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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남자을 유혹하는 여인의 시

황홀하고 치명적인 유혹, 그 매력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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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생 말로에 사는 어부 얘기를 들었습니다. 출어기 때 어부는 처음 잡은 고기를 놓아준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술을 먹여서 돌려보낸대요. 그래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왠지 아세요?


프랑스의 생 말로에 사는 어부 얘기를 들었습니다. 출어기 때 어부는 처음 잡은 고기를 놓아준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술을 먹여서 돌려보낸대요. 그래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왠지 아세요? 술 냄새를 맡은 다른 고기들이 저도 한 잔 얻어먹으려고 몰려든다는 거예요, 글쎄. 웃자고 만든 얘긴지 몰라도 참 정신 나간 어붑니다. 사람 홀리는 술로 물고기까지 유혹하겠다니, 낚시질치곤 어이없네요.

유혹은 꾀어서[誘] 호린다[惑]는 말입니다. 매혹이나 고혹도 비슷한 뜻이지요. 불경에서 유혹은 ‘아무 데나 달라붙는 벌레’라 했고, 성경은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 해도 끌리면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담긴 뜻이 긍정적이지 않네요. 그도 그럴 것이 매혹의 ‘매(魅)’는 도깨비이고, 고혹의 ‘고(蠱)’는 벌레입니다. 도깨비는 사람 호리는 귀신이죠. 고는 더 지독합니다. 고 자는 그릇[皿]에 여러 벌레들[蟲]이 모인 꼴입니다. 그릇 안에서 서로 잡아먹다가 마지막에 남는 놈이 고인데, 그 고가 어디 있느냐 하면 사람 뱃속에 있다는 겁니다. 유혹은 사람 뱃속에서 사는 벌레입니다. 지독하다고 징그러워하진 마세요. 꾀고 호리는 성정은 내남없이 품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유혹을 피하기 어렵지요. 남녀의 사랑도 유혹이 불붙입니다.

유혹은 일쑤 치명적입니다. 오죽하면 ‘fatal attraction’이란 말이 나올까요. 재미있는 단어가 ‘매혹하다’라는 영어입니다. ‘fascinate’라고 쓰죠. 사전에 나오기를 ‘뱀이 먹이를 노려보아서 꼼짝 못하게 하다’라고 돼있네요. 상대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 그게 매혹입니다. 매력으로 낚아채되 대상을 치명적인 홀림의 상태로 몰아붙이는 것이 유혹의 절정입니다. 그러니 술 먹인 물고기 따위로 될 일이 아니지요. 유혹 당하는 쪽만 그런 게 아닙니다. 유혹하는 자도 가끔 치명상을 입지요. 어긋나면 망신하기 알맞습니다.
이 그림 한번 볼까요.

은해, 「응격천아도」, 종이에 채색, 명나라, 158x89.6cm, 남경 박물원

아찔한 결정타입니다. 고니가 추락합니다. 가을 호숫가에 갈대가 흔들립니다.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던 고니가 막 이륙하려던 참이었지요. 우아한 날갯짓도 잠시, 어디서 벼락같이 날아왔는지 날렵한 매에게 걸려들었습니다. 삽시간에 낚아 채인 고니는 날카로운 매 발톱에 멱통이 끊어지면서 마지막 비명을 지릅니다. 절체절명의 이 장면을, 화가는 고통을 넘어 찬란한 비극으로 연출했습니다. 버둥대는 다리, 캑캑거리는 부리와 달리 순백의 깃털이 얼마나 함함하고 눈부신가요. 그야 말로 고혹적입니다. 고니가 매를 유혹했을 리야 없겠지요. 고니는 존재 자체로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거기에 미혹된 매가 절정의 한 순간을 끝장냅니다. 유혹적인 죽음, 또는 유혹의 죽음이라 할까요. 제목이 ‘응격천아도(鷹擊天鵝圖)’입니다. ‘매가 고니를 공격한다’로 풀이되지요. 꽃과 새를 잘 그린 명나라 화가 은해(殷偕)의 작품입니다. 은해는 전해지는 작품이 별로 없는데 이 그림만 봐도 그의 맵짠 눈썰미가 짐작됩니다.

힘은 남자의 매력이고 매력은 여자의 힘이라 하지요. 여자는 매력을 유혹의 수단으로 쓴다고 책에서 읽었습니다. 여자가 육체의 매력을 강조하는 짓은 문명사적 사태라기보다 비교행동학적 전략으로 보입니다. 가슴을 도드라지게 하고, 엉덩이의 움직임이 고스란한 옷을 걸치고, 입술을 강렬하게 칠하고, 눈꺼풀에 색을 입히는 치장들이 여성의 육체에 이끌리는 남성의 시선을 자극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여성의 몸은요. 거기에 비해 연애 시장에서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남성의 씀씀이는 치졸하지요. 권력과 재력 같은 사회적 지위로 뽐내는데, 기껏 해봤자 살풍경한 과시가 고작입니다. 식스 팩도 힘의 원천은커녕 제 눈에 속 빈 거푸집처럼 보입니다. 제 몸이 빈약해서 하는 말 결코 아니올시다.
좀 무람합니다만, 완력이 남자의 유혹으로 쓰인 예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 있습니다. ‘소년전홍(少年剪紅)’입니다.

