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최초로 경험하는 영원한 이별은 조부모님의 죽음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부모님 역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적절한 애도의 시간을 갖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림책 『물개 할망』에서 제주 해녀의 강인함을 보여준 오미경 작가는 동화 『안녕, 나의 하비』에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는 할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는 손자의 모습을 담았다. 그림책 『수영장』, 『문』 등으로 세계에서 작품 세계를 인정받은 이지현 작가가 글의 정취를 살리는 그림을 더했다.
『안녕, 나의 하비』는 아홉 살 무무가 할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다룬 작품들은 적지 않지만, 죽음을 다룬 국내 창작 동화는 많지 않은데요.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오미경 : 이 글을 쓸 무렵, 2년 새에 어머니랑 언니와 차례로 이별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상과 작별하고 떠나는 사람은 무엇을 남기고 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영원히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놓치지 말고 찾아내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요. 내가 이별을 겪으면서 느낀 죽음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어린이들도 이미 이별을 겪었거나 언젠가는 이별을 겪을 테니까요.
『안녕, 나의 하비』는 유쾌하고 다정한 일상의 풍경으로 시작해서, 주인공이 위기를 겪고 성장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쓰기 어려웠던 장면을 꼽으신다면요?
오미경 : 동화 속 하비는 실제로 모델이 있어요. 동화 속 인물처럼 어린이와도 같이 맑고 순수한 동심이 살아있는 분인데, 동화 내용과는 달리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지요. 주목나무 울타리를 멋지게 가꾸는 것이며, 요리를 즐기는 것, 지혜로움, 유쾌함 등이 실제 모습이랑 닮아 쓰는 동안 즐거웠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달이랑 숨바꼭질하는 장면이에요. 쓰는 동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어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아무래도 멋진 하비를 떠나 보낼 때였어요. 무무의 슬픔이 똑같이 느껴졌거든요.
살다보면 사랑하는 반려 동물이나 가까운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이별 혹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오미경 :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돼요. 저의 이별 방법은 애도 기간을 충분히 가진 뒤에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거예요. 마음속으로 수없이 대화하면서 천천히 떠나 보내요. 그러고 나면 조금 거리가 생겨나고 담담해지는 것 같아요. 슬픔에 너무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로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안녕, 나의 하비』는 어린이 독자들이 혼자 읽어도 좋겠지만 여럿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작품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나요?
오미경 : 이별했거나 내 곁에 남아 있는 가족, 친구, 반려동물과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읽으면 좋겠어요. 이별을 경험한 독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독자들 모두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이 동화를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 좋겠어요. 하비가 무무랑 나누는 대화 속에는 우리가 살면서 되새겨 보면 좋을 삶의 지혜들이 많이 녹아 있거든요. 우리의 삶은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하비를 만나 보길 바랍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멋진 시간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글,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그림책과 원고를 읽고 작업을 하는 동화책은 작업하는 과정이 많이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가님만의 원고 선택 기준이 있을까요?
이지현 : 이야기와 그림 모두 제가 진행 할 때는 아무래도 이야기와 이미지의 구상이 동시에 일어나게 돼요. 그래서 내용과 이미지가 딱 붙은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밖에 없고요. 글 작가님이 쓰신 원고에 작업을 할 때에는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원고를 읽었을 때에 전체적인 정서가 저의 그림들과 어울리는지 생각하게 돼요.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책이 될 것 같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가의 여부예요. 구체적으로 떠오르면 더 좋고, 그렇지 않다면 막연하게라도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어야 해요. 추후 작업을 해 나가면서 이런 이미지들을 발전시키거나 변형하면서 완성하게 돼요.
『안녕, 나의 하비』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혹시 작업을 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지현 :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아름다운 전원에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는 이야기를 꿈꿔 봤을 거예요. 저 역시 엄마로서 그렇고요. 거기에 더해 바쁜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하비라는 커다랗고도 따스한 존재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무무에게 아름다운 전원은 하비의 품과 같이 느껴졌을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하비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직접적으로 하비를 많이 등장시키는 것보다, 자연의 모습을 통해 하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부분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안녕, 나의 하비』에 수록된 그림들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고, 슬픔이 느껴지면서도 단단한 느낌이 드는데요. 그림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쓰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이지현 : 원고의 느낌이 그랬어요. 따뜻하면서도 슬픈 정서가 평소 제가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잘 맞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림이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그림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 너머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해 준다고 생각해요. 슬프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들, 예를 들면 하비가 돌아가시는 장면이라든가 입원해 계시는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신경쓰며 작업했어요. 죽음이란 일생에서 몇 번 마주하지 않는, 그러나 크게 흔적을 남기는 경험이에요. 때로 사람을 무너지게 하고 성장하게 하기도 하고요. 이미지로는 굉장히 강렬하지요. 그것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굳이 이미지로 보여줄 필요는 없었어요. 직접적인 사실보다는 무무의 감정, 혹은 하비의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오미경 1965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했다. 1998년 <어린이동산>에 중편 동화 「신발귀신나무」가 당선되어 어린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2012년 『사춘기 가족』이 '올해의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경험이 동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키 작은 풀, 꽃, 돌멩이, 나무, 아이들과 눈맞춤하며 동화를 쓰는 일이 참 행복하고, 좋은 동화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