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요. 지선씨.”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1가에서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마티즈 승용차 등 여섯 대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스물세 살 이 모 씨가 온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퍼센트의 만취 상태였습니다.(p.16)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오빠와 돌아가는 길이었다. 2000년 7월 30일, 사고가 났을 때 지선 씨 나이 고작 스물 셋이었다. 그녀의 오빠가 화상을 입어가며, 지선 씨 몸에 붙은 불을 껐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할 겨를도 없이 죽음과 사투가 이어졌다.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중환자실로 실려 간 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그 후 10년, 그녀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전신화상을 입고도 꿋꿋한 삶을 기록한 책 『지선아 사랑해』가 ‘다시 새롭게’라는 작은 제목을 더해 새로 나왔다. 2003년 첫 책에 담지 못한 이후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눈앞에 있는 지선 씨는 책이나 기사에서 봐왔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고, 활기가 넘쳤다.
“개정판 준비하면서 10년 전을 생생히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저도 독자가 되어 예전 글을 보고 울기도 하고요. 당시에 가족들, 친구들이 참 놀랐겠구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겠구나 싶었고 한편으론 그럼에도 그렇게 큰 사랑을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책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죠.”
그녀는 이제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물론 아픈 기억이지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다시 아프거나 괴롭지는 않아요. 아픈 건 많이 잊어버렸어요. 이번에도 한동안 건강하게 지내다가 보름 전에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어요. 다시 환자가 돼서 누워 있으니까, ‘아, 아픈 게 이런 거였지. 이렇게 괴로운 거였지’ 싶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많이 수술을 받고도 금방 잊어버린다니까요.”
사고가 났던, 7월 30일을 지선 씨는 두 번째 생일로 삼았다. 매년 그날이 돌아오면, 고마운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다. 올해 생일에는, 최근의 수술로 몸이 회복되지 않을 때라, 계획했던 멋진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녀는 매년 두 번째 생일, 사고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되새기고 기억한다.
“10년 전 오늘을 생각하면, 지금 같은 날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개정판 준비하면서 이런 감사가 컸어요. 10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때 꿈꾸고 소망했던 일들이 이루어진 게 보이더라고요. 크게는 유학을 다녀오게 된 것.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 돈이 되게 많은 것도 아닌데,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된 ‘지사모’(지선 자매를 사랑하는 모임)분들이 나서서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그런 도움의 손길로 박사 과정까지 마친 거죠.”
그리고 간절히 바랐던 또 하나의 작은 소망. “열 번에 한번, 서른 번에 한 번쯤은 거울을 볼 때 제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일기를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 그런 날이 왔어요. 2004년쯤이었는데, 화장실 조명 아래였어요.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순간 제가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어떨까? 질문이 끝나자마자 날아오는 대답. “거의 대부분?(웃음) 늘~ 거울 볼 때마다 예뻐요. 셀카 찍고 좋아하고.(웃음)” 서로 자기가 예뻐 보일 때를 실토(?)하며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지선 씨. 그녀는 예뻤다.
저도 사람이고 저도 여자입니다. 여자들 마음은 그렇거든요. 미용실에서 앞머리가 조금이라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짧게 잘리면, 거울 볼 때마다 앞머리 잡아당기면서 그 미용실 갔던 것 후회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이 여자 마음입니다. 한 달이면 다시 길어질 머리카락인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변할 가망이 없는 얼굴을 보면서 제 마음 안에 그런 평안함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 (…)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제 마음 안에 일어난 일들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p.142)
“아직도 제 얘기 궁금해하시니 신기하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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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2000년), 외할아버지 칠순잔치 때 찍은 사진 오른쪽 상단(왼쪽 사진) 2002년 가을, 우에다 선생님과 승리의 브이(오른쪽 사진) | |
잠시 시간을 되돌려, 10년 전 오늘.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녀는, “눈꺼풀이 다 타버려 눈을 감을 수도 없었고 피부가 없는 얼굴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늘 눈에 고여 있고” “고개를 돌리거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눈가에 앉아 있는 날 벌레 한 마리도 쫓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양옆 커튼 너머로 환자들의 생사가 교차하는 중환자실에서 그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짐작도 할 수 없을 터. 그건 “무섭다는 것과 차원이 달라요. 전투적인 거예요. 누군가 죽어가고 있고, 나는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죠.”
