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즐겨보던 과학만화가 있었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들과 함께 책이 너덜거릴 정도로 봤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뇌란 참 신기한 것 같다. 과학과 관련한 글을 쓰려고 하니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만화책이 떠오르다니. 또 평소에는 읽지도 않는 과학 관련 책을 무심코 읽었는데 바로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이었다. 과학에 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는 터라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제목에 끌려 궁금했던 것들만 읽었는데 인연처럼 정재승 교수의 강연회를 가게 되고 이렇게 강연회 후기까지 쓰게 되니 가볍지만 그 가벼움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과학의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나.
강연회를 가기 전엔 정재승 교수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만큼 난 과학엔 문외한이었는데 알고 보니 저자인 정재승 교수는 꽤 유명한 분이다. “2001년 서른 살의 정재승은 세상은 놀랍도록 복잡하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복잡하며, 복잡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로 MBC프로그램 <느낌표!>에 소개되었으며, 그 책이 지난 15일엔 서울대 수시모집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대상으로 집계한 감명 깊은 도서 목록에서 당당하게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이번에 출간한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도전 무한지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과학 칼럼을 쓰고 있다. 그런 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아, 나의 과학에 대한 무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과학에세이로 시작한 글쓰기 비법!
정재승 교수는 중학교 때 만난 물상 선생님을 존경한다. 선생님은 중학생이던 그에게 1985년 12월에 창간한 <과학동아>라는 잡지를 건네면서 재미있는 기사를 정해 요약하고 그 기사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에세이로 제출하라고 했단다. 그 숙제는 유독 그에게만 주어졌고 중학교 내내 꼬박꼬박 그 에세이를 제출했다. 그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은 학교공부와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쁜데 나는 학교 공부뿐 아니라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중학생으로선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공부하고 있으므로 특별하고 선택받은 사람이구나.”라고. 그래서 고등학교에 가면 이런 과학 공부를 버리고 입시공부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그게 싫었다. 결국 그걸 계기로 과학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물상 선생님의 에세이 숙제 덕분이니 그에겐 정말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은 <과학동아>가 창간 10주년을 맞이하던 1995년 12월이었다. 창간호부터 <과학동아>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10년 동안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아인슈타인, 블랙홀 같은 주제로 비슷한 기사가 매해 실렸으며 지루했고 읽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창간 10주년을 맞아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기획하고 획기적인 변화를 주고자 했다. 그때 기획한 것이 「영화 속 과학」이라는 특집기사였다. 그러나 명망 있는 교수들은 다들 영화를 어떻게 과학의 눈으로 보느냐며 거절을 했단다. 그걸 입사한 지 3개월 된 선배가 잡지사 측에 이야길 하여 정재승 교수에게 청탁이 들어왔다고 한다.
<과학동아>는 그를 과학의 길로 가도록 이끈 잡지였다. 더구나 창간호부터 10년을 보아온 잡지였으니 그 잡지의 필자가 되어 글을 쓴다는 것은 앞뒤 잴 필요도 없었다. 잘 쓰든 못 쓰든 무조건 써보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해서 처음 보낸 원고가 “아폴로 13호가 우주에 갔다가 귀환한 그 이야기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알력으로 어떻게 해석되는가?”와 같은 현학적인 표현과 잘 모르는 개념으로 가득한 글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되돌아왔다. 편집부에선 이런 글이 아닌 재미있는 글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재미있으려면 원초적이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단다. 그래서 쓰게 된 글이 영화 속 과학의 오류를 찾아낸 이런 글이었다. “우주는 공기가 없는데 영화에선 우주선이 날아가면 굉음을 낸다.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해서 전달되니까 우주에 가서 들으면 아무리 빨리 날아도 소리가 안 난다.” 그는 이런 글을 써서 보내야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 특집기사 덕분에 그달 <과학동아>는 매진이 되었으며 그 덕분에 한 회만 실을 특집기사를 그 후 6개월 동안 연재하게 되었다.
