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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재혼 소식을 듣고 책을 불태워버렸다는 독자도 있었습니다”

도종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시에 숨어 있는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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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렵던가. 세월이 만들어낸 주름을 따라 글을 쓰고, 불치병 같은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삶. 그 삶을 고스란히 한 권의 책으로 얽어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렵던가. 세월이 만들어낸 주름을 따라 글을 쓰고, 불치병 같은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삶. 그 삶을 고스란히 한 권의 책으로 얽어냈다. 세월의 향기가 묻어 있는 도종환 시인의 신작을 소개한다.


도종환 시인을 홍대의 카페에서 만났다. 도종환 시인의 열혈 팬인 카페 주인은 도종한 시인을 위해 아끼는 목련차를 내왔다. 도종환 시인은 “목련에게 죄가 되지 않을까요? 목련아 미안하다”라며 차의 향기를 음미했다. 도종환 시인은 이날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로 백석문학상을 받는 날이기도 해서 오늘의 인터뷰는 그 특별함이 더했다.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무엇을 하기에 어중된 시간이에요.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거 같고 포기하자니 너무 이른 거 같은 시간이죠. 사르트르도 오후 세 시를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이라고 표현했어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50대는 새로운 창업을 하기엔 망설여지고 남은 시간을 허송세월할 수도 없는 애매한 나이지요. 제가 그 나이에 와 있는데, 제 인생의 시계를 어정쩡한 시간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은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건 모든 나이대가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지금이 몇 시이든 간에 그 시간을 충만하게 쓰는 그런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도종환 시인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그의 진솔한 삶을 옮겼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지난 1년간 모 일간지에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는 시에 담긴 인생의 숨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종환 시인은 삶의 치열함을 통해 시를 쓰는 시인이다. 목련이 물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 향기를 차(茶)에 내어주듯이, 가열찬 고난은 도종환 시인의 문학에 삶의 향기를 더하게 했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을까?

“제 삶에 고난과 눈물이 많았지만 그런 삶에서 우러나는 게 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각각의 시가 제 삶의 어떤 부분에서 우러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문학이란 본래 이런 게 아닌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지요.”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는 도종환 시인의 지나온 행적과 숨소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내와의 사별과 해직, 투옥, 질병 등과 같은 삶의 고난마저도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역량이 놀랍다. 삶은 비에 젖어 초라하게 뭉개졌으되 문학의 향기만은 잃지 않았다.

“제 문학은 좌절에서 시작했어요. 누구나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게 돼요. 하지만 그 고난과 시련마저도 주어지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난을 통해서 영혼을 담금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고난이 정신을 튼튼하게 하고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길러준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고난 중에는 병고도 있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져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세속에서 망가진 몸을 이끌고 ‘구구산방’이라는 충북 보은 산골에 틀어박힌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살자’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구구산방’에서 도 시인은 나무를 때고 나물을 캐어 먹고 산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원고지를 채워가고 있다.

“제 집에 오시는 분들이 처음에는 다들 ‘참 좋은 곳에서 산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밤에는 산짐승 때문에 무서워 문 걸어 잠그고 자야 하고, 겨울에는 배수관이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고 굉장한 추위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라고요. 그리고 실제 그런 경험을 겪고 나시면 다시는 안 놀러 오시더라고요(웃음).”


도종환 시인은 그래도 구구산방이 좋다고 한다. 도 시인이 말한 단점을 감안하고라도 놀러 가겠노라 하는 기자에게, 도 시인은 구구산방에 산도라지, 더덕, 아카시아 등의 각종 과실로 담은 술들이 많노라 귀띔해준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나눠야 하는 것이 도 시인의 인생이건만, 별수 없이 차로 입을 추기며 질문을 던졌다. 도종환 시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 바로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과 재혼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32살에 아내를 위암으로 잃는다. 도 시인은 아내가 하루하루 삶과 멀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오열과 절규로는 채울 수 없는 삶의 막막함과 고통을 느낀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써낸 시집은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이례 없는 흥행을 기록한다. 그 시집과 영화의 제목은 <접시꽃 당신>이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그 막막함과 정신적, 경제적 빈곤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죠. 29살에 결혼을 해서 32살에 아내와 사별했어요. 아들은 만 두 살이었고 딸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젖먹이였어요.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려 할 때 죽음의 문제 앞에서 철저하게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지요. 인생에 대해서도 모르고 미숙하던 저는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런 제 고통을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 게 시였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를 썼어요.”

