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Love Of All’은 가수 데뷔에 대한 확신을 느끼게 해준 곡” -『이은미, 맨발의 디바』
내 온 몸을 관통할 만큼 뜨거운 피가 내 안에 다시 돌기를…
“인간 이은미와 음악가 이은미가 동시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따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알아야 되겠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니까 삶을 되짚어 보고 정리하는 것, 그 순간을 통해 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출발한 거에요.”
60세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으세요?
아마 지금처럼 똑같이, 철없이 살고 있을 겁니다. 제가 만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과 좋은 음식 나누어 먹고, 좋은 생각 나누고, 좋은 마음 나누면서 그렇게 늙어가는 게 제 꿈이거든요.
공연하실 때 스탭들도 맨발로 일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당연히 아니죠(웃음). 대신 제 스탭들이 고생을 하죠. 제가 무대에서 맨발로 공연을 하니까 마지막에 항상 무대 청소를 해줘야 하거든요. 보통 무대가 가설로 만들어져서 스테이플러나 압정 같은 것들이 노출된 경우가 많아요. 발을 찔리거나 다치기도 해요. 관객들께서 공연 중에 가끔 흥분하셔서 야광봉을 무대 위로 집어던지시는데 조명에 맞아서 깨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걸 모르고 제가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아서 무대에 선혈이 낭자했던 적도 있었구요. 지금까지 프로로 무대에 서면서 파상풍 주사 3번 맞았습니다.
2012년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지금 힘들어 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런데 저는, 삶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날을 세우면 주변에 사람이 없게 됩니다. 사람이 없게 되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게 되구요. 그것이 없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뿌리가 없이 떠도는 수생생물 같이 되어 버려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 나이에는 제 나이에 맞는 고민이 있구요, 20대에는 20대에 맞는 고민이,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아버지께 맞는 고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실컷 고민하세요. 아주 깊게, 많이. 그러면 답을 더 빨리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눈물을 참으시면서 노래하신 적 있으세요? 어떤 노래였을까요?
무대에서 정말 많이 우는 편인데요. 최근에 저희 아버님께서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미룰 수 있는 스케줄은 미루고 취소할 수 있는 스케줄은 취소했지만, 도저히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어서 무대에 섰어야만 했었어요. 그럴 때 힘들죠. 분명히 아버님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 무대 위에서 이은미여야 하는 것. 그건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공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직업을 가진 모든 분들이 아마 어려우시겠죠. 저 정말 울보에요. 노랫말을 쓸 때 감정에 빠져서도 울고요, 떠나간 그 사람 생각하면서도 울고요(웃음). 음반을 녹음할 때의 상황이나, 이겨냈음에도 이후에 생겨나는 감정들 때문에 저는 노래하면서 진짜 많이 운답니다.
패티김 선생님의 은퇴 기사를 봤습니다. 언제까지 노래하실 수 있으실까요?
대중음악가는 여러분들께서 음악을 들어주셔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사람이에요. 대중예술가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제 음악을 들어 주시고 또 제 노래를 찾아 주셔야 제가 설 무대도 있고,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생기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더 이상 이은미의 음악은 들을 만한 가치가 없지.’라고 생각하시면 언제든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 저희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숙명이거든요. 저도 여러분들이 주신 숙명대로 살아야겠죠. 그래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한 연습들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찾아주시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게 제가 잘 나이 먹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랫동안 곁에 두시면 좋겠지만요.
1집의 목소리는 굉장히 고우셨는데, 의도적으로 변화시키신 건지 자연스럽게 변한 건지 궁금합니다.
제 책의 ‘Diva's musician’ 페이지에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사라 본’ 음반이 들어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가 듣고 공부해왔던 음반들입니다. 그런 보컬리스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었어요. 조금 더 굵은 톤의, 중저음의 대역이 훨씬 폭넓은 그런 보컬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저는 사실 허스키 보이스이긴 하지만 조금 미성에 가까웠거든요. 그걸 뜯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죠. 발성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음반이나 음악시장의 구조상 가수들이 혹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시장이 작다 보니까 외국처럼 음반 한 장이 성공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다 보니 계속해서 혹사를 해야 하거든요.
콘서트는 더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23년 동안 무대를 지켰잖아요. 콘서트를 하다보면 한 회로 공연을 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아니다 보니까 하루에 두 번의 공연을 하게 되죠. 그러면 5시간 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제가 리허설을 길게 하는 타입이에요. 투어 콘서트의 첫 공연 같은 경우는 5시간 가까이 리허설을 해요. 하루에 최소 8시간에서 10시간을 노래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는 조금 더 허스키한 색깔을 갖게 된 거구요. 그리고 성대도 늙습니다. 얼만큼 잘 관리를 해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소리를 전해드리냐가 관건이겠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원이나 공연의 수익 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대한민국 음반시장의 구조상 지금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음악을 시연하는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음원을 구입하시면 시연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2%가 채 안 됩니다. 음원 판매 금액의 40%에서 60%에 가까운 마진을 이동통신사에서 가져갑니다. 엄청 큰 거죠.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제가 굉장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인데요. 지금 음원시장이 엄청 커졌기 때문에 이렇게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합니다. 1년에 몇 조원 정도에요. 그런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대기업에서 그냥 내어줄 리 없죠.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이 되니까요.
