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시봉이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가? 이기호 가라사대, 한때 앵벌이를 하면서 조직에 입사(?)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고군분투했고,(「옆에서 본 저 고백은 - 告白時代」), 극단주에게 본드를 불게 해 취조를 받기도 했으며(「햄릿 포에버」), 80년대에는 박통의 눈을 단, 운동권의 영웅이기도 했다.(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여러 개의 얼굴로 등장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인물상은 “사실 저는……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외치며, 국기게양대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아직 보지 못했다면, 이 소개 글만 읽고는 시봉이 대체 누군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읽었더라도 상상력이 좀 필요할 테다. 시봉이라는 이름만 익숙할 뿐, 이건 정말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캐릭터들의 상찬이니까.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봉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으리. 시봉은 때로 진만과 함께였고, 그들은 언제나 이기호와 함께 있더랬다. 소위 영화계에 장진 사단, 홍상수 사단이라는 게 있다면, 이기호 작가에게는 시봉과 진만을 필두로 한 이기호 사단이 있는 거다. 한자어로 시봉(侍奉)이란, ‘모시어 받든다.’는 의미인데 시봉은 한 번도 누구에게 받들어진 적이 없다. 늘 비루하고 낙오자적인 페이소스를 뿜어낸다. 오히려 늘 형님을, 국기게양대를, 여자를 받드는 인물이다. 그 연원은 한자어보다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대로 ‘자발적 백수라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말이고, ‘우리 시대 뒷골목의 낙오자들에게 작가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 ‘이 사회의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의 보통명사’다. 이기호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새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에서 역시 시봉과 진만이 등장한다. 그들은 시설에서 원생들의 죄를 자백해주고 복지사들에게 대신 징벌을 받는 임무를 맡는다.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다 사회로 나온 그 둘은, 밖에서도 사람들의 죄를 찾아내 대신 사과 받는 일을 한다. ‘이기호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3장으로 나뉜 이야기는 약 스무 개의 소제목을 달고 있다. 그만큼 짧은 문장,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감정을 치고 빠진다. 길게 설명하지도, 많이 보여주지도 않는다. 소제목을 단 두세 페이지의 이야기들이 유머를, 황당함을, 때론 슬픔을 던지고는 이내 치고 빠진다. 도통 다음 장이 궁금해져 손을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그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금요일 밤의 홍대.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차는 줄지어 정체된 골목들이 연상되는 그런 밤. 12월18일 상상마당에서
『사과는 잘해요』 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뉴스를 들었지만, 이곳은 커피 향이 감돌고,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독자들은 커피가 담긴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함께 온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이기호 작가의 책을 다시 넘겨보며, 어쩌면 초조하게 뛰어오고 있을 사람들을 기다렸다.
12월 18일, 상상마당에서 열린 이기호 ‘작가와의 만남’, 이날의 진행은 백가흠 작가가 맡았다. 원래도 가깝게 지낸다는 두 분. 질의응답, 이라기보다는 만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소설처럼 흘러나왔더랬다. 그 만담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연재와는 달라진 내용, 여백을 주고 싶었다
| 오른쪽이 이기호 작가, 왼쪽이 사회를 맡은 백가흠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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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이하 ‘백’): 사과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기호(이하 ‘이’): 네…….(웃음) 광주에 눈이 정말 많이 내렸습니다. 갓길 운행을 반복하다 ?국 소서역에 차를 버리고 지하철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백: 『사과는 잘해요』를 쓰더니 일부러 사과할 일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이기호 형하고 생전에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음담패설, 만담, 이런 거는 몇 시간이고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둘이 나와서 소설 얘기를 해야 한다니까 부담이 되네요.
이: 저도 이런 자리가 어색해서,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백: 원래 순서는, 낭독이 우선인데, 지금 당장 낭독을 시키기에는 좀…….(웃음) 또 사과할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왔어요. 거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어서, 사실 궁금한 게 없어요.(웃음) 그래서 여러분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은 것들을 질문해보겠습니다. 요즘 광주에 나와서 살고 계시잖아요. 근황은 좀 어떠세요?
