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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잘난 독설가

앰브로스 비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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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로스 비어스는 재발견된 작가다.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 1920년대 “그는 어리석은 사회의 속박에서 자유로웠고 시대에 순응하지 않은 작가로 조명”받는다.

“나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인 앰브로즈 비어스의 「아울 크릭 다리에서 생긴 일(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을 읽지 않은 사람을 얼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소설은 정치색이 전혀 없고, 듀크 엘링턴의 재즈곡 <소피스티케이티드 레이디>나 프랭클린 난로처럼 미국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커트 보네거트, 『나라 없는 사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2007, 17쪽)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1842-1914?)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정진영 옮김, 생각의나무, 2008)은 작품 선집이다. 옮긴이가 『Ghost and Horror Stories of Ambrose Bierce』(1964)와 『The Complete Short Stories of Ambrose Bierce』(1984)를 원 텍스트로 “공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 17편을 골랐다.

비어스의 ‘환상적인’ 작품들을 읽기에 앞서 작가의 면모와 작품 세계를 살핀다. 간략한 작가작품론의 출처는 ‘옮긴이의 글’이다. 그는 1842년 오하이오에서 생계에 초연했던 아버지의 열세 자녀 중 열 번째로 태어났다. “비어스의 유년은 유복함이나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혼으로 끝난 자신의 결혼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비어스를 잘 아는 사람들이 쓴 그의 전기나 평전조차 동일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묘사가 제각각이란다. ‘아주 잘 생긴 비어스’와 ‘독설가 비어스(혹은 ‘샌프란시스코 최악의 인간’)’ 사이의 넓은 틈은 쉽게 메우기 어렵다.

이런 측면은 그를 소재로 한 영화에도 반영되어 <올드 그링고(Old Gringo)>(1993)와 <황혼에서 새벽까지 3(From Dusk Till Dawn Ⅲ: Hangman’s Daughter)>(2000)은 비어스의 실종을 다뤘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1914년 1월 11일 혁명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멕시코에서 실종되었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재발견된 작가다.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 1920년대 “그는 어리석은 사회의 속박에서 자유로웠고 시대에 순응하지 않은 작가로 조명”받는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엔 “풍자 문학과 사회 비평의 선구자로 인정되었다.” 재평가 작업이 더욱 활발해진 1970년대부터는 작품이 두루 읽히는 ‘현대의 고전’ 작가 반열에 오른다.

“비어스가 쓴 아흔 편 안팎의 단편들은 크게 공포와 남북전쟁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그리고 그밖에 구분 짓기 모호한 작품들을 톨 테일(Tall tales, 신화와 민담의 성격을 띤 공상적인 이야기)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비어스 소설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충격적이고 섬뜩한 자각이다. 그것은 이상적이기를 꿈꾸었던 개인의 실수 혹은 사회 체제의 결함에 대한 인식이며, 맞닥뜨린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수록작들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단한 감동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커트 보네거트를 처음 읽었을 때의 ‘색다름’은 바라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이거야!’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도 못 건진 게 장르문학을 덜 선호하는 내 취향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시차(時差)’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100년 전에 활동한 오래된 작가다. 또 그의 작품은 케케묵었거나 고색창연(古色蒼然)하진 않았지만, 내게, 어쩔 수 없이 낡은 것이었다. ‘정치색이 전혀 없는’ 작품의 순수성은 무색무미무취에 가까웠다. 병적이면 병적이었지, 비어스의 작품 세계는 그리 매혹적이지 않다.

그리고 내가 좀 멍청해서일까? 나는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서 비어스의 천재성을 못 느낀다. 나는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의 위대성을 감지하지도 못한다. 한밤중에 읽는 게 겁나 벌건 대낮에 읽기는 했다. 공포감은 그리 심하지 않아도 밤중에 보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다.

「핼핀 프레이저의 죽음」은 짧은 단편이지만 수록 작품 중에선 가장 긴 분량이다. “이 세상에는 서른두 살의 나이를 아주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유독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인생의 항해를 출항지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배가 조금만 움직여도 곧 머나먼 해안에 닿을 것처럼 생각하는 법이다.”

나는 비어스의 작품에 적응이 잘 안 된다. 장르의 이질감과 ‘시차’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 낯선 세계가 영 부자연스러운데다 멀미 비슷한 걸 느낀다. “우리는 익숙한 자연 법칙의 순리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모호한 현상들을 접하면 그것을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자 끔찍한 재난의 경고로 받아들”(「요물」)여서일까?

