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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 - 『개미』

소설 『개미』는 개미라는 집단의 개개인과 전체 구성원, 살아가는 방식과 그 조직의 생성과 소멸까지 방대한 관찰과 탐구를 통해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섬세함을 이끌어 내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개미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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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개미』에 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역사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 문학은 더욱 본격적으로 그 발흥의 속도를 높여 갑니다. 성경과 몇몇 구전 전설 외에 딱히 거리가 없었던 ‘이야기’는 인쇄술의 발달이라는 기술 지원을 등에 업는 동시에 인간이라는 가깝고 보편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방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개미』 리뷰에 앞서 ‘신에서 인간으로’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소설 『개미』가 이름만 개미지 실제 개미가 다루는 이야기는 사실상 인간과 인간의 방식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개미라는 집단의 개개인과 전체 구성원, 살아가는 방식과 그 조직의 생성과 소멸까지 방대한 관찰과 탐구를 통해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섬세함을 이끌어 내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개미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개미』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 줄거리가 서로 교차하면서 흘러갑니다. 하나는 인간의 이야기로, 유명한 곤충학자인 에드몽 웰즈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이를 수사하러 갔던 경찰들, 에드몽 웰즈가 유산 상속자로 지정한 조나탕 가족 등 관련 인물들이 계속 실종되는 의문스런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의문의 죽음과 뒤이은 실종에 관심을 둔 형사 멜리에스와 에드몽 웰즈의 딸인 기자 레티샤는 건물 지하실에 감추어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내막을 파고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한 축은 개미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바로 옆의 퐁텐블로 숲 속 불개미 연방은 나날이 번창하는 가운데, 여왕개미 후보인 클리푸니가 결혼 비행을 준비합니다. 수개미와 함께 날아올라 짝짓기를 마친 클리푸니는 땅으로 내려와 새로운 불개미 왕국 건설을 위해 땅을 파고들어가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개미 연방 ‘벨로캉’의 탄생입니다.

인간과 개미, 두 개의 병렬형 스토리는 서로 계속 엇갈리면서 소설의 두 기둥이 되어 펼쳐져 나갑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덩치가 거대한 인간에 대한 묘사는 가장 사회화된 집단이라는 평가가 있음에도 대단히 미시적이며, 개미는 오히려 그 조직의 구성과 시작, 체계까지를 모두 다루는 거시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는 인간 개체와 개미 집단의 이야기가 결국 같은 줄기로 합쳐질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두 스토리를 통틀어 서 있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개미, 그것도 여왕개미와 같은 주연급이 아닌 병정개미 ‘103683호’입니다. 따로 이름을 정하는 대신 태어난 순서대로 붙는 숫자로 불리는 이 병정개미는 그러나 생각이 깊고 신중해 마치 개미 세계의 현자와도 같은 존재로 소설 『개미』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103호(줄여서 103호라고 부릅니다)는 개미 세계에서 생활하던 중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는데, 그건 바로 개미 세계 내에 반체제 인사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위냄새를 풍기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은 개미의 영원한 적이자 공포의 파괴자인 ‘손가락들’(개미는 인간을 거대한 분홍빛 공 모양의 손가락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인간이 손가락으로 개미를 짓누르고 개미집을 부수기 때문입니다)에 대단히 우호적이며, 손가락들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왕개미 클리푸니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심지어 이들은 손가락들이야말로 이 세계의 창조자이자 신이며, 신에게 거역하는 것은 곧 개미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하며 개미 세계의 지하조직에서 끊임없이 활동합니다. 103호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비밀 조직의 멤버가 되고, 특유의 신중함으로 조직 내에서 상당한 신뢰를 받는 인물이 됩니다.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언급한 대로 인간에 대해 적개심이 대단합니다. 클리푸니의 고향 개미집을 부숴버렸던 ‘손가락들’을 정벌하고자 클리푸니는 끊임없이 개미 세력을 확장했고, 마침내 거대한 군대를 구성할 수 있는 순간이 오자,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던 병정개미 103호를 총지휘관으로 삼아 ‘손가락들’에 대한 정벌령을 내립니다.

103호는 묘하게도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손가락원정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섭니다. 표면적으로야 그는 불개미 제국 벨로캉의 손가락원정대 사령관이었지만, 그의 몸속에는 반체제 개미들이 전해준 비밀 임무, ‘메르쿠리우스 임무’라 불리는 또 다른 임무가 있었습니다. 반체제 개미들은 103호에게 반드시 손가락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며 고치에 싸인 무언가를 103호에게 건네주고, 103호는 ‘손가락들’을 무찌르고, 또 그 ‘손가락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위해 원정길에 나섭니다.

소설 『개미』의 재미가 가장 극적으로 치솟는 부분이 바로 이 앞뒤의 이야기입니다. 복잡한 구조나 서사의 이야기는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불개미 제국의 원정과 전쟁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불개미가 기본적으로 지닌 무기는 근접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강한 턱과 원거리에서 사격할 수 있는 엉덩이의 개미산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조사에 근거해 작가 베르베르는 놀라운 상상력을 펼쳐 냅니다.

개미들의 전쟁에는 개미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벨로캉 개미들은 영토 확장을 위한 다른 개미와의 전쟁에서 육탄전의 우위를 점하고자 풍뎅이를 마치 전차처럼 활용해 적진으로 뛰어드는 방식을 고안하는가 하면, 풍뎅이와 동맹하여 풍뎅이 뿔을 잡고 날아올라 공중에서 개미산을 쏘는 공군 폭격대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신무기로 불개미 군단은 심지어 꿀벌과 말벌 같은 곤충도 제압하며, 이들에게서 ‘손가락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독액도 확보합니다.

