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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유산상속은 위험천만한 일!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고미숙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을 때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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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힘’은 현실적이다.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면, 주먹보다 가까운 것이 돈이다. 그렇다면,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사는 우리는 ‘돈의 달인’이 돼야 하겠다. 허구헌날, 주야장천 ‘돈, 돈, 돈’ 거리면서 사는데, 돈과 절친 정도는 돼야지!

약자들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더 부자 되고 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먹고살 만한 나라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자고 경제성장에만 매달린다면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뿐

더 많은 소득과 소비에 삶을 다 짜내고
더 많은 경제성장에 삶의 토대를 망쳐간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과 아이들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고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멈출 때를 모르면 성장이 죽음이다
그리하여 성숙이 참된 성장이다

-「성숙이 성장이다」(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중에서



찾다, <수유 너머> 연구실

거칠게 말해, 돈이 모든 것이 된 시대. 돈의 있고 없고, 가 관계를 배치하고, 계급을 조성하며, 행복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시대. 김선주 선생님의 말씀을 빌자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의 힘’은 현실적이다.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면, 주먹보다 가까운 것이 돈이다. 그렇다면,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사는 우리는 ‘돈의 달인’이 돼야 하겠다. 허구헌날, 주야장천 ‘돈, 돈, 돈’ 거리면서 사는데, 돈과 절친 정도는 돼야지! 만날 돈, 돈, 돈, 하니까, 그 성격이야 빤히 잘 알 것이며, 돈에게 먹힐 일 없 따윈 없고, 돈을 드리블하는 건, 식은 죽 먹기, 그 정돈 돼야 정상이겠다.

“우리 사회는 청춘들이 10억을 꿈꾸는 사회다. 비단 청춘뿐이랴. 대통령 이하 구의원까지 사회 전체가 온통 ‘돈타령’이다. 돈이 인생의 주인이란 걸 거침없이 토로해 댄다.”(p.114)

헌데, 정말 그런가.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의 정의에 따르면, 돈의 달인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이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 돈에 먹혀 산다. 돈을 통하여 노예가 된다. 삶을 창조하기는커녕 돈에 질질 끌려 다닌다. 돈 돈 돈, 하는데도 달인이 못될뿐더러, 노예상태를 벗어나려고 해야 할 텐데, 노예연장의 꿈만 꾼다. ‘대박’이 그것을 대변한다.

뭔가 잘못됐다. 이에 고미숙 선생님, 나섰다. 공부(호모 쿵푸스), 사랑?연애(호모 에로스)의 달인이 될 수 있는 앎을 설파한데 이어, 이번에는 돈이다. 돈의 달인으로 가는 앎, 호모 코뮤니타스다. ‘코뮤니타스’는 라틴어로 공동체라는 뜻으로, 화폐의 식성에 대항해 삶의 창조성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이다.

“돈 버는 책은 많은데 돈 잘 쓰는 책은 없다”,『행복한 독종』에서 이시형 박사가 한 말이다. 이 박사가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를 읽는다면, 개정판에서는 이 말을 바꿔야할 터다.

“일단은 잘 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방점은 ‘잘’에 있다. ‘잘’ 번다는 건 돈을 버는 것과 나의 자존심이 오버랩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벌면 벌수록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높아지는 것, 그것이 제대로 잘 버는 것이다. 그 다음엔 잘 써야 한다. 여기선 ‘쓴다’에 방점이 찍힌다.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쓰면 쓸수록 더더욱 삶이 풍요로워지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p.71)

지난 11월 7일, 뭐, 대수로운 날인가 싶겠지만, 고미숙 선생님 혹은 <수유 너머>, 아니면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를 간절히 원한 독자들이 서울 남산 둘레에 위치한 <수유 너머> 연구실을 찾았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수유 너머>의 오픈 하우스에, 고미숙 선생님과 밥 먹고 공부하고 논 날. 마침 이날은, 러시아의 10월 혁명(1917년)이 있었던 날이며, 레온 트로츠키가 탄생(1879년)한 하루.