아니면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으나 일단 만나 보면 알아볼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매커저 협곡의 비밀」)던 것인가? 그것도 무작정 혹은 헛되이. 내게 앰브로스 비어스가 그의 작품에서 탐색한 “인간 행동의 비밀은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다.”(「인간과 뱀」)

 

 

 

 

‘판타지 우화집’ 『악마의 위트사전(The Unabridged Devil’s Dictionary)』(정예원 옮김, 함께북스, 2007)의 정체성은 약간 흐릿하다. 우화집과 (악마의) 사전을 절충했다기보다 앰브로스 비어스의 대표작에 기댄 측면이 짙다. “신랄한 비판과 통렬한 풍자”는 썩 와 닿지 않으며 “지혜와 용기를 담”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비어스의 미국식 유머는 투박하다. 193쪽의 「부적격」만 해도 그렇다. “배심원으로서의 의무를 위해 소환된 한 저명한 시민이 뇌에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증명서를 보냈다. 판사는 증명서를 전달해준 사람에게 말했다. ‘이 신사를 제외하겠소. 두뇌를 가진 사람이군.’” 내용 전체를 인용했는데 처음부터 뭔가 빠진 듯싶다. 「복무를 위한 채비」는 어찌 봐야 할지.

“남북전쟁 당시 한 애국자가 그랜트 장군의 군대에 복무하기 위해 메릴랜드로 갔다. 수도인 아나폴리스에서 하루 머물기로 한 그는 명성이 자자한 광학기계 판매업자를 찾아가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일곱 개나 샀다. 하루에 하나씩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쓸 작정이었다. 이를 본 메릴랜드 주지사는 이곳에서 쇠퇴해가던 이 산업을 이토록 후하게 도와준 이 애국자를 대령으로 임명했다.”

『악마의 위트사전』 제2장 ‘신(新) 이솝우화’는 대체로 어색하다. 특히 “난(=베짱이) 분명히 (식량을) 비축했었어. 하지만 너희(=개미)들이 몰래 들어와서 전부 가져가 버렸잖아”(「개미와 베짱이」)라는 식의 비틀기는 억지스럽다. “파타가스카르 왕국”과 “마다고니아 왕국”(「잠 왕국의 범보 왕」)은 실존했을까? 가상의 왕국이라면 ‘마다가스카르’와 ‘파타고니아’에서 이름을 빌렸을지도 모른다.

“비어스는 저널리스트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반면, 작가로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촌철살인의 위트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 통렬한 비판의식은 저널리스트로서는 장점의 여지가 많았다. 국내에도 출간된, 신랄한 유머의 결정판인 『악마의 사전(The Devil’s Dictionary)』도 이러한 맥락에서 호평을 받았다.”(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옮긴이의 글’)

『악마의 사전(2판)』(이동진 옮김, 우신사, 1993)은 앰브로스 비어스의 대표작이다. 1906년 『The Cynic’s Word Book』라는 제목으로 첫선을 보였다. 냉소가의 용어집답게 『악마의 사전』은 시니컬하다. 비어스가 ‘서문’에서 표절을 걱정하는 건 좀 의외다. “이 책의 저자에게는 전연 표절의 의심이 없다고 말씀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표절’의 정의는 이렇다. “먼저 발표된 창피스러운 작품과 명예롭게도 나중에 발표된 작품이 합성된 우연의 일치.” ‘표절하다’는 “결코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다른 저작가의 사상이나 문장 따위를 채용하다”이다.

『악마의 사전』에서도 비어스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역발상을 곧잘 드러내긴 한다. ‘무식자’가 “당신이 잘 알고 있는 모종의 지식에 대해서는 어두운 반면, 당신이 전혀 모르는 다른 종류의 지식에는 밝은 사람”인 데 비해, ‘박식’은 “학문에 정진하는 자에게 특유한 일종의 무지”를 뜻한다.

드물게 사물 혹은 개념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공화정체’가 그러한데 공화정체란 “평등한 재판이 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행해지는 정치의 한 형태”다. 언론의 속성에 대해선 빠끔하다. ‘취재기자’는 “진실에 도달하는 데 오직 추측으로써 하고, 언어의 폭풍으로 그 진실을 사방으로 흩어놓는 문필가”를 말한다.

‘사전’은 “언어의 자유로운 성장을 억제하여 그 언어를 탄력성 없는 것으로 고정시키고자 생각해낸 문필에 관한 악랄한 조작”이지만, “단 본사전은 예외로 지극히 유익한 저작(著作)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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