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도 좋은 점이 있다
전 오늘 종말론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일단 정리부터 한 번 해보죠. 세상엔 두 종류의 종말론이 있습니다. 약한 종말론과 강한 종말론.
앨 고어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인터넷에서는 쥬세리노라는 브라질 예언가가 몇 시간 동안 화제였죠. 그가 고어의 노벨상 수상뿐만 아니라 몇 십 년 뒤의 지구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이후 종말론의 기운이 꺾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실망할 겁니다. 종말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요. 유명한 종말론들 중 아직 시기가 끝나지 않은 것들도 있고 계속 새로운 종말론들도 나오고 있지요. 얼마 전에는 2012년 지구 종말설이 인터넷에서 인기였습니다. 얼핏 보니 쥬세리노의 예언도 2012년설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일 텐데, 전 오늘 종말론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일단 정리부터 한 번 해보죠. 세상엔 두 종류의 종말론이 있습니다. 약한 종말론과 강한 종말론. 종교와 관련된 종말론들은 대부분 약한 종말론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망하고 ‘너네들’은 다 죽지만 뭔가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며 심지어 영생까지 누리죠. 사막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종교적 종말론이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치사하지만 원래 신자들의 이기주의를 수용하지 않으면 인기 얻기가 힘듭니다. 강한 종말론은 훨씬 비관적입니다. 세상은 그냥 망하고 여기엔 어떤 탈출구도 없다는 거죠. 노스트라다무스가 정말로 강한 종말론을 믿었는지는 몰라도 80년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신도들 중 상당수는 아무런 희망 없는 강한 종말론을 믿었을 겁니다.
약한 종말론이 인기인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죠. 사실 우린 영원히 흘러가는 세계의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지만 후손들에 의해 우리의 일부분은 계속 전달되고 생은 계속되지요. 꼭 우리가 내세나 초자연적인 영생을 믿지 않아도 이런 믿음은 우리 삶을 편하게 합니다. 하긴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신경 쓰느라 삶을 망쳐서는 안 되지요.
약한 종말론도 비슷하긴 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유익할 수 있습니다. ‘너네들은 죽었지만 우리는 살지롱!’과 같은 이기적인 정서에 기반을 둔 종말론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전 모르겠어요. 하지만 ‘재앙이 다가오고 있으나 그걸 우리가 노력한다면 막을 수 있다’ 정도의 종말론은 세상에 아주 유익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지요. 성서적 관점에서 보면 『침묵의 봄』은 예언서입니다. 끔찍한 환경파괴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예견한 종말론 예언서지요. 지금 와서 보면 카슨이 예언한 구체적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카슨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카슨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예언을 깨트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구체적인 미래를 예시하며 약한 종말론을 선포하는 종말론자들은 그래서 유익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의미 있는 예언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강한 종말론 역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강한 종말론은 원론적으로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문명은 언젠가 멸망할 거예요.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런 것처럼. 사실이지만 우린 이걸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유약하지만 세상은 훨씬 강인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적어도 우리가 살기 좋은 세계는 굉장히 쉽게 망가집니다. 몇 만 년마다 한 번씩 터지고 지금 터질 때가 되었다는 요세미티 대공원의 대화산만 터져도 그 결과가 엄청날걸요. 하늘에서 돌덩이 하나가 떨어져도 인류 멸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피하고 예방할 만큼 발전한다고 해도 언젠가 지구의 멸망, 태양의 멸망, 궁극적인 우주의 멸망이 닥칩니다. 결국 언젠가는 우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지요. 그것이 내일이건, 2012년이건 몇 억 년 뒤이건 간에요.
우린 이런 생각을 그냥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보다 더 많이 살 후손들에게 고민을 물려주고 그 전에 일찍 죽으려고만 하겠죠. 여러분 대부분이 그럴걸요. (“언젠가 세상이 망해도 제가 살아있을 때만 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는 정신은 유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개인도 마찬가지고 인류라는 보다 커다란 집합체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유한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뀔 겁니다. 우린 습관적으로 미래지향적입니다. 모든 건 후손들과 그들이 이룩할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인류의 죽음을 미리 받아들이고 언젠가 미래의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궁극적인 끝이 다가올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면서 행동하는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준비를 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13,500원(10% + 1%)
환경/생태학 분야의 고전이며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중의 하나. TIME지가 뽑은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인 저자. 아무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40년전에 저자 레이첼 카슨은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일깨웠다. 생태계의 파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