오픈하우스에 참여한 독자들, 웃음과 역설이 유쾌하게 진동하는 <수유 너머>의 시공간을 탐색하고, 1800원의 밥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고미숙 선생님과 접속했다. 밥으로 시작한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몸에 좋고 맛있는 밥을 맛보라는 의미도 있지만, <수유 너머>는 밥으로 시작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리라. 맛있는 밥이 있고, 밀도 높은 공부가 있고, 거기다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삼박자가 다 갖춰진 <수유 너머>. 그리하여 이것은, 짧은 시간, 호모 코뮤니타스를 경험한 기록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詩)로 시작한 고미숙 선생님의 돈 강의. ‘돈, 돈, 돈’ 거리는 돈 세상, 어떻게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삶을 주체적으로 배치할 수 있을까.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 비기(秘技)를 공개한다.

“공동체를 하면 돈에 무관심하다고? 그 또한 만만의 말씀. 나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돈을 아주 좋아한다. 돈을 ‘쓸!’ 데가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돈에 무관심한 곳이 아니라, 돈의 속성과 용법을 치밀하게 터득하는 곳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본의 대공세 속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p.61)

삶과 돈, 어떻게 배치할까

우선, 우리 앞에 주어진 시대의 배치 생각하기.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사는 것인가. “핵심은 이거고, 돈은 행복과 자유를 위해 쓰여야 한다. 단순한데, 이걸 원리로서 터득하지 않으면 다시 이것을 향해 달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내 몸이 말을 안 듣고, 무의식까지도 돈이 지배하도록 세팅이 된 거다.”

고로, 고 선생님은, 자본의 이미지와 싸울 것을 권한다. 그것이 자신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는 잘 벌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삶의 기본적인 형태이며 행복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교육이 그러했다. 물질이 약한 시대에는 물질은 저절로 증여와 순환을 했다. 특별한 철학이 아니라도, 그것이 삶의 모습이었고,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교과서에만 나온 옛 이야기가 됐다. 과거,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중산층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시대가 됐다. 과거, 가난하고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지금은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되레, 어떻게 굶을까, 가 관건이 된 시대. 전도는 그렇게 이뤄졌다. 사람이 변해갔고 욕망이 재조정됐다. 물질적 부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건, 한계체감의 법칙이다.

“자본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이미지로 판다. 광고가 상품보다 중요해졌다. 배불리 먹고 살게 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완화된 시대에서 여전히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키가 더 자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면 그 사람은 아픈 거다. 우리나라가 그렇다. 압축성장해서 세계 20위권의 국가가 됐다. 이것 자체가 과잉성장이라고 느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 살고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는 건, 심각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잠식당한 생명이요, 영혼이요, 영성이다. 고 선생님의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 모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자본주의가 끝날 때까지 삶이 본질에 다가갈 수 없는가.”

이유는 이렇다.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 농민 등 모두가 자본에 의해 일상이 점령된 시대. 가난한 사람도 부자들과 다른 정서와 감각,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도 생명, 영성이 없다. 누구를 타도해야 하고, 누구로부터 자본의 독점을 해소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고 선생님은 40년 전, 세상을 바꾼 노동자와 함께 앎과 삶의 조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벗 삼아 노동자를 구원하고, 세상을 바꿨다. 노동3권이 있다는 그 말에, 자기 생명과 존재를 다 실었다. 즉, 앎이 삶을 구원했다. 이렇게 바깥의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노숙자도 공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소외시키기 위해 돈의 흐름을 막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곧 존재와 생명의 근원을 하나로 연결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무조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소통해야 한다. 고 선생님의 지론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도 소통해야 생명력을 갖고, 또한 그게 영성이란다. 생명의 결여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앎이 일상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정말 어려운 건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p.196)

