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고등학교를 자퇴한 16살 소녀에 대한 기사. 중학 시절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던 이 소녀는, 외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꼭 외고를 가겠다고 고집하던 소녀를 설득,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니게 만들었지만, 소녀는 ‘나 같은 낙오자가 학교는 다녀서 뭐하느냐’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결국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소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심리상담 치료를 받으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단다.
소녀의 어머니 얘기. “외고는 일류, 일반고는 이류?삼류라고 생각해 외고에 떨어진 자신도 이류?삼류 인간이라고 여기나 봐요.(…) 1년 전만 해도 외고 폐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최소한 어린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그게 마치 ‘행복의 순서’라도 되는 양 사회적으로 착각하는 짓은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삼류 인간이라고, 낙오자라고 스스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긴 16살의 소녀. 그런 딸을 보며 가슴에 멍이 든 어머니. 단순히 이 소녀만의, 어머니의 문제일까. 누가 소녀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주홍글씨를 새기라고 사주한 걸까. 그 배후는 대체 누구냐. 시대의 잔혹과 우울함이 잔뜩 묻은 이 기사를 읽고, 물었다. 못나고 못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건 뭐? 하나밖에 없더라. 혁명.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상상력. 대세라는 말로, 무릎 꿇지 말고,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 다만, 숨 쉴 수 있는 통로나 공간이라도 형성하자는 것.
지금 이 시대 당신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잔혹한 시대다. 지금-여기의 20대가 처음으로 만난 이 사회의 상징적인 한 단면은,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문구로 집약되는 괴기한 사회다.
“‘부자 되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잔인하다. 부자가 아니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시민권이 없다는 그리스 시대의 경구를 되살리는 말이기도 하고, 이 말을 인사말로 주고받으면서 너도 부자가 아니고 나도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 공허하지 않은가.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 역시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사회에서 최고 경구가 된 시대, 그것이 지금 20대가 10대를 보냈던 공간이다.”(p.48)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감히 생각했다. 저 이유만으로도 혁명이 일어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당신도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들고 일어나도 벌써 그랬어야 하건만, 좀 이상하긴 하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란츠 파농도, “혁명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건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탄생
갸우뚱했다. 아직은 견딜 만한 건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와중, 만났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지음/레디앙 펴냄). 혁명이라고라? 아, 이 얼마나 알싸하고 짜릿한 우월한 단어던가. 내 심장은 두근두근 쿵쿵. 얼마 전, 9일 20세기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42주기를 혼자만의 방식으로 추모하면서 나는 혁명을 생각했었다. 이틀 뒤에는 사랑 혁명가, 에디트 피아프를 떠올리면서 그러했고,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에는 지금 필요한 것은 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용히 어쨌다고? 책 제목 뒤에는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략됐단다.
책의 탄생은 이랬다. 지난 2008년과 가을과 겨울 사이, 연세대에서 조한혜정 교수와 함께 진행한 <문화기술지> 수업. 학기 말에 학원 강사팀 학생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강사들과 인터뷰한 보고서를 보고, 우석훈 박사(이하, 우 박사)는 출간을 결심했다.
“어느 정도 짐작한 내용이라도 ‘날것’의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은, 언제나 잔인하다. 가끔, 괜히 알아봐야 밥 먹을 때 불편하기만 하다면서 식품 안전이나 보건에 관련된 글이나 방송들을 일부러 안 보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인들의 이런 기피증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학자이지 않은가. 눈 감고 싶은 현실도 바로 보아야 할 때가 있다. 그 학생들의 보고서도 나에겐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다른 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p.22) (주. 책에 「20대 학원 강사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보고서 일부가 실려 있다.)
우 박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 낸 말 중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많은 상상력을 집약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p.34) “혁명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젊음은 좀 불행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 또한 여러분을 꽉 막힌 틀에 가두어 길들이려는 세상 속에서 ‘혁명’이라는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p.36)
혹, 혁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그랬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절규지 폭동이 아니다.” 그래, 세상을 향한 절규다. ‘나도 세상의 일원’임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특히 세상을 전복하는 건,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건, 무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당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
지난 23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 강당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출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20대여, 쫄지 마, 떨지 마, 부활할 거야!’라는 제목으로. YES24, 레디앙, 프레시안, 칼라TV, 연세대 학생복지위원회에서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이재영 레디앙 기획 위원의 사회로, 우 박사가 ‘88만 원 세대에게 왜 혁명이 필요한가?’라는 발제를 했고, 2부 순서로 김지윤(고대 사회학과 학생), 노정태(칼럼니스트), 한윤형(칼럼니스트)씨가 참여한 토론이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우 박사를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이건 그러니까, 두 남자가 나눈 수다의 기록.
