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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역사 사상, 가장 열렬했던 연애

로버트 슈만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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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별칭을 붙여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소중한’이라는 간단한 말보다 더 사랑스러운 말은 찾지 못했습니다.


클라라 비크에게

1838년
라이프치히, 독일

정말 상쾌한 아침이에요! 세상의 모든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하늘은 금빛인 데다 맑아요. 그리고 내 앞에, 당신의 편지가 있어요.
사랑하는 그대, 당신에게 나의 첫 번째 키스를 보냅니다.


1838년
라이프치히

클라라,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고 당신에게 받은 마지막 편지 덕에 나는 너무나 행복한 날들을 지내고 있어요.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별칭을 붙여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소중한’이라는 간단한 말보다 더 사랑스러운 말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어요. 내 소중한 사람, 이라고 한 번 불러보면, 당신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환희에 차서 흐느낄 정도예요. 그리고 과연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하루에 한 사람의 마음과 머리로 밀려드는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수천 가지 생각, 소원, 슬픔과 환희, 희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 까요? 그것들은 하루 만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되풀이합니다. 하지만 어제 내 마음은 아주 가벼웠고, 그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당신의 편지에서부터 너무나 고결한 영혼과, 신념과, 넘치는 사랑이 빛나고 있습니다.

나만의 클라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고대의 기사들은 형편이 더 나았어요. 그들은 연인을 구하기 위해 화염 속을 돌진하거나, 용을 무찌를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좀 더 평범한 방법에 만족해야 한답니다. 가령 담배를 적게 피는 등 같은 것으로 말이죠. 하지만 결국, 우리는 기사든 기사가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시대가 변한 것일 뿐, 남자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요.

당신의 편지가 얼마나 나를 일으켜주고, 강하게 만들었는지 잘 알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너무나 훌륭해서 당신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결정을 했답니다. 당신의 모든 소망을 당신의 얼굴에서 읽어내기로 말입니다. 그러면 말로 하지 않아도 당신의 로버트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온전히 당신의 것이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겠지요.

당신은 행복한 미래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겁니다. 당신이 지난밤에 작은 모자를 쓴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당신이 나를 ‘뒤(du)’라고 부르던 것도 들리는 걸요. 그 말 말고는 당신이 말한 것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기억나지 않나요?

한편으로 나는 당신의 여러 잊지 못할 모습을 떠올립니다. 한번은 당신이 에밀리아 리스트와 함께 극장으로 갈 때 검은 드레스를 입었지요. 그때는 우리가 헤어져 있었을 때였어요. 당신이 그걸 잊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은 당신은 토마스가첸에서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는데 나를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지요. 또 다른 땐 콘서트가 끝난 뒤 당신이 모자를 쓰고 있을 때 우리의 눈이 딱 마주쳤어요. 당신의 눈은 오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났던 이후로, 온갖 방식으로 당신을 떠올려 봅니다. 당신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나를 순간적으로 매혹시켜 버렸어요. 아, 나는 당신의 사랑을,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그 사랑을 주는 당신을 아무리 찬양해도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로버트



로버트 알렉산더 슈만(1810-1856)은 유명한 독일 낭만파 작곡가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비크 슈만과 결혼했다. 클라라는 로버트의 스승 프레드릭 비크의 딸이었다. 프레드릭은 로버트가 불의의 사고로 손을 다치기 전까지는 대가가 될 거라고 믿었다. 1836년 로버트와 클라라는 사랑에 깊이 빠져 다음 해에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요청했다. 딸을 과보호하던 프레드릭은 그들의 관계를 완강히 반대해서 결혼 허락을 위한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이어졌지만, 마침내 1840년 결혼을 한 뒤 행복하게 살았다.
“음악의 고위 여사제”로 간주되는 클라라의 60년간의 콘서트 공연 경력 동안 그녀는 남편의 많은 작품을 소개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곡 중의 하나인, 현혹적이고 간결한 “꿈”도 포함되어 있다.


번역후기

- 음악 역사 사상, 가장 열렬했던 연애 -

“지금까지 나의 삶 전체는 시냐 산문이냐, 아니면 음악이냐 법이냐를 선택하기 위한 20년간의 투쟁,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슈만은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애초에 문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집안의 기대와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 못해 프레드릭 비크에게 피아노를 사사받는다. 스승의 딸인 클라라는 이미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었고 슈만이 스무 살 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엔 클라라는 11살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사이는 친밀해졌고 그녀가 16살이 되던 때, 마침내 그들은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오직 단 한사람, 그대만이 내 삶을 정복했습니다.”

클라라는 10대에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대열에 합류했는데 이는 독특한 피아노 교습법을 개발한 아버지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가까워진 슈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클라라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주는 모든 것인데, 풋내기 청년이 빼앗아 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편지를 금지시키고, 쉴 새 없이 연주 여행을 다니게 하고 클라라를 감시했다. 슈만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끊은 것도 물론이다. 클라라는 슈만과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아버지의 뜻대로만 자라온 그녀에게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친구들을 통해 암호화된 편지를 주고받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열정적인 슈만의 구애와, 음악과 문학, 몽상가적인 기질 등 공통점이 그들을 결속시켜 주었다.

결국 클라라는 한 연주회에서 슈만이 청중으로 있는 가운데 그가 작곡한 곡을 의도적으로 연주함으로써 그에 대한 사랑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결혼까지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독일에서는 21살 전에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끝까지 반대를 하는 클라라의 아버지와 법정 공방 끝에 클라라가 21살이 되기 직전 승소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시골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두 음악가의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는 어쩌면 그가 만든 음악보다 더 낭만적일 지도 모른다.
“어떤 사상이든 이미 형성되어 있는 형식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는 말이오? 모 든 예술작품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의의와 형식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내용 과 사상이 형식을 결정할 뿐 그 역(逆)은 아니오!”

클라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슈만은 그처럼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을 거라고 한다. 그녀는 당대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능했다. 슈만은 정통 소나타와 교향곡을 쓰기 보다는 자신의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피아노곡과 가곡에 재능을 발휘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음악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 형식도 고전적인 음악보다 자유롭게 변했다. 낭만파 음악의 절정을 이룬 사람이 바로 슈만이다. 낭만파 음악과 더불어 낭만적 사랑의 개념도 보다 개인적이고 열정적, 탐미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낭만적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면 사정은 변한다. 장인의 반대와 나이 차이를 극복한 그들의 사랑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음악가가 하나의 피아노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었고,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기 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과 경제적 보수를 위해서 연주여행을 자주하는 아내를 슈만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항상 아버지의 과보호를 받던 여자와, 정신병적 기질이 있는 남자가 현실 생활에서 약간씩 어긋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변에도 그토록 열렬히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게 되어 삐끄덕 거리는 커플이 종종 보인다. 결혼 후에 낭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낭만은 그저 한 시기에 겪은 열병 같은 것일 뿐일까? 낭만적 사랑은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주는 것, 때로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그것에 대한 믿음이 현실에서 무뎌질 때, 우리는 어쩌면 오래 전에 썼던 러브레터를 꺼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해 다시 한 번 또박 또박 써 볼 수도 있겠다.


< 함께 하면 좋은 도서 &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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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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