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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사랑을 하나? 사랑을 해서 고독한가?

고독..사랑? 사랑..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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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빨리 죽었고 그녀의 죽음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랑이 지난 후 그는 지독하게 오만해졌고 고독해졌다.

그해 여름 급격히 친하게 된 남자를 따라 강화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거칠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차 지붕에 빗방울이 내리꽂히는 느낌이 끓는 물 위에서 튀는 기름처럼 생생했다. 나는 그때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다가 『백년의 고독』의 이 문장을 생각했다.

“그는 뻬뜨라 꼬떼스의 침실 지붕을 아연판으로 덮어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솟아오르곤 하던 그녀에 대한 깊은 친밀감을 오롯하게 맛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마꼰도에 최초로 아연판을 가져온 사람이 되었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자동차의 지붕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사랑을 예감했다. 나는 그를 아연이라 부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Jose Garcia Marquez, 1928-)
고독한 날은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장에서 원피스를 꺼내 입고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걷는다. 지금보다 더 젊은 날에는 빨리 사랑을 하고 싶어했다. 반지하방 길거리를 향해 있던 연인의 방을 노크하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른 무엇보다도 그 작은 창문을 기억하게 되리라는 걸 그 시절에는 몰랐었다. 연인의 기억이 빠져나간 자리에 그 창문만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으리라는 걸 몰랐었다. 아직도 그를 생각할 때 눈물이 나는 순간이 있다. 그의 방으로 숨어들던 나! 창문에 노크하고 들어가던 나! 발밑의 창문 불빛을 보고 안심하면서 빙그레 웃던 나! 할 일 없는 사람처럼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기다리던 나! 항상 배고프다고 말하던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오던 그! 도서관에서 나를 위해 책을 빌려오던 그! 연인의 방을 나온 뒤에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 일이 있다. 오직 연인만이 알고 있는 나. 그러므로 나는 무리 속에서도 고독했다. 지독하게 고독하기 때문에 사랑을 했던 것일까? 지독하게 사랑해서 고독해진 것일까? 늘 궁금했다. 고독과 사랑이 함께 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최고의 책은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라고 어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입으로 말했었다.

아연이 좋아했던 것은, 수많은 전투와 열네 번의 암살의 위험에서 상처 없이 살아남고, 총살형을 받고도 살아남아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작업실을 갖고 있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 그가 각각 다른 열일곱의 여자에게서 열일곱 명의 아들을 낳기 전에 사랑했던 것은 나이 어린 소녀였다. “그는 양피지에, 변소 벽에, 팔뚝에 시를 썼고 모든 시 속에 사랑하는 레메디오스가 나타났다. 나른한 오후 두 시의 공기 속에 있는 그녀, 나방들이 뒤덮고 있는 물, 시계 안에 있는 그녀, 아침 빵에서 솟아오르는 김 속에 있는 그녀, 어디에나 있는 그녀, 영원히 존재하는 그녀.”

그녀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빨리 죽었고 그녀의 죽음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랑이 지난 후 그는 지독하게 오만해졌고 고독해졌다.

아연은 내가 떠나면 자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 거라고 말했다.

*원피스를 즐겨 입는 나는 미녀 레메디오스가 좋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갈수록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악의나 의심 따위에는 무관심했고 단순한 현실들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세계에 행복해 했다. 여자들이 무엇 때문에 코르셋이나 페티코트에 신경 쓰면서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단순히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기만 하면 되는 헐렁한 원피스 하나를 거친 삼베로 만들어서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옷 입는 문제는 더 이상의 절차 없이 해결해버렸는데 그것이 그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 단순함을 추구하는 그녀의 본성은 가히 놀랄 만한 것이어서 그녀가 편의성을 추구하면서 유행을 멀리하면 할수록, 즉흥적인 면에 따라 구습을 극복하면 할수록 그녀의 경이적인 아름다움은 더욱 뇌쇄적이 되었으며, 남자들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더욱더 자극적이 되었다.”

