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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 월터 아이작슨 저/안진환 역 | 민음사 |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2년간 잡스와 함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며 그를 40여 차례 인터뷰했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감을 가진 인물이나 경쟁자까지 포함하여 100여 명의 인물들을 인터뷰하였다. 잡스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집적된 이 전기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 시절부터 애플의 창업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가 담겨 있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모든 서적 중에서 유일하게 그가 자신에 대해 직접 진술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 전기는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작슨이 잡스에게 약속받은 대로, 그조차도 아직 읽지 못한, 그리고 끝내 읽지 못한,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유일한 기록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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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스티브 잡스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21세기 디지털 라이프를 완전히 바꾼 스티브 잡스.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가 아닌, 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체 게바라. 둘은 늘 새로움을 갈구했다는 점에서 영웅이라 불린다. 이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 비교적 덜 유명한 작가를 훌륭한 전기 작가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쓴 장 코르미에와
『스티브 잡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모두 걸출한 글쟁이다. 하지만 코르미에와 아이작슨이 머나먼 이국의 땅인 한국에까지 알려지게 된 데에는 각각 체 게바라와 스티브 잡스라는 신화적인 인물 덕택이다. 특히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자신의 전기의 저자로 선택한 사람이다.
잡스가 인정한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전기는 소설보다 까다롭다. 실재했던 인물을 기록하는 만큼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소설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인물이 흥미로워야 한다. 둘째, 작가의 글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첫 번째 요건을 충족한다. 문제는 두 번째다.
과연 어떤 사람이 스티브 잡스라는 문제적 인물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작가일까. 월터 아이작슨에게 기회가 왔다. 췌장암으로 고생하던 잡스는 죽음을 예감하고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타임' 편집장과 CNN의 CEO를 역임했으며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 키신저 등의 전기를 쓴 전기 전문 작가다.
은하영웅전설보다 재미있는 잡스영웅전설전기를 전문으로 쓰는 작가답게 월터 아이작슨은 무리하지 않았다. 잡스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생각한다면 특이한 구성으로 전기를 썼을 법도 한데 저자는 정공법으로 나간다. 잡스와 자신의 인연을 서문에서 밝히고, 잡스의 출생에서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썼다.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는 연대기적 구성은 무난하긴 하지만 위인전마냥 따분하고 지겨워질 우려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게 자료다. 상상이 개입하는 소설과 달리 전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자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료조사에서 얻은 에피소드 중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만 뽑아야 한다. 실제로 저자는 스티브 잡스를 40여 차례, 그의 주변 인물 10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900쪽이 넘는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뒤 소감은 ‘재미있다’이다. 마치 한 편의 영웅신화를 읽은 느낌이다. 출생의 비밀(입양) - 비범한 능력을 발휘(워즈니악과 애플 설립) - 역경과 고난(애플에서 쫓겨남) - 성공(픽사 성공과 애플 복귀) -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흡사 오이디푸스 신화의 21세기판 변용 같다. 저자는 서사 중간 중간에 스티브 잡스의 연애나 가족 관계, 빌 게이츠나 에릭 슈미트 등 라이벌과 맺었던 악연 등을 풀어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독자는 이 책 한 권으로 현대 IT 혁명 과정과 함께 인간 스티브 잡스를 볼 수 있다.
인문학 ;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IT 혁명의 최전선을 지휘했던 스티브 잡스는 체 게바라와 마찬가지로 영웅이다. 체 게바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잡스도 게바라와 비슷하다. 그를 설명할 때 흔히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용어를 쓴다. 평소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말하면 현실이 된다는 뜻이다.
잡스는 그의 업적을 인문학과 공학의 접점이라 표현하길 즐겼다. 평소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 등 문화 콘텐츠 전반에 관심 많았던 잡스. 다른 사람에게 불가능으로 보였던 것이 자신에게는 가능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어쩌면 ‘인문학’ 덕택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현실 왜곡장의 다른 표현은 인문학이 아닐까 싶다. 창조와 혁신이 인문학에서 나온다는 명제를 참으로 증명한 점이야말로 잡스가 21세기 영웅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