도종환 시인의 자녀들은 장성해서, 아들은 현재 기업에 다니고 있고 딸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해서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삶의 무게를 어찌 타인이 잴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문학에 기대 삶을 위로 받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 시인은 그 평가의 잣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그의 시집을 내던졌다. 그가 『접시꽃 당신』을 출간하고 6년 후에 재혼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순정을 보며 감동했던 독자들이 그의 재혼 소식을 듣고는 도 시인을 위선자라 욕하며 침을 뱉었다.


“조금도 독자들을 비난하거나 너무 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죠. 제가 사별하고 6년 만에 재혼했지만, 어떤 독자는 시집을 작년에 읽거나 어제 영화를 봤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한다니 당연히 실망하는 거죠. 남자 중에도 이렇게 순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제 문학에 공감했을 텐데 말이죠. 그 실망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났어요. 헌책방에 책이 쏟아져 들어오고, 강연 후에 질문하는 시간이면 재혼에 대한 비난의 질문이 꼭 나왔죠. 그리고 전화로 ‘당신 시집을 불태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도종환 시인은 그런 과정에서 문학적으로 더욱 성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100만부라는 실적이 제대로 된 문학적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작품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이미지로 문학적인 성공을 유지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너무 어렸어요.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는 아이를 남자 혼자서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그런 정황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부와 명성을 좇는 사이 아이에게는 더 큰 상처가 쌓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줘야 했어요. 그런 와중에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러니 사랑과 함께 비난도 받아들여야지요. 그리고 그 비난이 끝까지 갈 것인지 문학을 통해서 그 비난을 넘을 수 있을 것인지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기도 했어요. 그것이 이번 책을 쓴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해요.”

그리고 현재 도 시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전의 비난과는 다른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도종환 시인을 비난했던 독자들이 사과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헌책방에 던져졌던 책들은 다시 팔려나가고 있다. 도 시인은 “작가는 박수든 질책이든 그것이 독자의 평가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문학적인 평가의 기로에 섰던 도 시인은 역사적인 평가의 기로에 섰던 적도 있다. 광주민주화항쟁의 현장에 군인으로서 투입되었던 것이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는 그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제가 투입되었던 때는 시민군에 밀려 군인들이 후퇴한 후였어요. 저는 여수의 한국화학이라는 공장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되었지요, 그곳에 엄청난 총과 탄약이 있었거든요. 저는 바리게이트 제일 앞을 지켰는데 시민군이 들어올 경우 가장 먼저 총을 쏘거나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총격전이 벌어지면 그 공포감은 군인에게도 동일한 것이죠. 저는 당신 입대한 지 일 년밖에 안 된 졸병이었기에 다른 군인을 설득할 위치도 못되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도 시인이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총알을 거꾸로 끼워 넣는 것이었다. 탄창 제일 위의 총알을 거꾸로 끼워 넣어서 총알이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양심을 지키며 보낸 5월의 밤은 끔찍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다행히 교전은 벌어지지 않았고 도 시인은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었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는 그 외에도 도 시인이 경험한 다양한 역사적?개인적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27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지만 10년 동안은 해직되거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민주화와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선두에서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교육자이자 시인인 도 시인은 아직 채워나가야 할 삶이 한참이라고 한다. 그토록 많은 시를 쓰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도 누렸건만, 아직은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시가 한 편도 없노라면서. 그리고 그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남은 인생을 충실히 살아갈 것이라 다짐한다.


“저는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끊이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바치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으신다면, 제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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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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