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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든 걸 읽고 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일을 한다고 해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Olafur Arnalds의 <Found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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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스테파니처럼 “모든 걸 읽고, 모든 걸 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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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그해 9월 11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놓여 있었다. 신문에는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벌어진 지 5주년을 맞이해서 특집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신문을 훑어보는데, 내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었다. 그건 어떤 방에 서 있는 중년 부인의 모습이었다. 그 기사(//www.sfgate.com/cgi-bin/article.cgi?f=/c/a/2006/09/11/MNG8KL39DJ1.DTL)는 이렇게 시작했다.

캐이시 스테파니는 딸의 방을 고스란히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비가 그려진 니콜 밀러의 이불. 그녀가 자란 산 호세의 집 옷장에는 니콜이 입던 옷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뉴저지 뉴왁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 오르기 전날 밤, 니콜이 남겨 놓은 음성 녹음은 자동 응답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물한 살 니콜이 세상을 떠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듯이. 여러모로 그녀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니콜이 죽고 나서도 계속. 그러니까 5년 동안 니콜의 엄마 스테파니는 방을 치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파니는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자마자 “모든 걸 읽고, 모든 걸 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고 기사에는 나온다. 신문에 인용된 “read everything, see everything, be everywhere, do everything”이라는 스테파니의 말이 얼마나 절박하게 느껴졌는지.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그 다음 문장들이었다.

아침이면 스테파니는 니콜의 침실로 가서 커튼을 걷고 말한다. “잘 잤니, 니콜.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얘야.” 밤에도 마찬가지로. 아침과 밤 사이, 그녀는 그 방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운다.

그 무렵, 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이란 소설을 읽었다. 막 번역된 책이었다. 서울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고, 광화문우체국 옆의 커피빈에 앉아서 책을 다 읽었다. 그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스테파니가 아침부터 밤까지 그 방에 앉아서 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짐작일 뿐이지만, 그리고 문학이라는 게 다 그렇게 모호한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일 뿐이지만. 니콜이 죽고 나서 스테파니는 모든 걸 읽고, 모든 걸 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일을 했겠지만 단 한 가지 일만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일’에 대해서 쓴 기나긴 책이자, 그 일이 물리학의 법칙을 어기면서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과거로 데려가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레종 데트르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 여객기 테러로 아빠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어느 날 꽃병 속에서 발견하게 된 봉투 속의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 6개월에 걸쳐서 뉴욕을 헤매는 이야기다. 단서라고는 단 하나, 봉투 뒤에 적힌 ‘블랙(Black)’이라는 글자. 오스카는 이 ‘블랙’이 사람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 씨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서 자기 아빠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는다. 뉴욕에는 정말 다양한 블랙 씨가 살고 있으며, 각각의 블랙 씨는 저마다 나름의 사연이 있어 소설을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한편으로 이 열쇠라는 건 오스카에게 “우리는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오스카가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다니는 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다. 책을 펼치면 질문으로 이뤄진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찻주전자가 있다면 어떨까? 김이 나올 때마다 주둥이를 여닫는 주전자가 있다면? 그러면 주둥이가 입이 돼서 휘파람으로 멋진 가락을 불어제친다든가, 셰익스피어를 읊는다든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든 지껄이며 날 웃겨주지 않을까? 아빠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찻주전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잠들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아예 주전자들을 세트로 모아서 내가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란 잠수함」을 합창하게 해도 좋겠지. 곤충학은, 내가 아는 프랑스어 표현을 빌자면, 내 레종 데트르(raisons d'etre, 존재 이유) 중 하나니까.

이 책은 여기 나오는 프랑스어 표현 ‘레종 데트르’를 찾아 나서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존재라는 건 얼마나 미약한 것일까?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아침,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는 오래된 중동 문제, 종교 갈등, 석유를 둘러싼 이익 다툼 등으로 잘 설명해놓았다. 그 설명을 들으면 왜 테러범들이 여객기를 그 높은 건물에 충돌시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왜 하필이면 오스카의 아빠가 그날 아침에 거기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스테파니의 딸 니콜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비행기에 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게 아닌가?

