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열 번째 맛]하늘을 담은 천상의 칵테일

angel's share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잘 만든 칵테일은 각각의 맛이 어우러져 있지만 각각의 맛이 살아있어 자신의 향을 살리면서 한잔의 예술로써 입 속으로 녹아 든다. 뉴욕도 세상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제각각 여러 색깔로 어우러져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개성 있게 살아간다.


뉴욕과 칵테일은 서로 많은 것이 닮았다. 다양한 것들이 섞여 다양한 맛을 내며 그 조합만으로 수천, 수만 가지의 맛을 낼 수도 있다. 게다가 섞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색을 내야 한다. 또한, 모두 섞였다 하더라도, 자신 특유의 향이나 맛을 지키고 있다는 점 모두 뉴욕이라는 하나의 큰 도시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지만 개성을 잃지 않는 점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뉴요커들은 칵테일을 무척이나 즐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익숙해진 '브런치'에도 뉴요커들은 한 가지를 더 필요로 한다. 바로 칵테일! 어느 브런치 레스토랑에 가도 몇 가지 칵테일은 꼭 준비되어 있다. 벨리니Bellini, 미모사Mimosa, 블러디 메리Bloody Mary는 가장 대표적인 브런치 칵테일로 바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대부분 주문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벨리니는 샴페인에 복숭아 퓨레를 섞은 것으로 만들기에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상큼한 복숭아 향과 샴페인의 버블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어준다.

유명한 일식 Masa의 bar. Sake Drop이라는 오리지날 칵테일. 사케와 레몬, 라임 등을 넣은 칵테일이다.

칵테일의 정의는 원래 증류주와 물, 설탕, 비터스Bitters(허브와 시트러스를 알코올과 섞은 쓴맛이 나는 술의 일종)등을 섞는다는 뜻이었으나, 점차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종류의 음료를 섞는 것을 총칭하게 되었다. 정의가 내려진 것은 1806년 뉴욕의 한 언론사이지만 사실 칵테일의 시작은 헤아릴 수도 없이 예전부터였다. 이원복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포도주를 그냥 마시지 않고 물을 타서 마셨다고 한다. 또한, 맥주에도 꿀이나 다른 것을 첨가해서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런 기술이나 배율이 필요 없는 가장 기본적인 '섞음'이지만 이것이 최초 칵테일의 시작인 것이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꼭대기 층에 위치한 mo bar. 이름이 Mandarin sunset으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그럼 왜 이름을 칵테일Cocktail로 붙인 걸까. 어원을 풀어보면 cock은 수탉이고 tail은 꼬리로 뜻으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해서인지 다양한 설이 있다. 먼저, 미국 독립전쟁 당시 기병대 군인들이 술을 섞어서 즐겨 마셨는데, 하루는 장난삼아 수탉의 꼬리를 꽂아 둔 것을 보고 'Great Cock's Tail!'이라고 말한 것이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원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프랑스인인 페이쇼가 달걀 등을 섞은 음료를 만들고, 이를 프랑스어인 coquetier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cocktail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기원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뉴올리언스에는 작년에 칵테일 박물관까지 개관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뉴욕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coffee bar K. 진지하게 얼음을 카빙하는 바텐더들의 손길에 감탄하는 곳이다.

뉴요커들은 마치 칵테일의 기원이 뉴욕인 것처럼 칵테일을 너무 좋아해서 브런치에서도 마시고, 레스토랑에서도 마시고, 매년 'Best of New York'에서도 그 해의 칵테일을 꼽아 마시러 간다. 칵테일을 즐기는 뉴요커들을 보고 있으면 칵테일, 즉 술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인식하는 술이란 밤에 취할 때까지 마시는 음료였다. 뉴욕에서의 술은 식전에 입맛을 돋우며 식사의 코스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식후에도 마시는데 재미있는 건 식전주, 식후주도 모두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57가에 있는 Nobu57은 아예 1층은 모두 바로 꾸며져 있다. 바에 잠시 앉아 칵테일을 마시다가 2층의 테이블로 옮겨 식사를 한다.

이런 건 비단 뉴욕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식사에 칵테일이나 와인과 같은 술을 곁들이는 것은 하나의 기호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식사와 함께 맥주나 사와(소주 등에 레몬 등의 신맛이 나는 과일 즙을 섞어 가볍게 마실 수 있게 만든 일본식 칵테일)를 즐겨 마신다. 우리에게 친숙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도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맥주를 좋아해 식사와 함께, 또는 식전에 맥주를 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지는 술에 대한 좋지 못한 고정관념은 아마 술을 억지로 권하고 취할 때까지 마시는 잘못된 술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취하도록 마시는 게 아니라 취하지 않으려고 마시고 또 즐기고자 마시는 뉴요커처럼 우리도 조금 더 술을 '취하는 알코올'이 아닌 '즐기는 음료'로 생각하면 좋겠다.

제대로 만든 칵테일, Angel's Share

빠른 속도로 칵테일을 만들기 때문에 사진은 모두 흔들렸지만 다행히 미소만은 남아 있다.

칵테일은 적당한 비율로 잘 섞기만 하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미묘한 맛의 차이를 가진다. 그 차이는 가장 기본적인 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얼음이란 칵테일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얼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술의 맛을 바꿔준다. 어설픈 얼음에서는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 맛을 내기 어렵다. 아무리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칵테일도 훌륭한 얼음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맛이 탁해지고 흐려진다.

