가. 아버지의 스크랩 제15권(1983년)을 펼친다. 내처 스크랩 제21권(1988년)과 제23권(1990년)도 펼친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세 가지 탈옥사건에 관해 쓴다. 그들의 비참한 말로에 관하여 쓴다.
‘대도’ 조세형 대낮 대탈주 구치감 환풍기 뚫고 전과11범인 대도 조세형(39)이 14일 하오 3시25분께 서울중구 서소문동 법원구내 구치감에서 TV드라머 속의 죄수처럼 탈출해버렸다. 조는 이날하오2시께 서울형사지법 14부 심리로 열린 자신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다른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구치감 벽의 환기통을 뜯고 탈주, 담을 뛰어넘어 이웃 한일병원을 통해 시내로 잠입해 버린 것이다. 이웃 건물 옥상에서 수의 바꿔입어 면회객 가장 탈출도운 공범 있는듯 사장-고관집대상 5억털어 무기징역 탈출에 성공한 조는 이날 하오 7시와 11시께 두 차례에 걸쳐 공중전화로 공범인 단골장물아비 정윤용씨(37ㆍ구속수감중) 집(서울서대문구홍제동322의119ㆍ 태진연립주택 다동101호)에 전화를 걸어 정씨부인 양모씨에게 “탈출했는데 돈이 없다. 30만원만 구해 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밝혀져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은신해 있거나 도피자금 마련을 위한 범행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서울구치소는 조가 탈출직후 구치감과 이웃한 송치피의자 구치감 2층 옥상에서 조가 벗어놓은 수의 한 벌을 발견, 공범이 미리 준비해 놓은 일반 옷으로 바꿔 입고 도망한 것으로 보고 경찰과 합동으로 추적중이다. 구치소는 이와함께 조가 수감중 면회객을 가장한 공범과 탈출극을 모의했을 것으로 보고 그동안 조를 면회 온 사람들을 모두 찾고 있다. 조는 상습특수절도전과만 11범으로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정부고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부유층집만을 상대로 5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지난해 11월28일 서울동대문경찰서에 구속돼 지난 2월25일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에 보호감호10년이 구형됐었는데 경찰이나 범죄사회에서 대도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탈주경위】 조는 이날 하오2시 공범4명을 포함한 다른 사건 피고인 15명과 함께 형사법원 대법정에 입정, 담당재판부 (재판장 김성만 부장판사) 심리로 40분가량 재판을 받았다. 재판이 끝난 뒤 조는 다른 피고인 7명과 함께 교도관의 호송을 받으며 법정에서 20m가량 떨어진 서울구치소 피고인대기 구치감으로 가 3층 22호실에 다른 피고인 3명과 함께 입감됐다. 입감직후인 3시25분께 3층담당 교도관이 2층에 내려가 2층담당 교도관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순간 조는 22호실 문을 발로차고 복도로 나와 한쪽 수갑을 푼 후 포승도 풀어 복도에있던 책상위에 버리고 복도 벽에 붙은 환풍기(40x40cm) 를 뜯어내고 40cm 가량 떨어진 송치피의자구치감 2층 옥상으로 뛰어내렸다. 조는 옥상에서 입고 있던 남청색 미결수복을 벗어버리고 한쪽 손에 수갑을 찬 채 1ㆍ2m쯤 아래인 법원구내매점옥상으로 다시 뛰어내려 이웃 한일병원 담을 넘어 달아났다. 조가 탈주할 당시 구치감 정면에 있는 교도관대기실에 5∼6명의 호송교도관이 있었으나 피고인들의 입ㆍ출감이 잦아 조의 탈출을 눈치 채지 못했다. 조는 탈주당시 노란T셔츠에 하의는 미결수복차림이었는데 신발은 털신을 신고 있었다.(하략) (<한국일보>1983년 4월16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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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 총쏴 잡았다 시민제보→경찰추격→인질대치 흉기 휘두르다 가슴 1발 맞아 어제 서울 장충동 주택가서 대도 조세형(39)이 탈주6일째인 19일 상오10시40분께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경찰관이 쏜 권총에 맞고 검거됐다. 조는 이날 상오 10시12분께 이원주군(18ㆍ재단사)이 목격하고 신고함에 따라 경찰의 추격 끝에 잡힌 것이다. 이군은 이날 모교인 해동상업전수학교로 졸업증명서를 떼러가던 길에 장충동 112앞 골목길에서 조를 발견, 50여m쯤 떨어진 서울 중부경찰서 장충파출소에 신고했으며 박용호 순경(30)과 정경주 순경(35)등 2명이 전경4명, 이군과 함께 30여분동안 조를 추격, 서울 중구 장충동2가112의 4 김지억씨(50)집에 숨어있는 것을 포위했다. 