(※문맥에 지장 없이 인터뷰 질의응답을 아주 약간은 각색했음을 알려 드린다.)
쫄지 않으려면? 혼자 있지 말고, 서로 인사부터!
책에 나온 『88만원 세대』 출간 전, 공기업 사외 이사로 있으면서 20대의 임금을 삭감하는 일에 꼼짝없이 사인을 했던 고백이 아프냐, 나도 아프다. “청년들을 좌절감을 빠트리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지 않나. 왜 이 사회는 청년들을 좌절감에 빠트리고 방기할까? 혹시 알고 있나, 알면 말해 달라.
(청년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미 세팅돼 있으니까. (사회가) 방기만 해도 괜찮은데, 청년들을 희생자처럼 몰아가는 부분도 있다. 사회가 어려우면 심리적으로 희생자 찾으려고 한다. 여성이나 이십 대 등. 한국은 특히 이주 노동자가 많지 않고, 청년들을 희생자로 몰려는 조짐이 있다.
‘당사자 운동’을 강조했다. 그건 ‘쫄아 있음’을 깨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쫄지 않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약간 상징적으로 표현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겨야 한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 차라도 같이 마시고, 밥도 같이 먹고, 생각이나 뜻을 나누기 전에 인사부터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녕, 친구.’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르는 20대랑은 서로 보려고도 안 하고, 친구도 서로 잘될 때만 보고 어려울 때는 보지 않으려 하고. ‘관계 결핍’이라고 사회학적 용어가 있다. 조그만 네트워크라도 만드는 것이 쫄지 않게 만드는 거다. 혼자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있나. 친구 안녕. 쫄지 마! 죽지 마!
“내 몸은 신자유주의예요.”라고 몸으로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에 대한 표현이 딱이었다. 아마 자신의 삶과 영혼이 꼰대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걸? 잘 놀지도 못하고 개성도 부족한 게, 그냥 질질질이다.
그게 종속인데 즐거운 게지. 스펙 쌓고 있어야 편한 거거든. 바깥에서는 불안해 못 견디는 거거든. 자기 삶을 살면 되는데 천만에. 누군가에게 고용될 수 있어야 행복한 거다. 고용이 안 돼 있으면 불안하고. 고용이라는 것이 절대 권한을 갖게 된 거다. 고용도 여러 방식이 있는데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말고는 없는 것처럼 여긴다. 다른 가능성들을 스스로 열어야 되고, 열 수도 있는데 아 놔~ 전부 한 길로만 들어서니까 병목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거 아니냐!
책에도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나 스포츠스타에게서 사회적 발언을 별로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윤도현, 김제동과 같은 연예인들은 그야말로 공영 방송에서 퇴출(!)당했다. ‘밥줄 공안’, 장난 아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이 비애하곤…….
왜냐! 그건 대중들이 사회적 영웅한테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는 물어본다. 모피코트 입을 거냐.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자체가 정치는 아니지만 성향 물어보는 건데, 우리는 어찌 보면 너무 질문을 안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얘기 안 하는 게 당연하다. 질문을 던지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고.
가령 힙합 하는 프랑스 가수에게, 알제리 출신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본다. 그러면 자기 입장 밝히고. 그러면서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간다. 프랑스에서는 다 물어본다. 마약, 낙태……. 한국은 그런 거 안 물어보잖나. 기껏해야, 뭐 좋아하냐, 뭐 먹고 싶냐.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게 한국은 약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언론의 잘못도 크지 않나?) 언론이 너무 상업성으로 가서……. 한 사람의 팬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한테 팬덤을 느끼는 것은, 예술성만이 아니다. 그 사람의 총제적인 삶과 정신?문화적 소양을 묶은 것이 팬덤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제3세계 민중이나 아동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그러면서 진짜 입양을 하고 보여준다. 그런 것을 보면 말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팬들이 끄덕끄덕. 펠레 같은 경우도 중남미 빈민을 대변하고 전 세계 가난한 축구선수를 대변한다. 그래서 축구 대통령 아니냐. 공만 잘 차서 그런 것 아니다.