이: 광주에서 학교 선생으로 지내고 있어요. 아주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집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아이들하고 놀다가 강의하고, 집에 와서 아이 목욕시켜주는 일을 도와주고, 아이가 자면 다시 학교에 나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고요. 일산에 살 때는 백가흠이라든가 이런 친구들이 제가 한국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세계 문학 반열에 오를까 고민할 때 방해하고 그랬어요. 이젠 방해하는 친구가 없어서 조만간 세계적인 문학이 태어나지 않을까(웃음) 하는 기대를 하며, 2년째 광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백: 예전에도 단조로운 삶을 살았어요. 나돌아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고, 술도 못해서 온갖 만행들을 맨정신에 저지르곤 했죠.(웃음) 저도 아쉽기 마찬가집니다. 서로 멀어야 버스로 한두 정거장 거리에서, 7, 8년을 살았거든요. 소설 얘기를 해보자면, 온라인에 연재할 때랑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간추려진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이: 일일 연재를 처음 해봤습니다. 매일의 연재물 안에서도 완결성이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따라 읽는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있었고, 포털 쪽에서 요구하는 물리적인 분량도 있었고요. 어느 작가들이나 장편 쓸 때는 완결된 시놉시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쓰는 경우 대게 바뀌어요. 그렇다고 댓글 때문에 바뀌진 않았어요.
연재하는 동안, 분량과 기간 때문에 느슨해진 데도 있고 해서, 결국 다시 손보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세 장 빼놓고 다른 내용이 되어 버렸어요. 저로서도 1,200장 되던 걸 지우고, 다시 쓰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고, 올해는
『사과는 잘해요』 때문에 집안에도 사과할 일이 많았고 없던 인간관계도 끊겨가고 좀 그랬습니다.(웃음) 제가 종래에 쓰던 목소리와 다르게 갔거든요. 제 나름대로는 여백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 방향으로 고쳤습니다.
백: 그런데 원래 이기호 씨는 독자 팬이 여성밖에 없는 건가요? (이날 참석자가 모두 여성이었다!)
이: 백가흠과 이기호의 질적인 차이겠죠. 뭐랄까요, 단순히 여자 독자뿐이 아니라, ‘훌륭한’ 여자 독자분들이십니다.(좌중 웃음)
죄를 찾고, 만들고, 키우다
대신 사과해드립니다. 부모나 부부, 형제, 친지, 친구, 이웃주민, 직장 동료 사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대신 사과해 드립니다.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p.108)
백: 소설이 죄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 같아요. 죄와 사과, 어떤 의미일까요?
이: 제가 소심해진 건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간다는 죄의식 같은 것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작가라는 존재들은 그런 존재겠죠.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하는 존재들 있잖습니까. 저는 그렇게까지 예민하지는 않은데,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도 생기고. 또 제가 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이것도 사실 죄 같아요.(웃음) 영어 공부하고 그래야 하는 친구들에게, ‘소설로 끝장을 봐 보자.’ 그런 말을…….(웃음) 그렇게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 죄를 짓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죄하고 죄의식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그런데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죄와 별개로 죄의식이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올바르게 서지 못하는 우리이기 때문에, 타자의 시선에 흔들리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의 자본주의 사회가 완고해질수록, 우리의 존재 같은 게 너무 쉽게 바스러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 것을 고민하다가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한 다음, 반드시 죄를 지었다. 고백한 내용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약을 먹지 않았다고 고백한 날엔 정말로 약을 먹지 않고 버렸으며, 화장실에서 원장선생님을 욕했다고 고백한 날엔 정말로 원장선생님을 욕했다. 우리는 꼭 고백한 대로만, 꼭 그만큼의 죄만 지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고, 잠도 잘 왔다. 깜박 잊고 그날 치의 죄를 짓지 않고 잠자리에 누운 날엔, 다시 방문을 두들겨 복지사들을 깨우기도 했다.(p.30)
백: 죄와 상반되는 결과물로서 흔히 벌을 얘기하잖아요. 죄와 벌이겠죠. 이 소설에서는 벌 대신 사과의 개념을 넣은 거죠. 종교적으로 접근하면, 구원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그런 의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백가흠이가 그래도 그런 건 참 잘 봐요.(좌중 웃음) 제가 글이 잘 안 써질 때마다 읽는 게 성경책입니다. 저는 신자는 아닌데요, 아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가끔 집에 가면 할머니들이 심방 오셔서 안수 기도도 해주고, 저는 아내를 위해서, 옆에서 방언하는 척…….(웃음) 성경이라는 게 커다란 이야기책입니다.