그러나 김씨의 아들을 인질로 잡고 스카이콩콩과 드라이버, 톱 등으로 완강히 버텨 박순경이 권총 4발(2발은 공포)을 발사, 이중 1발이 조의 귀를 스치고 가슴에 박혔다. 조는 이날 경찰의 추격을 받는 동안 인근 주택 9채의 담과 지붕ㆍ장독대 증을 곡예하듯 넘나들다 김씨 집에 들어갔으며 화장실에서 김씨의 2남 승환군(19ㆍ명지대 2년)을 인질로 잡고 대치했었다. 경찰은 처음 조에게 자수를 권유, 듣지 않자 가스분사기를 발사했는데 조는 드라이버로 자해하겠다며 완강히 대항했다. 총상을 입은 조는 이날 상오11시50분께 서울중구저동2가61의7 영락병원을 거쳐 백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고 하오3시12분 서울구치소로 옮겼다. 조는 백병원에서 박효일 신경외과 과장(42)의 집도로 왼쪽 늑골에 박혀있는 탄환 한발의 제거수술을 받았는데 생명에는 이상이 없다. (중략) 한편 조는 이날 하오2시15분께 백병원 회복실에서 “탈주는 공모자가 없는 단독범행이었고 범행동기는 절도로 무기징역을 받아 억울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그동안 서울시내에서 계속 혼자 도망다녔고 양형숙씨에게 전화한 것도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한국일보> 1983년 4월20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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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서 줄칼사 수갑 끊었다” 검찰, 조세형 탈주경위 등 조사결과 밝혀 한손 수갑 찬 채 이틀간 시내 배회 미 거쳐 브라질서 부인과 살 계획 서울지검은 총상의 상처로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조세형을 심문, 조가 탈주를 결심한 것은 자신이 무기징역이 구형된 데다 보호감호 10년까지 청구돼 15~20년간을 복역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이가 60이 가까워지므로 부인 나영씨와의 결혼생활이 지켜질 수 없다고 생각, 어떤 방법으로든지 탈주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조사결과를 밝혔다. 조는 탈출 후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 뒤 홍콩에 있는 부인 나씨를 불러들일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검찰발표에 의하면 조는 부인 나씨와 결혼하기 전에도 브라질에 함께 이민가 살기로 약속했었다는 것. 또 수갑을 푼 것은 형사대법정 대기실에서 교도관에게 손목의 통증을 호소, 수갑을 느슨하게 해준 것을 이용해 구치감에서 왼손을 빼내 탈주할 수 있었으며 탈주 후 한쪽손에 수갑을 매단 채 서울 시내를 배회하다가 15일 하오 1시께 후암동에서 한차례 절도를 해 돈을 마련, 16일 상오 10시께 영동의 모 철물점에서 줄칼을 사서 이웃빌딩 화장실에 들어가 오른쪽에 차고 있던 수갑의 알루미늄부분을 절단했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리버사이드 호텔과 반포동 뉴코아쇼핑센터 사이의 간선도로 옆 하수도 맨홀에 그 수갑을 버렸다고 자백, 20일 하오 현장에서 찾아내 증거물로 회수했다는 것. 조는 구치감 22호실에서 손목을 비틀어 느슨해있던 수갑에서 왼손을 빼내고 팔목에 매어져있던 포승의 매듭을 풀어 탈주준비를 갖추었으며 3층에 교도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방에서 나와 복도에서 포승을 풀고 교도관용 책상에 올라가 환풍기를 밖으로 밀어제치고 탈출했다.(하략) (<한국일보> 1983년 4월21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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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범 출몰…시민들 공포 떼지어다녀 어디에 나타날지 가슴 조여 금융기관 습격대비 경비 강화 한낮에 호송버스를 탈취, 집단 탈출한 미결수들은 권총을 갖고 서울시내에 나타나 절도행각과 인질극을 벌이는 등 ‘제2, 제3의 범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탈주 미결수 12명중 5명은 8,9일 이틀 사이 검거됐으나 나머지 7명은 사건발생 만 이틀이 지난 10일 오전 현재 시내에 잠복한 채 경찰과 군의 추격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이들이 대낮에 호송버스 안에서 탈주극을 벌일 수 있도록 허술했던 계호행정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들의 또다른 범행을 우려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제2의 범행=탈주주범 지강헌씨(35)등 7명은 9일 새벽2시반경 서울 성북구안암동 3가 132의13 손병록씨(51ㆍ약국경영)집의 열려있던 대문을 통해 침입했다. 