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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내와 자식을 국가에 고발하라!

『차일드 44』, 공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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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봉건제를 대신한 자본주의는 필연적이었지만, 부도덕한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지나치게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했다.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봉건제를 대신한 자본주의는 필연적이었지만, 부도덕한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지나치게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했다. 지나친 양극화와 인간에 대한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중국에서 모택동이 장개석의 국민군을 물리치고 대륙을 장악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세계의 절반은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는 잘 알고 있는 대로다. 90년대 들어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고, 동독은 서독으로 흡수 통일되었다.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택했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도 시장과 자본주의적인 경제제도를 도입했다.

더 이상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자신을 사회주의자, 좌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점진적인 사회주의를 내세운다. 스웨덴 등 북구 국가들이 했던 것처럼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한다든가, 국가와 시장의 조화를 이룬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오히려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남미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좌파 블록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혁명’의 위험이 사라지고 나자 역설적으로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현실적인 방법이 제도권 내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존 사회주의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이었을까? 그런 점에서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는 흥미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실태를 보여준다.

『차일드 44』는 연쇄 살인범을 쫓는 소련 경찰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필연적으로 몰락해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연쇄살인마를 쫓는 경찰의 고군분투이고, 악독한 시스템이 사사건건 사건 해결을 방해한다.

2차 대전 때에는 전쟁영웅이었고 1953년인 지금은 비밀경찰로 일하고 있는 레오. 아내 라이사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출세길을 달리고 있는 뛰어난 경찰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비밀경찰의 임무는, 도둑이나 살인 같은 일반 범죄보다 국가의 적을 잡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문제는 국가의 적이 ‘단지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자들, 스파이들, 산업파괴자들뿐만 아니라 당의 노선을 의심하고, 도래할 새로운 사회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해당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국가에서는 훔칠 필요도 없고,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시민들 간에 폭력을 쓸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경찰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이 곧 진리였다.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으로 세워진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자신들의 믿음을 절대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자연스러운 진화나 발전을 거쳐 만들어진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은 믿음을 갖고 그대로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일반 범죄자보다, 반혁명분자가 더욱 중요한 악인이 된다. 믿음을 잃은 것이 바로 죄다. 그렇게 어리석은 믿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자신의 믿음, 이상만이 절대 진리하고 믿고 강요하는 인간들이다.

잔인하긴 해도 죄수들에 대한 간수들의 협박에는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즉 대의를 위한 잔인함인 것이다……이 모든 공포도 대의의 스케일과 중요성에 비하면 시시해 보인다……이런 가혹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 모든 것이 풍요로우며 가난은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될 황금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약속은 모든 것을 정당화했다.

레오는 순진한 남자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믿는 것처럼, 국가도 믿었다. 그렇기에 부하의 아들이 살해되었을 때에도, 그것을 부정했다. ‘빈곤과 결핍이 사라진 것처럼 사회 불안정으로 발생하는 범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레오는 알고 있었다….이 사건을 살인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짓인 것이다.’ 그렇게 부하를 설득하고 레오는, 반혁명분자들을 잡기 위해 뛰어다닌다. 그를 질투하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가 바실리와 함께.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고발하는 것뿐이다. 바실리는 자신의 형을 고발하여 출세했다. 이제는 가족이 없으니, 상사나 부하를 고발해야 할 것이다. 레오도 마찬가지다. 아내, 부모와 형제, 친구들을 고발하면, 그는 더욱 더 인정받는다.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믿되 조사하라.

인간이란 존재는, 사악하다기보다 나약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과연 어려운 일일까? 보통은 그럴 것이다. 그를 지키고, 그와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를 고발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15년, 20년의 세월이 인생에서 지워진다면? 지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끔찍한 수용소에 끌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면?

비밀경찰에 끌려가면, 무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에 의해서건, 약물에 의해서건, 결국은 어떤 말이건 해야만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당 간부, 비밀경찰들조차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체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혹시 당 간부의 사진이 담긴 신문을 버리지는 않았는지, 농담이나 낙서가 있지는 않은지 등등.