오랜 관찰과 그에 기반을 둔 상상력이 융합되면서 소설 『개미』의 창조적인 재미가 시작됩니다. 개미는 인간처럼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하지 않고, 늘 어두운 곳에 살기에 문자를 통해 지식을 전승할 수도 없습니다. 이 부분을 작가 베르베르는 ‘페로몬’을 통해 풀어냅니다. 개미가 상호 간에 내뿜는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이 바로 소리이자 문자가 됩니다. 위급상황에 강하고 빠르게 뿜어내는 위험신호 페로몬을 통해 개미는 위험을 알아차리고, 그들이 알아낸 새로운 지식과 노하우는 해당 정보를 담은 페로몬을 고치 속에 넣어 개미집 한가운데 도서관에 보관함으로써 지켜집니다.

실제 곤충 생태가 저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불개미라는 사회집단이 또 다른 사회집단과 맞붙는 과정에서 조직력에 많은 힘을 기대는 상황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창조적으로 표현해 낸 작가의 역량은 함께 지켜볼 만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조직력의 진화는 비단 개미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
소설의 또 다른 축인 인간의 스토리를 더듬어 가 봅시다. 처음 에드몽 웰즈의 죽음 이후 종적 없이 실종되었던 인물들은 모두 웰즈가 절대 가지 말라고 강조했던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지하실은 마치 자궁과 같이,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형태로 설계된 독특한 구조입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 그들은 지하실에서 웰즈 박사의 놀라운 발명품을 만나는데, 바로 ‘로제타 석’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인간은 음성을 사용하고 개미는 페로몬을 사용하므로 서로 대화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둘을 통역할 수 있는 장치를 웰즈 박사가 개발하고 이름을 ‘로제타 석’으로 붙입니다. 인간의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그에 걸맞은 페로몬을 분사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한 장치입니다. 이를 통해 지하에 갇힌 인간들은 지하 개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신호를 받고 인간과 교류한 이들이 바로 개미 세계의 반체제 개미들입니다.

반체제 개미들은 인간과 직접 교신했음을 확인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신의 목소리로 받아들이면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지하실의 인간은 이 제물로 연명해 갑니다) 그들을 숭배합니다. 지하실의 인간들은 자신들을 구조해 달라고 외부 세계에 알리는 수단으로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개미들에게 인간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이 메시지가 든 고치를 품에 안고 병정개미 103호는 원정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지하실에 갇힌 인간들의 집단적 진화가 시작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좁은 공간에 갇힌 인간들은 처음에는 서로 분열하고 ?려고 싸우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 일종의 정신수련과 같은 의식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명상을 통해 육체의 고통을 넘어서려고 노력합니다. 극단적 상황에서 약육강식이 아닌 상생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점은 좀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소설에서 지하실의 사람들은 그렇게 갇힌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위의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소설 『개미』는 집단이라는 주제를 조금씩 건드리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의 집단과 개미의 집단은 계속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을 작품 전체에서 보여줍니다. 작가는 바로 그러한 공동체, 특별한 이윤 다툼이나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공동체에 대해 이상향을 지닌 듯합니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개미의 소통 수단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개미는 페로몬을 내뿜는 방식 외에도 또 다른 수단을 통해 소통하는데, 바로 더듬이 접촉입니다. 개미 신경 속에 흐르는 물질은 더듬이로 서로 접촉할 때 상호 간 신경계가 연결되면서 접촉하는 동안 두 개미의 모든 생각과 사고를 공유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 내용이 실제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설 『개미』에서 개미는 이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작가가 그러한 100% 오류 없는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상을 지녔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지하실에 갇힌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일련의 공동체 정신을 만들어가는 환상적인 과정도 티벳이나 동양 쪽 알려지지 않은 정신수련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련의 신비주의 양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르베르가 신비주의에 경도된 모습은 소설 『개미』 외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속작인 『타나토노트』는 죽은 뒤의 사후세계에 대해 독창적인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이 저승의 기본 모델이 불교에서 말하는 아홉 개의 동심원 우주와 거의 흡사한 형태고, 특히 이른바 뉴에이지로 불리는 세계관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 『개미』의 특징은 관찰에 기반을 둔 창의력, 뉴에이지스러운 공동체 의식에 대한 집착 외에도 과학 그 자체를 다루는 기법 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 사용되는 실험군과 대조군입니다. 인간 사회와 같은 조직과 집단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지표로서 베르베르는 전혀 새로운 개미 사회를 보여 줍니다. 음성 대신 페로몬을 쓰고, 컴퓨터 대신 모두의 신경을 잇는 집단 사고 시스템을 만드는 개미의 습성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또 다른 거대 사회 집단이 어떤 양태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어 인간 사회와 대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상상력의 거울을 제공합니다.

베르베르의 『개미』가 나온 지도 벌써 한 10여 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미』의 양장판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에 궁금해서 들여다보았지만, 예전에 세 권의 책으로 나왔던 내용이 양장 다섯 권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테디셀러일수록 페이퍼백과 같이 저렴하고 보편적인 판형으로 널리 보급되는 영미권의 출판 현실과 맞대어 볼 때, 지식강국이 되고자 하는 한국의 모습은 독자로서도, 지식산업 관련 종사자로서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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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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