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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도 십자가 위의 고독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와 릴리 크라우스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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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말할 수 있는 입이 있고, 그 입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어줄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수한 고독은 과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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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데뷔소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다시 읽은 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항구도시인 말라가에서였다. 무료함을 참을 수 없어 한국에서 가져간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봤더니 뜻밖에도 영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야자수가 즐비한 시청 거리의 관광안내소에 무료 영어 신문이 비치됐던 게 생각났다. 별 생각 없이 신문을 들춰봤더니 지중해 해변의 근사한 집들을 사고팔거나 빌려주는 광고들이 가득했다. 요컨대 말라가는 안달루시아와 지중해에 대한, 평생에 걸친 환상을 끝내 버리지 못한 영국인들이 은퇴한 뒤에 노후생활을 보내려고 찾아오는 휴양지였다. 11월임에도 낮이면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말라가 서쪽 산타카탈리나 골목 9번지에 있는 3층짜리 빌라 엘리자. 거기에 미리 한국에서 구한 방이 있었다.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지중해에 닿을 수 있는 곳.

외국을 여행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풍경이란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들이다. 혼자서 여행하는 자에게는 그 낯선 풍경들이 뜻밖에도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고 전화나 TV도 없었던 그 방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물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 얼굴들은 희미해졌다. 처음부터 고독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고독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무런 원인이 없는 고독. 어떤 이물질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고독.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 온통 바락 오바마에 대한 뉴스뿐이었다. 외국의 특파원이 등장해서 현지 소식을 전했고, 미국 흑인들의 반응이 육성으로 들렸다. 그러니까 그날 오바마는 새로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됐던 것이다. 물론 그럴 줄 알았다. 사실 누구라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리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겠는가? 그럼에도 그 소식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이란 그 뉴스가 지구에서 2억 광년쯤 떨어진 은하에서 벌어진 별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보다도 더 현실감이 없었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순수한 고독의 중심을 향한 여행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말할 수 있는 입이 있고, 그 입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어줄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수한 고독은 과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혼자 자는 추운 방에서,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극히 세속적인 뉴스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풍경이 바로 순수한 고독의 풍경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 세상에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내 말에 동의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내겐 상관없다. 적어도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라면 내 말에 동의할 테니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도 어떤 사람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뉴스들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순수한 고독 속으로 이끄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프랑스에서는 1791년부터 줄곧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평민복장으로 변장하고 도망치던 왕이 바렌느에서 붙잡혔었다. 파리에는 국민병이라는 군대가 생겼고 시장이 임명되어 있었다. 성직자 자신들도 편이 갈라져 있었다. 도처에서 언론이 발전되었다. 파리의 거리들에서는 사람들이 『민중의 동무』라는 신문을 큰소리로 읽었다. 대대적인 개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투리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미터법이 생겨났다.

고작 스무 살의 바타이유는 순수한 고독을 어떻게 이야기로 구성했는가?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788년 4월 19일 아침, 프랑스의 라 로셸 항구에서 두 척의 배 ‘생 장’과 ‘생 폴’을 타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머나먼 땅 베트남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말 그대로 이 땅의 끝까지 이르는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순수한 고독이었다. 그 순수한 고독의 중심이 어디냐면 이 짧은 소설의 원제인 ‘안남’이라고 해야 할 테지만, 짐작할 수 있다시피 안남은 죄가 없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그 어느 곳이라고 하더라도 순수한 고독의 중심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책에도 안남의 풍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니까.

저녁이 되어 그들은 마을 어귀에 있는 어떤 오두막에서 잤다. 푸른 벼와 연밥 냄새가 났다.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새로운 삶을 발견했다. 마을은 어떤 오두막을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옷차림이 달랐다. 그들은 머리 주위에 칙칙한 빛깔의 띠를 두르고 있었다. 길다랗고 하얀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옷은 길고 검은 색이었다. 카트린느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그런 옷을 하나 입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미니크는 지아 라이 사람들과 같이 일을 했다. 그는 그들을 도와서 강낭콩을 가꾸고 돼지 먹이를 주었다. 그는 큰 소리로 코끼리를 몰아가며 쟁기로 논을 갈았다. 온 사방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들이 얻어쓰게 된 오두막집 안에는 하루 종일 불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바 딘에서보다도 더 잘 살았다. 도미니크는 농부들과 같이 산돼지 사냥을 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 말은 베트남말보다 더 어려웠다. 특유의 억양법에 더하여 구문도 달랐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씨 좋게 맞아주었었다. 그러나 고되게 일을 하고 나서는 그들을 외롭게 홀로 남겨놓는 것이었다.