Coffee bar K의 얼음. Angel's Share와 같이 얼음을 직접 손으로 동그랗게 깎아서 준다.

얼음은 통으로 얼려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크기로, 필요한 모양으로 얼음을 쪼개고 모양을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고 뉴욕 최고의 바텐더가 말해주었다. 얼음은 쉬이 녹아, 술의 맛을 더하기도, 감하기도 하기에 술의 배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멋진 배합이 된 칵테일이라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얼음에 그 맛이 흐려지거나 너무 진해진다. 바의 대부분 안타까운 현실은 얼음을 통째로 얼리고 필요에 따라 얼음을 다듬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기계의 얼음 틀대로 만들어진 천편일률적인 얼음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 얼음의 차이를 가르쳐준 곳이 바로 Angel's Share라는 작은 바였다.

Angel's Share 벽면에 그려져 있는 천사 그림. 원본보다는 조금 뚱한 표정이 왠지 술 한잔한 것 같다.

Angel's Share는 밖에서 보이는 그 흔한 간판이나 표지조차 없는, East village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 또한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본 주점 안의 작은 푯말도 없는 문이 다였다. 설마 이곳에 정말 바가 있을까, 하는 의문에 손잡이를 돌리면 전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탈리아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조용한 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한 개의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은, 그 바의 단골들이 즐기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찾기 힘든 위치지만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으로 붐볐고, 조금만 늦게 도착하면 20-30분씩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토록 사람이 많았던 것은 독특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 기다림 끝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칵테일 때문이었다.

Angel's Share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기본적인 칵테일뿐 아니라 계절마다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고, 때로는 손님이 원하는 칵테일도 즉흥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첫 방문 때, 어떤 칵테일이 자신 있는지 묻는 말에, 되려 무슨 맛을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장난기가 섞여 어려운 주문을 하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언제나 다른 특별한 칵테일을 맛보게 되었다.

"이제 봄이 시작되네요.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봄을 느끼게 해주세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건지 레몬으로 나비 같은 모양을 만든 시원한 핑크색은 정말 봄날의 따뜻한 오후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봄이라고 거리에서 진짜 나비를 본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여기에서라도 나비를 만나 달콤한 복숭아 맛과 레몬이 함께 봄 내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름이 다 끝나가요. 지금 마시기에 좋은 칵테일 부탁해요.
여름의 마지막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조금은 늦은 여름, 바다 한번 못 간 올해를 한탄하며 부탁했던 칵테일은 한잔에 바다를 담고 있었다. 파란색의 바다는 리치(열대 과일의 한 종류로 향이 강하고 달다)를 갈아 만들었다. 곁들여준 민트잎 또한 푸른 여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냥 섞는 방식이 아닌, 얼음을 갈아 만드는 스타일로 더욱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만든 칵테일은 각각의 맛이 어우러져 있지만 각각의 맛이 살아있어 자신의 향을 살리면서 한잔의 예술로써 입 속으로 녹아 든다. 뉴욕도 세상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제각각 여러 색깔로 어우러져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개성 있게 살아간다. 뉴요커이지만 본래 인종과 고향의 특색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틀 도쿄도, 차이나타운도, 리틀 이태리도 존재하면서도 또한 뉴요커인 것이다. 뉴욕의 하늘을 녹여낸 듯한 칵테일을 맛보며 가슴에 뉴욕을 담아본다.

"뉴욕은 밤하늘이 참 아름다워요. 그 하늘을 칵테일에 담을 수 있을까요?"



칵테일 더 깊이 맛보기

stylish 칵테일
장동은 저 | 중앙books

단지 술이 약해 즐기는 논알코올음료가 아닌, 알코올을 달콤함 속에 숨기는 ‘작업주’의 대명사가 아닌 트렌드세터로서 즐기는 스타일리시 칵테일. 무엇이든 마찬가지지만 칵테일 역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무엇을 주문해야할 지 몰라 “아무거나요”하던 초보자도, 이 책 한 권이면 프로처럼 만들고, 더 쉽고 재미있게 스타일리시하게 즐길 수 있다.

한손에 잡히는 칵테일&위스키
Kenshi Kirokane 저/박현신 역/원융희 감수 | 베스트홈(쿠켄)

『시마부장』으로 유명한 만화 작가 히로카네 켄지의 『한손에 잡히는 와인』에 이어 칵테일과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할 책. 상식적으로 알면 괜찮은 와인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해준 『한손에 잡히는 와인』과 같은 맥락으로 이 책은 칵테일과 위스키에 대한 간략하면서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Bartender's Guide
Parragon | Parragon Inc

Whether you're looking to mix a traditional martini, or concoct one of today's more trendy cocktails, you'll find everything you need to shake, stir, and serve over 2,000 drinks with style in this easy-to-use Bartender's Guide.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6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지원

대학 시절 4년간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신에 대해, 인생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끝에 결정한 요리 유학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뉴욕과 함께 농밀한 데이트를 보냈던 1년이었다.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것은 결코 길지 않지만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10년과도 같이 지냈던 그 해를,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모자란 글에 담아본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