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선 정말로 잡소리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짧게나마 언급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원래 이번 글의 주인공은 요즘 기독교계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인문학계의 아이돌 도올 김용옥 선생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전 글을 쓰려고 도올 선생의 저서 『요한복음강해』를 거금 16,000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당장 가진) 전 재산을 털어 책을 구입한 저는 남들의 방해가 없는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요한복음강해』 서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문제의 대목에 다다랐습니다.
「(전략) 좋다! 그래서 요한복음강해를 하기 전에 요한복음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정확히 연역(衍繹)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붓을 대기 시작한 것이 1,500매의 장문의 논문이 되어 하는 수 없이 『기독교 성서의 이해』라는 단행본으로 엮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기독교 성서의 이해』는 본서의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책이다. 그러니까 본서는 사실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이해』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수고스럽지만 『이해』로부터 읽어야만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논지를 료연(了然)하게 파악할 수 있다. (후략)」
… 예,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아직 출간도 안 된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강의라도 먼저 듣고 있으려 해도 수강료 35,000원이 있을 턱이 없는 통장 잔고와 지갑 덕에 도올 선생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더 잘된 일일지도 몰라요. 기독교계와 도올 선생 간의 논쟁이 좀 더 심화되고, 『기독교 성서의 이해』가 출간된 후에 글을 쓰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요. 본의 아니게 칼럼 예고를 하고 말았네요.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도올 선생에 대해 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진짜 주인공에 대한 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그가 그 자신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둡시다 ? 아나운서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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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아나운서 김성주 | |
지난 며칠간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던 기사 중엔 김성주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선언 관련 기사도 있었습니다. 프리랜서 선언이 임박했다는 추측성 기사에서부터, 프리랜서 선언을 벌써 했다는 기사, 프리랜서 선언은 오보라는 기사, 김성주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기사까지 오만 가지 기사가 무성했지요. 이 글을 쓰는 25일까지는 프리랜서 선언이 오보라는 쪽으로 결론 나고 있어요. 어쨌거나 기사는 나왔고, 리플도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김성주가 프리랜서 선언을 해도 꾸준히 응원하겠다는 네티즌도 많지만, ‘기껏 키워줬더니 제 주제도 모르고 돈에 눈이 멀어 회사나 배신하다니 배은망덕하다’라는 리플이 반이더군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육두문자까지 섞어 가며 김성주를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문만 나돌아도 저렇게 욕을 먹는데, 정말 프리랜서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반면 ‘MBC는 생각이 있다면 김성주 월급을 올려줘라’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퇴사를 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 수익은 현재 김성주가 버는 수익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거든요. 급료를 현실화하라는 주장이죠. 전 이 주장 역시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급료를 현실화하라는 리플 먼저 간단하게만 짚어볼게요. 급료 현실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회사가 받을 타격이 문제가 아니라, 아나운서 간의 위화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나운서국에는 여러 명의 아나운서가 있고, 시청률과 상관없이 다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시청률과 인기도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두어 ‘현실화’한다면 어떤 바보가 <지구촌 리포트>나 〈TV 속의 TV〉에 출연하겠습니까. 목숨 걸고 인기 프로그램을 따내기에 혈안이 되겠지요. 시청률이 안 나오는 프로를 맡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성과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지나친 성과주의로의 귀결 역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결국 아나운서 전체에 대해 처우개선이 필요한 건데, 이건 다시 MBC라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노조원 전체로 확장되는 문제고, 다시 공중파 3사 전체로 퍼지게 되는 일입니다. 물론 전 방송노동자에 대해 처우개선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찬성하지만, 김성주 개인의 월급을 올려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성주 개인의 월급을 올려주고자 아나운서 전체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는 것 역시 선후관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고요. (이와 관련해서 김성주가 아나운서 전체의 처우개선을 위해 싸우려고 힘을 합치지 않고 혼자만 쏙 빠져나간다고 비난하는 리플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김성주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MBC 사원입니다. 퇴사를 했는지 아닌지조차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평상시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면서 던지는 저런 비난은 자신의 비열함을 자랑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 그럼 리플의 반수를 차지하는 ‘배신을 하다니 배은망덕한지고’라는 리플이 왜 위험한지 천천히 짚어보겠습니다. ‘키워준 곳을 배신하고 배은망덕하게’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엔 어떤 생각이 작동하는 걸까요? 이런 말이 나오기까진 적어도 세 가지 생각을 전제해야 합니다. “하나, MBC가 김성주를 키웠다. 둘, 더 좋은 조건을 위해 회사를 옮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배신’이다. 셋, 아나운서는 공인이므로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제약을 받는다.” 전 지금부터 이 세 가지 생각을 하나하나 반박할 생각입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악플이 사람을 죽였네 어쩌네 하면서 반성과 자정의 물결이 일렁이던 웹이 금방 다시 악플로 뒤덮이는 것도 보기 못마땅할뿐더러,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부당한 이유로 비난받는 걸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기가 부끄럽거든요.
