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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 노래
한참동안 사랑했고 한참동안 바라보던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건 아마 따스한 봄인가 봐 고마워 고마워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벚꽃처럼 예뻤다. 결혼하기 며칠 전, 나는 바쁜 그녀를 위해 수화기에 대고 하유진의 ‘봄’을 들려줬다. 이 노래의 끝이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사랑 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을 말하진 않았다. 나는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의 봄 속에 그녀가 있는 풍경을 떠올렸다.
헤어짐
2012년 봄을 남쪽에서 보냈다. 서울이 19도이던 날 대구는 26도까지 올라갔다. 서울엔 벚꽃 몽우리 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대구에선 팝콘처럼 ‘펑~’소리를 내며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홀린 듯 보았다. 아득히 내리는 봄눈 같았다. 그런 서정적인 풍경 속으로 갑자기 굉음을 내며 달리는 119 구급차를 보았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참혹한 고통 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피어나는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후배의 블로그에 갔다가 그녀가 쓴 글을 보았다.
10년 동안 사랑했던 커플이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 떠난 여행. 그들은 그 길 위에서 헤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 이별의 증인이 되었다. 지금 올리는 사진들은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이자, 그들의 이별을 둘러싼 시간들의 풍경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많이 힘들어 하던 어느 해, 그녀는 문득 ‘까미노 데 산티아고’ 600킬로미터를 홀로 걸었다고 했다. 글은 몇 년 전 얘길 회상하듯 쓴 것이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만난 한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내려 가고 있었다. 사랑이 아닌 누군가의 ‘이별의 증인’이 되어 준다는 것. 그것이 헤어짐을 겪은 그녀에겐 자기 상처를 위무하는 일이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몇 년 전 얘기를 뒤늦게 일기처럼 써내려갔던 건, 과거를 통해 지금의 연애를 복기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내가 그녀의 블로그를 찾은 건, 그녀가 막 연애를 끝낸 후였다. “연애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전 대부분 사랑에 실패해요.” 그녀는 울지 않았지만, 간간이 흐르는 말 속엔 눈물이 묻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 나이가 싫었다.
36.5도의 온도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함께 뜨거워져야, 그래야만 시작되는 게 연애라는 말을 썼던 날 밤을 기억한다. 4년 전, 이 문장들을 쓰고 나서 많이 쓸쓸했었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을 헤아려 보기도 했었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실패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또한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그 사람에게만큼은 결점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그것이 부웅 뜬 이 병적인 연애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건 아닐까. 36.5도의 인간이 하늘로 떠오르려면, 두 사람이 만나 100도씨까지 끓어올라 기포처럼 떠오르려면, 연애의 이 미친 계산법 이외에 어떤 방법이 또 있을까. 만약 인생에 두 갈래 길이 있고,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면, 정민의 이 질문은 내 삶의 한 부분을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솔직했어야 했다. 세상의 연애가 제아무리 달콤한 거짓말들로 이루어졌단 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랑이 끝나야 사랑이 시작된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제각각 자기 몫의 사랑을 떠나보내면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모른다. 울고, 웃고, 걷다가, 풀처럼 쓰러져 자는 봄. 봄에 꽃이 피듯, 봄에 꽃이 지듯, 한 사람의 사랑이 가고, 또 다른 사람의 사랑이 온다. 후배는 애인과 헤어졌다. 그녀가 짓밟힌 풀처럼 쓰러져 울었다. 총이 있다면 그걸 사고 싶어요. 그리고 쏘고 싶어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만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은 남자와의 결혼이었다. 전격적인 결혼발표에 가장 놀란 건 그녀의 단짝 친구들. 갑작스런 친구의 결혼식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지 않았다. 어릴 적 친구들 대부분이 여기저기로 흩어진 까닭이었다. 울산에서 사는 친구, 부산과 안양에 사는 친구, 남편과 함께 이민을 가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친구, 한 친구는 일 때문에 런던에서도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가야 하는 웨일즈에 있었다.
7년 전, 그녀가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나는 여의도에 있는 어느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기 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이었다. 피를 빨지 못한 굶주린 모기가 창문만 열어도 새까맣게 달려와 기승을 부렸다. 밤 11시를 막 넘긴 시간, 원고를 쓰느라 분주하던 그때 그녀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었다. 회사 앞이라고 했다. 막 제대해 영화를 찍은 어느 영화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쓰다말고 나는 그녀에게 달려 나갔다.
마감을 끝내지 못한 나는 그녀와 사람이 드문 여의도 한강공원을 하염없이 배회했었다. 정박한 채 움직이지 않는 유람선, 불 꺼진 한강 다리, 문 닫힌 매점, 걷는 사람 없는 한강 공원의 스산한 풍경, 어제와 오늘의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별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연인처럼 맞잡고 있던 그녀의 손은 15년 전이나 그때나 따뜻했다. 나는 모기에 물린 발가락과 발목이 간지러워 자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한때는 그 사람이 모기에 잘 물리는지 아닌지 그런 게 궁금해서, 잠이 안 오기도 했었는데.”
