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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Love Of All’은 가수 데뷔에 대한 확신을 느끼게 해준 곡” -『이은미, 맨발의 디바』

내 온 몸을 관통할 만큼 뜨거운 피가 내 안에 다시 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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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은미와 음악가 이은미가 동시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따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알아야 되겠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니까 삶을 되짚어 보고 정리하는 것, 그 순간을 통해 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출발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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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이은미, 맨발의 디바』 북 콘서트가 마련된 KT&G의 상상univ.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의 사진을 보며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를 떠올렸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2007)>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그 슬픔까지도 예술로 승화시킨 곡 <사랑의 찬가>(에디트 피아프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썼다)를 열창하는 영화 속 에디트 피아프의 모습과 흡사한 사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날은 이은미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불과 열흘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는 무대를 찾았다. 늘 그랬듯이.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었다.

굳이 에디트 피아프와 이은미의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지는 않다. 두 디바는 음악적 장르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다. 다만, 뛰어난 두 명의 여성 솔리스트 사이에 시공을 초월해 흐르는 ‘닮아 있는’ 열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평생 음악과 삶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었던 모든 뮤지션들이 그러하듯 이은미 역시 슬픔까지도 음악 안에서 읊조리면서, 음악으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가 운명적으로 음악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의 이은미가 있다. 특수학교 교사를 꿈꾸던 스무 살 무렵의 이은미다. ‘처음부터 가수를 꿈꾸었던 게 아니었어?’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그의 대답은 ‘가수가 꿈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p.14)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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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교육학을 전공해서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운명이 저를 음악으로 이끌었고, 이제는 노래를 하며 음악가로 사는 것이 제 삶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받아들였어요. 처음에 음악을 시작하고 데뷔 후 20년이 되기 전까지는 늘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도망치려고 했고,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구요. 그래서 도망가면 어느새 다시 와있었어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렸지만 결국은 무대 위로 다시 돌아와 있었고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녹음실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무엇보다 음악이 가장 즐겁고, 누구보다 음악에 빠져들었던 그였지만 ‘프로’로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삶, 그것이 프로 음악인의 길이었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하는 작업이 주는 압박감이 버거웠다. 하지만 멀리 달아나려 할수록 그때마다 다시 자신을 음악 앞에 데려다 놓는 운명 앞에서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을.

“이제는 곁에 두고 친구처럼 잘 다독이면서 가려구요. 불편한 것들도 끌어안아야죠. 예전에는 그걸 잘 몰랐어요. 음악을 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돼서, 제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고 그들이 저를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늘 날이 서 있었죠. 고슴도치 가시처럼.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었어요. 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스탭들은 ‘누나, 진짜 착해진 거야.’ 그래요(웃음).”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길에 기꺼이 들어섰지만 처음부터 그랬듯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6집 앨범 < Ma Non Tanto >를 발매하기까지 3년 반 정도의 시간동안 자신과 싸워야했다. 녹음실 마이크 앞에 서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노래에 젖어들 수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면서 레코딩에만 1년 6개월여가 걸렸다. 건강상의 문제와 나이에서 오는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서른 즈음에 겪는 우울한 기분이 뒤늦게 찾아와 어렵게 마흔의 고비를 넘겼다.

해인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난 해 방송된 MBC <위대한 탄생>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멘티들을 데리고 해인사를 찾았던 이은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해인사에서 멘토링을 하면서 ‘힘들 때 많은 위안을 얻은 장소’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6집 앨범을 레코딩하면서 노래를 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가방을 싸들고 해인사를 찾았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을 통해 맺은 현응스님(당시 해인사 주지)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스님, 저 방 한 칸만 내주세요.’ 불쑥 찾아든 산사에서 ‘음악을 떠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자연으로 돌아가 흙냄새를 맡고 바람의 숨결을 느끼며 지냈다(p. 54).’ ‘쉼 없이 달려왔던 나를 위로하고 토닥이는 시간(p. 55)’들을 통해 그동안 나를 지켜준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리라, 마음먹고 다시 마이크 앞에 설 수 있었다.

처음 맨발로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예고 없이 닥친 시련을 정면돌파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때였다. 11일의 기간 동안 하루 2회씩, 매일 공연이 되풀이 되었고 급기야 닷새째 되는 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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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 병원장님이 말씀하시길, 더 노래하면 직업을 창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어요(웃음). 첫 장기공연이라 체력 안배를 잘 하지 못하고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던 거죠. 메이크업 도중에 서러워서 엉엉 울었어요.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왜 서럽게 울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밴드와 함께 연습하고 준비한 음악을 무대 위에서 관객과 자연스럽게 나누면 되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구나, 생각했죠.”

