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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멎게 한 열정, 이승환 콘서트 환타스틱!

그러나 이번 무대는 거대한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데다, 당일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을 드리우고 세찬 비까지 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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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뮤지션의 공연은 다시 소개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칼럼을 언제까지 쓰게 될지 모르지만, 스타를 앞세운 유명 공연부터 언론에 제대로 소개조차 받지 못하는 영세한 무대까지, 그렇게 무수히 쏟아지는 공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승환’이 오른 이번 무대는 꼬박 1년을 지켜온 이 같은 규칙을 스스럼없이 허물게 했다. 필자의 개인적 취향이 지나치게 반영된 것이 아니냐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거대한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데다, 당일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을 드리우고 세찬 비까지 뿌린 것이다.


“잠실벌 통과의례인가 봅니다. 짠, 하고 멋지게 나타나고 싶었는데, 비 때문에 우물쭈물 무대에 섰네요.” 그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깊게 배어 있다. 그렇다, 지난 2003년 조용필을 비롯해(당시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마이클 잭슨, 메탈리카 등 아이돌을 제외하고는 국내외 톱스타들만 무대를 마련했던 잠실주경기장에 라이브의 귀재 이승환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힘든 경험을 하고 나서 방송 활동이며 각종 인터뷰, 특히 공연에 더욱 매진하고 있는 이승환. 데뷔 18년, 9번째 정규앨범까지 발표한 그는 이번 무대에 음악 안팎으로 큰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사전행사가 있었던 낮부터 오락가락하던 비는 본 공연을 앞두고 장맛비 못지않은 빗줄기를 과시했다. 광활한 주경기장과 전국에서 모여든 만 3천여 명의 팬들은 속절없이 맨몸을 드러내고 내리는 비를 맞는다. 그러던 것이 오프닝 무대로 아이비와 이적의 무대가 이어지자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무대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다. 대형 스크린이 비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데다, 호화찬란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도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속내를 드러낼 수 없다. 더더구나 언제 다시 쏟아질지 모르는 비 때문에 무대 위에는 악기와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천막이 군데군데 보기 흉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렇다, 그야말로 최악이다. 무대는 낮은데 만여 명이 들어찬 객석은 평지인지라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물기를 머금은 장비에서는 괴상한 소리도 들린다. 이런 마당에 애초 약속한 240분의 러닝타임을 채울 수 있을까?


저녁 7시, 먹구름 속에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과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본 공연이 열린다. 일단 반가운 그 목소리에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진다. 비옷을 2장씩 껴입은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원망이라도 하듯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무대를 향해 두 팔을 내벌리고 환호한다. “지금보다 5백 배는 더 멋진 무대를 준비했는데… 대신 이 한 몸 바쳐 무대에서 쓰러질 각오로 노래할게요!” 그렇게 9집 앨범에 실린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울다’를 비롯해 ‘내게’ ‘세 가지 소원’ ‘사랑하나요’를 온 힘을 다해 선사했다.

하늘이 감동했을까? 검게 드리워졌던 먹구름이 어느덧 가시고, 하늘에 떠있는 별까지 보인다. “우리 멋진 멤버들이 안 보이잖아. 천막을 거둬주세요.” 30분이 지나도록 이승환의 애타는 부탁에도 꿈쩍하지 않던 운영팀도 드디어 천막을 거둔다. 무대 앞쪽에 설치된 스크린은 여전히 먹통이지만 옆쪽에 마련된 화면에는 이따금 무대 위 모습이 슬쩍슬쩍 비치기도 한다. 이승환 얼굴의 대형 로봇이 공중에 등장하는가 하면, 노래에 따라 나무들이 오르내리고, 꽃과 나비 모양의 멋진 조명도 모습을 드러낸다. 멤버들이 어느덧 무대 앞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무대가 회전하면서 ‘텅빈 마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좋은 날’ 등 이승환의 데뷔 초 생계를 책임졌던 노래가 흘러나오자, 객석에서도 질세라 목청을 돋운다.

팬들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대 위 열기를 느끼고자 모두 의자 위에 올라선 이들은 ‘물어본다’를 부를 때는 미리 준비한 흰 천을 하늘에 날리며 박자를 맞추는가 하면 ‘Rewind’에서는 카드섹션까지 펼쳐보인다. 게다가 묵은 팬들이 많은지라 노래마다 화음은 물론 절묘한 추임새까지 잊지 않고 더하지를 않나, 하물며 쟀자 위에 서서도 환상의 점프를 감행한다.

케니 아로노프와 함께

당일 가장 시선을 끌었던 것은 화려한 게스트 군단이었다. 아이비, 이적을 비롯해 김진표, 싸이, 김종서, 김원준 등 각각 콘서트를 열어도 팬들이 몰릴 내로라할 뮤지션들이 이승환의 공연을 축하하고자 방문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노래는 물론 제대로 된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얼굴만 드러낸 채 사라졌다. 분위기 띄우는 데는 단연 국내 일등인 공연둥이 싸이조차 몸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묻힌 것이다.

이승환은 그렇게 약속을 지켰다. 150m에 달하는 무대를 이리저리 내달리며, 맑은 미성에서부터 땅을 짓누르는 듯한 거친 창법까지 구사하며, 미처 보여주지 못한 갖은 무대장치를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대신하며 장장 4시간의 무대를 지켜냈다. ‘천일동안’과 ‘그대가 그대를’ ‘세월이 가면’과 ‘변해가는 그대’로 2번의 커튼콜까지 마친 이승환은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이보다 다섯 배 멋진 모습 보여드릴게요”라며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연말 짧은 인터뷰를 위해 이승환을 만난 적이 있다. 방송이나 무대를 통해 알아왔던 맑고 다정다감한 모습과는 달리 다소 차가운 모습에 혼자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렇게도 낯을 가리는, 게다가 무대 울렁증까지 있는 그가 어쩌면 공연 때는 물 만난 고기처럼 지칠 줄도 모르고 뛰노는 것일까? 그야말로 ‘환타스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던 이번 공연이 최고였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이승환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는 단연 돋보였지만, 공연은 뮤지션과 기획력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었든 준비부족이었든, 무대 안팎에서 공연을 즐기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으며, 주경기장 자체가 너무 거대해서인지 짜임새 있는 맛도 덜했다. 또한 경기장 입장까지 비효율적인 동선처리와 내리는 빗속에서 동난 비옷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승환은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이번 무대에 대한 아쉬움을 다음에 다섯 배 더 멋진 모습으로 갚겠다고 했으니, 아마 믿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이 한없이 올라갈 수만은 없다. 공연이 됐든, 열정이 됐든, 체력이 됐든, 떨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정점을 기점으로 더 이상을 바라지 못할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이승환은 이번에 정점에 오르지 못했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팬들에게는 아마도 즐거운 기다림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승환의 공연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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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콘서트 <환타스틱>
2007년 5월 12일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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