“중환자실에서 있던 36일 동안 18명의 환자가 죽는 걸 밤마다 봤어요. 옆 커튼 너머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도 나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했고, 거기서 살아나왔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이 분명히 달라졌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내 모습은 일그러졌지만, 이런 내 안에 생명이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요. 아마 다른 환자들 가족 역시 저희 가족과 같은 기도를 했을 거예요. 내 생명이 더 소중하거나, 더 잘났다는 이유가 결코 아니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생명과 함께 주어진 사명을 많이 생각했어요.”
아픈 시간을 보낸 후로, 사람이나 어떤 대상을 두고 두려워하거나 떨리는 일도 없단다.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TV, 라디오 인터뷰를 할 때도 떨어본 일이 없다는 그녀. 아무리 그런 강심장이어도, 분명 무서워하는 것 하나쯤은 있기 마련. “아, 공포영화 무서워요. 사람 놀리는 것 같고 싫어요”하며 웃는다.
“무서운 대상은 없지만, 무서워하는 상황은 있어요. 제가 변하게 되는 것……. 내가 사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내 맘대로 살게 된다면 그건 두려울 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변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그녀에게 초심을 잃지 않게끔 사명을 환기시켜주는 일이 바로 강연과 인터뷰다. 그날의 일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긴다. 하지만, 벌써 십 년. 같은 얘기를 반복해달라는 그 요청들이 힘들진 않을까?
“처음에는 힘들었죠. 왜 똑같은 얘길 자꾸 하라고 하나. 그래도 얘기할 때마다 청중이 다르잖아요. 저희 엄마는 몇백 번째 듣는 얘긴데도, 들을 때마다 다르데요. 그때마다 마음의 상태가 다르니까요. 저도 마치 처음 이 얘기를 하는 것처럼 하려고 해요. 요즘은 약간의 경지에 오른 듯?(웃음)” 오히려 책 내고, TV로 알려진 게 벌써 7년 전인?, 아직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맙단다.
“인터뷰도 그래요. 이런 짧은 만남도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요. 인터뷰 덕분에 우리 오늘 처음 만났잖아요. 신나잖아요. 사람이 단순해지는 건지, 철이 든 건지(웃음)” 인터뷰에 응하면서,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있는지 놀랐다는 그녀. 그녀의 스케줄러는 아직도 많은 인터뷰, 강연 일정이 빼곡하다. 이거 원,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초심을 잃고, 변심할 새도 없을 듯.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녀가 두려워할만한 상황은 쉬이 닥치지 않을 테다.
“뒤돌아보지 마세요. 그리고 제발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며칠 전에 오빠한테 물어봤어요. ‘10년이 된 소감이 어때?’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난 어제일 같이 생생해.’ 그 말 한마디만으로, 오빠에겐 아직 아프고 힘든 기억이구나 싶었어요. 저는 굉장히 치유가 많이 일어났고 자유로워졌는데, 아무래도 당사자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다르겠죠.” 그런 치유가 저절로 일어난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지선 씨.
