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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친정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연극 <친정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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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맘 정영숙 촌부로 변신! 몇 년 사이 공연계에 불어 닥친 ‘엄마’ 열풍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극은 2006년에 했던 <황금연못> 이후 처음이에요. 오랜만에 창작극을 하니까 좋네요. 게다가 엄마 이야기라서 관객들이 공감하는 정도도 크고요.”

한적한 시골 마당을 담아낸 무대는 따사로운 조명 때문인지 엄마 품처럼 정감 있다. 그런데 그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 나오는 촌부 차림의 정영숙 씨는 왜 이렇게 낯선가. TV 브라운관에서 봐왔던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각인됐나 보다.
“젊었을 때부터 깍쟁이 같은 이미지로 많이들 보셨어요. 도대체 화면에 어떻게 보이기에 그런 거예요(웃음)? 사실 지극히 평범하고 소탈한데 말이죠. 그래서 또 다른 연기 도전이기도 해요. 연극은 저의 다른 면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저도 작품에 충분히 젖어든 것 같아요.”

오랜만에 찾은 연극 무대인 데다 도시적인 이미지와 많이 달라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다.
“우선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데다 대사가 워낙 많아서 좀 힘들어요. 또 소리를 많이 질러서 목 관리를 잘 해야겠더라고요. 전체적으로 드라마는 가려지는 부분이 많은데, 연극은 그대로 드러나니까, 연기를 더 강하면서도 계산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다 같은데, 방법적인 차이가 있는 거예요. 체력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연기를 몇 십 년 하다 보면 몸이 단련이 돼요. 특히 연극은 제대로 연습하면 계속 우려내는 거라서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이제는 꾹 누르기만 해도 바로 감정이 나올 것 같아요(웃음).”

모녀관계를 다룬 작품인 만큼, 그녀도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그것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는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셔서 딸의 입장도 돼 봤다, 엄마도 돼 봤다, 할머니까지 다 공감이 가요. 연극을 보신 분들은 다들 많이 울었다고 하고, 작품이 좋다고 해요. 자기 얘기니까요. 누구에게나 엄마는 있잖아요. 시대가 바뀌고 모두들 자기 생활에 바빠서 마음은 있어도 엄마를 생각하기가 힘든데,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엄마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극중 엄마는 자식 걱정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초라하고 가난한 자신이 딸의 앞길을 막을까 애를 태우며, 딸의 갖은 짜증과 변덕을 받아내는데, 그녀는 실제로 어떤 딸이고 엄마일까?
“우리 엄마한테는 맏딸이라서 스스로 힘이 되는 딸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이 연극을 보셨는데, 6년 전에 암 진단을 받으셨거든요. 그때 어머니 삶을 15년만 연장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잘 했는데 바쁘니까 또 소홀해지더라고요. 사실 날이 많지 않으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제 딸한테는 편안한 엄마인 것 같아요. 딸아이와는 사이가 좋아요. 제 딸이 저를 존경한다고 하면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하지만 극중 엄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 나름의 최선은 다했지만, 극중 엄마처럼은 못했어요. 어림없죠. 아이들도 중고등학교 때 유학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글로벌 시대에 머리를 잘 썼다는 생각이 들지만, 품안?서 일찍 내보낸 거죠. 그래서 우리 아들은 ‘엄마, 나는 혼자 컸어!’라고 말해요(웃음). 딸아이와는 극중에서처럼 다툴 때도 있지만, 엄마와 딸은 서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관계잖아요.”

최근에 한 TV 프로그램에 정영숙 씨 가족이 공개됐다. 특히 뒤늦게 배우로 데뷔한 딸 전유경 씨가 소개되기도 했는데, 모녀 관계를 다룬 작품인 만큼 함께 <친정엄마>를 맞춰보기도 했다.

“딸아이와 2번 맞춰봤어요. 제가 봤을 때는 작품 분석력도 있고, 끼는 저보다 더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딸이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했거든요. 저 때만 해도 범위가 좁아서 방송사에 들어가서 쭉 연기하면 됐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 싸움에 아이를 내놓고 싶지 않았어요. 저와 달리 딸을 밑바닥부터 내놓으려니까 안타깝지만, 본인이 즐겁다고 하니까요. 뒤늦게 시작했지만, 제법 잘 하는 것 같아요.”

배우의 길로 접어든 딸 유경 씨를 걱정했지만, 그녀는 여배우로서의 지난 삶에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그래서 다시 시간을 되돌린대도 배우를 선택하겠노라 말했다.

“제가 장님, 벙어리, 마담, 김정일 아내, 선덕여왕 등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에서 굉장히 보람을 느끼거든요.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인생을 살아본다는 장점도 있고, 내 마음껏 기량도 펴보고 마음껏 멋도 부려보고 원 없이 옷도 입어보고(웃음). 저는 배우생활이 좋았고, 후회는 없어요.”


연극 <친정엄마>에는 정영숙 씨만큼이나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다. 엄마 역에는 연운경 씨가 함께 캐스팅됐고, 감초 서울댁에는 전원주, 이수나, 딸 역에는 연기파 배우 배해선, 김지성 씨가 열연하고 있다. 배우나 관객 모두 눈물을 쏟아내는 작품이지만, 단단한 연기 고리에 무대에서는 훈훈함이 느껴진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요. 우리 딸들도 참 잘하고요. 그래서 1시간 30분이 잘 흘러가는 것 같아요. 약간 삐끗해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극을 엮어가는 힘이 다들 있으니까요. 작품이 좋으면 연극 무대에는 계속 서고 싶어요. 그렇게 주어진 생활 안에서 항상 최선을 다 할 거예요.”

모녀관계를 다룬 작품들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들어차고, 매번 눈물을 쏟는 것은 ‘인정과 후회’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리 사랑이라는 말처럼, 모녀 관계는 한 순간도 대등하지 않다. 모녀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을 지켜주면 좋으련만, 엄마는 막무가내로 파고 들어와 대책 없는 사랑을 쏟아낸다. 그래서 딸들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부담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나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사랑을 돌려주는 대신 가슴을 파는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슬픈 것은, 엄마와 딸은 삶과 죽음이라는 살아가는 구간이 다르기에, 엄마의 넘치는 사랑은 딸에게는 깊은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알고 있는데도 늘 이 모양이기에, 작품을 볼 때마다 속절없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정영숙 씨가 그려내는 친정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 엄마를 보며 또 얼마나 사랑하고 후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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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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