예수의 대속, 대신 사과죠. 그것도 사과 대행이죠.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그 ‘모든 죄’라는 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언어잖아요. 그렇게 대신 사과해버리고, 죽음까지 갔으니까 남은 우리에게 그 의미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것일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분의 대신 사과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다시 죄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처음 연재할 때는 희봉이 예수처럼 등장해서, 나중에는 희봉 제자들도 생기고 그랬었어요, ‘뽄드’ 부는 제자들.(웃음) 그때는 목사도 나오고 전도사님도 나와서 그것들이 직접적으로 나왔었는데. 어떻게 하면 좀 더 숨기면서,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제 나름의 종교적인 이야기고요, 예수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조금 더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거라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복지사 님들에게 대신 사과해 줄게요.”
그러면 원생들 대부분은 처음엔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잘못한 게 없는데요.”
“내가 왜 사과를 해!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새끼들, 내가 다 고발할 거야!”
“사과가 뭐지요? 아저씨들은 누구지요?”
하지만, 1주일 정도 지나면 그들 대부분은 우리의 손목을 잡거나 발목을 붙잡은 채 이렇게 말했다.
“제발, 사과해주세요. 네? 사과하면 안 맞는 거, 맞지요?”
“사과해야죠. 암요, 사과하다마다요. 저는 정말 별 볼일 없는 놈이거든요.”
“아저씨들은 누구지요? 아저씨들이 사과인가요?”
(…) 얼마 동안 우리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버티던 원생들도, 결국은 모두 “아아, 역시”라고 말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들을 찾아가, 그들의 죄에 대해서 말했다. 죄는 많고도 많았다. (p.82)
장편 소설을 쓴다는 것
백: 이기호 형이 이렇게 기독교 윤리에 관대해질 줄은 상상도 못할 시기가 있었는데, 당황스럽네요. (웃음) 사과라는 게 용서, 화해, 이런 의미로 읽히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데뷔한 지 만 십 년이 꽉 찼잖아요. 그간 두 번의 단편집이 있고, 첫 장편소설인데. 어떤가요?
이: 백가흠 씨도 잘 알겠지만요, 우리나라 문단 체계가 단편 위주로 돌아갔습니다. 신춘문예도 단편 위주로 돌아갔고, 저도 단편으로 데뷔했는데요. 선생이 되어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단편이 성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복사하기 쉬워서입니다.(좌중 웃음) 그래서 단편을 많이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호흡이 단편에만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편소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적은 수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응축된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면, 장편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을 챙겨야 돼요. 작가로서의 삶도 달라져야 하는데, 사람을 보는 시선을 넓히고 깊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장편 쓰면서 그런 부분에 반성했습니다.
그 외적으로는, 백가흠이 농담으로 “우리 연봉 500만 원만 됐으면 좋겠다, 형.” 이런 얘길 한 게 불과 몇 년 안 되었을 때입니?, ?편을 쓰는 데 교정까지 1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이 작품만 매달렸거든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단편은 청탁이 금방 오고, 장편보다 쉽게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지만, 장편을 쓸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편을 준비하는 백가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제가 단편을 쓸 때는, 제 소설을 읽을 명희나 순자, 그런 여자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네들 가슴을 설레게 할까. 장편을 쓸 때는 줄리아나 크리스티나, 이런 친구들이 내 소설을 읽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들은 또 어떻게 설레게 할 거냐, 그런 생각을 하며 힘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한 편이 완성되었습니다.
백: 많이 공감이 됩니다.(웃음) 이제 마흔에 가까웠잖아요.(좌중 웃음) 애도 둘이고, 선생도 됐고……. 예전과 비교하면 안정적으로 삶의 패턴이 많이 바뀌었죠. 그러면서 뭔가 새롭게 두려워진 건 없어요?