안남 사람들은 전혀 외롭지 않은 땅에서 그들은 외롭다. 안남에 그들에게 마련된 세속의 삶은 없기 때문이다. 안남의 풍속은 그 땅에 사는 농부들에게는 일상의 일부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배워야만 한다. 요컨대 안남에 선교사들의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든 일상을 프랑스에 버리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기는 그들에게 세상의 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척의 배, ‘생 장’과 ‘생 폴’이 베트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또 배에서 내린 수사와 수녀들이 베트남의 중심을 향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일상의 흔적은 그들에게서 점점 지워진다. 일상이란 지극히 세속적인 일들, 인간의 일들, 요컨대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끝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든 일들을 뜻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역사라는 건 그런 자잘한 세속적인 일들의 총합인, 모든 이야기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지극히 세속적일 수밖에 없는 거대한 이야기이리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역사에는 권선징악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믿지 않는다. 그건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역사에는 힘 있는 자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것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이 역사의 그런 논리를 닮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우리에게서 일상의 흔적이 조금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여행한다. 그리하여 모든 여행은 세속을 등지고 그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그 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세속의 반대편, 거기에는 성스러움이 존재해야만 할 테지. 결말을 말하지 않은 채로 이 소설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자.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아름다운 건 세속을 떠나 성스러움의 핵심 속으로 들어간 선교사들이 결국 순수한 고독을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순수한 고독과 성스러움의 경계선이다. 우리는 모두 그 경계선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도 십자가 위의 고독한 사내,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누구라도 그 사실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를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더없이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도 그 고독한 사내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이 소설을 아름답게 만든다. 순수한 고독의 중심까지 가 본 사람들에게 내가 느끼는 경탄은, 그런 점에서 미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절망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피아니스트 릴리 크라우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진주만을 기습했고 그 이튿날 네덜란드는 일본과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일본군은 곧 석유가 풍부한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침범했다. 그 무렵, 릴리 크라우스는 가족들과 함께 자바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전기에는 자바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뒤, 그녀는 다시는 예전의 릴리 크라우스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릴리와 가족들은 수용소로 들어갔고, 그 수용소에서 보낸 1년 동안 릴리는 자신이 실제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 1년 동안, 릴리는 남편과 아이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지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힌 내 남편을 때리진 않았다. 내 방에서 남편의 감옥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밤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가 실제로 거기서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런 회상들.

미래를 몰랐기 때문에 죄수들은 희망을, 존엄을, 자존을 거의 상실했다. 얼굴에, 목소리에, 자세에, 서로를 대하는 잔인한 태도에서 그 사실들이 드러났다.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사멸해가든지, 아니면 내 안에 이미 지니고 있는 뭔가로 완전히 돌아감으로써 이 경험들을 내 삶의 보물로 만들든지. 나는 필사적으로 신에게 매달렸다.