앞선 『괴짜경제학』 관련한 건대 강연에서 ‘삽질하는 나라는 생각하는 나라를 이길 수 없다’는 말, 오오~ 인상 깊었다.
사유를 이론적으로 해도 되지만, 문화 현상 자체가 사유는 아니다. 독서, 음악 등 총체적으로 해야 하는 거다. 꼭 앉아서 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예를 들어 토익 점수를 10점 높이기 위해 1년을 썼다. 그거야말로 삽질 아니냐.
개인의 노력만으로, “너만 잘하면 돼!”라며 이 엄혹한 시대를 뚫으라고 말하는 책이나 꼰대들은 무책임하다.
20대가 그렇게 하면, 자기들은 룰루랄라 편하겠지. 부리기 쉽고 자르기도 편하고. (개인의) 상품화를 더 강요하는 거다. 일제 강점기나 근대화를 할 때 문학하는 사람들은 ‘레디메이드 인생’ 등이라고 하면서 시대가 잘못됐다고 말했는데, 지금의 많은 책들은 잘못된 것에 상당 부분 공조하는 거 아닌가? 같이 사는 사회는 딴 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게 종족에 대해 진화해야 하는 건데, 혼자 해서 되는 거, 없다. 너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것, 없다. 어떤 종교 책을 펴 봐라. 모든 종교 책은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앞선 강연에서 방화는 안 되지만, 유리창 정도는 깨도 된다고 그랬지 않나. 무장한 10대가 없어서 지는 거고, 앞으로 집회하는 분들은 전략적으로 무장 10대를 달고 있어야 한다는 말, 깔깔깔 이었다. 무장 십 대 양성론?
한국의 지금 사교육 체계가 10대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한다. 10대 때 그러면 개인적 희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움직일 길이 없을 거라고 본다. 10대 해방이 내가 꿈꾸는 희망 중 하나다. (웃음) 공부 좀 덜 시키고 영화든 피아노든 하고 싶은 것을 애들이 하는 거, 그게 해방 아니냐. 10대 해방 만세! 우파들은 10대, 20대를 잠재적인 비행 청소년으로 몬다. 공부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 있는 건데. 재미있는 것을 잘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파들이 문화에 자신 없으니까 통제하려는 거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상위 5%가 전국 토지의 25~30%를 소유하고 있었고, 프랑스혁명사는 이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곳은 이상해. 1988년 기준으로 상위 5%가 전국 사유지의 65%를 소유하고, 지금은 모르긴 몰라도 상위 5%가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겠지만, 아직 혁명의 파토스는 없다. 왜 우리는 아직?
두 가지가 있다. 유럽은 스스로 근대를 열었으나, 한국 민중은 근대를 스스로 연 게 아니다. 좋든 싫든 주입된 거지. 스스로 주인 된 경험이 익숙하지 않다. 기분 나쁘면 에너지가 생기는 데도 그걸 민족주의로 빼 버린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을 이겨야 한다는 그런 민족주의. 한국 통치자들이 그런 민족주의를 잘 활용한 사람들이 아니냐. 박정희는 밖으로 북한과 경쟁하고, 안으로는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겼다. 진짜 문제를 은폐하려는 시도지. 부자를 싫어하는 것보다는 전라도를 싫어하게 만든. 박정희의 유산인데 아직 청산이 안 된다.
혁명이라는 것 자체는 정의하기 어렵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 혁명은 일어나곤 한다. 아주 작은 것. 어떤 혁명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혁명은 일어날 거다.
혁명의 다른 말은, ‘다른 세상’이 아닐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아닐까?
전환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지금 괴로운 사람이 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 통치자들이 알아서 해 주면 개혁이고, 안 해 주면 혁명이고. 어쨌든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느낄 수 있는 힘이 되느냐가 문제다. 인턴제를 보자. 이건 진짜 문제다. 이건 인턴이 되는 사람도 피곤하고 세금 쓰는 사람도 피곤한데도 이렇게 하면 잠잠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기왕 이렇게 할 거면, 숫자를 줄여도 길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돈이 엄청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렇게만 해주면 된다고 알고 있다. 그게 잔인한 거다.