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돈, 화폐, 자본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화폐와 자본, 돈의 개념이 조금씩 다르다. 자본은 무한증식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증식이 수치로만 이뤄진다. 화폐는 교환의 도구로서 등장한 매개물이고, 모든 교환의 척도다. 화폐가 기준이 되면서 화폐에 의해 모든 것이 흡수돼서 딱 하나의 가치만 남는다. 마음과 정성을 담을 수 없는 것. 그래서 화폐의 등장을 원주민은 반대했다. 화폐에 의해 지배돼 온 집합적 배치에 대항하는 공동체가 코뮤니타스다.”

임꺽정의 예. 그는 돈 아닌 각목을 들고 다녔다. 화폐가 있었지만, 거추장스러워 쓰지 않았단다. 돈이 없는 것이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돈 있는 게 거추장스러웠던 것. 돈이 아니라도 다른 가치, 친구와 우정, 사랑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어떤 상품을 못 쓰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울하게 만든다. 다른 가치는 없도록 만든다.

지금은 모든 것이 돈으로 수렴됐다. 눈에 보여야 뭐든 믿는, 가시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고 선생님은 아파트를 예로 든다. 대한민국은 이상한 점. 다양하고 제각기 개성을 지닌 집이 많음에도, 오로지 아파트만 갖고 말한다.

“솔직히 ‘경쟁, 경쟁’ 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 보면 그 이면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걸 기준점으로 삼으면 거의 대부분이 헐떡일 수밖에 없다. 헌데, 대체 왜 그걸 자신의 척도로 삼는가?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선 그토록 개성을 추구하면서 왜 가장 중요한 라이프스타일에선 그토록 몰개성한가?”(p.81)

아이돌이 판치는 가요계와 다르지 않다. 아이돌이 나쁜 것이 아니듯, 아파트가 나쁜 게 아니다. 아이돌만 있는 게 문제다.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그러니까, 아파트만 있는 게 문제인 게다. 아파트 광신주의에 눈에 드러난 평수만 갖고 모든 것을 말하는, 천박함.

“30평이면 굉장히 큰 집인데, 만약 3억이라고 치자. 그 돈이면 매일 10여명의 친구와 맛있는 것을 평생 먹고도 남을 거다. 그런 삶이 있는데도, 고작 3~4명의 가족이 얼굴 보기도 쉽지 않고, 주말에 회식(?)을 따로 잡아야하는 집에서 각자 고립돼서 살면서, 집값이 10억이 되길 꿈꾸고 있다. 이런 게 더 괜찮은 삶이라고? 밖에 나가 누굴 만나는 건, 계약적인 관계만 있고, 백화점에 가는 이유가 외롭고 적막해서라더라.”

고 선생님, 기를 찬다. 불쌍한 지고, 쯧쯧. 삶의 ?질도 아니요, 대체 몇 년이나 이렇게 살겠느냐는 거다. 대다수의 삶이 그렇고, 특히 남자들의 폭탄주. 천천히 취하는 게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빨리 취해야 한다는 목적. “이게 관계중독증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만들어오는 인연에 의해 신체가 규정이 된다. 돈과 몸이 하나인 거지. 돈과 몸이 따로, 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벌어오는 돈이 내 몸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섬뜩하다.”

가정해보자. 투기로 10~20억 원을 벌었다 치자. 그게 잘한 짓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그건 누군가(들)가 그만큼 뜯겼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생존경쟁이고 합법적으로 벌면 그만이야, 라고 하는데, 우주적인 소통을 생각하는 순간, 합법이든, 불법이든, 뺏은 건 뺏은 거다. 그러면 난 누군가의 돈을 훔쳐 사는 거다. 그게 내 몸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거지.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됐다는 건, 전지구적으로 도둑이 된 거다. (웃음)”

“자식한테 유산을 물려준다는 건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일종의 불로소득을 넘겨주는 꼴인데, 그럴 경우 반드시 환기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 재물을 누리는 대신 다른 형태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 돈은 무성(無性)의 물건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인과들이 들러붙어 있다. 그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따라다니게 마련이다.”(p.76)

“우리는 전체 세계로부터 떨어져 홀로 떠돌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나라들과 자유로운 상호교환을 할 것이지만, 현재의 강제된 상호교환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착취당하는 것도, 다른 어떤 나라를 착취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p.317)


새로운 삶의 비전을 위하여!