신윤복, 「소년전홍」, 종이에 담채, 28.3x35.2cm, 간송미술관

젊은 서방이 벌건 대낮에 계집질하는 장면입니다. 밑동이 짧은 도련 아래 살짝 드러난 가슴이 통통한 걸 보면, 이 여자 몸종은 집주인인 서방보다 낫살이 들었습니다. 물어보나 마납니다. 사내는 마침 마나님이 집을 비우자 음심이 솟는 바람에 엄청 조급해졌습니다. 팔목을 잡아끄는 품새에 우악한 완력이 들어있습니다. 힘이 남자의 매력이긴 해도 힘을 오로지 매력으로 삼는 남자는 성희롱이 잦습니다. 한 마디로 눈꼴 시린 유혹이지요. 하여도 혜원은 지금 이 꼴같잖은 남자를 편듭니다.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림 속에 적힌 글을 보세요.

‘빽빽한 잎에 짙은 초록 쌓여가니
가지가지 붉은 꽃 떨어뜨리네
密葉濃堆綠 繁枝碎剪紅’

청춘의 엽록소가 잎맥을 타고 솟구쳐 오르면 꽃은 떨어지게 돼있지요. 욕정이 자연을 닮은 거라고 우기는 셈입니다. 아예 ‘소년전홍’이란 제목부터 ‘젊은이가 꽃을 자르다’는 뜻입니다.

혜원은 신분사회의 겁탈을 용납한 것이 아니라 청춘의 유혹에 유독 너그러운 자세를 보여준 거죠. 저 사내의 유혹은 허겁지겁해서 갈급합니다. 유혹에도 점층적인 단계가 있지요. 먼저 끌림입니다. 저절로 눈이 가는 거지요. 다음이 쏠림입니다. 마음이 얹혀 갑니다. 그리고 꼴림입니다. 가닿고 싶은 욕구죠. 마지막이 홀림입니다. 넋이 나간 상태이지요. ‘소년전홍’은 유혹의 세 번 째 정황입니다. 순우리말이 어째 민망합니다만, 꼴림은 마음을 따라간 몸이 불시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허겁지겁한 유혹입니다.

혜원보다 더 노골적으로 역성든 이가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로서 말입니다. 당나라 여류시인 두추랑은 간덩이 오그라든 남성의 소심함이 답답했던지 화끈한 유혹을 독려합니다. 그녀의 시가 그렇습니다.

그대 금실 옷 못 입었다고 섭섭해 말고
젊은 시절 헛되이 보낸 걸 애석해 하소
꽃이 피어 꺾을 만할 때 냅다 꺾어버리소
꽃 지고 나면 빈 가지만 꺾을 테니까

勸君莫惜金縷衣
勸君惜取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枝


치명적이고 노골적인 유혹으로 말머리를 잡은 터수라 제가 좀 엉큼해 졌네요. 은근하고 황홀한 유혹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그런 로맨틱한 유혹은 이 선생이 써주면 안 될까요. 기왕지사, 저는 유혹의 끝으로 가볼 요량입니다. 그림 오른쪽 위에 그린 이의 낙관이 있군요.

호미, 「앵무희접도」, 비단에 채색, 98.2x50.3cm, 상해박물관

‘만산호비도(晩山胡飛濤)’인데요, ‘만산’은 청나라 화가 호미(胡湄)의 호이고, ‘비도’는 그의 자입니다. 나고 죽은 해는 몰라도 호미는 화조화에서 신선의 필치를 자랑했다고 알려집니다. 위에 배나무가 있지요. 연지를 바른 꽃과 검푸른 잎이 세밀한 붓질에 힘입어 금세 향내를 풍길 듯합니다.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두 마리 봄 나비가 앙증스럽기 이를 데 없지요. 앵무새는 깃털 하나하나가 빛납니다. 백분을 묻힌 붓으로 꼼꼼하게 그렸지요. 앞서 본 고니의 털은 모자이크처럼 작위적인데, 앵무새의 동세는 근골을 따라 꿈틀대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눈자위와 부리의 묘사도 극세밀화입니다. 배꽃 가지 사이로 삐져나온 청동 받침대는 녹슨 자국이 또렷합니다. 공필(工筆)이 놀라운 ‘앵무희접도(鸚鵡戱蝶圖)’입니다.

나비가 짝지어 배꽃에 날아들다 받침대에 앉았던 앵무새 눈에 발각됐습니다. 유유상종 아니라도 앵무는 나비와 놀고 싶습니다. 날개를 쫙 펴고 안아보려는데, 웬걸, 나비는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덩달아 놀란 배꽃이 한 잎, 두 잎, 세 잎, 낱낱이 날립니다. 꽃자루 달린 꽃마저 떨어지니 이 선생이 말한 ‘초속 5cm’보다 빠른 낙화입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픈 앵무가 몸부림치는데, 이걸 어쩐답니까, 쇠사슬이 발목을 여지없이 잡아챕니다. 두 발을 눈 여겨 보세요. 한쪽 발목에 쇠고랑을 찼지요. 더는 못 나아갑니다. 앵무는 다른 한쪽 발굽으로 애처로이 사슬을 그러잡습니다. 저 사슬을 숫제 끊어버리고 싶겠지요. 그 심정 애절합니다. 알 듯 하네요. 연(緣)이 아닌 상대에 매혹 당한 존재의 슬픔을 말입니다.

인간사로 옮겨가 볼까요. 맺지 못 할, 맺어서는 안 될 정인에 대한 열망은 맺힐수록 강력해 집니다. 불륜을 ‘불우한 사랑’으로 정의한 선배가 생각납니다. 나에게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사랑이 비통합니다. 유혹 중에 가장 강한 유혹은 닿을 수 없는, 닿아서는 안 될 것에 사로잡히는 유혹입니다. 유혹의 발목이 보이시나요. 한 발은 늘 족쇄를 차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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