관객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의상을 벗어던지고 나니 하이힐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첫 앨범 <기억 속으로>를 녹음하던 때의 기억이었다.

당시 그는 녹음을 위해 토론토를 찾았다. 북미지역의 거대 스튜디오들 중 하나로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그곳에서 고감도 마이크를 사용해보니 청바지 스치는 소리조차 천둥번개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신발과 카펫의 마찰음 역시 거슬렸다. 그래서 다음날, 부딪혀도 소리가 나지 않는 바지를 입고 신발을 벗은 채 녹음을 진행했다. 맨발로 노래하는 자유로움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 때 맨발로 노래하며 느꼈던 편안함이 떠오르자 하이힐마저도 벗어버렸다. 맨발로 선 첫 무대였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대 위의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며 마지막 공연까지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된 ‘맨발의 디바’는 조금의 꾸밈이나 거짓 없이, 온전한 자신의 모습과 음악으로 대중과 만나려는 그의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위대한 탄생>을 방송하는 동안 100만 안티가 운집했다는 그의 농담처럼, 프로그램 내에서 그의 이미지는 ‘무서운 독설 멘토’였다. 이제 첫 걸음을 떼는 아이들에게 칭찬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지 않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힐난이 뒤따를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미지만을 생각했다면 ‘호랑이 선생님’을 자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보다 멘티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태생적으로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보시면 돼요. 이미 재능이 뛰어나거나 눈에 띈 친구들은 우선적으로 걸러지고, 이것이 마지막 희망인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요.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해요. 헛된 꿈을 꾸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한 발만 내딛으면 절벽 끝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요. 그리고 그들에게 허황된 꿈을 심어주게 되면, 그들의 가장 소중한 시간 몇 년은 좌절감만 맛보고 끝나게 되거든요.”

그는 프로가 되기 위한 덕목 중 가장 큰 덕목으로 ‘본인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할 줄 아는 것’을 꼽는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하는 것의 수준이 어는 정도인지를 스스로 냉철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노래를 잘 부르려면 소리를 잘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좋은 목소리, 좋은 발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귀를 가지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소리인지, 지금 제대로 소리를 만들어서 내고 있는지 본인의 귀로 확인하고 틀렸을 경우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듣고도 자신의 실력과 위치를 스스로 평가할 수 없다면 프로가 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고, 본인이 입을 상처 또한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확하게 말을 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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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하면 안돼요.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라.’라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에요. 호흡을 하기 위한 근육들은 어떻게 더 단련시켜야 하는지, 호흡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창법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것을 본인의 귀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어려운 작업이죠. 물론 칭찬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겠지만, 절벽 끝에 몰려있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들에게 희망고문을 할 수는 없었어요.”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의 절박함을 알기에 한 가지라도 더 짚어주고 해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매번 녹화 때마다 ‘30분만 기다려 주세요.’를 외치며 아이들을 붙잡고 일일이 점검하고 가르쳐주길 반복했다. 본의 아니게 녹화 시간이 길어져 출연진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했고, 대장정을 함께하는 동안 줄곧 신경을 쓰다 보니 그의 체중도 8kg이나 줄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멘토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은 이가 해주었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그런 멘토가 있었을까? 이은미는 자신이 좋아했던 음반들이 곧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할 당시에는 대중음악을 가르쳐주는 기관들을 찾기 어려웠다. 음악의 체계적인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클래식을 전공해야 했고, 여의치 않으면 스스로 공부하고 터득해야 했다. 그에게는 오로지 음반만이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언니와 오빠를 둔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팝송을 접했(p. 15)고,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연신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이은미, 맨발의 디바』 중 ‘Diva's musician’ 페이지에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를 성장시킨, 그가 사랑한 뮤지션들과 음반이 소개되어 있다. 그가 직접 열 명의 뮤지션들을 선정하고 짧은 코멘트를 달았다.

“꼭 들어보시면 좋을만한 음반과 그 음반이 좋은 이유, 그 음반을 들으면 어떤 것들을 느껴볼 수 있는지에 대해 짧은 코멘터리를 적어봤어요. 그리고 제가 왜 그 음반들을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도 적었구요. 핑크플로이드의 음반도 들어 있구요, 사라본의 음반과 레이 찰스의 음반, 마리아 칼라스의 음반도 들어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 찾아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날 진행을 맡은 채유담 마케팅 담당자(문학동네)와 대화를 나누며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선물했다. 그 어떤 공연장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변함없는 열정을 느끼며 모든 이들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20여년의 시간동안 공연장을 지킨 가수인 만큼, 공연을 마친 그는 한층 더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마침 뒤이어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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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0세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으세요?