돈의 노예가 아니라면, 돈의 노예에서 벗어날 것을 원한다면, 돈에 대한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돈을 배격하거나 배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돈이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의 용법’이라는 것.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변용할 것인가? 어떤 관계와 활동을 창조할 것인가? 창조의 리듬과 강도가 높아질수록 증요의 힘 또한 ‘세’진다.”(p.191)

고 선생님은 새로운 삶의 비전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마련할 것을 권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정당한 표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69억 명이 살면서 지구를 보존하려면 물질의 증식이 아니고, 물질을 순환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자본주의에 영속하거나 말거나, 개인이나 주변이 행복하게 살려면, 물질적 재화를 순환시키는 것밖에 없다. 부처, 예수, 왜 다 빈털터리였는가. 왜 비우라고 공통적으로 말하는가.”

돈과 관련한 고 선생님의 행로를 들어보자. 개별성에서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 고 선생님은 진즉, 돈 벌면 사람들과 복작대면서 쓰겠다고 생각한 비범한 아이였고, 어릴 때부터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믿었다. 20~30대 초반까지 청년 백수로 돈을 벌지 못하니, 점검할 일이 없었는데, 30대 중반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축을 처음 시작했고 적금을 넣었다. 한편으로 친구들도 돈을 많이 벌기 시작했는데, ‘쓰는’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차를 바꾸고 아파트를 넓혔다. 지금도 철두철미한 현금지상주의자인 고 선생님은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부의 척도였을 뿐, 그들이 부동산에 뭔가 한다는 게, 희한했다.

그렇게 현금만 모았고, 시민단체에 마음껏 돈을 낼 수 있다는 사실로 흡족했단다. 그렇게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어느 해 돈을 많이 벌었다. 1년 동안 1억 원가량을 벌었다. 아파트 평수가 크면 청소하기 어렵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기에,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상상하다가 우선, 운동권 친구들에게 산해진미를 매일같이 먹였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열혈운동권이었던 친구들에게 밥 한 번 제대로 못 사준 것이 한이 됐기 때문이다.

둘째가 함께 공부하는 장소였다. “돈을 벌어 쓸 때, 핵심은 돈이 사람을 모을 수 있느냐다. 사람에게 ?? 거지. 친구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수유 너머> 연구소를 얻었다. 친구들을 꼬드겨서 일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그게 얼마나 큰 복이냐. 밥 사주고 같이 공부할 공간이 있다는 것. 앞으로도 이 방면으로 돈을 쓸 거고, 돈 버는 목적이 뚜렷해진 거지.”

그러니까, 돈을 버는 것이, 마냥 나쁜 게 아니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버느냐는 중요하지만, 돈을 쓰는 용법에 대한 고민, 목적(목표)이 생명을 움직일 수도 있다. “돈 버는 목표가 내 생명의 힘을 왕성하게 움직일 때, ‘지금 성공해야 돼’와 같은 건, 생명의 뿌리와 닿아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우월해야 돼, 이런 거다. 재벌들도 (돈벌이가) 자기 생명의 뿌리와 닿아있으면 있을수록 충만해지겠지.”