그녀는 거친 슈미즈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열을 식힌다는 이유로 허벅지를 드러내는 뻔뻔스러운 행동을 했으며 손으로 식사를 하고 나서 손가락을 빨아대는 취향이 있었다. 그녀에겐 독특한 냄새가 있어서 그 냄새는 그녀가 지나간 지 몇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녀의 체취는 남자들이 죽어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괴롭힌다. 그녀는 가느다란 오묘한 광풍이 불던 날 빨랫줄에 걸려 있던 침대 시트를 타고 오후 네 시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뻬뜨라 꼬메스는 젊어서 쌍둥이 형제를 사랑한다. 그녀는 두 사람과 번갈아 자는 동안 마치 두 남자인 것처럼 사랑을 해대던 한 남자를 갖는 행운을 가졌다고 믿었다. 나도 열렬한 사랑을 하게 되면 언제나 일관성이 있는 한 남자보다는 마치 두 사람인 것처럼 구는 한 사람이 좋다고 말했었다. 그건 쾌걸 조로 이후 여자들의 판타지라고 뻥을 치며 알려줬었다.

*뻬뜨라 꼬메스 -그녀가 세군도를 사나이로 만들었다. 세군도는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붙임성이 없고 혼자서 사색하기를 좋아했었는데 그녀는 세군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활동적이고 포용력 있고 솔직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에게 삶의 즐거움과 진탕 마시고 노는 파티와 낭비의 쾌락을 깨닫게 하여 마침내 사춘기 때부터 꿈꾸던 이상적인 남자로 개조해버렸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르난다와 결혼을 한다. 그녀는 도망간 애인이 돌아오도록 애인의 사진 앞에 양초를 켜 놓는다. 그녀는 그가 관에 들어갈 때 신고 싶고 했던 에나멜 반장화 한 켤레를 트렁크 밑바닥에 넣어두고는 절망하지 않고 기다리는 연습을 했다. 너무나 완강하고 정숙한 아내에게 질린 세군도는 곧 돌아와 사흘간의 잔치를 열어준다. 무절제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정욕과 그녀의 사랑은 그녀의 가축들에게까지 옮겨가 그녀가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시기는 그녀의 가축들이 광적인 번식력을 보이는 시대와 일치한다.

아연과 나는 사랑은 인간에게뿐 아니라 가축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으며 낄낄거렸었다. 아연이 도망가면 나는 공무도하가를 부르며 신발을 움켜쥐고 물에 뛰어들 거라고 말해줬었다. 기다리는 법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페르난다 -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넌 언젠가 여왕이 될 거야. 그녀를 가르쳤던 수녀들은 말했다. 저 학생은 장차 여왕이 될 거야. 몰락하는 데 200년이 걸린 그녀의 집에 세군도가 찾아왔다. 그녀는 보랏빛 잉크로 금욕해야 할 날들을 표시해 놓은, 조그만 금장 열쇠들이 달린 예쁜 달력과 황금 요강을 가지고 결혼을 했다. 부활주일, 일요일, 성일, 첫 금요일, 성찬일을 제하니 그녀가 쓸 수 있는 날은 42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녀는 결혼식 날 교묘하게 테두리를 두른, 커다랗고 둥근 구멍이 하복부에 달린 하얀 잠옷을 입었다. 세군도는 외쳤다. 내 평생 처음 보는 섹시한 잠옷이군. 그는 한 달 후까지도 페르난다의 잠옷을 벗기지 못했다. 남편은 곧 그의 애인이었던 뻬뜨라 꼬메스에게 돌아간다. 백포도주는 언제 어느 쪽에서 어느 잔에, 적포도주는 언제 어느 쪽에서, 어느 잔에 따라야 하는지 눈을 감고서도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였고 해안 지역 전체에서 황금 변기에만 용변을 보았던 사람으로 자부할 수 있는 유일한 그녀는 변하지 않음으로써 외로웠다. 그녀의 완고하고 황폐한 마음을 무너뜨린 것은 향수였다. 덕분에 그녀는 고독 속에서 인간미를 띄어갔다. 그녀는 고독했지만 사랑은 젬병이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그의 연인과 첫 관계를 맺은 날에서 날짜가 멈춘 달력을 자기 방의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아연과 나는 달력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페르난다는 달력의 구속에 갇혀 있었지만 우린 시간의 단서들에서 해방되어 보자고 한다. 달력을 없애기로 약속했었던가? 아니면 마야 사람들처럼 52년 만에 한 번 바뀌는 달력을 구해보자고 했던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 사랑을 하는 동안 그는 아코디언을 켜면서 노래를 부른다. ‘낳아라 소들아, 삶이 짧으니까 어서 낳으라.’ 여자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다가 결국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의 관 위에는 ‘암소들아 그만 낳아라. 인생은 짧다’라는 글귀가 쓰인다.