1. MBC가 김성주를 키웠다?첫 번째 생각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끼’ 하면 두 번째도 서러울 아나운서 김완태, 임경진과 함께 교양프로그램 <사과나무>를 진행하며 주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2006년 독일 월드컵 중계팀 중 가장 간판급으로 알짜배기 경기를 진행하며 인기를 키울 수 있었던 것도 MBC 아나운서국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그 후 주가가 올랐을 때 시의적절하게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투입되어 맹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겠지만요. 하지만 단순히 ‘MBC가 김성주를 키웠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까지 오르고자 김성주라는 개인이 들인 노력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그가 각종 케이블 채널을 오가며 아나운서가 되려고 들인 노력과 시간, 각 스포츠 경기마다 경기 결과와 특이점을 기록해서 노트로 정리해 자신만의 자료로 보관해 두는 치밀함 등은 싹 무시되어 버리는 거죠. 방송국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재능이 없는 사람을 스타로 띄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MBC 역시 김성주가 스타가 된 덕분에 각종 프로그램에서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김성주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지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경제야 놀자’, <황금어장> <두뇌발전소 Q> <불만제로> <대학가요제> <창사 45주년 기념 가요 라이벌 쇼>, 기존에 진행하던 <김성주의 굿모닝FM>까지 합치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법하지요. 더군다나 <굿모닝FM>은 동 시간대 청취율 1위니 김성주 덕에 MBC가 보는 득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MBC가 김성주를 키워줬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만을 서술하는 겁니다. 회사의 지원, 개인의 재능과 열정 그리고 그것이 발휘된 시기가 딱딱 들어맞았다고 하는 게 마땅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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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인기상을 받은 김성주 | |
2. 더 좋은 조건을 위해 회사를 옮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배신’이다?두 번째 생각은 좀 이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지가 월급을 더 많이 주고 그 사람의 가치를 더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회사로 옮겼다고 이야기할 때 ‘배은망덕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에 있던 회사에서 많은 기술을 배우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전면적으로 지원해 주는 직장으로 이직하는 사람에게 ‘배은망덕’이라고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사람들이 이런 식의 말(‘키워놨더니 나를 배신하고 뒤통수를 때려? 이런 배은망덕한 것’)을 실제로 입 밖으캷 내뱉는 걸 본 것은 한국 조폭영화밖에 없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기껏 심복으로 키워놨더니 어느 날 ‘애들’을 풀어 기습공격을 해치우고는 ‘여~ 형님 신수가 훤하십니다~’ 하고 건방 떠는 부하를 보며 배신감에 치를 떠는 주인공 말입니다. 그런데 당사자 MBC도 그런 내색을 안 하는 와중에 몇몇 네티즌은 ‘저런 배은망덕한 것, 내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제가 지어낸 리플이 아닙니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 기사에 달린 리플을 살펴보세요. 진짜로 저런 단어를 쓴다니까요. 저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에요.
만약에 그래도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40분가량 방송되는 <일밤>의 ‘경제야 놀자’ 한 꼭지를 위해서 적어도 3시간에서 5시간정도 녹화하고 김성주가 받는 출연료는,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3만 원입니다. 한 달에 4번에서 5번 정도 촬영을 하니까 그럼 한 달 고정 급여에 12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 더 받는 셈입니다. 물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그거 하나는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과 실제 노동시간에 비해서 저임금이란 생각은 안 드나요? 자신의 팬카페를 관리해줄 사람도 없고, 자신이 입을 의상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의 스케줄을 대신 관리해 줄 사람도 없고 이동도 직접 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김성주는, 한 회 출연에 기백만 원에서 기천만 원을 받으며 주변 사람의 관리하에 오로지 방송에만 전념할 수 있는 MC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된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를 고려하지 않겠습니까? MBC에 남자 아나운서가 김성주 하나인 것도 아닌데 혼자서 과중한 업무를 짊어지고 뛰면서 실질적인 이익은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을 더 잘 관리해줄 회사로 눈길이 가는 게 일견 당연하지 않으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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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MBC 대학가요제>에서 탁월한 진행솜씨를 보여준 김성주 | |
3. 아나운서는 공인이므로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제약을 받는다?세 번째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댄 이야깁니다. ‘방송인은 공인이 아니다’라고요.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깝게는 동사무소에서 행정업무를 보는 공무원에서 멀게는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각 정당의 수뇌, 고위 행정가, 각종 사회단체 대표 등을 공인이라고 부르지요. 이 사람들의 일은 대체로 그 사람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이익관계에 관련되므로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모든 일을 해야 하고, 그 과정이 투명해야 하며, 그런 이유로 이들에겐 남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방송인은 그렇지 않죠.
전파는 공공의 재산이지만, 그 전파를 채우는 콘텐츠 자체가 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전파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시청자 역시 그 전파가 올바른 소리만 중얼거리며 도덕적인 가치로만 채워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아슬아슬한 불륜 이야기가 피어오르는 드라마에,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이 바보 연기를 하고 물벼락을 맞는 오락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합니다. 물론 방송의 공익적인 면, 정보전달과 진실보도의 면모에 박수치고 응원할 때도 있지만, 시청자라는 사람들은 변덕이 심해서 어느 한 가지 가치만을 좇다 보면 채널은 금방 돌아가 버립니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방송인이 자신의 욕망을 적당히 긁어주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높은 수준의 도덕 기준을 준수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죠.