이에 필요한 것이 있다. 증여와 순환의 일상적 방법을 개척하는 것. 이를 통해 나도 살고, 남도 살며, 내가 계속 살아야하는 이유도 만들어진다. “증여와 순환, 간단하지 않다. 기부는 증여와 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왜냐 하면, 뭉칫돈은 샘물처럼 흘러가 필요한 곳에 가는 게 아니라, 돈의 힘이 드러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건물을 짓거나 기념사업 등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시설이 많다. 더 이상 제도적 후원타령 그만하고, 있는 것을 활용하고, 사람이 사람에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건, 필요한 곳에 돈이 가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일상적으로 그런 윤리가 배여 있는 것. “아파트, 자가용, 연봉 등은 가족주의에 집중된다. 가족과 재산을 합하는 걸 해체해야 한다. 부모의 돈이 자식에게 가면 안 된다. 돈과 운명이 갖는 근본적인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돈을 쓰느냐가 인연 장을 만들고, 그게 돌고 돌아 내 삶과 주변인연을 만든다. 인연 네트워크를 따라 돈이 흘러야 한다. 그러면 지구상 모든 존재들이 피해갈 수 없는 근원과 결합된 내 나름의 윤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고, 내 재물을 이렇게 쓰겠다고 해야 주체가 될 수 있다.”

돈의 달인은, 돈이 아닌 코뮤니타스로 맺은 인연을 순환과 증여의 관계로 만드는 사람이다. 어디에 있든, 자신이 서 있는 현장이 코뮤니타스로 존재하도록 고민해보자. 시대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우기지만, 그건 환상이다. 이건희 회장이 돈 많아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얼마나 되겠나. 돈은 행복과 자유의 종속 변수다. 돈을 쓸 줄 아는 용법이 우선이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궁리, 화폐에 무릎 꿇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궁리, 무엇보다 고독과 소외의 ‘외딴방’에서 탈주하여 즐겁고 유쾌하게 살기 위한 궁리 등등. 이런 궁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달되는 결론이 공동체다.”(p.169)

그리고, 몸 쓰기. “돈의 달인이 되려면 돈 대신 몸을 잘 쓰면 된다.”(p.125)

(※ 주. 돈의 노예가 된 우리네의 적나라한 모습은 『허수아비춤』(조정래 지음|문학의문학 펴냄)에 잘 나와 있으며, 잘 안다고 생각하나 기실 그렇지 않은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위해 『자본주의』(홍기빈 지음|책세상 펴냄)를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

고미숙, 독자 질문에 답하다

자의식에 대해 말해준다면.

“자의식은 자기에 대한 의식인데, 근데 자본주의 문명과 함께 형성됐다. 옛날 사람들, 자의식이 없다. 나만을 고립해서 생각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서양이나 현대철학도 실존에 앞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사람은 인드라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태어나서 관계가 형성된 게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어떤 관계망 속에 있는지 살펴야 한다. 조건이 나를 구성하는 것이지, 조건을 다 빼고 나를 설정하는 것이 자의식이다. 그러면 강박증, 히스테리, 정신질환 밖에 안 남겠지. 관계가 소멸되니까.”


현재 청년백수다. 지금 난 행복하나, 가족과 자본을 떼놓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또 자신을 들여다보면 무의식까지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기 존재의 내면의 빛을 찾아라, 근원을 찾아라, 이런 말 많이 들어봤을 거다. 이전의 인류의 지혜를 빌리는 거다. 명상, 요가 등이 왜 필요하겠나. 나를 그냥 보는 것이 불가능하거든. 기본적으로 길잡이가 있어야 한다. 종교라고 하면, 현재 제도로 너무 고정이 돼 있는데, 신자가 되라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모든 구도적 열정이 제도로 외화된 것이 불교이고, 기독교인데, 제도를 벗겨내고 남는 지혜와 비전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아프면 영적으로 되는 이유가 있다. 그때는 무의식이 깨어나는 거다. 죽음이 눈앞에 있다 치면, 의식이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걸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에너지가 집중되면서 무의식이 나를 구해주는 거지. 죽음이나 질병 등의 위기가 나를 만나는 좋은 여행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런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가족과 재산과의 관계를 보면, 내 부모는 광산촌에서 광부였으니 가난했다. 하지만 고생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매끼를 먹었고, 주변에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많아서 양심의 가책도 받았다. (웃음) 부는 상대적인 거다. 부모가 가르쳐준 경제원칙은, 학비를 가장 먼저 떼놨다. 학비를 떼고 나머지로 먹고 살았다. 돈 쓰는 순서가 공부가 제일 먼저였다는 거지. 대학원에 가면서 집안이 망해서 학비, 생활비 등 자립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학 때까진 편하게 자랐다.