그녀는 같은 남자와 두 번 헤어졌었다. 헤어지고, 다시 헤어지고 나서 시작된 이상한 연애였다. 처음 그녀에게 다시 돌아온 애인을 만나보라고 한 건 나였다. 한 번 헤어졌던 남자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남자와 두 번 헤어지는 연애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토록 무모한 충고를 할 수도 있었다. 내겐 그녀에 대한 이상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들은 청첩장의 문구를 함께 만들었다. 사랑을 맹세하는 문장의 마침표 역시 함께 찍었다. 하지만 청첩장은 결혼식의 하객이 될 어느 누구의 집에도 배달되지 못했다. 친구는 회사로 배달되어 온 300장이 넘는 청첩장을 엄마 몰래 혼자서 폐기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나는 「청첩장 살인사건」 같은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홀로 청첩장을 만드는 청첩장 디자이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이 청첩장의 문구를 직접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느 날부턴가 자신이 직접 청첩의 문구를 대신 써주기로 결심한다.
고객들은 종종 질문했다.
요즘 모시는 글은 어떤 걸 많이 쓰죠? 제일 인기 있는 걸로 해주세요, 라고.
이 일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시는 글을 직접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청첩장의 ‘모시는 글’을 내가 쓰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겠지만, 나는 늘 오늘 써야 할 ‘모시는 글’을 생각했다.
어떤 날엔 ‘낙엽이 쌓이는 계절, 가을 속을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다른 날은 ‘짜잔 개봉박두. 결혼이야기. 남우주연 이몽룡, 여우주연 성춘향…’으로 운을 떼는 신세대 맞춤용 청첩의 글을 쓰기도 했다. 계절과 날씨, 기분에 따라 모시는 글도 바뀌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라는 맺음말을 썼다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고 고치기도 했다. 신랑이 작성한 모시는 글에서 ‘영원히’ 란 말을 빼달라고 끝까지 주장한 신부 때문에 파혼한 커플이 생긴 후였다.
‘청첩의 글’들은 이제 313가지의 인사말 샘플이 되어 청첩장 사이트에 가득 쌓이게 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인사의 말, 어른들께 드리는 인사의 말, 계절별 인사말, 톡톡 튀는 신세대 인사말 등 모두 24가지의 카테고리 중 하나에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카테고리들을 하나씩 늘려갔다.
“그냥, 기념으로 청첩장 한 장 정도는 가지고 있으려고. 마지막 한 장은 버리고 싶지 않았어. 그럼 전부 다 없어지는 거 같아서. 내 시간들. 추억들. 전부.”
몇 년 동안 그녀는 무척 힘들어 했다. 작년에는 자궁에 붙어 있는 수십 개의 혹을 떼어내는 힘든 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자궁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그녀는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걷다가, 버스에서, 지하철 안에서 나는 자주 멍했다. 지하철의 계단들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움직였다. 길을 걸으면 덜컥, 뭔가 멈춰서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 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중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어째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시의 제목 때문에,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에 나는 방점을 찍었다. 누군가의 가장 예쁜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힘들 때 반드시 그 시절을 증언해야 한다고 나는 배웠다. 그것이 ‘친구’의 존재 이유라고 믿었다. 나는 수술을 받고 나온 그녀에게 이 시를 읽어 주었었다. 전화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그녀의 흐느낌을 느끼면서.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벚꽃처럼 예뻤다. 결혼하기 며칠 전, 나는 바쁜 그녀를 위해 수화기에 대고 하유진의 ‘봄’을 들려줬다. 이 노래의 끝이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사랑 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을 말하진 않았다. 나는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나의 봄 속에 그녀가 있는 풍경을 떠올렸다. 고맙다는 말이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아닌지 몰라도, 여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가사 속에 봄기운이 가득했기 때문에 우리는 봄꽃처럼 활짝 웃었다.
하유진 - 봄 (Digital Single)
따스한 햇살 속에 널 만나는 일
멀리서 바라만 보던 널
믿어지질 않아 꿈을 꾼 것 같아
고마워 항상
고마워 내게 와 줘서
믿어지질 않아 꿈을 꾼 것 같아 난
고마워 항상
고마워 내게 와 줘서
고마워 차갑던 내 마음에 이렇게 와 줘서
한참동안 사랑했고
한참동안 바라보던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건
아마 따스한 봄인가 봐
고마워
고마워
봄에 봄노래를 듣는 일, 봄에 봄꽃을 보는 일과 봄에 누군가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일. 그런 일들의 아름다움이 문득 눈물겹게 느껴졌다. 나는 봄날이 핀 산수유를 보면서 김훈이 쓴 글을 읽었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눈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훈의『자전거 여행』을 읽는 봄이 좋았다. “쑥은, 그야말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여리고 애달프다. 이 여린 것들이 언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엽록소를 내민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봄날. 그녀는 사랑을 약속했고 먼 여행길에 올랐다. 그녀가 떠나던 날, 인천공항 근처에서 비슷한 시간에 날아가는 비행기 두 대를 보았다. 문득, 그때 그녀를 두 번 떠났던 남자가, 늘 사진 속에서만 보던 그 남자가 어쩌면 비행기 안에 타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남쪽에선 모두 져버려 사라진 벚꽃 잎이 서울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친구의 결혼식 날. 남쪽과 북쪽의 시차가, 봄의 시차가 고마워 울컥 했다.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김훈> 저/<이강빈> 사진11,700원(10% + 5%)
자전거가 저 앞에 한 대 있다. 바퀴에 굴러온 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떠나온 곳과 앞으로 발들이게 될 곳의 중간에서 그 자전거의 주인이 그 지나온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숨이라도 돌릴 듯 들려준다. 소음과 완벽하게 차단된 오직 바람을 가르는 숨소리를 동무 삼아 달리는 자전거 타기. 여행은 굳이 공간적 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