저희들이 이런 권리를 되찾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동의하시고 동참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더 낮은 태국 같은 나라도 이동통신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져가는 수수료가 20%를 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40% 이상입니다. 한국의 이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좋은 음악가들이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많이 팔려도 이동통신사만 배가 부르고 그 수익이 너무 적게 배분이 되는 것이죠. 음악가들이 가져가야 할 권리인데도 불구하구요. 이러한 현실을 여러분들께서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 Ma Non Tanto >라는 음반을 내기 전 3년 반 동안 터널 속에 갇혀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대로 음악가 이은미로 살다가 내 생이 마감되면 인간 이은미가 너무 서운할 것 같은 거에요. 인간 이은미와 음악가 이은미가 동시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따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가 알아야 되겠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니까 삶을 되짚어 보고 정리하는 것, 그 순간을 통해 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척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출발한 거에요. 제가 올해로 데뷔 23년이 됐는데 음악가로 23년을 사는 게 어땠는지,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그런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가수 데뷔를 하시기 전에는 ‘내가 가수가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셨는데 데뷔 초기에 강하고 고집 센 ‘5집 가수 같은 신인’ 이셨어요. 본인만의 신념이 있으셨기에 가능하셨던 것 아닌가요?
제 음악에 대한 확신에 불타올랐을 때니까요. 그것 밖에는 기댈 데가 없었거든요. 처음 노래를 할 때 느껴졌어요. 일주일동안 ‘The Greatest Love Of All'을 연습한 끝에 신촌의 라이브 카페에 갔어요. 그 라이브 카페가 신촌에서 소리꾼들이 꽤 많이 모이는 장소였거든요.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한 두 곡 정도는 스스로 연주하면서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노래를 시작하니까 웅성대는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온 세포를 나한테 다 기울이고 있구나, 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러면서 묘한 흥분 냄새 같은 게 맡아졌어요. 그 때 알았어요. 난 이걸 해야겠구나, 이게 이런 거구나. 그게 너무 좋았으니까 그것에 대한 확신에 똘똘 뭉쳐 있을 때였죠. 누구도 그걸 못 건드리게 해야 되는 거죠. 이건 내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날카로웠고 아무도 못 건드렸죠. 어지간한 남자 뮤지션들도 저한테 말을 못 걸었으니까요.
무대 세팅할 때 완벽을 추구하시는 것으로 유명하세요. 모든 스탭들이 눈치를 봐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인가요?
능력에 대한 신뢰라고 하면 너무 오만한 얘기인 것 같구요. 제 일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는 거겠죠. 이 일이 너무 좋고, 그래서 이 일을 해야만 했구요. 내가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프로가 되면서 너무 빨리 알아 버렸어요. 별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얻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게 아쉽죠. 제가 너무 날이 서 있으니까 다가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제 날카로운 가시에 상처입고 절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겠고. 나이가 들은 후에 생각해보면 그런 게 아쉬운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지키지 않았다면 내가 쉬이 무너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차갑고 날이 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은미씨가 힘들 때 재기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지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저의 음악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거에요. 이은미는 천생 음악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라는 것을,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저보다 먼저 터득하셨겠죠. 제가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걸 제일 먼저 얘기해준 분은 정원영 선배였어요. 어느 날 여동생 방에 들어갔는데 CD가 한 장 꺼내져 있어서 보니까 제 CD였대요. 그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할 때면 “그러면 음악을 떠나서 살 수 있겠니?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빨리 상처 입은 마음을 곧추 세워서 돌아와라.” 얘기해 주셨어요. 아마도 제가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선배님들에게는 보이셨던 것 같아요. 저 정도로 음악을 지키고 싶어 하고 아끼는구나, 라구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실 때 하지 못할 일은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제 스스로 저를 지키는 방법 중의 하나인 거죠. 하지 못할 일을 적어놓으면 그것 때문에 계속 상처를 받게 되잖아요. ‘나는 왜 이 일을 빨리 시작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면서요. 내 자신에게 꽤 근사한 상을 주고 있구나, 라고 만족감을 느끼면서 행복해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은미, 맨발의 디바』 집필도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일인가요?
