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80년생,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최연소 수상, 전공은 극작이다. 생애 첫 번째 소설책 『달려라, 아비』를 독자들에게 선보인 그녀는 작품보다 수식어가 먼저 다가온다. 게다가 책에 실린 사진은 그런 수식어의 ‘설득력’을 더 강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발랄하기보다는 진지했고, 가볍기 보다는 무거웠다. 아날로그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성장기는 ‘소설’이나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충남 서산에서 자란 그녀는 문화적인 혜택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진학한 것도 특별히 연극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국립대학이었기 때문에 진학했어요. 내내 글 쓰는 것을 전공으로 고민했었는데, 극작과라면 글 쓰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연극을 한 편도 못보고 연극원에 들어갔어요.” 합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학교에 걸릴 때까지 부모님은 시험을 친 것을 몰랐다.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쳤는데 붙었어요.” 그렇게 연극원에 진학해 희곡 작법과 이론을 전공했고, 지금은 소설가다.
‘신인 가뭄을 해갈할 신예’(최원식-문예평론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녀의 소설은 스타트가 순조롭다. 그렇지만 인터뷰는 순조롭지 않았다. 집밖을 처음 나온 고양이처럼 그녀는 모든 질문을 낯설어했다. 질문을 하나씩 꼭꼭 씹어가면서, 천천히 머릿속에서 고른 단어들을 연결해 대답을 한다. 때로 질문에 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갔다 들어와 다시 대답을 해주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혹시 ‘그녀의 쌍둥이 언니’가 대신 인터뷰를 나온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도 잠시 했다.
“아직 인터뷰 하는 기술이 부족하달까. 친구라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신문에 난 인터뷰에는 제가 무척 발랄하고, 신세대답게 그려졌는데요, 80년생 소설가다 보니 ‘발랄해야 한다.’ ‘튀어야 한다.’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저 사실 소심한 편이에요.”
말은 느렸고, 길이는 짧았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적어도 이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세련되고 그럴 듯 하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아는 만큼만 대답했고, 모르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이제 막 매체를 통해 세상을 만나기 된 신인 작가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긴장된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촌스럽지만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최연소 수상 소감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 문단이 내게 내민 따뜻한 악수처럼 느껴졌어요.” 작가에게 상은 명예이기도 하지만 금전적인 도움도 역시 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문단과 소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도 그녀는 담담했다.
“다들 반가워하시는 듯 했어요. 그게 무섭거나 기쁘거나 한 것은 아니고요. 다만 작품이 아닌 외부적인 것. 작품의 수사가 작품을 앞질러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 혜택을 주는 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내가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이제 만 25살. 심심치 않게 나이 어린 소설가들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를 접하기는 하지만 이토록 찬사를 받은 첫 작품집을 내기에는 이른 나이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출생연도가 작품을 특색 짓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말고도 8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이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80년생이 소설을 쓰고 발표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79년에 태어나 소설을 썼든 81년에 소설을 썼든 지금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예술의 세계처럼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분야도 드물다. 나이가 인간을 매료시키는 ‘반짝반짝한 그 무엇’을 선사하진 않는다. 좀더 잔인하게 이야기하자면, 오손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에 나오는 말처럼 ‘Some people can sing, others can't.'인 것이다. 결국 언젠가 그녀의 힘으로 80년생, 그리고 최연소 무엇이라는 수식어를 떼버리거나 무력화시킬 날이 올 것이다. 나이가 그녀의 재능을 만든 것이 결코 아니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첫 소설을 자신이 운영하던 재즈 카페의 부엌에서 써내려갔다. 그녀는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을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써내려갔다. “몰아서 썼던 편이에요. 도서관에나 과 사무실 같은 곳에서 소설을 썼죠. 이제 좀더 꾸준히 써야 되지 않을까요. 작품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재능이지만, 완성시키는 것은 성실입니다. 성실함이 없는, 재능만으로 쓴 작품은 매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허약한’ 작품입니다.” 그녀도 그런 성실함을 갖춘 작가가 되려고 매일매일 쓰지는 못해도 꾸준히 쓰려고 지금 노력 중이다.
“소설을 쓰게 된 필연적인 이유는 없어요. 처음부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이 맞물리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단어가 떠오른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그녀도 독자만큼이나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글쓰기는 ‘독서’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책에 실린 「스카이 콩콩」이라는 작품은 ‘가로등’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쓰게 되었다. 제목은 항상 마지막에 떠오르는 편.
“먼저 단어가 떠오르고 그 다음부터 글을 써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쓰기보다는 쓰는 과정에서 제가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이런 글쓰기의 방법이 최선은 아니지만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생각해요. 글을 쓰다가 나도 모르는 장면을 만났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아요. 플롯을 미리 짜놓고 글을 쓰거나, 취재를 하는 것도 앞으로는 해 봐야겠죠.” 그녀의 소설 형식이 기존의 소설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면, 그것은 그녀가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왜 소설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쓴 소설로 넘어갔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그녀는 자기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쓰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면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달려라, 아비」라는 제목이 독특했어요. 처음에는 ‘아비’가 아버지인줄은 몰랐어요.”
“「달려라, 아버지」라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아버지를 아비로 바꾸는 쪽이 호흡이 더 편하고, 아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이니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다양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많은 여성작가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는 편인데, 작품 속 화자 내지 주인공의 성별이 결정적 단어가 나오지 않는 한 독자가 잘 알아채지 못하게 한 것에 무슨 의도가 있나요?”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여성보다는 인간에 주력하고자 했거든요.”