그 기사를 쓰면서 정재승 교수는 글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딴엔 산문에도 운율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글을 보내기 전에 여러 번 읽고 수정하여 보냈다. 하지만 담당 기자는 애써 쓴 글을 기계적으로 잘라버려 재미없는 문장을 만들었다. 속상했지만 그때의 그는 기껏 대학원생에 불과한 힘없는 필자였기에 뭐라고 항의할 처지가 아니었단다.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문제가 되는 문장을 표시해주면 그가 고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나고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장력이 좋아지고 독자들도 늘어났으며 6개월 더, 6개월 더 하던 것이 5년 5개월이나 되는 장기 연재를 했다고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돈을 주고 글쓰기를 배운 것이 아니라 돈을 받으면서 글쓰기 트레이닝을 받았으니 그 과정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책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는 그에게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는 그의 글이 활자화되어 남이 읽는 글을 쓰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건 포괄적으로 말해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과 연결하는 노력과 훈련을 한 셈이다. 결국 정재승 교수는 <과학동아> 덕분에 과학을 알게 되고, 글쓰기를 배웠으며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것이다.
세상은 놀랍도록 복잡하지만 복잡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후 미국에 간 정재승 교수는 '자신이 독자라면 어떤 과학책을 읽고 싶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게 되는데 그때 쓴 글이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은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원고를 본 출판사 측에서 글은 바꾸지 않겠으나 제목만은 바꿨으면 한다며 책 속 소제목에 들어간 ‘반딧불이 콘서트에서 발견한 과학’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이전에 나온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십오만 부나 팔렸음에도 그 긴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그였기에 긴 제목은 싫었다고 한다. 결국 출판사 측에서 기존의 소제목에서 ‘과학’과 ‘콘서트’라는 단어를 추출하여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라고 지었다고 한다.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이 과분한 상찬을 받은 책이라고 한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의 논문들이 실린 어려운 책임에도 중고생의 추천도서, 200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방송까지 타면서 책도 많이 팔렸다. 또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로 말미암아 과학자이면서 글을 쓰는 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책이 나오면 판매량을 주시한다. 칭찬이 많아도 악평이 하나 있으면 그걸 프린트하여 분석한단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를 고민하고 악평을 쓴 독자의 아이디까지 기억해둔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도 그에겐 즐거움을 주는 편이다. 그의 책을 읽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무슨 생각으로 쓴 거냐는 질문도 받을 수 있고,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가와 자신의 책을 누군가 돈 주고 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저자이기에 가능하기 때문인데 그런 저자로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 책이 바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였다.
2001년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후 12월 31일 밤에 다음 책을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기에 다음 책에 대한 기대치 역시 높았다. 또한 그 자신이 그에게 부여한 기대나 과중한 사명감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담감이 커져갔다고 한다. 연구와 논문으로 바쁜 탓도 있었지만 한동안은 그냥 첫 책을 끝으로 글을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럴 무렵인 2006년에 MBC <도전 무한지식>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과학코너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글이 아닌 말로써 오 분 동안 그것도 매일 과학에 관한 발언권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그게 과학자로서는 엄청난 특혜와 혜택, 기쁨이었다. 그래서 이걸 잘 활용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했다. 그 내용을 묶어 출간한 책이 바로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이다.
7년 동안 그의 책이 나오길 기다리던 사람들은 겨우 이런 책을 내려던 거였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은 다음 책들을 집필하는데 속력을 내게 했고 어떤 책이든 책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부터 숨통을 틔게 해 준 고마운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두 페이지정도 밖에 안 되는 짧고 가벼운 책이다. 아내가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 말하기를 화장실에서 읽으면 최고인 책이라고 평가를 내려주었단다. 화장실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생각해보니 딱 그 정도이면 될 것 같았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은 이제 시작이다. 이미 세 권 정도의 원고 분량이 있으며 6~7월이면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나올 예정이다. 그의 바람은 방송을 5년 정도 계속하여 이 책을 열 번째까지 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에이, 가벼운 책이네”라고 생각했다가 “어, 이 사람 이런 책을 계속 내네?” 흥미로워하며 첫 책을 낼 땐 몰랐는데 열 번째 책까지 내는 걸 보니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의 방점은 정말 ‘무한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전’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또 네이버나 다른 포탈의 지식 검색과 차별되는 책을 만들고 싶단다. 그보다 더 큰 바람이라면 이 책을 시리즈로 출간하여 MBC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출판사인 <달>의 역사로도 만들고, 그런 것들이 모여 과학의 역사도 되는 것이 그의 세 번째 책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에 대한 애정이자 야심 찬 기획이란다.
