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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나침반 세우기 - 홍세화, 우석훈 공개 강의

홍세화, 우석훈 강연에 다녀와서 요즘 만나는 친구들마다 읽어보라 권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우석훈, 박권일님이 쓴 『88만원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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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친구들마다 읽어보라 권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우석훈, 박권일님이 쓴 『88만원세대』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대를 정의하는 용어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88만원’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아차’ 싶으면서 이제 10대로 들어서는 두 딸들의 앞날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이 한순간 절실한 무언가로 다가오는 거였습니다.

책은 속도를 내서 읽을 만큼 녹록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당장의 오늘보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반성이 들었다고 할까요? 이런 까닭으로 지난 주 문턱없는 밥집 2층 ‘작은책’의 강의실에서 열린 홍세화, 우석훈님의 공개강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문턱없는 밥집 앞에서

문턱없는 밥집은 홍대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서교가든 쪽으로 마을버스를 타거나 발품을 좀 팔면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간판이 참으로 정겨운 이곳은 윤구병 선생님께서 농촌 공동체의 부활과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꿈꾸며 마련된 유기농 식당으로 윤구병 선생님과 변산공동체, 도서출판 보리가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아마도 아래의 두 가지 사진에 실린 내용에 다 나와 있지 않을까 하네요. 밥집인데 똑같은 밥을 먹고도 각자 내는 돈이 다르다는 이 자율(?)적이고 따뜻한 식당 위층이 바로 강의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문턱없는 밥집에 걸려있는 글
문턱없는 밥집에 걸려있는 글

조금 늦게 간 탓인지 꽉 찬 자리에 이미 시작한 홍세화 님의 열띤 강의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 기울이는 사람들 속에 저도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홍세화님은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의 공동저자로 이번 강의에 나섰는데 책에는 안건모, 박준성, 이임하, 정태인, 하종강 님과 함께 역사, 노동, 교육, 여성, 경제 글쓰기 분야에서 80이 주인인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홍세화, 우석훈 공개강연회가 열린 작은책 강의실

책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출판사의 이름이 하도 재미있어서 강연날 “누가 철수고 누가 영희예요?” 하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러자 함박웃음의 한 여자분이 “제가 영희예요.” 하셨습니다. 사실 본명은 아니고 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표 박정훈 님과 함께하시는 김은지 님이었어요. 그런데 왠지 두 분을 뵈니 ‘철수와영희’라는 이름이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홍세화 님은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들의 파업을 예로 들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비정규직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노조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던 주부노동자들이 파업을 선택하고 투쟁을 하는 현장에 취재를 가셨는데 인터뷰 끝에 ‘80만 원의 보수를 받아 어디에 주로 쓰시는가?’ 하고 묻자 그중 절대다수가 30~40만원을 아이들의 사교육비로 쓴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라는 칼 막스의 말이 떠오르셨다는 선생님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각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이 과연 주체적으로 형성된 것인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의 의식은 한 번 안으로 들어와 생성되면 그게 옳든, 옳지 않든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그 의식에 따라 자신을 고집하거나 합리화하려 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작업을 맡아야 하는 학교교육이 민주적이지 못하고 국가 권력이 작용하는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나의 주인으로 폭넓은 독서를 통해 타인의 의식세계를 탐조하고 열린 토론으로 동세대와 소통하며 여행과 다양한 경험을 오감으로 느껴보고 이를 통해 사진을 성찰하고 분석,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학교교육은 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공부와 성찰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는데 그러나 어디 우리의 학교 교육이 그러한가요?

홍세화 님의 강연 모습.
“스스로의 주체적인 의식형성이 중요하지요.”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88만원세대』의 우석훈 교수의 강연은 소위 ‘짱돌’ 들고 투쟁한 정치세대인 386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왜 사교육이 더 극성을 부리는가? 과연 지금의 10대와 20대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했습니다.

우석훈 님의 강연 모습.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행동하는 세대가 필요합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 시간, 다양한 질문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에서 선생님과 함께 참여한 한 10대 여고생은 ‘자신의 20대 언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않는 한 어떠한 설득도 소용이 없고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를 풀기위해 팀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소위 집단 해법을 강조했는데요, 고3들이 어느 해에 다 같이 수능 파업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말씀에 다들 웃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씁쓸했답니다. 꼭 그런 희생을 해법으로 이야기할 만큼 어른 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부모 세대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할까요?

저처럼 꼬맹이 손을 잡고 온 엄마도 있었고, 10대 학생들도 있었고 막 20대를 시작한 혈기 넘치는 청년도 있었고 4,50대를 살아가는 세대들도 함께한 열띤 강의는 시간을 넘겨 이어지는 질문 시간으로 예상시간을 훌쩍 넘겨버렸지만 마지막 뒤풀이를 알리는 공지에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해야만 했습니다.

아이처럼 브이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으시는 홍세화 님께 사인도 받았습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큰 아이를 둔 저는 ‘부모로 아이의 10년 뒤, 20년 뒤의 미래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록 천한 일을 하지만 너는 공부 잘해서 부디 성공해서 잘살아라.’ 했던 우리 부모 세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준 것일까? 그게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지금 부모라는 이름으로 ‘다 너 잘되라는 거야.’ 하며 우리 아이들을 수능이라는 개미지옥으로 몰아넣으면서도 저마다 당위성을 찾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그렇게 해서 내 아이는 사회의 20%의 지배계급에 들기를 바라지만 그거야말로 어릴 적 30명이 5개의 의자를 가지고 하던 ‘의자 뺏기 놀이’가 아니고 뭘까요? 의자에 앉지 못한 아이들이 느낄 패배의식을 어디 가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강의에 함께했던 둘째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돌아오는 길,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고 자신의 삶의 나침반을 세우고 희망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나부터 달라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네요. 더 늦기 전에 말이죠.

[TIP]
* 문턱없는 밥집 02-324- 4190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사이트 //www.edu4all.kr/
* 월간 《작은 책》 //www.sbook.co.kr/
- 월간 《작은 책》에서는 올 11월을 시작으로 내년 10월까지 특집강좌를 엽니다. 한홍구, 강수돌, 윤구병, 이철기, 김진숙, 배경내, 김상봉, 김규항, 박노자, 김송이, 손석춘, 우석훈 등의 강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슬로건으로 강연회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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