시인 마종기와 루시드 폴의 조윤석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 지식하우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셋째는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73년에 낳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에서 직장을 다녔습니다. 돈도 많이 번다고 하더니, 9.11 사태 이후 한 3년 동안 상당한 우울증에 시달려 며느리가 혼쭐이 났었지요. 그날 지상에서 사라진 두 개의 무역센터 중 한쪽 빌딩 105층에는 ‘윈도스(windows)’라는 식당이 있었어요. 바로 그 식당에서 셋째는 월수금 사흘을 사장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회의를 해왔는데, 사건이 터진 날은 아들이 그곳에 올라가지 않는 화요일이었고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요. 대부분의 경우 사망자들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셋째는 사장과 동료들의 시체를 찾아준다고 집에도 안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 글에 나오는 ‘윈도스’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270페이지에 나오는 ‘세계의 창’과 동일한 장소다. 거기는 오스카가 찾아간 아그네스 블랙이 웨이트리스로 근무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오스카의 아빠가 모임 때문에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오스카는 그 사실을 알고 이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그들은 함께 죽었을 테니까. 진짜 의문은 그들이 어떻게 함께 죽었느냐 였다. 레스토랑의 반대편 끝에 있었는지, 아니면 바로 옆에 있었는지 같은. 어쩌면 그들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사진들 중에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함께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도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면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그저 서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슨 얘기를 했을까? 공통점이라곤 한군데도 없었는데.

아무리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해도 이 사실만은 설명하지 못한다. 왜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죽어야만 하는 것인지. 중동에서 죽어간 불쌍한 사람들의 숫자만큼 미국인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간신히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순간에도 오스카의 아빠와 스테파니의 딸과 마종기 시인의 셋째 아들과 일하던 사람들이 죽어야만 할 이유는 절대로 찾지 못할 것이다. 모든 개별적인 죽음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죽음이란 이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는다. 그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살아갈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게 된다. 오스카가 말하는 ‘레종 데트르’란 이런 뜻이다.

시간에는 왜 역사가 존재하는가?

다음은 오스카만의 아주 특별한, 어떤 ‘시간의 역사’다.

첫 번째 메시지 : 오전 8시 52분
두 번째 메시지 : 오전 9시 12분
세 번째 메시지 : 오전 9시 31분
네 번째 메시지 : 오전 9시 46분
다섯 번째 메시지 : 오전 10시 4분


아빠가 오스카 집의 자동 응답기에 여섯 번째 메시지를 녹음한 건 정확하게 2001년 9월 11일 오전 10시 22분 27초였다. 9.11 사태로 집에 일찍 돌아온 오스카는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앞서 다섯 개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녹음됐는지 들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지 못한다.

오스카가 녹음한 안내 메시지 : 안녕하세요, 셸의 집입니다. 오늘의 소식입니다. 시베리아의 유카티아는 몹시 춥습니다. 숨을 내쉬면 곧바로 숨결이 파삭 소리를 내며 얼어버립니다. 그곳 사람들은 그 소리를 별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답니다. 엄청나게 추운 날에는, 마을 전체가 사람과 동물의 숨결이 만들어낸 안개로 뒤덮이죠.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여섯 번째 메시지 :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그러니까 열 번의 질문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는 바람에 마저 끝맺지 못한 마지막 한 번의 질문만. 아빠가 죽어가는 그 시간에 오스카는 과연 ‘거기 있었을까?’ 아홉 살이 감당하기에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믿을 수 없게 잔인한 이 질문. ‘시간의 역사’란 때로 이처럼 끔찍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스카의 아빠가 이미 남겨 놓았다. 그러니까 추억 속에다. 답을 알아보자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요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 즉 “내가 『시간의 역사』 첫 번째 장을 읽은 건 아빠가 아직 살아 계셨을 때였다.”로 시작하는.

내가 『시간의 역사』 첫 번째 장을 읽은 건 아빠가 아직 살아 계셨을 때였다. 삶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무의미한지, 우주와 시간에 비하면 내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얼마나 사소한 문제인지를 생각하면 부츠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그날 밤 아빠 품에 안겨 그 책을 놓고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아빠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무슨 문제?” “우리가 상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문제요.” “음, 네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내려서 핀셋으로 모래 한 알갱이를 집어 1밀리미터 옆으로 옮겨 놓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니?” “아마 전 탈수 증상으로 죽고 말겠죠.” “아니, 네가 모래알 한 개를 옮겨 놓을 때, 바로 그때를 말하는 거야.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니?” “모르겠어요, 어떻게 돼요?” “생각해 보렴.” 생각해 봤다. “모래알 하나를 옮긴다고 생각해보고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니?” “모래알 하나를 옮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그건 네가 사하라를 변화시켰다는 뜻이야.”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사하라는 광대무변의 사막이야.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 왔다고. 그런데 네가 그 사막을 바꿨단 말이야!” “정말 그러네요!”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외쳤다. “제가 사하라를 바꿨어요!” “무슨 의미겠니?” “무슨 뜻인데요? 말해 주세요.” “음, 지금 <모나리자>를 그린다든가, 암을 치료한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그저 모래 알갱이 하나를 1밀리미터 옆으로 옮기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요?”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그때까지 흘러왔던 대로 쭉 진행되었을 테지…….” “으흠?”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한다면, 그러면……?” 나는 침대 위에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가짜 별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제가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을 바꾼 거예요!” “바로 그거야.” “제가 우주를 바꿨어요!” “네가 해냈어.” “전 신이에요!” “넌 무신론자잖아.” “전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침대 위로 펄썩 쓰러져 아빠의 팔에 안겼다. 우리는 함께 신나게 웃었다.