이: 사실 백가흠 옆집에 살 때만 해도 두려운 게 하나도 없었어요. 가진 것도 없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고, 내가 느끼는 것 그대로 보는 것 그대로 내 갈 길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눈을 주었던 사람들이 이 시대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이제 책임질 사람도 생기고, 학교에서 월급도 받고 있으려니, 내가 이렇게 따뜻한 공간에서 좋은 노트북을 가지고, 그 사람들에 대해 진정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한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 아내가, 반 소설가가 다 됐어요. 소설가랑 살면 반 소설가가 다 됩니다. 제가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알고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있습니다.(좌중 웃음) 얼마 전에 땄어요. 그것 때문에 실습을 나간다고 해서 제가 말리고는 있는데, 아내의 자격증 때문에 두려움이 좀 가셨고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라는, 제가 모르던 조직에 대해서도 보고요.
학교 선생이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쳐줄 수는 없습니다. 미술학원에서 데생을 가르쳐줄 순 있지만, 그것도 어느 선까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처럼요. 소설도 같습니다. 데생 정도. 기본기 정도. 문장, 요 정도의 것들? 선생이 뭘 할 수 있느냐면, 어떻게 해서든지 소설을 쓰게끔 학생을 의자에 앉히는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시간강사 등을 통해 경험해 본 결과는 선생이 학생을 약 올리면 됩니다. 선생이 쓰는 소설이 가장 좋은 가르침입니다. 아이들 두려워서 소설을 써야 돼요. 그 정도가 장점입니다.
아이의 운명이 바뀐 『지사촌』의 세계
백: 여기서 독자들의 질문을 들어볼까요. 언제나 그렇습니다. 일 분이나 삼십 초 정도는 서로 마주보고만 있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시면 궁금한 것도 생기고 그럴 겁니다.(웃음)
이: 사실, 백가흠이가 독자와의 만남, 다년간 사회를 봐왔던 능숙한 사회자예요. 잘 압니다.
“작가님은 언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쎄요.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서울 생활이 지루하셨는지, 강원도로 발령을 일부러 내서 가시고(웃음) 어머니는 부업을 하시느라 집에 저 혼자 있었는데, 그 당시에 월부책 장사들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 오시면서 그래요, ‘옆집 누구는 벌써 읽고 있다고.’ 그러면 어머니께서 막 질러요.(웃음) 책 목록을 보면서 질러야 하는데, 일단 지르고 보는 거죠. 그때 잘못 지르신 책 중에 한국 단편 문학이라는 5권짜리 전집이 있었어요.
거기에 『지사촌』이라고, 초등학생이 읽어선 안 되는 불멸의 야한 소설이 있었어요. 뭔가 울렁거리고, 잠이 안 오고 화끈거리고……. 그것이 재미있으니까 반복해서 외울 때까지 읽었어요. 동화책도 있었는데 동화책 세계는 『지사촌』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니까.(웃음) 그때 뭐랄까요 소설가가 되면 이런 걸 쓸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쓰는 친구들에게도 말하는데, 여러 작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복해서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어머니가 저지른 참변(?) 덕분에 아이의 운명이 바뀌었어요.(웃음) 그 이후로 바뀐 게 없었어요. 『지사촌』이라는 작품 꼭 읽어보세요.
“우리나라는 예술인이 선진국보다 주목을 못 받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연봉 500만 원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랑 백가흠은 연봉 500만 원만 받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고, ‘우리,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도 되는 걸까?’ 싶을 거라는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서울 살 때, 아침 7시 반쯤 일부러 세종문화회관에 올라갔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출근 러시아워 때 직장인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어유, 늦겠네, 안 되는데~ 어쩌나! 빨리 뛰어라.”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제가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웃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까닭은, 제 주위에 백가흠 같은 사람들만 있었기 때문이죠. 제 주위에 펀드 매니저가 있고, 부동산 업자들이 있었으면 불안했겠죠. 그런데 제 주위에는 백가흠, 이런 친구들, 내가 밥 사줘야 할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 상대적으로 부자란 생각이 들었어요.(좌중 웃음)
“휴머니즘이 없는 사람이 문학을 해도 될까요?”