과학과 뇌 연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사월의 마녀』를 보면 말을 하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중증 뇌성마비 환자가 나온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의료진들과 대화를 한다. 호흡을 조절하여 내보내면 모니터상에 문자로 전환되어 대화를 할 수 있는 '호흡 인터페이스'를 통한 것이다. 책에 관한 강연이 끝난 후 정재승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것과 비슷하여 강연을 듣는 동안 『사월의 마녀』의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보여준 자료들은 그가 하는 연구의 과정들이다. 그 과정들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글로만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그래도 워낙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 짧게 적어본다.
정재승 교수는 원자력 발전소의 과학기술자인 호머 심슨의 작은 뇌를 보여주며 “우리는 우리의 뇌를 본적이 없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우리가 그 사람의 뇌가 얼만 한지 어떤 모양인지 어디가 발달했는지 알 수 있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뇌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우주에서 제일 복잡한 기관으로서 이보다 복잡한 기관은 지구 밖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은 뇌를 열지 않고도 뇌를 촬영해서 뇌가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연구는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사람의 뇌는 신경세포들이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말도 하고 감각도 느끼고 기억도 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게도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역시 정보처리하면서 전기신호를 사용한다. 그런 것처럼 뇌라는 생물학적인 정보처리기관도 전기신호를 사용하고 우리가 만든 컴퓨터도 전기신호를 사용하니 우리가 그 둘을 잘 통역만 해주면 뇌가 생각하는 것을 컴퓨터로 보내 컴퓨터가 행동하고 컴퓨터가 계산한 내용을 뇌에 집어넣으며 그 둘 사이를 대화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뇌만 살아 있는 전신마비인 환자를 'FUCTIONAL MRI'에 넣어 왼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 들려고 노력하면 그와 관련한 뇌가 활동한다. 그 영역을 찾아내 1mm도 안 되는 전극을 뇌에 박은 후 모니터를 그 앞에 놓아 알파벳을 써서 커서를 깜박이게 한다. 이때 오른손을 드는 생각을 하면 오른쪽으로 커서가 움직이고, 잡으라고 하면 커서 위에 글씨가 써진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연구의 시작이다. 이런 걸 이용하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을 때 그 생각을 읽어 뭔가 행동할 수 있는 일들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로보캅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비슷한 분야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엑소스켈레톤(Exoskeleton, 외골격)을 이용하여 300kg의 배낭을 메고도 거뜬히 걸어 다닐 수 있게 만들고, 이보다 더 활용한 것이 시속 24km 이상의 속도를 내는 ‘스프링 워커‘이다. 이걸 신으면 41.195km를 1시간에 주파할 수 있다. 또한 보통의 마라토너는 완주 후 녹초가 되는 방면에 '스프링 워커'를 신은 사람은 멀쩡하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다가올 미래에 좀 더 실생활에 가까운 현실적인, 인간에게 정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과 동시에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일"로 엄청난 경제효과를 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미 국방부에서는 동력화 된 '엑소스켈레톤'을 장착하고 '스프링 워커'를 신은 슈퍼맨 병사를 만들 프로젝트를 착수하여 군사 목적으로 사용할 기세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연구라고 말한다. 어쨌든 이런 기술을 이용하여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것도 그가 하는 연구의 과정이란다.