만약 우리가 ‘거기에 없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그때까지 흘러왔던 대로 쭉 진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1밀리미터라도 존재했다면 그 역사는 바뀌어야만 마땅하리라. 거기에 있었다면, 누군가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는 또 누군가를 사랑했을 테니까. 시간의 역사란 우리가 태어나 누군가를 만나고 또 그들을 사랑한 역사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이 소설에는 스티븐 호킹이 오스카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다. 그 편지에서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썼다.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그 무엇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아이슬란드 출신의 뮤지션 올라푸르 아르날드의 <Eulogy for Evolution>은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서만 듣고 싶었던 음반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머릿속에는 질문이 가득 찬 한 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오스카의 질문, 스티븐 호킹의 질문, 오스카 할머니의 질문(“왜 누구나 사랑을 나눌까?”) 같은 것들. 아르날드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이런 의미다. 바람을 맞으며 거리에 서서, 혹은 방 안에 혼자 앉아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 그의 음악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 몇십 분에 걸쳐서 그의 음악을 들을 뿐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 몇십 분을 보내고 나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은 것처럼 위로를 받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다음은 올라푸르 아르날드만의 아주 특별한, ‘시간의 역사’다.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 Erla's Waltz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 Raein
2009년 4월 15일 수요일 : Romance
2009년 4월 16일 목요일 : Allt var? hljott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 Lost Song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 Faun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 Ljosi?


2009년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올라푸르 아르날드는 ‘발견된 노래들(//foundsongs.erasedtapes.com/)’이란 사이트에 모두 7개의 곡들을 발표했다. 각 곡은 그날 작곡되고 연주됐으며,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은 그날 바로 그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이로써 그 일주일은 올라푸르 아르날드에게는 특별한 일주일이 됐다. 지금도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이 곡들을 다운로드 받아서 들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이 곡들을 다 듣고 나면, 다시 일주일이 지나가는 셈이다. 암흑물질을 생각하는 스티븐 호킹처럼 이유를 설명하긴 곤란하지만, 이 곡들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듣고 나면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 나는 시간에도 역사라는 게 있다면, 그 역사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소설들이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스테파니처럼 “모든 걸 읽고, 모든 걸 보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 자체를 좌우하는 건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라는 걸. 그건 시간의 역사를 연구한 스티븐 호킹이 결국 깨닫게 된 것이자 니콜의 엄마인 스테파니가 보낸 5년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 5년 동안, 스테파니가 할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일은 니콜의 귀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는 일이었다.

올라푸르 아르날드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을 위로하는 건 지나간 시간의 역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들었던 음악을 듣고 또 듣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어느 순간 위로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 뒤의 기나긴 애도는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들이 거기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마지막 몇 장은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담은 것이리라. 잠시나마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걸. 그리하여 다시 사랑의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한다는 걸.

아빠가 보고 싶어요.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에요. 그 투박한 손으로 라면을 끓여주시면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는데. 정말 맛있었는데. 지금 계신 곳은 평안하신가요. 그리고 엄마랑 상필이 항상 지켜봐 주세요. 나는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요.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그리고 2009년 4월 12일, 나는 용산 참사로 죽은 윤용헌 씨의 장남 윤헌구 군이 아빠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읽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우리는 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기나긴 소설들을 읽는 것일까?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기나긴 소설들을 다 읽고 나면 우리의 삶은 얼마만큼 변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건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니 그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언제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류의 역사는 조금이라도 바뀌는 것일까?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애도조차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일마저도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들에 대해, 그들이 여전히 거기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계속 쓰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기나긴 소설들을 읽어 왔다면. 그리고 내가 읽은 그 모든 소설들이 결코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용산에서 죽은 다섯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출간된 책의 제목은 『여기 사람이 있다』(삶이보이는창)다. 그 제목은 어쩌면 죽기 직전, 오스카의 아빠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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