자기를 사랑하도록 만들려 애를 쓰다가 결국은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참 좋다. 이처럼 하면 사랑이 너무나 쉬워진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란따 - 그녀는 평생 두 남자를 사랑할 듯 말 듯한 태도로 괴롭혔고 그 때문에 비난받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적극적으로 빼앗아 왔지만 그와 결혼하지 않는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 자신의 너무나 큰 측정할 수 없는 사랑과, 극복하기 어려운 사랑의 두려움 사이에서 결사적인 투쟁을 벌이다가 비이성적 두려움이 승리를 거두어 버리게 해서였다. 그녀는 언제나 레이스가 달린 풍성한 페티코트를 입고 세월과 나쁜 기억들을 거부하는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자신의 수의를 짓는 데 다 지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낮에는 수의를 짓다가 밤에는 다시 풀어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고독을 이겨내겠다는 희망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독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늙음을 가리기 위해 구식 갱사 코르셋을 착용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을 날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편지를 모은다. 그녀는 죽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편지를 잔뜩 모아놓은 상자 옆에서 죽는다. 그녀의 죽기 전 소원은 자기가 처녀라는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증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란따 부엔디아는 이 세상으로 올 때와 똑같은 상태로 떠납니다.”

나는 아연에게 나의 이모 이야기를 해줬다. 평생 레이스 달린 속옷을 입고 다녔던 이모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올리는 게 취미였다. 나의 이모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모을 시간이 없이 돌아가셨지만 난 이 글만 읽으면 꼭 이모 생각이 난다. 이모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아마란따 이야기는 고독과 사랑의 갈림길에 대해 알려준다. 사랑 대신 고독을 택한 그녀는 손목에 검은 붕대를 감고 다닌다.

*메메 - 다 자란 처녀가 되었을 때 럼주를 세 병이나 마시고는 벌거벗고 친구들과 자신들의 몸 이곳저곳을 자로 재보고 서로 비교하기도 했었다. 메메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체면치레로만 부부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척했다. 그녀는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라는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노랑나비 떼가 나타난다. 항상 나비들이 그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그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어 놓던 날 그녀는 이제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녀는 그에게 미쳤다. 단지 그를 위해서만 살게 될까 자존심이 상하고 두려워 카드점을 치러간다. 점쟁이는 백 살 먹은 부엔디아 가문의 증조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사랑에 빠짐으로써 생긴 불안감은 침대 위에서만 해소시킬 수 있는 법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힌다. 할머니는 메메에게 침대보를 빌려주고 겨자찜질 증기 요법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방법과 양심의 가책까지 함께 쏟아내 버리게 하는 물약도 처방해준다.

우리는 증조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진보를 이해한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게 진보라고 말했었다.

메메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은 어머니 페르난다 때문에 연인이 죽게 되자, 음침한 병원에 유폐되어 늙어 죽게 된 먼 훗날 가을 아침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한순간도 연인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독과 사랑에 관한 한 그녀의 죽음은 정점이다.

*니그로만따 - 먼저 지렁이처럼, 그리고 달팽이처럼, 마지막으로 게처럼 몸을 쓰는 사랑법을 알려준다. (그게 뭐지? 어떻게 하는 건데?)

*아우렐리아노 - 거대한 사타구니 위에 맥주병을 얹고 균형을 잡으면서 집안을 싸돌아다닐 정도로 다시 볼 수 없는 정력의 소유자다. 그가 사랑하는 그녀가 복숭아 통조림을 열려고 애를 쓰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자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손가락을 빤다. 그날 이후 마꼰도 마을은 양피지에 쓰인 산스크리트어의 예언처럼 멸망한다.

『백년의 고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에 미쳐있고 지독하게 고독하다. 마르께스의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은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우리가 찾아갈 수 없는 마꼰도 마을의 일이란 다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마치 어느 사라진 왕국의 신화 같은 것이 사랑과 고독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과 고독은 신화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결코 살아볼 수 없는 무질서 뒤죽박죽, 집시와 이탈리아 왈츠가, 바나나 농장과 거대기업이 섞여있는 마꼰도의 일을 현대 도시로 옮겨오면 이렇게 말해줄 수도 있는 걸까? 인생은 진실로 위험하지만 도덕이 말하는 방식의 위험은 아니다. 인생은 진실로 버거운 대상이지만 그 본질은 전투가 아니다. 인생이 버거운 이유는 그것이 한 번은 겪어야 할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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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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