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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불만족의 균형 맞추기

점점 더 우리가 쓰는 기계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전 요새 그런 걸 자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전 풀HD로 텔레비전을 바꾸었는데, 확실히 화질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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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우리가 쓰는 기계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전 요새 그런 걸 자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전 풀HD로 텔레비전을 바꾸었는데, 확실히 화질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화면도 더 크고요. 하지만 전 그 장점보다는 단점들이 더 신경 쓰입니다. 가장 짜증나는 건 브라운관에서 LCD로 넘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 암부표현력이죠. 검은색이 붕 뜬 회색인 화면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상당수가 이 때문에 빛을 잃어요. 그러나 이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해결되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LED 백라이트 TV 가격이 백만 원대로 떨어질까요?

텔레비전 본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컴퓨터도 그렇고 인터넷 서비스도 그렇고 케이블 텔레비전 서비스도 그렇고 DVD도 그렇고…. 옛날 사람들 같다면 마술이나 기적이라고 느꼈을 기계들을 일상적으로 다루면서도 우린 여전히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고물이라고 느끼죠.

최근 출시되는 풀HD TV ⓒ NEWSIS

왜 이들은 모두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는 걸까요? 이미 기술적인 미래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데 우리 주변의 물건들은 그 미래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우린 벌써 과거에 살고 있는 겁니다. 특히 DVD가 그렇죠. 이 매체는 시작부터 고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는데, DVD라는 매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들은 차세대 DVD를 기다렸습니다. 심지어 다음 세대가 나오기 전에는 DVD를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지금까지 그 선언을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론만 따진다면 이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원래 삶은 불만족스럽게 마련이고 또 불만족스러워야 합니다. 가끔 사람들은 왜 우린 문명의 이기 속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으냐고 묻습니다. 현문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면 좋긴 하겠죠. 하지만 발전은 없을 겁니다. 현대 문명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죠. 이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같은 기계들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양성평등, 노예제 폐지, 공화국과 같은 것들 역시 결코 주어진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발명품이죠. 하긴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노예들도 행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볼 때 올바른 삶은 아니죠. 그냥 비난을 할 수 없을 뿐이지. 장기적으로 우린 조금씩 불만족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 불행을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 다음 세대가 더 좋은 삶을 살게 되겠죠.

아무리 이렇게 정당화하려 해도, 막 새로 산 텔레비전에 만족하지 못하고 툴툴거려야 한다는 건 짜증나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계속 툴툴거려야만 우리의 후손들은 더 좋은 화질의 텔레비전을 보게 되겠죠. 그건 노예제 폐지만큼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린 미래를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역시 만족할 수 있어야 하죠. 현재의 불만족이 후손들을 위한 의무라면 현재의 행복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제 텔레비전에 대한 불만족은 아마 더 나은 기술이 발명되면 해소될 겁니다. 앞으로도 더 해상도가 높고 더 다양한 기능을 가진 텔레비전들이 나오겠지만 몇 년 안에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도달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는 일이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라면 전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현대인의 무력감도 대부분 여기에서 기인하는 걸 겁니다. 해결방법을 알지만 전혀 손을 쓸 수 없다는 걸 인식하는 것.

다행히도 세상에는 우리가 덜 무력해질 수 있는 해소방법도 존재합니다. 아무개 씨 집 앞에서 ‘운하 반대!’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는 건 더 좋은 텔레비전을 기다리는 것만큼 실효성이 떨어지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당사자는 무력하게 자기 방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대신 뭔가 했다는 뿌듯한 느낌을 얻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보다 효과가 뚜렷한 일들이 설마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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