정재승 교수의 연구 중 반은 앞서 말한 ‘브레인컴퓨터인터페이스’이고 나머지 반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과정 중에 사람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찍는 일이다. 그것과 관련된 심리 실험 게임을 해보면 좋겠다는 독자들이 있어 그 게임을 실현해보기로 했다. 일명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이 게임은 한 사람에게 만 원을 준 후 상대방에게 주고 싶은 만큼 돈을 나눠 주는 건데 받겠다면 나눠 가지면 되지만 상대방이 안 받겠다고 하면 돈을 되돌려줘야 하는 거다. 이 실험은 상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서 실시한 결과 품앗이나 공동으로 집단 활동하는 민족이나 부족일수록 소득분배에 있어 공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통찰력이라고 한다. 실험을 위해 나온 두 명의 독자가 정재승 교수의 말처럼 한 번의 창피함으로 수고비(!)도 받고 참석한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 유쾌한 게임이었다. 또 다른 심리 실험으로는 ‘미켈로비어’라는 맥주광고를 본 후 나타나는 남녀 시청자들의 감정이입 현상과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선호도 조사에서 사람들의 선택으로 일어나는 브랜드 파워가 있었다. 그 모든 실험들을 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뇌의 활동을 촬영하여 연구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연구라고 한다.
‘무한지식’은 불가능하지만 이 책의 방점은 ‘도전’에 찍혀있다
그가 어렸을 때 과학 책들을 읽으면서 과학을 공부하려 했던 이유는 과학이 국가경쟁력이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과 우주와 생명과 의식들이 주는 경이로움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기에 그걸 탐구하는 삶 자체가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일종의 존재론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가르쳐 주었고 천체물리학을 공부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전에 나온 두 권의 책이 물리학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내용을 다룬 책이라면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이후의 책은 뇌와 관련한 책들일 것이다. 이건 일종의 인식론으로 볼 수 있는데 ‘뇌가 망가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모습의 우주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들이다.
심리실험으로 인간의 행동을 담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존재론적 의문들, 인식론적 의문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그나 다른 사람들이 한다 해도 그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그 정신이 과학을 고귀하게 만들고 인간을 경이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무한지식‘은 불가능하지만 이 책의 방점은 ’도전‘에 찍혀있다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가벼운 책이지만 이런 책들이 쌓이고 쌓여서 문득 생각나서 아무페이지나 읽었을 때 웃음을 주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 때 “아하!” 하는 깨달음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삶의 통찰력이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고 있구나 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으면 이 책은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알고 이 책을 읽으면 애정을 갖고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말을 끝으로 열정적인 강연을 끝냈다. 그리고 이어진 독자들의 질문시간.
다른 때와 다르게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정재승 교수는 굴(?)하지 않고 독자들의 질문을 거의 다 받았다. 워낙 꼼꼼하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그인지라 그의 답변을 다 적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적고자 한다.
그의 글쓰기 비법을 묻는 독자에겐 "적절한 인용, 딱 맞는 비유, 명쾌한 예제만 들면 과학에 관한 글쓰기는 가능하다"고 했고, 추리소설(2001년에 다음 책으로 구상한 책이 바로 추리소설이란다. 이 책은 내년 초쯤 나올 예정)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데 그 책이 궁금하다고 하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추적하는 자, 그리고 쫓기는 자, 세 사람의 관점에서 쓴 그들의 심리와 이야기를 엮었다"라고 했다. 또한 뇌 연구로 인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악용되기 전에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참고 그런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미래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뇌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전해주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말을 해줘야 하느냐는 독자의 질문에 “사람의 뇌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공부를 못한다거나 혹은 머리가 나빠서 성적이 나빠요 라고 말하는 것이 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노력 안 하는 마음, 노력을 열심히 안 하는 마음, 그러나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럼에도 참으면서 안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뇌 안에 코딩되어 있다. 이건 습관의 문제로 그 코딩된 생각을 노력해서 바꾸면 바뀐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강연회로 말미암아 과학이라면 귀부터 막아버리던 나는, "과학엔 관심 같은 것 없어!" 하고 내 뇌 속에 박힌 전형적인 습관들이 조금 바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무겁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과학으로의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처럼 경이롭고 신비했다. 그가 강조하듯 과학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과학자가 있다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분야가 즐거우면서 흥미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정재승 교수의 강연은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 재미있고 명쾌한 강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