답변

아마 지금처럼 똑같이, 철없이 살고 있을 겁니다. 제가 만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과 좋은 음식 나누어 먹고, 좋은 생각 나누고, 좋은 마음 나누면서 그렇게 늙어가는 게 제 꿈이거든요.

질문

공연하실 때 스탭들도 맨발로 일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답변

당연히 아니죠(웃음). 대신 제 스탭들이 고생을 하죠. 제가 무대에서 맨발로 공연을 하니까 마지막에 항상 무대 청소를 해줘야 하거든요. 보통 무대가 가설로 만들어져서 스테이플러나 압정 같은 것들이 노출된 경우가 많아요. 발을 찔리거나 다치기도 해요. 관객들께서 공연 중에 가끔 흥분하셔서 야광봉을 무대 위로 집어던지시는데 조명에 맞아서 깨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걸 모르고 제가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아서 무대에 선혈이 낭자했던 적도 있었구요. 지금까지 프로로 무대에 서면서 파상풍 주사 3번 맞았습니다.

질문

2012년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답변

지금 힘들어 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런데 저는, 삶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날을 세우면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됩니다. 사람이 없게 되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게 되구요.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뿌리가 없이 떠도는 수생생물 같이 되어 버려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 나이에는 제 나이에 맞는 고민이 있구요, 20대에는 20대에 맞는 고민이,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아버지께 맞는 고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실컷 고민하세요. 아주 깊게, 많이. 그러면 답을 더 빨리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질문

눈물을 참으시면서 노래하신 적 있으세요? 어떤 노래였을까요?

답변

무대에서 정말 많이 우는 편인데요. 최근에 저희 아버님께서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미룰 수 있는 스케줄은 미루고 취소할 수 있는 스케줄은 취소했지만, 도저히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어서 무대에 섰어야만 했었어요. 그럴 때 힘들죠. 분명히 아버님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 무대 위에서 이은미여야 하는 것. 그건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공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직업을 가진 모든 분들이 아마 어려우시겠죠. 저 정말 울보에요. 노랫말을 쓸 때 감정에 빠져서도 울고요, 떠나간 그 사람 생각하면서도 울고요(웃음). 음반을 녹음할 때의 상황이나, 이겨냈음에도 이후에 생겨나는 감정들 때문에 저는 노래하면서 진짜 많이 운답니다.

질문

패티김 선생님의 은퇴 기사를 봤습니다. 언제까지 노래하실 수 있으실까요?

답변

대중음악가는 여러분들께서 음악을 들어주셔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사람이에요. 대중예술가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제 음악을 들어 주시고 또 제 노래를 찾아 주셔야 제가 설 무대도 있고,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생기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더 이상 이은미의 음악은 들을 만한 가치가 없지.’라고 생각하시면 언제든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 저희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숙명이거든요. 저도 여러분들이 주신 숙명대로 살아야겠죠. 그래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한 연습들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찾아주시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게 제가 잘 나이 먹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랫동안 곁에 두시면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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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집의 목소리는 굉장히 고우셨는데, 의도적으로 변화시키신 건지 자연스럽게 변한 건지 궁금합니다.

답변

제 책의 ‘Diva's musician’ 페이지에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사라 본’ 음반이 들어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가 듣고 공부해왔던 음반들입니다. 그런 보컬리스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었어요. 조금 더 굵은 톤의, 중저음의 대역이 훨씬 폭넓은 그런 보컬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저는 사실 허스키 보이스이긴 하지만 조금 미성에 가까웠거든요. 그걸 뜯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죠. 발성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음반이나 음악시장의 구조상 가수들이 혹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시장이 작다 보니까 외국처럼 음반 한 장이 성공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다 보니 계속해서 혹사를 해야 하거든요.

콘서트는 더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23년 동안 무대를 지켰잖아요. 콘서트를 하다보면 한 회로 공연을 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아니다 보니까 하루에 두 번의 공연을 하게 되죠. 그러면 5시간 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제가 리허설을 길게 하는 타입이에요. 투어 콘서트의 첫 공연 같은 경우는 5시간 가까이 리허설을 해요. 하루에 최소 8시간에서 10시간을 노래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는 조금 더 허스키한 색깔을 갖게 된 거구요. 그리고 성대도 늙습니다. 얼만큼 잘 관리를 해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소리를 전해드리냐가 관건이겠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음원이나 공연의 수익 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답변

대한민국 음반시장의 구조상 지금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음악을 시연하는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음원을 구입하시면 시연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2%가 채 안 됩니다. 음원 판매 금액의 40%에서 60%에 가까운 마진을 이동통신사에서 가져갑니다. 엄청 큰 거죠.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제가 굉장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인데요. 지금 음원시장이 엄청 커졌기 때문에 이렇게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합니다. 1년에 몇 조원 정도에요. 그런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대기업에서 그냥 내어줄 리 없죠.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이 되니까요.