‘자신은 결코 도둑질이나 강간이나 살인을 하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기는 쉽지만 반 소비에트 선동, 반혁명적 활동, 첩보 활동이란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포가 바로 사회주의 국가의 일상이었다.

공포는 필요하다. 공포가 혁명을 지켜주었다. 공포가 없었다면 레닌은 무너졌을 것이다. 공포가 없었다면 스탈린도 무너졌을 것이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려면 공포의 먹이가 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레오 역시 라이사를 고발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명령에 거부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지방으로 좌천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레오와 라이사의 관계는 풍비박산 난다.

『차일드 44』는 공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레오와 라이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반부는 미스터리보다도, 레오의 가혹한 운명 때문에 너무나도 가슴 졸이게 된다. 그리고 시골로 좌천되어서, 레오는 자신이 부정했던 부하의 아들 살해사건이 연쇄살인마의 짓임을 알게 된다. 레오는 아내의 마음도 잡아야 하고, ‘살인 사건’을 부정하는 마을 민병대를 설득하든가 아무도 모르게 수사를 해야만 하는 고단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톰 롭 스미스는 『차일드 44』가 데뷔작인 1979년생의 신인작가다. 너무나도 리얼하게 소련의 상황을 잘 그려내 러시아 출생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영국 출신이다.

레오와 라이사 등 인물들의 마음까지도 탁월하게 읽어낸 『차일드 44』는 영미권 최고의 소설에 주어지는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The Ian Fleming Steel Dagger for best thriller)을 수상하였다.

『차일드 44』가 의심의 여지없는 걸작인 이유 하나는 의미심장한 사건과 그 시대가 너무나도 잘 얽혀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보지 못하면 절대로 그 사건을 이해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그 사건 자체의 흥미가 독자를 자극하고 있다.

또 하나는 레오와 라이사의 인물 설정과 묘사가 지극히 수려하다. 순진하면서도 고고한 인물이었던 레오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라이사가 그런 레오를 어떻게 때로 내치거나 끌어가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라이사의 캐릭터는, 레오를 압도한다. 초반에 라이사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파서 결근한 레오의 용태를 확인하러 의사인 자루빈 박사가 찾아온다. 라이사의 미모에 반한 자루빈은, 자신과 섹스를 하지 않으면 고발한다고 협박한다. 단호하게 거절한 후, 다시 레오의 상사인 쿠즈민 총경이 확인하러 와서는 자루빈 박사의 선물이라며 오렌지와 레몬을 건넨다.

‘그녀는 과일을 하나씩 꺼내기 전에 그 밝은 빛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선물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울지는 않을 것이다.’ 라이사가 그렇게 강한 여성이 된 이유가 있다. 전쟁 중 독일에 넘어갈 수 있는 모든 마을을 파괴하라는 소련의 정책으로 일가족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라이사만이 살아남았다.

‘그녀는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이었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레오와 함께 살면서도 그녀는, ‘레오의 기분을 거스르면 그가 그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라이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비굴하지 않게, 결코 비겁하지 않게.

레오는 약간 다르다. 라이사는, 레오를 미워하게 되었다가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레오라는 인간의 순수함 때문이다. ‘국가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레오가 만들어낸 환상들은 하나둘 깨졌다. 라이사는 그가 부러웠다. 심지어는 지금도,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도 그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었고 아직도 뭔가 믿고 싶어했다.’

믿음이 깨진 후에, 레오는 새로운 믿음을 찾아간다.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계속해서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살인자를 잡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라이사, 믿음을 향해 전진하는 레오. 그들은 전혀 다른 유형이지만, 함께 존재할 때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는 살아남는 법을, 하나는 우리가 인간임을 결코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차일드 44』는 스릴러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재미를 안겨주는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왜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주의 자체의 이상은 좋았다. 자유와 평등이, 절대적으로 지켜진다면 왜 나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못한 사회로 나아가다가 자멸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시스템 자체보다는 그것을 실행하는 인간이 아닐까? 이상적인 시스템, 환경을 만들어도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함께 망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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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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