이들은 안방에서 잠자던 손씨부부를 깨운 뒤 건넌방 등을 차례로 뒤져 각각 잠자던 장남 우식군(18ㆍY고3년)과 장녀 은숙양(24ㆍS여대2년) 등 일가족 4명과 이찬정씨(20)등 약국종업원 2명을 안방에 몰아넣고 권총과 30cm가량의 칼 등을 내보이며 “우리는 TV에 나온 탈주범이다. 소리치면 모두 죽인다”고 위협, 넥타이등으로 손발을 묶은 뒤 이불을 덮어씌웠다. 인질극을 벌이던 탈주범들은 27시간만인 10일 새벽 6시 반 달아났다. (하략) (<동아일보> 1988년 10월10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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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독안의 5명’ 또 놓쳤다. 탈주범 사건 탈취차 타고 침입 민가 물색 중 1명만 잡혀 경찰의 삼엄한 경비망 속에 서울시내 곳곳에 출몰, 강도인질극을 일삼고 있는 탈주범 6명이 14일 밤 신촌에 나타나 또다른 범행장소를 물색하다 이중 손동완씨(26)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14일 밤 손씨를 검거하고 신촌일대에 비상경계망을 폈으나 15일 오전 현재 달아난 나머지 범인 5명의 행적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어 시민들은 이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 또다른 범행을 저지를지 몰라 크게 불안해 하고 있다.(하략) (<동아일보> 1988년 10월15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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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범 가정집서 인질 대치극 2명자살 1명사살 1명검거 12명중 1명만 안 잡혀 난동9일 사실상 종막 교도소 이감도중의 호송버스에서 집단탈주, 연쇄인질강도행각등을 벌여온 탈주강력범 잔당5명중 지강헌(35) 안광술(22) 한의철(20) 강영일씨(21)등 4명이 16일낮 12시25분경 서울서대문구북가좌동 384의15 고영서씨(50ㆍ동해운수배차담당)집에 침입, 일가족6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극을 벌이다 안씨와 한씨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강씨는 생포됐으며 지씨는 경찰의 진압작전중 저격당해 중상을 입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오후 숨졌다. 이로써 지난8일 이감도중 탈출해 인질강도 납치강도 원정강도행각을 벌이던 12명의 죄수중 김길호씨(21)를 제외한 8명이 자수하거나 검거되고 2명이 자살, 1명이 사살됐다. 아직 도피중인 김씨는 16일 밤 이 사건의 수사본부장인 김종구 서울지검3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수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의 탈주사건과 관련, 몸수색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데다 탈주모의를 묵인 또는 방조한 것으로 알려진 영등포교도소 김종업 교도관 등 교도관 5명을 16일 밤 철야조사, 수사결과를 17일중 발표할 예정이다. 탈주후 각각 한차례씩의 원정강도와 노상강도 그리고 네 차례의 인질강도극을 벌인 이들 탈주범들은 15일 밤 10시10분경 다시 고씨집에 침입, 고씨와 부인 김정애씨(52)및 딸4명 아들1명등 가족6명을 인질로 잡고 은신해 있다가 이들이 잠든 사이 몰래 빠져 나온 고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 범인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경찰과 가족들의 자수권유를 거부한 채 완강히 맞서다 인질로 잡은 고씨 가족 가운데 일부를 내보낸 뒤 자체분란을 일으켜 난투극을 벌이다 안씨와 한씨는 지씨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빼앗아 머리에 쏴 자살했다. 주범 지씨는 안, 한씨가 자살한 뒤에도 장녀 선숙양(회사원)을 끝까지 인질로 잡고있다가 경찰테러특공대에 저격당해 중상을 입고 연세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오후4시55분경 숨졌다. 인질로 잡혀있던 고씨 가족들은 이날 오전 10시46분경 부인 김씨와 외아들 장선군(11)은 범인들에 의해 풀려나온데 이어 오전11시35분 4녀 민정양(14)이 풀려났으며 상황이 끝날 때까지 붙잡혀있던 장녀 선숙양 등 나머지 가족도 모두 무사히 구출돼 경찰병원에 입원가료중이다. 