저희들이 이런 권리를 되찾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동의하시고 동참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더 낮은 태국 같은 나라도 이동통신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져가는 수수료가 20%를 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40% 이상입니다. 한국의 이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좋은 음악가들이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많이 팔려도 이동통신사만 배가 부르고 그 수익이 너무 적게 배분이 되는 것이죠. 음악가들이 가져가야 할 권리인데도 불구하구요. 이러한 현실을 여러분들께서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질문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변

제가 < Ma Non Tanto >라는 음반을 내기 전 3년 반 동안 터널 속에 갇혀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대로 음악가 이은미로 살다가 내 생이 마감되면 인간 이은미가 너무 서운할 것 같은 거에요. 인간 이은미와 음악가 이은미가 동시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따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알아야 되겠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니까 삶을 되짚어 보고 정리하는 것, 그 순간을 통해 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출발한 거에요. 제가 올해로 데뷔 23년이 됐는데 음악가로 23년을 사는 게 어땠는지,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그런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사인회를 끝으로 모든 북 콘서트 일정이 끝난 후에 인터뷰가 이어졌다. 2시간 가까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잠깐의 휴식도 갖지 못한 그였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모든 질문을 귀 기울여 듣고 마음을 기울인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 온 프로만이 간직하는 내공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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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수 데뷔를 하시기 전에는 ‘내가 가수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셨는데 데뷔 초기에 강하고 고집 센 ‘5집 가수 같은 신인’ 이셨어요. 본인만의 신념이 있으셨기에 가능하셨던 것 아닌가요?

답변

제 음악에 대한 확신에 불타올랐을 때니까요. 그것 밖에는 기댈 데가 없었거든요. 처음 노래를 할 때 느껴졌어요. 일주일동안 ‘The Greatest Love Of All'을 연습한 끝에 신촌의 라이브 카페에 갔어요. 그 라이브 카페가 신촌에서 소리꾼들이 꽤 많이 모이는 장소였거든요.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한 두 곡 정도는 스스로 연주하면서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노래를 시작하니까 웅성대는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온 세포를 나한테 다 기울이고 있구나, 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러면서 묘한 흥분 냄새 같은 게 맡아졌어요. 그 때 알았어요. 난 이걸 해야겠구나, 이게 이런 거구나. 그게 너무 좋았으니까 그것에 대한 확신에 똘똘 뭉쳐 있을 때였죠. 누구도 그걸 못 건드리게 해야 되는 거죠. 이건 내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날카로웠고 아무도 못 건드렸죠. 어지간한 남자 뮤지션들도 저한테 말을 못 걸었으니까요.

질문

무대 세팅할 때 완벽을 추구하시는 것으로 유명하세요. 모든 스탭들이 눈치를 봐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인가요?

답변

능력에 대한 신뢰라고 하면 너무 오만한 얘기인 것 같구요. 제 일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는 거겠죠. 이 일이 너무 좋고, 그래서 이 일을 해야만 했구요. 내가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프로가 되면서 너무 빨리 알아 버렸어요. 별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얻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게 아쉽죠. 제가 너무 날이 서 있으니까 다가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제 날카로운 가시에 상처입고 절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겠고. 나이가 들은 후에 생각해보면 그런 게 아쉬운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지키지 않았다면 내가 쉬이 무너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질문

그렇게 차갑고 날이 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은미씨가 힘들 때 재기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지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답변

제가 저의 음악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거에요. 이은미는 천생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라는 것을,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저보다 먼저 터득하셨겠죠. 제가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걸 제일 먼저 얘기해준 분은 정원영 선배였어요. 어느 날 여동생 방에 들어갔는데 CD가 한 장 꺼내져 있어서 보니까 제 CD였대요. 그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면 “그러면 음악을 떠나서 살 수 있겠니?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빨리 상처 입은 마음을 곧추 세워서 돌아와라.” 얘기해 주셨어요. 아마도 제가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선배님들에게는 보이셨던 것 같아요. 저 정도로 음악을 지키고 싶어 하고 아끼는구나,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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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실 때 하지 못할 일은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답변

제 스스로 저를 지키는 방법 중의 하나인 거죠. 하지 못할 일을 적어놓으면 그것 때문에 계속 상처를 받게 되잖아요. ‘나는 왜 이 일을 빨리 시작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면서요. 내 자신에게 꽤 근사한 상을 주고 있구나, 라고 만족감을 느끼면서 행복해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질문

『이은미, 맨발의 디바』 집필도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일인가요?