제가 시선집을 만들 때 정말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짧은 코멘터리를 다는 것은 쉬울 줄 알았어요. 그 시를 읽었을 때의 내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 놓으면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가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데었죠. 그래서 다시는 안 한다고 했는데(웃음), 사람이 망각의 동물인 건 확실해요. 정리를 한 번 해 놓으면 ‘앞으로 남은 음악 인생이나 나의 삶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쓰게 됐어요.
나를 되짚어 보고 돌아보는 시간의 끝에 탈고를 하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부끄럽죠, 뭐. 음반도 마찬가지에요. 만들 때는 몰입해서 오로지 곡과 편곡에만 집중하고 사랑하잖아요. 그럴 때는 잘 안 보이는 거에요. 남녀 관계와 똑같아요. 빠져있을 때는 이것이 최고인 것 같고 전부인 것 같지만, 막상 한 걸음만 뒤에서 보면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죠. 저도 그런 마음이에요. 무척 바쁠 때 정리를 하다보니까 제 능력의 한계가 더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지금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도 보내고 계시고, 본인의 삶을 돌아보는 책도 내셨습니다. 이 시기에 붙잡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내 온 몸을 관통할 만큼 뜨거운 피가 내 안에 다시 돌기를.
‘애인...있어요’가 최근 5년 동안 2천만번 이상 불렸다고 합니다. 왜 대중들이 이 노래를 그렇게 많이 불렀을까요?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그 두 줄 때문이죠. 누구에게나 그렇게 꼭 숨겨놓은 사랑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건 성별과도 상관이 없고, 나이와도 상관이 없고, 성적 취향과도 상관이 없어요.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인 거죠. 그래서 그 곡이 참 위대한 곡이에요. 나이가 어린 친구들도,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는 곡이잖아요.
무대만 달라질 뿐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완벽하게 몰입한 상태에서 열창하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결 같은 건 없어요. 음악을 미치게 사랑하는 방법 밖에는. ‘지금 이런 음악이 트렌드니까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고 따라 부르고 앨범을 사주겠지.’ 저는 그렇게 하지를 못해요. 제가 미치게 그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해야만, 그 음악의 인트로가 나오는 순간 ‘맞아, 내가 이 음악을 사랑했지.’하고 빠르게 빠져들 수 있죠.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본인의 노래가 아닌 다른 뮤지션의 노래 중에서도 그런 음악이 있으신가요?
많죠, 그런 노래. 어제 거제에 사는 친구가 저희 집에 왔었어요. 같이 맥주 한 잔을 마시는데, 오래간만에 김민기 선배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봉우리’를 계속 틀어놨었어요. 그렇듯이 인트로가 시작되자마자 빠져드는 음악들이 너무 많죠. 그런 음악들이 결국 저를 만들었어요.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제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표현들이 내 음악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게 되었죠.
책을 읽을 젊은 친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위대한 탄생에서도 했었던 얘기고, 함께 음악하는 밴드나 작업하는 친구들에게도 항상 해주는 말인데요. 이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해요. 나처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 자긍심이 없으면 사랑하는 일을 붙잡고 계속 그 사랑을 키워나가기가 어렵거든요. ‘이건 내가 분명히 원하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야.’ 라는 걸 스스로 확인하려면 나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해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는 거에요.
이은미씨처럼 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적어도 저는 여러분들이 제게 주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권력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주신 만큼 온전하고 바르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해야 될 몫이라고 확신을 해요. 소셜테이너라고 많이 이야기 하시지만, 저는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과 저의 재능이 잘 쓰여지도록 만들 의무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하는 일들에 나서서 제 생각을 보태고 재능을 기부하는 것인데, 노출이 되면서 그렇게 느끼시는 모양이에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따뜻한 애정을 사회에 다시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러분들과 제가 나누는 또 다른 의미의 교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들이 주신 권력을 제 것처럼 휘두르지 않고 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일이라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노래에는 각자 주인이 있게 마련이다. 무수한 노래 중, 내가 사는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만난다. 이은미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노래한다. 그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도, 가수로서 그녀가 이룬 것들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이처럼 20여 년간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 이 책『이은미, 맨발의 디바』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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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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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미. 데뷔한 지 20여 년이 흐르면서, 가수라는 단어는 이은미란 이름과 한 몸처럼, 분신처럼 딱 붙어버렸다. 이은미는 언제나 라이브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무대 위에 선 그녀의 모습 또한 익숙하다. 맨발로, 혼신을 다해 열창하는, 비일상적인 장면마저 친숙하게 만들어버린 관록의 가수다. 하지만 이은미가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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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Non Tanto..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2001년 5집 "Noblesse"이후 처음으로 발매되는 정규음반 이번 음반으로 표현 하고자 하는 이은미의 음악은 충분한 감정표현 또는 음악적 기교 마저도 모두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표현했다. 즉, 슬퍼도 소리 내 울지 않고, 기뻐도 드러내 웃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