우파 내에서도 (인턴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반발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야 개혁을 하는 법인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 뒤에 바로 대졸 초임의 임금을 깎잖아. (대선 공약이었던) 등록금 반값도 할 필요 없다고 볼 거다. 연초에 다 생긴 일이다. 엄청 당한 거다. 노인들이나 지방 몫을 못 빼앗아 가니까 20대들 것을 빼앗아서 채우잖나. 이게 끝이 아니다. 취업 수 줄여야 한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그거 충분히 하게 생겼잖아. (웃음)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아직 은퇴할 준비가 안 돼서 아직은 유보하고 있다고 했는데, 언제쯤 직접 만든 우리 밀 소주를 마실 수 있나?
소주라, 오래 걸릴 것 같다. 일단 쓰고 있는 책을 제때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게 한 가지고. 막상 가려고 하면, 농업이 다 어렵다고 오지 말란다. 하여튼 지금 서울에서 이런 식으로 사는 건 정리하려고. 수업하던 것도 조금씩 줄이고, 한 번에 가긴 가야 하는데, 동의도 없고, 돈도 좀 있어야 하고. 생태 관련 공부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방 경제 얘기하면서 서울에 계속 사는 게 건강한 사고는 아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와 함께,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책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다작하는 비법이 뭐냐.
밀려 있던 게 많았다. 사실은 더 빨리 써야 했다. 알고 있던 거를 쓰기만 하는 건데, 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1년 동안 슬럼프였다. 정리만 하면 되는 건데도, 안 되더라. 다 이명박 때문이다. (웃음) 난 명랑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시대에 ‘계속 명랑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몸도 아프고, 쓰기도 싫고, 낙향도 못하고. 『유마경』을 보면, 유마힐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이런 시대에 안 아프면 이상하지. 아픈 사람 되게 많을 것이다. 화병도 아니고 울화병도 아니고, 짜증 제대로 나는 거지. 신이라도 나면 몸이 안 아플 텐데…….
다음 책도 밀렸을 거 같은데 언제 나오나. 집필 계획은?
연말쯤 다음 책이 예정돼 있다. ‘경제 대장정’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건데, 『88만원 세대』가 첫 번째, 생태경제학이 두 번째, 응용경제학이 세 번째 시리즈다. 네 번째면 끝나는데. 최근 생태경제학 1,2권에 이어 연말에 3,4권이 나온다. 번외편이 몇 개 더 있는데, 지금 같은 시절이라면, 나도 모르겠다. (웃음)
20대를 진단하는 세 가지 방법, ‘쯤, 진, 오스트럼’
이윽고 강연과 토론의 시간. 우 박사는 세 가지를 얘기하겠단다. ‘~쯤’, ‘진(陳)’, 그리고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럼. 우선, ‘~쯤’은 미완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 박사가 연세대 공학관 지하의 커피숍에서 우연히 듣고 겪은 일이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옆에 한 커플이 있었다. 남자가 자신에게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를 여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연대쯤’ 되고, 공부도 ‘나쯤’ 하고, 키도 ‘이쯤’ 이라는데, 내 키만 하고, 패션도 ‘이쯤’, 매너도 ‘이쯤’ 되니까, 소개팅이 많이 들어온다는 거다. 또 ‘자기쯤’ 되니까, ‘너쯤’ 되는 애를 만나는 거다, 이러더라. 내가 보니 또라이였다. 그 친구의 지갑을 슬쩍 봤는데, 80만 원짜리 지갑이더라. 그 지갑이 바로 이 ‘쯤~’을 노리는 마케팅이다.”
그는 바로, 마케팅 사회를 얘기하려는 것. 이 남자를 엔트리(entry)라고 부른다. 30~300만 원짜리를 사는 엔트리를 5년 후엔 1억 원 어치를 사게 하는 것이 패션 경영학이나 럭셔리 마케팅의 목표다. 유명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그렇다. 특 A급은 아니지만, 명품 등으로 덧붙이기만 하면 이 대열에 낄 수 있게 된다고 유혹하는 것.