“작품에서 유난히 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는데요.”
“조셉 캠벨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왜 아이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가 하면 어머니는 항상 여기 있기 때문이다’라고요.”
“그러고 보면 ‘달려라, 아비’에 나오는 엄마도 한국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인물이죠.”
“굉장히 건강한 엄마죠.”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친절하지만 외상은 되지 않는 편의점, 비슷한 방에서 비슷한 문화를 소비하면서 사는 네 명의 여자. 물고기의 비늘처럼 방의 다섯 면을 빼곡히 메운 포스트잇, 소심함으로 잠들지 못하는 여자,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을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주는 딸,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나 친근하게 구는 동창생. 누추한 삶의 한 구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도, 너스레로 눙치기만 하지도 않는다. 마냥 웃기지도, 그렇다고 마냥 슬프지도 않다. 그 절묘한 균형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이 그렇다.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달려라, 아비」중에서)
그녀의 감수성은 70년 대쪽에 더 가깝다.
“학교에서는 6~7년 연상들과 어울렸고, 제가 사는 세계나 접하는 세계가 굉장히 작고 좁기 때문에 제가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생각이나 문화를 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70년대 세대와 80년대 세대가 고민하는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더 은폐되고, 세련되게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죠.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할 말은 별로 없어요.”
지금까지 발표한 것은 모두 단편. 앞으로 장편 역시 쓸 생각이다.
“단편은 지금 받아둔 것만 쓰고 쉬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작품에 대한 평론도 빠르고, 작품의 소비도 빠르게 이루어지죠. 어떤 분이 저를 보고 ‘혜성처럼 등장한’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혜성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잖아요(웃음). 단편이 개인을 만나는 느낌이라면 장편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어디 먼 나라에 뚝 떨어져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세계를 만나는 느낌이죠, 장편은.”
그녀는 소설 쓰기를 즐긴다.
“직업이기 때문에 즐겁게 힘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고 글을 썼는데 그것이 완결되고, 책으로 나온 것을 보면 신기한 느낌입니다. 이 책을 누군가가 수고롭게 한 줄씩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더 신기해요.” 독서는 특별한 체험이다. 200에서 300페이지에 달하는 종이를 손으로 한 장씩 넘기고, 모든 줄을 일일이 눈으로 훑어야 하는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경험이다.
얼마 전 조교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비자발적인’ 전업 작가가 된 그녀는 글쓰기와 관련 없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전업작가’-그러니까 글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를 꿈꾸는 것과 달리 그녀는 글과 동떨어진 평범한 직업-예를 들면 공무원 같은-을 가지고 싶어 했다.
“평소에는 치과 의사로 일하다가 올림픽이 되면 육상 선수로 출전하는 사람처럼 직장을 다니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왠지 건강해보이고요. 경험이라는 것은 책을 통해 얻을 수도 있고, 취재를 통해 얻을 수도 있지만 긴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 글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요?”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의 직업이므로 ‘문장’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을 한다. “매끈하게 잘 썼지만 담고 있는 주제가 평범한 것 보다는 다소 거칠지만 담고 있는 주제가 설득력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문장의 서투름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비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녀는 자기 작품을 꽤 여러 번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자기 작품을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을 때도 있단다. “읽으면서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으른 문장을 볼 때 제일 안타깝죠.”
희곡을 전공한 것은 글쓰기에 도움을 줬다.
“소설과 희곡 사이에 장르적 우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매력적이죠. 희곡은 공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습니다. 희곡이라는 것은 몸을 통해, 호흡을 통해 구현되는 것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도 좋고, 캐릭터와의 거리 감각을 배우는 데도 도움을 줬어요. 희곡이라는 것은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구체적이죠. 또, 희곡을 쓰다보면 인간에 대해 좀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좋은 작품에 대해서도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작품 속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가, 성실하게 질문하고 있는가, 그런 것은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작품을 읽어보면 독자는 분명 느낄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읽고 있는 많은 고전 작품들에는 그런 진정성이 있죠.”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그녀가 써두었던 ‘소설 안의 어떤 정직’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작가로서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딛은 그녀는 기분 좋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에게는 말에 대한 죄책감,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가 그렇게 편하지 않아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부분도 있고요. 어떤 인터뷰에서는 너무 말을 많이 했고, 어떤 인터뷰에서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 농담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인터뷰를 하면서 두려웠던 것은 작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데 대답한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타성에 젖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싫어요.”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타성’에 젖을 확률은 없지 않을까 싶다.
첫 소설집에는 특별함이 담겨 있다. 독자는 첫 소설집에서 씌어진 것 이상을 읽는다. 좋은 묘목을 발견하는 정원사의 마음으로, 앞으로의 성장을 상상하면서 연애를 처음 시작한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첫 작품이다. 작가도 독자도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녀는 소설이라는 긴 항해를 이제 막 시작했다. 항해를 떠난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첫 책을 읽은 독자들은 ‘견딜 수 없게 사랑스럽고 잔인한’, ‘연민하기 보다는 상상하는 편이 나은’ 이야기가 속속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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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애란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단편「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고, 같은 작품을 2003년 계간『창작과비평』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고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