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꺼낸다.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의 작가 트루먼 카포티의 이 말부터.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2. 이상은의 노래, 「언젠가는」의 한 소절은 어떤가.
“…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질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
#3. 공지영 작가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쓴 이 구절도 보자.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봄밤
사랑을 이야기하고 듣고픈 사랑바보들이 오소희와 만났다. 지난 13일, 서울 합정동 콘셉트 있는 카페, ‘스프링컴레인폴’. 절절하고 솔직한 사랑에 대한 댓글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의 번개 같은 만남. 그러나 천둥보다 깊은 울림이 퍼진 사랑을 이야기한 봄밤. 사랑을 속삭이는 봄밤에 사랑바보인 당신도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떤가. 우리,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하자.
수많은 사랑과, 혹은 사랑에 흡사한 것들을 접하고 통과해왔건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위안은 나뿐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인류가 사랑을 마스터하지 못한 ‘사랑 바보’라는 것이다. (p.5)
사랑바보들, 만나다
이날, 사랑바보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십대 사회복지사도 있고, 삼십이 된 재활치료사도 있으며, 교사 출신의 육십 대 독자도 있다. 두 아들을 홈스쿨링 하는 삼십대 후반의 엄마와 이주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탈바꿈한 다섯 살배기 아들의 엄마도 자리했고, 11살 딸을 둔 오소희와 블로그 친구도 함께 했다. 오소희의 소식을 친구소식처럼 알고 하쿠나마타타 도서관지원 사업에 동참하고픈 사람의 행복한 표정도 있다.
더불어 금요일 봄밤, 애인과의 데이트가 아닌 작가와의 만남에 간다니 불쌍한 영혼처럼 여기는 동료들의 시선을 뚫고 온 스물여덟의 컴퓨터프로그래머, 최근 이별로 충격 받았지만 다른 이들과 이를 공유하면서 아픔을 치유하고 누군가를 만날 용기를 얻길 바라는 여성, 귀엽고 예쁜 딸과 함께 와서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생에 보태고 싶은 여성운동가가 귀를 쫑긋했다.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말을 거는 것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나 사랑이 있다. 모든 것이 사랑이다. (p.219)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사랑이 떠났다. 더구나 그는 학교에서 만난, 6년을 사귄 사이였다. 학교 친구들을 통해서 간간이 듣게 되는 그의 소식. 뒤늦게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였을까. 그 소식에 싱숭생숭해진 마음. 결국 발걸음을 옮긴 곳이 생전 처음 가본 동네였다. 그곳의 공중전화 부스. 그 부스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안녕, 내 사랑…
이 자리에 참여한 누군가의 사랑에 대한 어떤 고백이었다. 마음이 짠하다. 생각해보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헤어진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거는 여인의 모습. 뭣보다 그녀의 마음. 그 모습과 그 마음을 떠올리니, 그 생채기와 슬픔이 밀려온다. 사랑은 어쩌면 그렇게 쓸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별에 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사랑할 땐 사랑에 몰입해 있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이별이 다가온 후에야 (끝난) 사랑을 비로소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반대말은 ‘이별’이 아니다. ‘무관심’이다. 사람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산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 그러니 무관심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정언명령이다. 무조건적으로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 사랑하라.
역시 사랑의 후일담인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만난 남자, 오래 전에 헤어진 남자의 결혼 소식이었다. 그 첫 남자에게 배운 것이라면, ‘착한 남자에게 못되게 굴기’. 뒤늦게 대학친구를 통해 결혼소식을 듣고 쿨한 척 했으나, 어느 밤, 술에 취해 진상 짓을 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아,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그녀, 이후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과도 사랑을 했다. 그 사람과도 헤어졌다. 헤어진 지 3년, 솔로다.
“TV에 나오는 키스신을 보면 떨리는 게, 너무 솔로생활이 오래 됐나? 싶다. (웃음) 헤어진 뒤 방탕솔로가 됐다. 솔로가 되니까, 스스로에게 선물을 많이 하게 되더라.”
사랑한 뒤에야 내가 보이는 역설. 누구나 사랑한 뒤에는 재가 돼버린다. 재처럼 바스러지는 사랑한 후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짧은 다짐. 사랑이 하고 싶지 않다는 진심 어린 거짓말. 그것이 사람이요, 사랑한 후에다. 사랑은 사람의 모든 것이니까.
오소희의 멘토링.
“화끈한 상처는 딴 사람을 만나도 여진이 있어서 쉬이 낫질 않는다. 잔영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거기에 투시해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화끈거리는 느낌이 없을 때, 누군가가 우연처럼 다가와 잊게 해줄 것이다. 급하게 서두르면 체한다.”
그래,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이 사랑으로 잊힐 때도, 시간은 중요하다. 여진을, 잔영을 지우는 일. 새로운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곤 듣는 거다. 하림의 노래,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지네」.
“언젠가 마주칠 거란 생각은 했어/ 한 눈에 그냥 알아보았어/ 변한 것 같아도 변한 게 없는 너/ 가끔 서운하니/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 게/ 예전 뜨겁던 약속 버린 게 무색해진데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만 미안해하자 ♪”
마고, 우리가 길을 떠나는 건 그래서일 거야. 길 위의 거대한 위로들과 조우하는 것. 그 순간 내가 지닌 ‘절대적’ 고통이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것. 그 고통 때문에 내쳤던 자신을 도로 끌어안는 것. 멈췄던 춤을 추는 것. 사랑을 시작하는 것. (p.104)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
지지부진했던 2년여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랑이 흐려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새 사람이 생겼다. 모르는 사람하자는 그 사람. 사랑 후 이별이 아파도 사랑이 더 기쁘기 때문에 다시 사랑을 하고, 혹은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해야한다고 하지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자신이 없고 두렵다.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눈물을 글썽이며 사랑을, 이별을 이야기하는 한 참석자. 어쩌면, 이야기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사랑의 권력자가 나라고 생각했는데, 만나자고 했더니 그 남자가 계속 거절하는 거다. 직감이 맞았고, 통보를 받았다. 한 달 새 돌변한 건데, 배신감을 느꼈고 분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이제 한 달이 됐고, 말하면서 풀렸다.”
