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이맘때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대표 시즌 송이 노랫말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스푼북 〈노래가 좋아 그림책〉 시리즈의 네 번째 책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길 기다리는 애틋한 소망과 헤어짐마저 감싸 안는 커다란 사람을 그린 곡은 어느새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노래의 아름답고 따뜻한 가사에 그림 작가 최정인의 새로운 해석과 그림 고유의 스토리가 더해져 새로운 감동과 풍성한 여운을 담은 그림책이 완성됐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익히 알고 있는 노래의 노랫말로 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어떠셨나요?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노랫말을 듣는 순간, 이미 머릿속으로 한 편의 이미지 시나리오가 떠올랐기에 어렵지 않게 작업을 진행했어요. 노래와 함께 들으면서 책을 봐도 좋고, 그림책이라는 매체로서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읽혀도 자연스럽기를 바랐습니다.
단순히 가사에 어울리는 장면이 아니라, 그림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로 인해 노랫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특히 '축복'의 의미가요. 그림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들뜬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외로워 보이는 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누구나 느껴봄직한 정서라고 생각해요. 나만 빼고 뭔가 세상이 행복하게 돌아가는 기분이 들 때, 누구나 자연스레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우리는 조금씩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고, 정서적으로도 건강하게 살아가기 힘듭니다. 우리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결된 관계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사랑스럽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글 없는 그림책처럼 독자들마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각 장면에 대한 해석과 느끼는 감동도 모두 다르겠지만, 독자들이 특히 눈여겨 봐주었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그 이유도 말씀해 주세요.
각자의 방식으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작업하는 모든 그림책 이미지 속에서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는 여러 만남이 이루어져요. 소년과 고양이,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소녀,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와의 만남 등등. 보는 사람마다 가장 와닿는 만남이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등장하는 장면이에요. 첫 장면에서 세상을 궁금해 하는 새끼 고양이의 시선은 창밖으로 향해 있지요. 그 옆에 어미 고양이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어요. 이 복선은 마치 뒤에 나올 소년과 엄마와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기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지친 소년이 잠들었을 때, 달빛을 등지고 골목의 탐험자가 되어 신나게 걷고 있는 새끼 고양이의 그림자를 찾아보세요. 그 옆에는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 주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부모, 혹은 양육자와 성장하는 아이의 관계가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무엇인가요?
아홉 살, 어린 아이로서는 상당히 비극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들이 반짝이고, 문방구 입구에는 트리 장식과 알록달록 화려한 그림의 종이 카드들이 가득했죠. 나도 오늘 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멋진 선물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잠들었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내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홉 살 아이는 혼자 이불장 속에 들어가 문을 닫았어요. 어둠 속에서 '산타는 없다.' 몇 번을 장롱 문 안쪽에 옅은 연필로 써 내려갔어요.(나만 알아볼 수 있게 말이죠) 그러고는 한동안 숨죽여 훌쩍였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린 날의 크고 작은 결핍이 성장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속에 그런 아스라한 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조금쯤은 들어가 있지 싶어요.
보통 그림책의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리시나요? 작업 루틴이 있으신지, 또 작가님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작업들의 시작은 과거 어떤 시점부터 이미 제 안에서 발아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속으로 품었던 씨앗들을 잘 모았다가, 본격적으로 발현하면서 구체화하는 시간이 1년에서 2년 정도 됩니다. 작업 루틴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전에 세 시간 정도 페인팅이나 드로잉 작업을 하기 위해 집중합니다. 하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순조롭게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되는 날도 있지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작업 전후로 꼭 산책을 합니다. 짧게는 이십 분, 길게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가 되기도 하고요. 오후에는 사람 구실을 하느라 해야만 하는 일과 그림 외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합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 그림과 이어지는 사람들과 일상이 모두 풍요롭고 소중합니다. 저를 움직이는 동력은 세상에 대한 멈추지 않는 호기심과 삶에 대한 애정이에요. 그것들을 제 시선으로 기록하고, 경탄하는 과정이 창작으로 이어집니다.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계신데,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백 사람에게는 백 개의 우주가 있다는 말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누군가의 재능과 성취에 대해서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도 저의 다음 작업이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웃음) 이런 기분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작은 인형이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탐험하는 이야기와, '사랑'이라는 테마로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랄하게 보여 주는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정인 (그림) 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오랜 시간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감한 구도와 강렬한 색감을 즐겨 사용한다.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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