“대한민국에서 20대를 다룰 때 이 마케팅을 쓴다. 대체적으로 대학생들에게 해당된다. 고려대에서 강연을 해도 ‘고대쯤’, 성균관대를 가도 ‘성대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20대들에겐 이런 마케팅이 통한다. 미완성들. 하지만 명품을 넣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슬픈 얘기지.”
이어 ‘진(陳)’, 즉 포메이션(formation)에 대한 이야기.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 20대는 어렸을 때, 혼자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배웠다. 다른 세대는 모두 진을 갖추고 있다. 50대들은 고향 친구들끼리 하는 진이 있고, 30~40대는 술을 함께 마시는 진이 있다. 남자들끼리는 계집질하면서 부인한테 숨기는 진이 있고, 여성들도 공유하는 게 있다.” 80년대만 해도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구국의 대오니 하면서 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는 것이 우 박사의 설명. 그렇다면 지금의 대학생, 즉 20대들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 박사는 스나이퍼(저격수)라고 말한다.
“지금 대학생들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삼성 입시를 쏘려는, 나머지는 고시를 준비하는. 그러나 실제 스나이퍼는 혼자 움직이지 않고, 옵서버를 대동하고 작전에 따라 팀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20대는 고립된 스나이퍼 같다. 옵저버 대신에 엄마가 있지. 책을 준비하면서 보니 고시도 돈이 많이 들더라.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업료 등을 엄마가 잘 충당해 줄수록 좋은 저격수가 되더라.”
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리더와 수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20대들에게 영웅이 있느냐고 물으니, 없단다. 강의석과 장기하 두 사람을 물어봤다. 강의석은 20대를 좋아할지 모르나, 대부분 20대는 강의석을 싫어하고, 장기하는 20대들이 좋아하긴 하나, 장기하가 20대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김연아는 국가대변자가 될 수는 있어도, 20대를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그러니까 리더가 없는 상태다. 20대에서도 진이 나올 수 있는데, 물론 40~50대의 진과 같은 수직적인 게 아니다. 20대는 조직이 없는데, 수평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어려운 말로 자기 발생적?자기 구성적 복잡계라고 하는데, 수평적인 형태에서 진이 출현할 수 있는 방법을 20대가 풀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진행되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는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전환점에 태어난 거니까, 너무 빠른 거지. 어떻게 보면 남의 별에 잘못 태어난 거다. (웃음) 물론 이민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나를 따르라는 방식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해 보자.’라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오스트럼. 공유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 성향을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로 나누면 게임이론상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선한 사람은 계속 손해를 보고, 악한 자들만 남아 재화를 낭비하게 된다. 이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것을 외부의 힘, 즉 법이나 규율로 막자는 것이 홉스의 발상이며, 근대의 출발이라는 것이 우 박사의 설명.
오스트럼은 홉스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의 이기주의에 대해 한 번은 보복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 공유재를 지킬 수 있는 해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냥 착하면 안 되고 단 한 번! 다만, 작은 집단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국가 단위에서 가능한지는 아직 풀어내지 못했다.
“한국에 이를 적용하면, 마을이다. 20대가 들으면 갑갑해 할 단어지. 40~50대와 달리, 생태적?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20대에겐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없고, 20대끼리 고립돼 있다. 되레 어떤 공간에서는 우정과 환대 대신 악플이 많다. (웃음) 좌파들 세계도 마찬가지다. 반면 오십 대 아저씨들의 골프장 회원제 게시판을 가보라. 진짜 끈적끈적하고 따뜻하다. (웃음) 한국의 우파들은 그런 것을 잘한다. 부패한 사람들에게도 우정과 환대가 있는데, 가난하고 고립된 사람들은 그걸 만들기가 어렵다. 한 20대 소설가에게서 들었는데, 일본에선 20대가 책을 내면 20대들이 책을 사 준다더라.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립돼 있어서 같이 있을 공간을 못 만든다.”
“샤넬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샤넬이 되어라”
그렇다면, 혁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단어에도 에너지가 있다. 어머니나 사랑, 이런 말은 에너지가 크다. ‘혁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은, 진짜 인생 더러운 사람들이다. (웃음) 돈 많은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갑갑해지지. 이건 좌우 개념은 아니고 우리가 아는 단어 중 사회적 성격이 강하고 에너지가 강한 말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건 레닌이나 스탈린 시절의 혁명, 즉 로자 룩셈부르크가 군사 놀이를 하는 철없는 녀석들이라고 표현한 그런 것이 아니고, ‘문화 생산자’라는 개념을 생각했다. 20대가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영웅도 힘 있는 영웅 말고, ‘문화 영웅’이라고 하면 멋있지 않나.”