아무렴. 내 안의 것을 꺼내면, 이야기하면 풀리는 법이다. 명확하게 보인다. 역시나 기울어진 연애를 했다는 오소희의 멘토링과 고백이 이어진다.
“객관화가 중요하다. 다음 사람을 위한 준비운동이 된다. 나도 되게 기울어진 연애를 했고, 결혼하고 그것을 바로 잡는데,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호되게 30대를 보낸 거지. 우리 여성들은 20대에는 자신을 잘 모른다. 30대 중반이 되면 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결혼(관)도 그래서 연령대에 따라 달라진다.
“20대는 무정형이라 어떤 연유로 말미암아 주변에 있는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 30대 중반이 되면 (결혼)상대방을 고를 때도 자기발견에서 비롯된 리스트를 정리하게 된다. 즉, 30대 중반에 부딪히는 괴로움은, 알고 나서 고르다보니 수적으로 20대 때보다 훨씬 딸린다. 인생은 함정과 허점 속에서 가는 거다. 30대 중반의 리스트에서 빠져나간 것들은 곧 지혜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다.”
오소희는 결혼 전 비관주의자였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과 상처만 주고받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녀는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까.
“20대 때는 결혼하면 (그 이후가) 어떨까를 생각 못한다. 그냥 결혼하고 싶고,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다. 그래서 조건 안 보고 결혼이 가능할 것도 있고, 살면서 맞추고 노력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신랑이 군 훈련을 마치고 결혼을 했는데, 부대 옆에 집을 얻어서 살았다. 물론 나이가 더 들어서 했다면 달랐을 거다. 그 시절, 자연을 알게 된 시절이었다. 세상과 절연하고 싶었고, 앞선 세월을 잘라내고 싶었는데, 그런 것과 사랑이 맞아 떨어졌고, 자연 속에서 치유가 되면서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늘 ‘어떤 배우자를 만나게 될까’에 대해 고심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나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예요. 왜냐하면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려 들기 때문이죠. (pp.60~61)
사랑, 그 이상의 사랑
물론, 연인간의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한 독자는 8년 전 돌아가신 부친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어리광 한 번 부린 적도 없으나, 언제나 자신을 지켜줬던 아버지. 그리하여, 돌아가고 나신 후에야 사랑을 이야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 부모는 언제나 기다린다? 것. 따로 꼭 용돈도 드리고, 뭣보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결혼에 대한 조언도 함께.
“결혼에 다른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니다. 건강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오래 살고 있는 선배 커플을 보면 눈에 불이 나고, 먼저 간 남편을 욕한다. (웃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푼 독자도 있었다. 오소희의 책이 좋았던 이유.
“엄마가 무조건 아이에게 다 주고 헌신?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인생의 자양분을 찾고 인생이 충만해지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통해 그전까지의 삶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오소희의 분명하고 확고한 신념.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행복해진다. 현재 많은 이들이 자식에게 올인하는데, 그러면 자신이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은 주변이나 생활에서 배운다. 자세,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툴(Tool)만 가르치려든다. 그런 시스템이 자존감 없고 무기력한 아이를 양성한다. 이건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궁금하다면, 오소희를 읽으면 된다. 사랑한다는 명분을 들면서도, 아이를 모두가 함께 죽는 시스템으로 밀어 넣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
어른들은 아이들이 여행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기억엔 관심 없어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체험할 뿐이지요. 여행이라는 매우 강도 높은 체험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를 형성해줍니다. 열고, 뛰어들고, 함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요. 기억은 결국 사라지지만 태도는 평생을 관통해 남아 있게 되죠. (p.38)
바람이 분다, 사랑을 해야겠다!
봄밤의 사랑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자리. 지금의 오소희가 생각하는 사랑을 말했다. 한 마디로 ‘받아들임’. 사람마다 생김이 다르듯, 내가 그린 생김의 틀에 다른 사람을 맞추지 말 것. 그녀 역시 아버지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쌓인 것도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말씀이 궤에 들어온다. 받아들임 덕분이다. 받아들임은 곧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결국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길이다.
“여러분이 여기 이 자리를 온 것도 큰 걸음이다.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가고 여행을 하는 거다. 해보지 않은 실험에 나를 던져보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시도들이 계속 돼야 한다. 그것이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우리의 시각을 갖고 그 사람들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나의 사랑에 대한 정의도 시간과 더불어 무수히 바뀌어왔다. 지금 알고 있는 이것이 최종적인 진실인 듯 믿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 또 바뀔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p.80)
비가 내렸으면 더 좋았을 사랑을 품은 봄밤, 여자인간들 사이에서 사랑(이야기)을 귀담아 들은 수컷남자로서, 느낀 점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 수컷은 맞아도 싸다.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고. 소설가 김연수가 그랬던가.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 이 지체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 언어로 그들은 사랑을 말했다. 이별한 뒤에 똑똑해진다지만,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법이다. 늘 맞닥뜨리지만, 내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이다. 생의 어느 지점이든 사랑을 해야 한다. 만나고, 헤어지고, 눈물 흘리고, 죽고 못 살아도, 그래도, 사람은 사랑을 한다. 이별했지만, 사랑했던 순간마다 나는 그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내 첫사랑들. 아무렴. 사랑.
“길 위에서든 지붕 위에서든, 오직 그리고 언제나, 중요한 것은 사랑일 것이다.”(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