“이전에는 책 쓸 때나 얘기를 할 때, 제가 좀 덜 건강해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걸 인정하기 싫어했어요. ‘나는 원래 굉장히 씩씩하고, 잘 이겨냈고, 슬픈 것 별로 없다’고만 했어요. 그런 얘기를 먼저 꺼내면, 나 그렇지 않다고 발끈하고.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잘 보냈지만, 저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잖아요. 분명 힘든 시간이 있었거든요. 괜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싫어서 좋지 않은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는 완전히 치유가 돼서, 과거에 대해 자유하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녀가 극복해야 할 것은 스스로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두고두고 힘들 게 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가다가도 그 앞에 서 있는 저를 보면 길을 멈추고 저를 둘러쌉니다. ‘쯧쯧쯧. 아이고, 어쩌다 저렇게 다쳤다니……’ ‘쯧쯧쯧. 데었나봐’ 그러고는 한 걱정을 늘어놓습니다. 나도 귀가 있고 머리도 멀쩡한데…… 앞에서 듣고 있는 나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마구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아주머니들을 지나쳐가며 제가 말합니다. ‘데인 게 아니라 홀랑 탔어요. 홀랑.’(p. 179)”
“그것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아요. 아직도 저를 그렇게 보는 분들은 저를 모르시거나 어린아이들이죠. 아이들 시선에는 이제 달관하게 되었고.(웃음) 모르시는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인터뷰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괜찮지만, 나와 비슷한 다른 친구들. 화상을 입거나 희귀병으로 외모가 좀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이런 시선 때문에 힘들어할 것 같아 걱정이 돼요. 그래서 인터뷰, 방송할 기회가 있으면 이런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이런 문제야말로 미디어의 힘을 통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동정하는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 사람에게도 인생이 있고 삶, 꿈이 있다는 걸 존중하는 것. 단순히 왜 저렇게 됐지. 호기심을 풀 대상,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필요해요. 정말 조금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알 수 있거든요.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3초만 길게 쳐다봐도 기분 나쁘잖아요.”
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제발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무심코 던지는 짧은 말과 몇 초간 머무르는 시선. 그리고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이 나라 장애인들을 집 안에 가두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주세요.(p.181)
그에 비해 외국의 문화는 현저하게 다르다. 일본, 미국만 가 봐도, 그들은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단다. “2001년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정말 다르더라고요. 거기서 저는 장애인이 아닌 것 같았어요.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예 쳐다보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정이 많아서(웃음) 좋을 때는 참 좋은데, 정말 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4년 만에, 완전한 독립!”
지선 씨는 콜롬비아 대학 사회복지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09년 여름에는 보건복지부 장애인 정책국행정인턴으로 근무했다. 경험을 쌓고, 구체적인 진로를 모색하면서, 전공을 사회복지에서 노인복지로 바꾸었다. 롤 모델이 되는 교수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학교 들어가면서 좋은 교수님과 신랑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신랑은 없었고요.(웃음) 좋은 교수님은 계셨어요.
홍콩 분이셨는데, 매번 방학마다 중국에 가서 여러 복지 사업을 일으키고 활동하는 분이세요. 그분이 노인복지를 전공하는 분이셨어요. 알아보니 노인 복지를 공부하는 편이 장애인 복지를 더 많이 다룰 수 있더라고요. 또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데, 고령자가 짐이 되지 않고, 나머지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는 UCLA 사회복지 박사과정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상태다.
9월 10일에 출국한다. 유학생 신분으로 다시 홀로서기다. “집에서 돌봐주고, 편하게 있다가 미국에 가면 엄마 생각 좀 나겠죠.(웃음) 처음 미국에 갔을 땐,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불편했어요. 한국 친구들이었으면 마음 터놓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영어 때문에 조심스럽고, 문화가 달라서 주저하게 되고. 사람을 좋아하는데 마음처럼 사귈 수가 없어서 외로웠죠.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꾹 참았죠. <무한도전> 챙겨보고, <남자의 자격> 하는 주말을 기다리면서.(웃음)”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떠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첫 미국 유학은 지선 씨에게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 터. 그래도 뉴욕 이국땅에서 그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시애틀에서 신세를 졌던 홈스테이 가정을 떠나, 혼자 집을 얻었어요.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한 거죠.” 물론 처음 미국에 갈 때도, 가족 없이 혼자 유학생활을 시작했지만, 홈스테이 가정에서 나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그때가, 그녀는 ‘완전한 홀로서기’였다고 말했다.
“그날 이사를 하고, 이사를 도와준 분들과 얘기하다 보니까, 그날이 7월 30일, 사고 난 지 딱 4년째 되던 날이더라고요. 소름 돋았어요.” 혼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던 그녀였다. 그때의 독립을 인생의 두 번째 사건으로 꼽았다. 첫 번째 사건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 “세 번째 사건은 결혼이어야 할 텐데, 언제쯤이려나?”하며 웃는다.
