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당대 최고 여배우와 30년 넘게 편지로만 연애

버나드 쇼의 연애편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지요. “연애는 편지로만 하게, 적어도 문장력은 향상되니까.” 그는 그의 말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엘렌과 30년이 넘게 편지로만 연애를 했습니다.

엘렌 테리에게

1897, 6월 14일
서리, 영국


1897년 6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에 도킹에 도착하는 야간 열차에 있습니다. 방금 멈추었는데, 곧 미친 듯 흔들리겠지요. 당신이 이렇게 삐뚤빼뚤 갈겨 쓴 편지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가엾은 눈을 생각하고는, 편지를 찢어버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시골과 아름다운 밤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형편없는 책을 읽을 수가 없네요. 그래요, 엘렌, 당신이 추측하는 대로 나는 지금 당신의 위험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흥분해서 제대로 잠들 수 없어요. 보통 남자가 그런 건 분명 여자 때문이고, 내가 그런 건 바로 당신 때문이지요.

당신의 품행은 충격적일 때가 많아요. 오늘 길을 헤매다가 어느 상점 윈도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그곳에 당신이 있었던 겁니다. - 오, 천박해 보이고 제멋대로인, 상 진(Sans Gene : 오페라 The Duchess of Dantzig의 주인공)의 제 3 막에 나오는 허리띠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사악하게 웃으며 심술궂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길 봐요, 잠 못 이루는 사람을 한번 가져 봐요, 당신의 베게 맡에, 당신이 진짜 생각하고 있는 것에…” 어떻게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는 얼굴로,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윈도우와 그로브(런던의 유명한 사진작가)의 카메라를 바라볼 수 있는 건가요?

오, 저런, 저런.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세요. 당신이 평생 동안 들어왔던 것, 싫어했던 것들로부터 말입니다. 비록, 친애하는 엘렌, 이런 어리석은 열망이, 기만 없는 부드러움의 거대한 파도를 일게 하더라도 말입니다.

로터스로 돌아가면 당신에게서 온 편지를 찾을 겁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나요? 우리는 지금 레이게이트에 있어요. 그리고 열두시 십오 분 전이구요. 십분 안에 도킹 역에 도착할 것이고, 거기에서 17분이 지나면 로터스에요, 그리고 편지. 오직 편지, 심지어는 없을 수도 있겠지요. 오 엘렌, 기록을 담당하는 천사가 당신이 지은 죄들 중에 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건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어요?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아일랜드 태생의 극작가로 『피그말리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여러 번 연극과 영화, 뮤지컬로 제작되었으며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이기도 하다. 진정한 현대의 피앙(아일랜드 전사)처럼 그는 아일랜드의 지주 계급의 쇠락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노벨 문학상과 오스카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엘렌 테리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여배우였다. 몇 번의 연애와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그녀는 쇼와 유명한 “편지 연애”를 시작했다. 쇼는 샤롯데 패인 타운센드와 결혼 했고 노벨상을 그녀의 간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노벨상이 아일랜드에 대한 공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94살까지 장수했는데, 이는 채식주의자인 그의 라이프스타일의 도움이 컸다.


서진의 번역후기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지요. “연애는 편지로만 하게, 적어도 문장력은 향상되니까.” 그는 그의 말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엘렌과 30년이 넘게 편지로만 연애를 했습니다. 처음 편지가 왕래될 때엔 그는 소설 출판에 실패한 서른여섯 살의 음악비평가였고, 엘렌은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마흔 다섯의 여배우였습니다. 그들의 편지는 연애 감정에 가득 차 있다가, 무대와 연기에 대한 조언으로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엘렌은 쇼가 부유한 여성과 결혼을 하자 질투심 없는 격려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한 때 그들은 20분 정도 떨어진 살았는데도 서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조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서로를 향해 품고 있던 감정이 무너질까봐 그랬던 겁니다. 그래서 쇼가 엘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모습이 담긴 오페라의 포스터였겠지요. 포스터 속의 야한 엘렌의 모습을 보며 살짝 놀리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질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서로 만나지 않고 편지로만 왕래를 했기에 그들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불같은 사랑도, 짝사랑도, 플라토닉한 사랑도 아닌 편지로만으로도 길고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버나드 쇼는 보여주었습니다.


< 국내에 번역 출간된 ‘버나드 쇼’ 저서들 >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