우 박사는 코코 샤넬을 예로 들었다.
“20세기 여성 해방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샤넬이다. 코르셋을 벗을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아니냐. 물론 코르셋 없는 속옷을 만든 이는 따로 있지만, 상품으로 팔릴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든 사람이 샤넬이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 한 손을 풀어준 사람도 샤넬이고. 샤넬은 화도 잘 내고 말도 막 한 사람인데, 살면서 가장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크리스티앙 디오르다. 디오르는 H라인, A라인 등을 만들었는데, 남성의 눈으로 남성이 보기에 괜찮은 옷을 만든 사람이다. 샤넬은 디오르를 향해 반동이라는 말을 썼다. 20대들은 샤넬을 소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샤넬이 되면 된다. 샤넬은 돈도 잘 벌고 재밌게 살았다. (웃음) 굳이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남자들도 문화 생산자 역할을 만들 수 있다.”
20대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혁명
우 박사의 발제에 이어 20대 논객들과 함께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해 촛불 집회 무렵 <100분 토론>(MBC)에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던 김지윤 씨는 현재의 20대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를 풀었다.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의 20대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담론이 풍부해졌다. 20대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른 세대에게 알려주기도 한 한편, ‘우리 삶이 결국은 이렇구나.’ 하는 체념론도 심어줬다. 2007년 대선 이후 20대 원죄론이 퍼졌고, 20대의 삶은 이명박 시대에 더욱 힘겨워지지 않았나 싶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사치처럼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 1,2학년에 진로를 정하고 스펙을 쌓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시선이 만연해 있다. 이 사회가 꿈꾸기를 유예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이어 왁자지껄하게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대는 청년실업 문제도 심각하고, 젊은 사람의 사망률 1위가 자살일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아직 유효하다. 함께 짱돌을 들고서 팍팍한 삶을 강요하는 정부와 기업훁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혁명은 왁자지껄하게 해야 한다. 20대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희망과 혁명을 얘기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노정태 전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은 20대 당사자보다 기성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지금 우리는 겁에 질려 있는 상황이다. 경제 위기를 위기라고 강조하고 말로 재생함으로써 위기 담론이 20대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20대 문제가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사회운동과 조직화 자체가 망가져 있어서이다. 책에서 당사자 운동을 하자며 지역운동과 정당운동을 제안하셨는데, 문제는 그 각각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진영이나 시민 단체 진영에서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어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20대가 아닌 40대의 문제가 아닌가?”라며
“20대가 기성세대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보다 기성세대가 20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근거로, 샤넬이 의상 혁명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전체적으로 전후 질서가 재편되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들었다.
“함께 진화하고 함께 변화해야 한다. 20대에게 문제가 있는데, 필요한 것은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유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는 지금 20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들었다.
“『88만원 세대』가 나온 이후, 개인적으로 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별 진척된 것이 없다. 행동해 보려고 했는데, 다 망가졌다. 왜 안 됐느냐. 일단은 책 자체가 취업 컨설턴트가 하는 말이 된 거다. 기성세대도 그렇지만, 우리도 우리를 대변 못하는 거다. 앞선 세대들은 공통된 코드화된 헛소리가 있는데, 우리 이십 대는 각자의 헛소릴 한다. 다른 것 아니다. 짱돌과 바리케이드 이야기는 비유고, 20대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20대가 가서 사 주자. 그 얘기다. 그런데, 그 얘길 보지 않고 짱돌과 바리케이드만 보는 거다.”
아울러, 자신의 삶에 대한 객관화된 서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20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서사나 레토릭이 필요한데,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이 책은 강의실에서 20대 냉소주의자들과 싸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 자체가 시행착오의 기록이고,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났다. 20대가 해야 할 것은 거창한 운동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화된 서사가 필요하다. 20대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문화적 콘텐츠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거기서 해결의 단초가 있다고 본다.”
