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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저 | 반비 |
생태학과 20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발한 저술, 강연 활동을 해온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번엔 ‘문화’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왜 갑자기 문화인가? 물론 저자가 개인적으로 다양한 문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이 책은 저자의 주요 전작들의 문제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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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뛰어내린 방송작가의 죽음, 월세방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중견영화감독 곽지균의 죽음 등 문화계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책이나 영화로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화를 생산하는 이들이 밥 못 먹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번에는 문화경제학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 저자 중 하나인 우석훈이 문화산업을 경제학적으로 짚었다. 버라이어티쇼, 드라마, 출판, 만화, 영화, 연극 음악, 스포츠 등 대중들이 즐기는 다양한 문화를 산업, 특히 고용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5년에 걸쳐 현장에서 일하는 400~500명의 사람을 직접 만났다. 경제학자답게‘수치’로 문화산업의 실태를 진단하고, 정부보조금, 단체 행동 등 해결책도 제시한다.
예술은 원래 배고픈거다. 그런데 굶어 죽겠다.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성장했고, 문화소비자가 아니라 문화 생산자나 기획자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은 좁다. 이미 문화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롭게 진입하려는 이들이 반갑지 않다.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의 현실은 참혹하다. KBS에서는 1년에 드라마 PD를 고작 ‘2명’밖에 뽑지 않고, 영화감독으로의 '입봉(감독으로서 처음 연출을 맡는 것)'은커녕 먹고 살기조차 막막하고, 시를 쓰려면 두 세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 직업이 자아실현이라고 믿고 꿈을 좇는 이들의 삶이 불안정하다.
『문화로 먹고살기』는 산업을 배로 비유한다. 문화 산업은 재미있는 유람선이어야 하는데, 수송선이나 군함처럼 취급했다. 팽창의 논리가 아닌 재생산의 눈으로 봐줘야 한다. 전작들에서도 비판했듯 토건경제와 수출주도형 경제 그리고 '신빈곤 현상'이 문화의 생산현장을 망친다고 이야기한다. 문화 부문에서 더도 말고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고용한다면, 한국을 지배하는 토건 경제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고, 다음 세대 일자리 문제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우석훈의 진단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문화산업에서도 승자 독식원리가 작동한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는데 억울한 얼굴로 울고 있으면 그건 우리나라 선수. 연금이 금메달보다 훨씬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몇몇 소수만이 대박 나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문화계 현실이다. 한류열풍, 노벨문학상, 올림픽 금메달을 통한 국위선양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단단하게 해줘야 한다. 밑바닥에서 더 많은 작가가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해야 하며, 스포츠 선수가 은퇴해도 먹고 살도록 사회체육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등만이 아닌 뒤에서 1등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야 한다.
꿈을 가진 젊은이와 문화소비자인 우리에게책은 현실적이어서 읽고 나면 오히려 20대는 꿈을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알고 판단 하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문화생산자 혹은 문화기획자를 희망하는 젊은이에게 '협업'의 의미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영화, 드라마, 연극 같은 종합예술은 물론이거니와 음악도 기본적으로는 협업이라는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는 20대가 문화분야를 전공하고 싶어할 수 있지만, 고독한 천재형보다는 협업에 익숙한 사람이 자기 재능을 발휘하기에 더 유리하다.
문화소비자인 우리는 피나는 노력으로 문화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관련 산업 종사자에게 다음의 행동으로 도움을 주자. 좀 더 많은 책을 사보고, 드라마는 본방사수하고, 굿 다운로더가 될 것.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말고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재미있고 다양한 문화결과물이 나와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도록 지갑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