피아니스트인 릴리 크라우스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일본군들이 국기를 게양할 때마다 전축으로 틀어놓은 일본 국가를 듣는 일이었다. 수용소에서,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기본 조성도 없는, 양철을 두드리는 듯하며, 예측하지 못한, 어딘가 임의의 음에서 끝나는” 일본 국가를 들을 때마다 릴리 크라우스는 자신의 인생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365번 정도.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릴리 크라우스 같은 피아니스트에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군국주의 나라의 국가일 뿐일 때, 그녀는 죽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1943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죄수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망각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비참하고 병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억과 망각의 차원을 넘어서 그들의 영혼에 각인된 상태였다. 그들은 평소에 식당으로 쓰는, 거대한 헛간이라고 말하면 좋을 곳으로 모여들었다. 쇠막대를 설치한 창문들은 드높았고, 서까래는 하도 높아서 거기에 거미줄이 있다고 한들 제거할 수 없었다. 죄수들이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마루는 끽끽거리며 소리를 냈다. 바깥은 춥고 습했지만, 실내에는 스팀이 들어왔으며, 죄수들이 모여들자 서로의 온기로 더욱 따뜻해졌다. 그들의 앞쪽에는 낡은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릴리는 피아노 앞으로 와서 앉았고, 두 개의 양초에 불이 켜졌다. 너른 헛간 같은 공간에 이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늘 그렇듯이 그녀의 검은 머리타래가 어깨에 드리워졌다. 그녀는 유난히 집시처럼 보였다.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뭘 연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완벽한 침묵뿐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연주를 끝냈을 때, 다시 수용소로 들어가야만 할 시각이 됐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걸어갔다. 많은 여인들이 비통하게 울었다.

그날, 그녀의 연주를 들었던 사람의 회상이다. 나는 수용소의 텅 빈 구석으로 울려 퍼지던 그 피아노 선율을 상상한다. 그녀는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모노로 녹음된 그녀의 모차르트 소나타곡을 듣고 있노라면 바느질 흔적도 보이지 않는 수수한 옷감이 떠오른다. 피아노 하나로만 연주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하나로만 연주됐기 때문에 그 선율은 따뜻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곡의 이름을 알든 모르든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은 사람들이다. 그 곡을 들었을 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는가?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 그 선율들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즈음의 일일 것이다. 어느 여름날, 하교하던 길에 친구들과 개울에 가서 수영한 일이 있었다. 얕은 개울은 미지근했지만, 다리 밑 그늘 속의 개울은 차가웠다. 아마도 일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릴리 크라우스의 피아노 선율은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절망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대개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 말하게 마련이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이다. 예술은 매우 통속적으로 표현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이기에 아름답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통속을 사랑한다. 통속을 거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와서 나는 성당에 갈 때마다 피에타를 다룬 그림이나 조각을 빼놓지 않고 찾아봤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오른쪽 가슴으로 피를 흘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거기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들의 눈동자는 거의 텅 비어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하겠지만,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눈동자는 텅 비고 텅 비고, 또 완전히 비어 버린다. 거의 매번 피에타를 다룬 작품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이건 성당마다 걸리는 통속적인 하나의 양식이 됐는데도 그 양식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절망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거기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이게 바로 소설가들이 하는 일들이다. 그들은 추상적인 어떤 것을 가장 세속적인 형태, 즉 이야기와 묘사로 표현하는 일을 부단히 연습하는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세속의 반대편을 향해 걸어 망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뒤에야 직면하게 되는 고독은 매우 순수한 것이어서 소설에서는 직접 표현할 수 없다. 그건 피에타와 같은 하나의 장면으로만 묘사된다. 과연 어떻게 묘사되는가는 한 소설가의 개성과 능력에 달린 문제다. 바타이유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 그 고독을 결국 어떤 장면으로 묘사했는가를 내가 여기서 쓰지 못하는 까닭은 그게 이 소설의 거의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성직자들의 태연하기만 한 모습과 창백함에 군인들은 감동했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떠났다.

죽이기 위해 그 성직자들을 뒤쫓던 베트남 군인들이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내가 말라가에서 혼자서 본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 혹은 릴리 크라우스가 수용소의 식당 건물에서 연주하던 피아노곡, 아니면 성당마다 걸려 있는 피에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해도 될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안남이 아니었다. 그 나라는 십자가 위의 고독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인간인 한에는 그 나라에 다다를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술은 생겨났다. 그 고독에 가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아름다움이라는 걸 발명한 셈이다. 젊은 소설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가 어떻게 순수한 고독을 표현했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 힌트를 줄 수는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피에르 피뇨 드 브레엔느는 어린 황제에게 가장 쉬운 교리문답의 초보를 가르쳤다. 주교는 칸이 여자 가정교사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외로웠던 것이다. 여자 가정교사는 그를 위로했다. 그는 따뜻한 젖이 흐르는 그녀의 무거운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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