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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지능 최재천 저 | 사이언스북스 |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출간한 『다윈 지능』은 150여 년간 진화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뇌들의 설전, 그리고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담은 최고의 진화 생물학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해진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망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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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토록 쉬운 과학책이라니!
말을 내뱉고 나니 절반의 진실이었다. 쉬운 건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과학책이라 말해야 하나? 분명 이 책은 다윈을 제목에 내세웠고,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등장하며, 과학계의 다양한 이론과 논쟁이 등장한다. 하지만 차마 과학책이라고만 규정하지는 못하겠다. 우리 앞에 견고하던 과학의 담벼락은 무릎 높이 정도로 나지막해졌고, 150살이 넘은 진화론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세상의 이모저모를 설명해낸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 진화론, 시즌2
사실 진화론이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0년도 넘었다. 진화론의 ‘적자생존’ 에서 차용해 강한 민족은 살아남고 약한 민족은 소멸한다고 주장한 ‘사회진화론’이 이미 존재했다. 그 폐혜는 대단했는데,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은 일본이 더 진화한 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합리화한 것이 사회진화론의 대표적 사례다.
사회진화론이 학문적 기반은 얕은채 ‘적자생존’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논리였다면, 최근의 진화론은 과학적 데이터들에 풍부하게 근거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폭넓게 확장한다. 최근의 진화경제학, 생태사회학 등등 역시 모두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회과학자들보다 매일 유전자와 동식물을 관찰하는 생물학자들에게서 더 신선한 경제적, 사회적 힌트를 얻을 정도다.
진화론이 우리에게 주는 힌트의 한 사례
포도상구균의 경우 1941년 페니실린에 의해 거의 소탕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3년 만에 페니실린에 저항성을 가진 균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다시 소탕하기 위해 메티실린을 개발했으나, 황색포도상구균의 등장으로 이것도 무력화되었다. 다시 반코마이신을 개발했지만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는 식으로 병원균과 항생제는 전쟁을 치뤄왔다.
병원균이 이렇게 항생제를 만나면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결국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방향으로 변이된 개체들이 살아남아 번식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멸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유전적 변이는 이렇게 개체의 생존을 보장한다. 외부 환경은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진행하고 있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 중에 하나는 환경에 적응할 확률이 높으니까)
최근의 경제이슈에 ‘변이’라는 걸 적용해보면 어떨까? 대형마트와 재벌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는 것이 뜨거운 이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작은 기업은 사라진다. FTA를 체결한 것 역시 농업과 중소기업보다 서비스업, 대기업에 집중하는 방향이다. 국민경제를 ‘개체’라고 보고 기업이나 산업을 ‘유전자’라고 본다면, 우리 국민경제는 유전자의 획일화가 이뤄지는 중이다. 해외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거나 해외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되면 우리 국민경제(개체)는 꺼내놓을 대책이 없어진다. 만약 ‘지역농업과 내수 중소기업’(유전자)들이 다양하게 살아있다면 외부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새롭게 적응하여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최재천, 기억해 둘 이름.
경제만이 아니다. 개미, 침팬지, 갈매기, 청소놀래기 등 수많은 동식물의 사례를 통해 일부일처제, 동성애, 종교 등 인간사회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사례들을 기가 막히게 이어가는 저자의 수완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다. 세상에 전문가는 많지만, 일반 독자에게까지 강력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대중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름이긴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최재천 교수의 이름을 좀 더 새겨두어도 좋을 것 같다. 그의 도움으로 다윈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학의 담을 훌쩍 넘은 교양이 되었다. 경제학에 장하준이 있다면, 생물학엔 최재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