“얼굴이 달라졌을 뿐, 저는 바뀐 게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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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0년입니다. 저는 날마다 꿈처럼 행복합니다.(p.22)” | |
그녀는 두 권의 책을 통해, 책의 힘을 새삼 느꼈다. 그녀의 삶이 담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게 영향을 받았다. 몇몇 독자들은 직접 지선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교도소에서 온 편지도 많았고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한번 살 용기를 얻었다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어요.
올해 봄에는 학교를 지나가는데 예쁘장한 여자 분이 지나가다 저를 붙잡으시더라고요. 제 책을 읽고 우셨대요. 그만 살고 싶을 때였는데,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다고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만나서 말로도 다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느꼈어요.”
그녀가 독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그날의 일을 겪고도, 견디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감사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빈말이 아니라 그녀,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런 건강한 에너지는 마음이 웃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거다.
원래, 긍정적인 편이냐고 물었더니, 잠시 고민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거예요. 어렸을 때 엄마가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을 천성적이라고 말하는 게 좀 겁나요. 만약 누군가, 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아서, 타고나지 않아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할 까봐 염려돼요.”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순간에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의지적으로 감사하고, 애쓰고 노력한 부분이 분명 있죠.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나쁜 생각의 끝에는 결국 나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왜 하필 나야?’라는 질문이 그래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신 걸까. 나는 저주받은 걸까?’ 결국, 그런 결론뿐이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아닌 길은 애당초 가지 않도록, 생각의 싹을 잘라야 돼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훈련,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얻는 게 행복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행복을 얻는 데에 익숙한 프로인 셈이다.
그녀가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최근에 수술한 피부 이식 결과다. “피부를 이식해도 잘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서른 번 넘게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렇게 100퍼센트 다 살았던 건 처음이에요. 하나님이 열 번째 생일 선물로 이걸 주시는구나 싶죠. 신기해요.(웃음) 그리고 아침마다 주식을 들여다보듯 예스24에서 책 순위를 검색해봐요. ‘엄마, 오늘은 (내 책이) 세 계단 소폭 상승했어!’하면서(웃음) 오늘 아침에 보니 70위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쟁쟁한 작가들 속에서 제 책을 찾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재미있어요. 진짜 읽혀야 할 손에 가기를 바라요. 정말 생을 포기하고 싶고,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손에 계속 갔으면 좋겠어요. 그럼 계속 70위여도 상관없어요.(웃음)”
꿈이나 비전을 물어도, 아직 구체적인 게 없다고 대답한 그녀에게, 카더라 소식을 통해 들은 얘기를 슬쩍 떠보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꿈꾼다고 들었다’고 하자, 어떻게 알았냐며 놀란다. “사실 꺼내놓고 얘기하기가 쑥스러워요. 큰 꿈이잖아요, 제가 하고 싶다고, 원서 낸다고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거죠.”
“제가 다치고 나니까, 사회가 또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이전 얼굴이 없어졌을 뿐, 저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완전 주변부로 떨어졌고, 그 상황을 겪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시골에 사는 장애인, 노인분들, 부모님 없는 아이들이, 내가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덜 들게끔, 나에게도 나만의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모두가 꿈꾸는 일이지만, 저도 그런 일에 일조하고 싶어요.” 완전 독립한 지선 씨,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독립을 도와주고 싶다는 건강한 꿈을 꾼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그녀의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원래 약한 당신이라도”
“이 책을 읽고, 와, 대단하다. 이러고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디!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지선씨를 만났다고 하자,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일을 감당할 만큼 강한 사람이던가요?” 글쎄, ‘그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에 지선 씨는 잘 웃고, 새로운 걸 좋아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고, 수다 떠는 것이 낙이고,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좋아하지 않고, 자주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를 두고 누군가 힘을 얻고, 희망이다 말하는 까닭은 단지 그녀 몸의 흔적 때문이 아니다. ‘조심스럽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사고였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지만, 원래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당신이라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일’이라고 지선 씨는 말하고 쓰고 얘기한다. 그래서 원래 약한,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다. 희망, 이 말이 좀 낯간지럽다면, 위로라고 해도 좋겠다. 자신의 사명을 열성으로 감당하고 있는 지선 씨, 그녀가 꿈꾸고 있는 임무들을 ‘완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