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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신경을 가진 천재

브라이언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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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병적인 섬세함이야말로 지금껏 전대미문, 재현 불가능이라 일컬어지는 특유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꼬맹이 시절 할머니를 따라 시장 나들이를 갈 때면 으레 들르던 ‘미제 가게’가 있었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 있어 신천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나는 할머니께서 물건을 고르시는 동안 기묘한 형태의 플라스틱 제품들과 알록달록한 사탕 봉지를 보며 넋을 잃곤 했다. 그곳은 언제나 달착지근한 향기로 가득했다. 이태원에서 마주친 어느 벽안의 외국인에게서도 미국에 사는 사촌으로부터 온 소포에서도 같은 향기가 났다. 나에게 있어 그 특유의 냄새는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하나의 인상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이 땅에도 ‘향기의 문화(?)’가 퍼져 공중 화장실이나 백화점,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향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는 그 괴상한 감미롭고 강렬한 향기는 마치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고, 그 무렵부터 ‘그곳은 인공적인 향내로 가득한 환상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한 탓에 이후 점점 미국화되어 온 한국의 변화를 언제나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듯하다.


그러한 ‘환상의 대륙 아메리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는 의미에서 가장 미국적이라 부를 만한 밴드가 바로 ‘비치 보이스’이다. 그리고 리더였던 ‘브라이언 윌슨’이야말로 ‘환상의 아메리카’와 ‘현실의 아메리카’의 간극에서 인격이 붕괴되어 버린 ‘유리의 신경을 가진 천재’였다.


브라이언 윌슨은 1942년 6월 20일 인공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주택가 잉글우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음악가 지망생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인물로 가족은 그러한 부친의 의도로 합창 연습을 반복하곤 해야 했다. (이 연습이야말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비치 보이스 표 코러스 워크의 원점이 되었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일견 화목한 음악 가족으로 보였던 윌슨 패밀리였지만 일가의 장(長)이었던 머리 윌슨은 장남인 브라이언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으로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때때로 그것은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으며 브라이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고교 시절부터 ‘척 베리’의 록큰롤이나 ‘디온 앤 더 벨몬츠’와 같은 ‘두-왑 뮤직’에 열광했던 브라이언은 1961년 동생 칼과 데니스, 사촌 형제인 마이크 러브와 함께 ‘비치 보이스’를 결성하고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멤버 중 ‘서핑’이 가능했던 것은 데니스 윌슨 단 한 사람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른바 ‘서프 뮤직’(미국 서해안에서 인기를 끌던 서핑을 소재로 하여 만든 대중음악을 말한다)의 황금기를 일구어내며 일약 미국 전체의 우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밴드의 프런트 맨이었던 브라이언에게는 ‘스타 밴드로서의 중압감’과의 투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밴드의 매니저를 맡은 부친과의 갈등은 점점 브라이언의 정신적 밸런스를 무너뜨려가고 있었다. (그의 부친은 “네놈 따위가 만든 음악은 가치가 없다”며 아들의 음악을 헐값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전 세계가 ‘사이키델릭’ 열풍에 휩싸이기 시작한 1965년, 비틀즈는 재빨리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도입, <Rubber Soul>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당시 음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으며 ‘비틀즈에 견줄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밴드’라 칭해지던 비치 보이스는 갑작스러운 음악계의 지각 변화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당시 비치 보이스의 서프 뮤직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너무나도 순박하고 깊이 없는 음악일 뿐이었다. 그 무렵 아예 비치 보이스의 공연 투어로부터 이탈하여 홀로 곡 쓰기에 전념하고 있던 브라이언에게 있어, ‘비틀즈에 대한 회답’은 브라이언 자신에게 주어진 필생의 임무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중압감은 그의 영혼을 더더욱 어둠의 세계로 몰아붙였고, 마침 마약 복용이 여러 음악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브라이언 또한 그 포로가 되어갔다.

<Pet Sounds> 녹음 중인 비치 보이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혼자 <Pet Sounds>(1966)라는 역사적인 명작을 만들어 낸다. 현제에 이르러 팝 음악 불후의 마스터피스라 일컬어지는 이 앨범은 당시 미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만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5개월 후 발표된 싱글 「Good Vibrations」가 대히트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때까지 그들이 발표한 음반들에 비해 판매고도 신통치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시대의 천재 아티스트 ‘반 다이크 파크스’와 함께 작업한 후속작 <Smile>이 브라이언의 나날이 심해지는 이상 행동과 변덕으로 인해(간간히 데모 상태의 부틀렉으로 돌아다니던 이 앨범은 2004년이 되어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오리지널 버전은 아님) 데모 테이프는 전량 폐기되고 발매가 취소되었다. 브라이언은 급기야 그룹에서 퇴출되기에 이른다. 그 무렵 그는 약물 중독과 극도의 신경 쇠약 증세로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그는 한 카리스마적인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을 마칠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기념할 만한 그의 첫 번째 솔로작은 1988년 <Brian Wilson>이라는 셀프 타이틀로 발매된다.) 그러나 그 정신과 의사는 어느덧 브라이언의 음악 활동에까지 관여하게 되었고, 재산이나 저작권에까지 손을 뻗치다가 결국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심지어는 죽은 아버지에 의해 빼앗긴 <Good Vibrations> 저작권 소송과 재판 및 예전 양육권을 포기한 두 딸의 음악계 데뷔(90년대 초반 잠시 인기를 얻었던 ‘윌슨 필립스’의 두 멤버. 이 그룹은 브라이언 윌슨의 두 딸과 마마스 앤 파파스의 멤버였던 존 필립스의 딸이 모여 결성했다는 이슈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등 마치 미국 쇼 비즈니스계의 르포 영화 같은 운명이 언제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듯 참으로 기구한 인생의 그였지만 수포로 돌아간 프로젝트 <Smile>에서의 뼈아픈 기억을 떨쳐 버리고 다시금 당시의 공동 작업자였던 ‘반 다이크 파크스’와 손을 잡고 1995년 <Orange Crate Art>라는 걸작을 발표했고, 2004년에는 수십 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던 <Smile> 앨범을 전 곡 재녹음과 수정, 보완의 작업을 거쳐 발매. 평단과 팬 양쪽에 걸쳐 최고의 찬사를 얻어냈다.


너무나도 섬세한 감성은 어느 순간 그의 정신을 붕괴시켜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병적인 섬세함이야말로 지금껏 전대미문, 재현 불가능이라 일컬어지는 특유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는 줄곧 자신이 꿈꾸어 왔던 ‘환상의 미국’을 음악적으로 구현했다. ‘아름다운 대자연과 사랑이 가득한 가족’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가장 미국적인 환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Orange Crate Art> 앨범 재킷의 목가적인 시골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애달프고 구슬픈 감정이 밀려든다. 천재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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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승우

밴드 문샤이너스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 뱀이 그려진 전자 기타를 외할머니에게 선물로 받아 처음 기타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 크라이베이비라는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 역시 고등학교 때 노브레인을 결성하여 2집까지 활동한 후 일본의 도쿄 스쿨 오브 뮤직으로 기타를 공부하러 갔다. 하이라이츠라는 밴드를 거쳐 문샤이너스를 결성했다. 최근에 문샤이너스 정규 1집인 <모험광백서>를 펴내고 열렬하게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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