방송인의 덕목은 정확한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맡게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해진 일만 맡아서 잘한다면, 어떤 도덕관념에 따라 살아가는가가 그들에 대한 평가항목이 될 순 없어요. 그들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말 한마디의 파급 효과가 크다고 해도 ‘공인’으로 분류해야 하는 건 아니죠. 솔직히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한국처럼 방송인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동시에 방송인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나라가 어디 흔합니까. 방송인에게 광대인 동시에 공인이기를 바라는 것 역시 이율배반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우리보다 더 높은 도덕률을 요구할 이유는 없지요.
왜 난데없이 ‘공인’ 운운하며 도덕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의 사소한 부도덕은 너그럽게 용서하면서 TV에 나오는 사람들에겐 숨 막힐 정도의 도덕률을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방송인은 어느 자리에서든 예의 바른 사람이어야 하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라고 믿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이 있고, 나라마다 제각기 다른 국민정서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 단순한 ‘이직’을 ‘키워준 회사에 대한 배신’으로 이해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옮기는 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듯, 김성주가 더 나은 조건을 위해 회사를 옮기는 것 역시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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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말(言) 달리자> 아나운서 특집편에 출연한 김성주 | |
‘딴따라’에 대한 천시그렇다면 이제 제가 질문을 할 차례입니다. ‘왜 사람들은 김성주가 프리랜서로 전업하는 것을 그렇게 못마땅해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요. 이를 알아보려면 우리는 프리랜서로 전업한 아나운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금희는 욕을 먹지 않는데, 강수정은 왜 오만 가지 비난에 휩싸이게 된 걸까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얘기를 꺼낸 사람이 대답해야겠죠. 전 강수정이 이금희처럼 <인간극장> 같은 조신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면 이렇게 비난의 화살을 맞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강수정이 비난받는 이유는 그녀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연예인과 춤을 췄기 때문입니다.
전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믿습니다. 예능계 전체에 대한 끈질긴 천시가 없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망가지는 아나운서를 이렇게까지 심하게 비난할 리 없어요. 그러면 똑같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깔때기를 휘두르는 백승주와 강수정의 차이는 뭘까요? 이 역시 조신하게 앉아서 깔때기를 휘두르는 ‘안방마님’과 직접 물을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며 남자 연예인의 꽃다발을 받는 ‘날라리’의 차이일 겁니다. 결국 시청자는 아나운서가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물벼락을 맞고 뿅망치를 휘두르는 걸 보고 즐거워하면서, 정작 그 고생을 하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아나운서씩이나 되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라며 비하하고 끝이라는 거죠. 근데 그런 천한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돈’ 때문에 회사에서 나가겠다니, 못마땅해 보일 수밖에요. 김성주의 오랜 꿈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죠? 만약에 지금 김성주가 ‘프리랜서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퇴사한다고 하면 지금처럼 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꿈’ 때문에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건 칭찬할 만하고, ‘현실’ 때문에 ‘프리랜서 딴따라’가 되는 건 비난받아야 하는 일인지, 전 쉽사리 수긍할 수 없습니다.
급변하는 방송가에서 이미 교양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 간의 벽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에 아나운서가 진행했을 법한 프로그램을 여타 연예인이 꿰찬 지금, 아나운서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적어도 우리 모두 동의한 민주주의 원칙,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본 원칙은 ‘직업엔 귀천이 없다’예요.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바지가 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무한도전> 멤버를 보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춤을 추는 아나운서를 봤을 때 불편하더라도 거기에 대고 삿대질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보도국도 예능국도 똑같이 시청자에게 유익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목적하에 ‘귀천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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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황금어장>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 김성주 | |
그가 그 자신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둡시다얼마 전에 읽다가 폭소한 신문 기사가 있어요. 청주시에서 ‘청주를 빛낸 인물’로 김성주를 선정하고 등신사진상을 제작해 관광상품으로 만들려고 했다가 시민들의 반발과 김성주 본인의 고사로 무산된 일이었습니다. 청주시도 민망했겠지만, 아마 가장 민망했던 건 김성주였을 겁니다. 이렇게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면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흔히들 ‘오바한다’라고 말합니다. 덕분에 김성주 개인의 이미지까지 같이 우스워질 뻔했죠.
김성주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기 일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죠. 게다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한, 제법 재능 있는 방송인입니다. 우리에겐 그의 인생에 참견해서 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습니다.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이적한다더라!’ ‘이적했다더라!’라며 오보를 터뜨리는 인터넷 매체와 그런 결정에 손가락질하며 ‘저런 배은망덕한 배신자!’라고 외치는 일부 네티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나아가 우리 시대를 먼발치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우리의 후손은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제가 청주시의 호들갑을 보고 ‘오바한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이제 사람들이 이 정도로만 하고, 김성주가 김성주일 수 있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