이 말을 한 것은 돈을 쓸 때는, 순서가 중요하다.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쓰느냐, 그 순서가 아니고 액수만 따진다. 순서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액수도 연출할 수 있다. 서로 증여와 순환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번듯한 직장이나 차를 사길 원하는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지만 재밌다. (웃음) 어차피 쓰는 돈,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한편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거라면 과감히 써야 한다. 능동적으로 돈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학원을 해서 떼돈 버는 것보다 이렇게 공동체를 만들어서 공부하는 게 부모에게도 더 뿌듯할 거다. 소박한 것에 대한 경제적인 대가는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다. 나머지는 마음의 평화, 삶에 대한 자긍심을 주는 거지.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 당장 부모에 미안하고 기대에 어긋나는 것만이 부모자식 관계의 다는 아니다. 중년이 돼서 부모에게 효도여행, 골프밖에 해줄 것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불효막심이지. 그러니까 지금 빨리 배신해라. 그러면 빨리 적응을 하신다. (웃음)”


“결국 오늘날의 가족은 혈연공동체라기보다 차라리 화폐공동체에 더 가깝다. 요컨대, 서로는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재산(아파트와 자가용, 기타 부동산과 주식 등등)을 일구기 위해 각개분투를 한 셈이다.… 가족과 혈연이 가장 소중한 가치고, 그래서 그걸 잘 지키기 위해 재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재산을 잘 관리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또 ‘가족애’가 필요한 것이다.”(p.50~51)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00년대 들어 돈 벌고 강연하고 연구실 꾸리고 있다.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 많이 번다. 고정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해도. (웃음) 강의할 때,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걸로 강연하면서 권위를 갖거나 활용하는 건 전혀 없다. 글 쓰는 건, 공동체 현장에서 공부한 거고, 누군가에게 강의하고 말하려면 삶의 현장이 있어야 한다. 현장이 무척 중요하다. 박노해 시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을 보고 감동받은 게, 재난의 현장을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시를 잘 쓰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무게중심이 있어야 한다. 회사는 대개 소외된 방식으로 다니기 때문에 월급 타는 것 말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아서 이야기가 없다. 군대보다 더 얘기를 안 하잖나. 군대는 평생 얘기하지만. 그만큼 한순간을 열심히 산 현장이 없었던 거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 그만큼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하고, 그것에 마음까지 줄 수 있었으면 최고다.

회사를 다닐 때 그런 마음으로 다니면 그보다 좋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대개는 좋지 않은 면만 만난다. 내 인생의 서사를 들려줄 게 없는 거지. 내 존재의 무게중심을 실을 수 있는 현장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떠들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라는 현장이 있고, 내 일상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원도 나에겐 소중했다. 글쓰기 훈련과 지식을 체계화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원은 그런 훈련이 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


“가난할 때는 다들 이런 소박한 서사를 잃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단 돈을 벌기 시작하면 이 서사들은 옆으로 ‘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내달리기 시작한다. 더 많은 돈을 향하여……”(p.32)