우 박사도 이에 덧붙여, 20대 문제를 제기하면서 황당한 오독의 사례를 들었다.
“『88만원 세대』를 내고 나서, 제일 황당한 것 두 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잘사는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용돈으로 88만 원을 달라고 했다는 거다. 실화다. 둘째는 고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가 한 말인데, 자기 딸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는 거다. 오독에 대한 사례다.”
덧붙여, 이번 책에서 거주권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지금 많은 20대가 지하나 옥탑방에 산다. 이건 아니다. 잔인하다. 어른들은 큰 집에 살면서 말이다. 출발점은 좌우가 아니라 인도주의와 희망이 돼야 한다. 2년 뒤 선거할 때는 정치 운동의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닌데, 내년 지방선거부터는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혁명한다, 고로 존재한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혁명이 꿈틀댔다.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마음속,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고, 샤넬을 불렀다. 모르긴 몰라도, 코르셋 따위 훌쩍 벗어던졌을 것이다. 어떤 혁명의 레시피가 오갔는지는 대충 봤을 테고.
원래 ‘꼰대’들은 그렇다. 젊은 세대들을 사육하고 훈육하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과 울타리에서 20대들을 길들이고자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윗세대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꼰대가 되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늦추기 위해 늘 떠올리는 이 경구. “나이를 먹는 기술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앙드레 모루아) 혁명의 수다 현장에서 나는 우 박사가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움츠리고 웅크려 있는 20대들에게, 특히 대학생들에게,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생동감을 돌려주고 싶다. 아, 걱정 마시라. 혁명하라는 거 아니다. 군사놀이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혁명가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내가 정말로 혁명의 일원이 된다면 따위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 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는 것이다.”(p.35)
다시 말하지만, 나는 혁명이 거창하고 거대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혁명은 꼰대들에 의해 획일화돼서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조장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다른 사회를 꿈꾸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 아닐까. 더 이상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되고, 가방으로부터 손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영웅.” 나는 그런 혁명적 영웅에게 손수 따른 커피 한 잔을 주고픈 사람이다. 내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겐 혁명을 상상하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커피 한 잔, 상상 한 잔, 드실래요?” 혁명을 꿈꾸는 당신에게 나는 커피 한 잔 건넬 용의가 있다.
“이들은 외롭다. 그 이유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수업이나 책을 통해서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말해 줄 수가 없다. 그건 존재론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은 경쟁과 평가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p.54)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혁명으로 확인하는 것. 나는 혁명한다, 고로 존재한다.
한 블로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다.” 백만 번 동의하면서, 나는 한 쿠바 농민의 이야기도 떠올린다. 왜 체 게바라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는 말했다. “혁명 때문이죠.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 혁명이 자극한 삶의 희열을 당신과 함께 나눌 수 있길. 다시 한 번 당신에게 건네는 커피 메뉴는 루프리텔캄.
조한혜정 교수가 ‘이 시대의 수다쟁이, 언어의 연금술사’인 우 박사와 함께 꾸는 꿈, 우정과 환대의 마음으로 모두 함께 꾸는 것도 괜찮겠지?
“나와 우 박사가 맺은 ‘우정’의 품앗이가 ‘환대’의 두레 마을로 둔갑하는 꿈, 청년들이 맺은 무수한 품앗이와 두레 공동체들이 돈의 순환 체계가 지배하는 사회를 무력화하는 ‘개벽의 새벽’을 상상해 본다. ‘우 박사와 그 아이들’을 통해 혁명이라는 불씨를 선물 받은 친구들, 그들이 부는 피리 소리를 들은 이들이 함께 춤추는 꿈을 꾼다. 부모가 돈이 없다고 해서 세 탕의 알바를 뛰어야 하고 수업시간에 졸아야 하는 일이 없는 세상, 남자도 여자도 모두 돌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세상, 하고 싶은 일로 돈도 벌고 사회에 좋은 일도 하는 20대 사회적 기업가들로 세상의 빛깔이 달라져 버린 날을 상상한다. 누림, 멈춤, 마을, 환대 등의 주문을 외우면서, 경쟁과 가시적 성과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정의와 아름다움의 세상을 발견한 이들이 사보타지의 신체를 바꾸어 내면서 새벽을 맞이하는 모습을 꿈꾼다.” (p.17 ‘추천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