이: 백가흠은 휴머니즘이 없습니다.(좌중 웃음) 백가흠 같은 친구들이 활동하는, 인류 멸종 운동 협회라는 게 있습니다. 휴머니즘은 인간 중심적으로 세계를 보는 것인데, 지구나 다른 생물체 처지에서 생각하면, 인간만 없으면 지구는 아담 시절의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그 운동의 취집니다.(웃음)
백: 이분도 같은 협회셨어요.(웃음)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제 소설을 읽어보시면 됩니다.(좌중 웃음)
“만약 글을 안 쓰셨다면 무엇을 하셨을까요?”
이: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림 잘하는 작가도 많고, 음악 잘하는 작가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참 재주가 없어요. 신기할 정도로 다른 재주가 없어요. 아내가 형광등 갈아달라고 해도 그것도 못하고, 청소도 못하고……. 아마, 히키코모리. 오타쿠가 되거나, 소녀시대를 쫓아다니고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뭘 했을까 모르겠어요. 대학 처음에는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연극배우가 되는 것도 좋은 삶이겠구나.’ 했지만, 그것도 재능이 없어서……. 아마 안 됐을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이나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신가요?”
이: 작가로서 다른 스케줄이 있을 리가 없죠. 뻔합니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들뿐이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보편적인 정서들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고요. 책 판매량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웃음) 더불어 아내가 자격증 취득했으니까 글만 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봉을 사귀어 보세요
죄를 묻고 벌을 대신 받는 시봉과 진만. 시설이라는 이들의 세계만큼이나, 두 인물은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헌데 책을 읽으면서 시봉과 진만이 현실성을 획득해간다. 그러니까, 저자는 단 한 번도 시봉이 어떻고, 진만이 어떻고 설명해주지 않고, 그들의 생각조차 자세하게 들을 기회가 없지만, 점차 감정이입이 된다. 책장을 덮을 때의 그 아쉬움과 저릿함이라니. 시연을 업고 어느 동네 병원 네온사인 아래를 터덜터덜 걷고 있을 진만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시설에서 주는 약을 받아먹으며, 그들에게 길들어 있고, 약이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시봉과 진만이야말로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라고 했지만, 자본주의를 살아가며 돈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랬기에 그 방황이 남 일 같지만은 않았던 것일 테다.
이날 만난 작가님은, 시봉보다도 진만보다도 좋아 보였다. 연봉이 얼마든,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작가님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 입장으로 제 살을 깎아 먹는 일 같다며 푸념하셨던 작가님.
“그저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만 기억되고 싶고 신비감으로 분위기를 잡고 싶은데, 만나보면 뻔하거든요.(웃음) 백가흠이랑 연봉 500, 이런 얘기나 하고 있고. 늘 집에 가면서 후회합니다.(좌중 웃음).”
비록 신비주의는 덜했을지라도, 작가님의 진심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따뜻했더랬다.
“아마 저는 책이 많이 팔리는 대중 작가는 못될 겁니다. 그런 욕심도 없습니다. 다만, 소원이라면, 제 첫 번째 책, 두 번째 책을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온다면 제가 울릉도에 살더라도 여기 와야죠.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제게 한 분 한 분 소중한 분들입니다.” 사인회를 하면서도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휴대전화의 ‘셀카’까지
“그 까이거 못하겠습니까?” 하며 바로 ‘브이(V)’ 포즈 취해주시는 모습에, 그 진심, 고스란히 독자들에게까지 닿았을 테다.
당신에게도 시봉을 권한다.
“소설이 잘 안 써지거나 그럴 때 이 친구를 호명하거나 불러내면 그 소설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시봉이 어느 학교에 다니고 어떻게 컸는지 나오지 않지만, 작가 노트에는 다 적혀있거든요. 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얘기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에 따라 독자들도 그 인물을 아껴주고 애정을 주는 것 같아요.” 여느 소설 속 시봉이든, 저자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시봉은 촌스러운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당신의 친구가 되어 줄 거다. 시봉을 사귀면서, 시설에서 한 걸음씩 나오자. 그렇게 서서히 약도 줄여 가면 우리는 당장에라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