답변

제가 시선집을 만들 때 정말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짧은 코멘터리를 다는 것은 쉬울 줄 알았어요. 그 시를 읽었을 때의 내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 놓으면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가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데었죠. 그래서 다시는 안 한다고 했는데(웃음), 사람이 망각의 동물인 건 확실해요. 정리를 한 번 해 놓으면 ‘앞으로 남은 음악 인생이나 나의 삶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쓰게 됐어요.

질문

나를 되짚어 보고 돌아보는 시간의 끝에 탈고를 하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답변

부끄럽죠, 뭐. 음반도 마찬가지에요. 만들 때는 몰입해서 오로지 곡과 편곡에만 집중하고 사랑하잖아요. 그럴 때는 잘 안 보이는 거에요. 남녀 관계와 똑같아요. 빠져있을 때는 이것이 최고인 것 같고 전부인 것 같지만, 막상 한 걸음만 뒤에서 보면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죠. 저도 그런 마음이에요. 무척 바쁠 때 정리를 하다보니까 제 능력의 한계가 더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질문

지금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도 보내고 계시고, 본인의 삶을 돌아보는 책도 내셨습니다. 이 시기에 붙잡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답변

내 온 몸을 관통할 만큼 뜨거운 피가 내 안에 다시 돌기를.

질문

‘애인...있어요’가 최근 5년 동안 2천만번 이상 불렸다고 합니다. 왜 대중들이 이 노래를 그렇게 많이 불렀을까요?

답변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그 두 줄 때문이죠. 누구에게나 그렇게 꼭 숨겨놓은 사랑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건 성별과도 상관이 없고, 나이와도 상관이 없고, 성적 취향과도 상관이 없어요.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인 거죠. 그래서 그 곡이 참 위대한 곡이에요. 나이가 어린 친구들도,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는 곡이잖아요.

질문

무대만 달라질 뿐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완벽하게 몰입한 상태에서 열창하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답변

결 같은 건 없어요. 음악을 미치게 사랑하는 방법 밖에는. ‘지금 이런 음악이 트렌드니까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고 따라 부르고 앨범을 사주겠지.’ 저는 그렇게 하지를 못해요. 제가 미치게 그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해야만, 그 음악의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 ‘맞아, 내가 이 음악을 사랑했지.’하고 빠르게 빠져들 수 있죠.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질문

본인의 노래가 아닌 다른 뮤지션의 노래 중에서도 그런 음악이 있으신가요?

답변

많죠, 그런 노래. 어제 거제에 사는 친구가 저희 집에 왔었어요. 같이 맥주 한 잔을 마시는데, 오래간만에 김민기 선배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봉우리’를 계속 틀어놨었어요. 그렇듯이 인트로가 시작되자마자 빠져드는 음악들이 너무 많죠. 그런 음악들이 결국 저를 만들었어요.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제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표현들이 내 음악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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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책을 읽을 젊은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답변

제가 위대한 탄생에서도 했었던 얘기고, 함께 음악하는 밴드나 작업하는 친구들에게도 항상 해주는 말인데요. 이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해요. 나처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 자긍심이 없으면 사랑하는 일을 붙잡고 계속 그 사랑을 키워나가기가 어렵거든요. ‘이건 내가 분명히 원하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야.’ 라는 걸 스스로 확인하려면 나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해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는 거에요.

질문

이은미씨처럼 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답변

적어도 저는 여러분들이 제게 주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권력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주신 만큼 온전하고 바르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해야 될 몫이라고 확신을 해요. 소셜테이너라고 많이 이야기 하시지만, 저는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과 저의 재능이 잘 쓰여지도록 만들 의무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하는 일들에 나서서 제 생각을 보태고 재능을 기부하는 것인데, 노출이 되면서 그렇게 느끼시는 모양이에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따뜻한 애정을 사회에 다시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러분들과 제가 나누는 또 다른 의미의 교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들이 주신 권력을 제 것처럼 휘두르지 않고 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일이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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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맨발의 디바 이은미 저 | 문학동네

세상의 모든 노래에는 각자 주인이 있게 마련이다. 무수한 노래 중, 내가 사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만난다. 이은미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노래한다. 그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도, 가수로서 그녀가 이룬 것들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이처럼 20여 년간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 이 책『이은미, 맨발의 디바』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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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이은미, 맨발의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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