이에 앞서 탈주범들은 지난 14일 신촌에서 달아난 뒤 김길호씨를 제외한 4명이 저녁8시경 서대문구 창천동 62의47 임석이씨(70)집에 침입, 임씨등 가족4명을 인질로 잡고 25시간반동안 은신하다 15일 밤 9시반경 임씨 집에서 나가 고씨집에 침입했었다. (<동아일보>1988년 10월17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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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범 박-신 차례로 “탕”…“탕” 탈옥수 자살 대청호서 경찰과 대치 끝에 택시뺏어 이리→대전 도주 검문경관 찌르고 총 탈취 소년범 김군 검거 【전주ㆍ대전=임시취재반】 27일 새벽 전주교도소에서 발생한 살인범 무기수 등 3명 탈주사건은 2명의 자살과 1명의 검거로 32시간만에 끝났다. 박봉선(30ㆍ무기수) 신광재 (21ㆍ징역15년) 김모군(17) 등은 경찰에 쫓기다 28일 낮12시20분께 충북 청원군 문의면 대청호 야산기슭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박이 먼저 경관으로부터 탈취한 권총을 쏘아 자살했으며 신도 이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들은 자살극을 벌이기 직전 먹을 것을 달라며 김군을 경찰에 보냈다. 검찰은 김군을 상대로 탈주경위, 교도관 매수 및 방조 여부 등을 조사중이다. 〔자살ㆍ검거〕 이날 상오 11시20분께 순찰 중이던 신탄진파출소 소속 이종헌 경장(42)등 경찰관4명이 대덕구 미호동 국도에서 도주하는 범인들을 망원경으로 발견, 접근해 검문하려 했으나 이들은 대청호 쪽으로 달아나 갈전동 선착장에서 고기잡이 2인승 목선을 타고 8백여m 떨어진 맞은편 호안으로 건너갔다. 경찰은 공수단소속 고무보트를 빌려 타고 뒤쫓아가 20여m 거리를 두고 대치, 자수를 권유했다. 박은 권총을 겨누며 “먹을 것을 보내주면 자수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경장등이 “한명을 보내주면 갈전으로 함께나가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김군을 보냈다. 경찰은 김군을 곧바로 고무보트에 태워 연행했다. 이때 경찰 지원병력 10여명이 고무보트 2대에 분승, 호안으로 건너갔으며 경찰헬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잇달아 방송했다. 낮12시20분께 검거조가 권총을 겨누며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는 순간 박이 머리에 권총1발을 발사, 자살했으며 신도 권총을 주워 왼쪽가슴에 총을 쏘았다. 경찰도 신을 향해 동시에 3발을 발사, 한때 사살설이 있었으나 먼저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택시탈취〕 탈주범 3명은 27일 하오8시5분께 전북 이리시 갈산동 원창목욕탕 앞길에서 동광택시소속 전북1바 8201호 택시(운전사 최정석ㆍ28) 를 세워 탔다. 박과 신은 김군에게 수갑을 채워 형사를 가장, 운전사 최씨에게 “공범을 급히 잡으러 가니 완주군 봉동읍까지 가자” 고 요구했다. 이들은 익산군 춘포면 대장촌리 철길건널목을 지날 때 1명이 운전사 최씨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고 위협, 현금3만7천원과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을 뺏은 뒤 최씨를 뒷좌석에 태우고 박이 운전을 했다. 이들은 삼례를 거쳐 봉동읍 부근에 이르러 택시를 세우고 운전사 최씨를 야산으로 끌고갔다. 박이 최씨를 죽이려했으나 신등이 말려 다시 최씨를 택시에 태워 대전 쪽으로 향했다. 박 등은 서대전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 대전 부사동 보문5거리에 도착해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한국일보> 1990년 12월29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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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순간 28일 낮12시20분께 경찰이 접근해오자 박봉선이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려 하고 있다.(왼쪽사진). 박이 쓰러지자 이어 신광재가 가슴에 권총을 쏘아 그 충격으로 넘어지고 있다. 박은 현장에서 숨지고 신은 병원 호송도중 숨졌다. 【대전일보 제공】 (<한국일보> 1990년 12월29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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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조세형, 지강헌, 전경환, 할리데이, 범죄와의 전쟁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