관계가 존재를 선행한다고 했는데, 너무 많은 관계 때문에 지칠 때도 있잖나. 그럴 때 자신이 소외된다거나 작아진다는 느낌도 받는다. 자본과 사회의 관계일 수도 있고. 나를 잃지 않고 건강하게 사람들과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현장에서 부딪히는지 알지 못하면 추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치인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도 상대적인 거다. 우리 연구실은 매일 사람들에게 치인다. 별로 조용한 날이 없다. 성토대회도 하고, 삐치고. (웃음) 이런 것도 생각하기로 작정하면 사람에 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나가진 않는다. 밥도 있고, 하루 지나면 관계가 싹 바뀐다. 관계나 이런 걸 절대화하지 마라. 나에 대해 관심 있게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미워하려면 대단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설령 그래도, 모든 사람에겐 자신이 제일 중요해서 전력을 다해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관계에 부대끼고 이런 건, 살아가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많은 관계 속에서 지지고 볶는 것도 그 속에서 가능한 거지, 균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아니다. 그런 설정도 추상적이고, 너무 절대화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무와 부대끼고 살지 않겠다는 건 생명의 차원에선 좋지 않다. 부대껴도 살아남으면, 점점 면역력이 커진다. 많이 부대껴라. 그건 그것으로서만 넘어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있을 때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정서적 흔적을 남기는 순간, 관계는 바로 경직된다. 웃음과 서사는 이 무게를 덜어 내는 역할을 한다.”(p.190)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면 단돈 몇 천원이 없어서 분유 훔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돈이 있어야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양극단에서 갈쟇? 못 잡고 중간에서 헤맨다. 보통 사람들이 돈에 대해 신념이나 관념이 아닌 현실적으로 어떤 태도를 갖는 게 좋을까.

“쉽게 얘기하면, 오랫동안 내려온 존재론적 지혜를 일상화하면 된다. 책에도 썼는데,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만석 이상 소유하지 마라, 그렇게 실천하는 부자들이 많이 있었다. 옛날 부자들은 집안에 선비가 태어나려면 3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한다, 흉년엔 창고를 열고 잔치를 벌려야 한다, 이런 게 일상에 녹아 있었다.

이런 게 일상화되면 절대빈곤도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돈의 영성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나 서류로 해결하려다 최저생계비 등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웃사람은 그런 것을 아는데, 문제는 이웃 네트워크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하다는 걸 증명해야 증여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비리가 저질러지기도 한다.


“돈은 물이다! 이것이 우리가 터득해야 할 돈에 대한 새로운 표상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돈 역시 그렇게 쓰여야 한다.”(p.157)”

그래서 나는 제도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 일상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기를 때, 자식을 위해 무형의 인연을 맺어놔야 한다. 자식에게 주는 학원비 등이 아니면 돈을 쓸 생각을 안 하는데, 내 자식을 위해, 우주를 위해 한 푼이라도 넓혀야 한다. 노하우를 만들어야 한다. 가난할 때는 단돈 천 원, 백 원이라도 확보해 놓고, 경제적으로 성장이 되면 증여의 영역이 커져야 한다. 힘이 커질수록 증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그렇게 무형의 방식으로 세상에 보내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인연을 맺어 돌아온다.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니다. 돈에 인연을 맺어줘야 한다. 제일 좋은 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거다. 나는 그래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수능 시즌이 되면, 기도하고 그러는데, 대학교에 합격해 달라가 아니고,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일상에서 제일 좋은 건, 쇼핑의 고리를 끊는 거다. 쇼핑에 중독되고, 물건에 중독되면 집착하고 의존하는 관계가 된다. 사랑은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화폐라는 ‘전제군주’가 사라지면 어디서건 자연스럽게 능력들의 순환이 일어난다.…그러니 결코 포기하지 말고, 열렬히 상상하라! 화폐 없는 세상을, 능력들의 ‘활발발’(活潑潑)한 순환을-이매진 노 머니!”(p.167)”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이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간단하다. 소통이 단절된 탓이다. 공동체란 별 게 아니라, 바로 이 소통의 현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직장 또한 그렇게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요컨대, 공동체를 꼭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잘 안 되면 될 때까지!”(p.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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